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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SS번역] HANABI 제 2장 (1)
글쓴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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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28 08: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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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방황】


―1―


오사카 시즈쿠는 소멸했다. 물론 그 이름을 가진 인간은 존재하고 있지만, 아르바이트로 끼니를 이어가는 검소한 삶을 살며 배우를 계속하는 여자는 일단 사라진 것으로 했다. 과거의 데이터를 이어받아 살기에는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먼저,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연극을 그만둘 거라면, 본가에 돌아가 부모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 비호 아래로 돌아가는 것이 손쉽다. 다만, 연극을 그만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연극을 계속한다면, 앞으로도 꿈을 좇는다면, 타카사키 유우에게 두근거림을 계속 제공한다면, 이 위험한 방을 떠나야만 한다. 이제, 그런 눈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과 조우하는 일이 있어선 안되니까.


"죄송합니다. 문제에 휘말려 버려서"

"괜찮아. 어려울때는 피차 일반이니까. 그건 그렇다 쳐도, 시즈쿠쨩은 인간 관계 같은데서 문제에 휘말릴 것 같은 타입은 아니긴 한데, 혹시 스토커?"

"그런 게 아니에요. 친구와 다퉜다고나 할까"

"멘헤라 이런거? 머리 자른게 그 때문이야?"


시즈쿠는 애매하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날 밤의 일을, 자신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설명해 오해를 사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시즈쿠가 처음으로 의지한 것은 마을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는 5살 정도 연상의 남자였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은 없었지만, 만약에 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자를 휘말리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는 후우타라는 이름이었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다. 부모가 자산가인데다가 방임주의여서 수입과 비슷한 정도의 집세인 2LDK의 맨션에 살고 있고, 시즈쿠가 소속되어 있는 극단의 멤버도 끼워서 자주 파티 등을 주최했었다.


"헛간으로 쓰고 있는 방을 써. 방해되는 게 있으면 좋을대로 치워도 되니까. 누가 썼는진 잘 모르겠지만 이불도 있고. 그런데, 짐, 그것 뿐이야?"

"네. 회수 업체 같은 곳에 부탁했어요. 정말 좋아하는 책이랑, 대본이랑, 갈아입을 옷이랑, 일단 당장 필요한 것만 챙겨서 다른건 버리고 왔어요"


부모님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시즈쿠는 살고 있던 방을 해약했다. 2년도 되지 않았기에 위약금을 물고, 회수 업체를 불렀더니 생각했던 것 보다도 아득히 큰 금액을 지출해 꼬박꼬박 모아둔 돈은 거의 없게 되었다. 보스턴 백과 캐리어 가방 하나씩에 들어가는 개인 물건만이 재산이 되었다. 그런 자신을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시즈쿠는 '오사카 시즈쿠'라 하는 가엾은 여자아이를 연기하고 있기로 했다. 비극이라는 것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시즈쿠는 살 곳마저 잃어버린 가련한 '오사카 시즈쿠'를 동정했다.


사람은 모두 원활히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를 연기한다. 사랑받는 아이를 연기하고, 친한 친구를 연기하고, 착실한 회사원을 연기하고, 성실한 파트너를 연기하고, 다정한 부모를 연기한다. 시즈쿠도 어릴 때부터 그랬다. 결코 자신이 내키는 대로 살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걸 할 수 없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언니처럼 똑똑한 소녀를 연기하는가 하면, 이웃에게 칭찬받는 예의바른 딸을 연기하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늘 칭찬받는 우등생을 연기하는 일도 있었다. 어차피 연기하면서 살아 왔다. 조금 특수한 배역이 들어왔을 뿐이다.


"규칙 같은 건 특별히 없지만, 나, 거의 여기서 밥을 먹지 않으니까. 적당히 사서 만들어 먹어도 좋고, 냉장고에 이것 저것 놔두어도 좋고, 주방도 마음대로 써"

"네. 감사합니다"


헛간으로 하고 있는 다다미 6장*짜리 방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도 있고 기타도 있었다. 더 이상 입지 않는 것인지 긴 코트나 유난히 품이 넓은 바지도 있었다. 게임기나 헤드폰이나 열지 않은 골판지 상자나 전권 갖춰진 만화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방에 산다는 불안 같은건, 살 곳이 없다는 절망에 비하면 스트레스조차 아니었다. 살짝 정리하자 짐을 놓고 이불을 펼 정도의 공간이 생겼다. 거기서, 시즈쿠는 맥이 빠져 멍해졌다. 털썩 주저앉은 채 들어온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점이 명확하지 않았고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도 불확실했다. 여기에 오기까지 일주일 남짓, 자신이 얼마나 긴장하고 살아왔는지를 자각했다. 안전한 거처가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은 이렇게나 긴장이 풀린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 약 3평 (10 제곱미터)


할 일이 없어서 대본을 펼쳤다. 자전거로 몇 분만에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후우타의 방에 들어온 덕에, 1년 반 계속해 온 아르바이트와 동료가 있는 극단을 잃지 않았다. 사건의 충격으로 며칠인가 연습을 쉬었지만, 그것으로 배역에서 내려가게 될 만큼 엄격한 상황도 아니었다. 우에하라 아유무의 말은 잊어버리자. 유우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응원해 준다. 자신이 발하는 두근거림을 기대해 주고 있다. 노력이 가져다 주는 결과가 아닌, 발버둥치는 과정에 두근거린다니, 그런 말을 믿어도 좋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대본을 펴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었다.


이번 배역은 '혼노지의 변' 전날 도쿄로 타임슬립 해버린 여자 고등학생이다. 절친인 2인조 중 한 쪽을 시즈쿠가 연기하게 됐다. 이화(異化)를 위해 타임 슬립이나 소생, 공간 이동 등을 사용하는 것은 이곳 극작가들의 버릇이었지만, 배우의 기량을 생각했을 때 이해하기 쉬운 연극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는 맞아 떨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잠자리가 정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연습만 하면 된다. 유우에게 아유무에 대한 것은 전하지 않았다. 유우가 사건을 알게 되어 시즈쿠와 거리를 두어버리고 마는 것이 두려웠고, 어느 쪽이냐고 말하자면, 유우가 '자신보다 아유무와의 관계를 우선했을' 때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이런 세일러 복을 입은 여자 아이가 갑자기 "당신 내일 살해당해요"라고 전했을 때 믿어 줄거라 생각해? 그것보다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한 사람인지 알아?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을 학살해 왔는지 알아? 우리가 죽는다면 의미가 없잖아?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과, 이 시대의 키요미즈데라를 보러 가는 것이 최우선이잖아?'


일어서서, 물건에 둘러싸인 채로 대사를 하고 있는데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하고 대답하자 후우타가 얼굴만을 내밀었다. 세련되고 청결감이 있고 날씬하며, 파트의 배치로는 나쁘지 않다——라는 것은 극단에 있는 여자 아이들의 공통된 평가였지만, 남자친구로 하고 싶냐고 물으면 'NO'라고 하는 것도 공통된 생각이었다. 시즈쿠는, 남자친구가 어쩐다든가 취향이 어쩐다든가 하는 것 보다도 연극에 대한 것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조금 집중해서 그림 그리고 있으니까, 연습하려면 밖에서 해줄래?"

"앗, 네. 죄송합니다"


후우타는 미안한 듯 했다. 파티라 칭하는 10명 이상의 남녀가 밀어닥치면 집주인인데도 '좁아서 미안하네'라고 사과할 법한 그런 남자였다. 후우타가 그린 그림은 이 마을 이곳 저곳에 있었다. 다른이에게 겸손하고 언행이 부드러운 탓인지 이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상냥했다. 흰색과 검은색을 기조로 한 그림이 주를 이루는데, 카페에 장식되어 있거나 메뉴에 그려져 있거나 했다. 이 동네의 라이브 하우스를 거점으로 하는 밴드의 CD 자켓을 그려준 적도 있고, 작은 개인 전람회를 열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판매도 해 나름대로 팔리고 잇는 것 같았다. '슬슬 누군가 내 재능을 알아봐 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자신이 공격적으로 경쟁이나 콩쿨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나무라는 건 아니야"

"괜찮습니다. 밖에서 할게요"


초겨울부터 조금씩 계절은 겨울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지내기 좋은 계절이라면 공원이나 광장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서 있는 것만으로 얼어버릴 것 같은 계절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대본과 지갑과 스마트폰을 작은 주머니에 넣고 후드가 달린 베이지색 더플 코트를 걸쳤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입었기에 슬슬 바꿀 때이지만, 어머니가 신주쿠의 타카시마야에서 사 준 것으로 비쌌기 때문에 당분간은 입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가려고 하니, 결과적으로 내쫓은 듯한 모습이 되어 마음이 불편했는지 후우타는 당황한 듯 제안을 해 왔다.


"아까 편의점 가려다 엄청 추웠으니까 역 앞의 노래방에서 하는게 좋을거야. 음악 하는 애들도 연습할 때 사용할 정도니까 큰 소리라도 괜찮고. 평일 이 시간이라면 한 방 30분 200엔 정도였을걸"

"월급일 전이라 돈이 없어서.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요"


한 번의 연습에 500엔을 쓸 수 있냐고 생각하면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낙담을 표정으로 나타내자, 후우타는 종종걸음으로 거실로 돌아가 1000엔짜리 지폐 두 장을 가져왔다. 이걸로 연습하고 와도 괜찮아. 내친 김에 간식도 사먹어도 돼. 가까운 사람에게 듣는다면 시즈쿠에게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없어서, 2000엔을 받고 방을 나섰다.


외출한 순간의 풍경이 다를 뿐이고, 조금만 걸으면 잘 알고 있는 동네였다. 쇼와 중반부터 버려져 있던 것 같은 민가의 마당에는 갈색으로 숙성된 액체가 담긴 페트병이 놓여져 있었다. 시즈쿠가 이쪽으로 이사왔을 때부터 존재했고, 그걸 마시면 어쩌면 초인적인 연기력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바보같은 생각을 했지만, 배탈이 나거나 그 이상의 데미지를 내장이 입을 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노래방에 도착해 방을 하나 확보했다. 드링크바에서 우롱차를 들고 왔더니 나름대로 쾌적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스쿨 아이돌 동료와 함께 왔고, 졸업하고는 연극부의 동료와 비교적 자주 노래하러 왔지만, 혼자서 노래방에 온 적은 없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기분 좋게 노래하는 여자 아이를 연기하는 것으로 하찮은 자신의 인생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을 뿐이다. 터치 패널을 건드리는 일 없이 대본을 펼쳐 마이크의 전원도 켜지 않고 연습을 시작했다.


'역사가 바뀌면 우리들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지도 몰라. 반의 모두들도 가족도, 이 세계에 없던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몰라. 나는 싫어. 내가 살아있던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 세계에서 한 명도 없게 된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사람은 다른이에게 기억될 때 비로소 누군가가 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떤 이들은 사업이나 스포츠나 연예 활동으로 명성을 드높이려 하고, 어떤 이들은 죄를 지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고 한다. 좀 더 일상적인 곳에서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으로 가족에게 기억되려 하고, SNS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인지되려고 한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미움받기 싫어서 주위에 맞추는 것만으로는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러니까 자신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배우를 목표로 하려 하고 있다.


그 한편으론, 기억 같은 건 쉽게 바뀌어 믿을 수 없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의 정보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가 갖고 있는 정보도, 형편 좋을대로 조작했을 뿐인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그러니까, 우에하라 아유무의 도발적인 말에서 옮겨 심어진 기억을 필사적으로 떨쳐내려 하고, 타카사키 유우의 말이나 체온을 꿈 속에서도 기억해두려고 하며, 배우를 계속하는 것이 그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2시간, 드링크 바로 목을 축여가며 연습하고 더플을 걸쳤다. 돌아가려는 때에 아무렇게나 큰 소리로 노래하는 남자가 있어서 무심코 발을 멈췄다. 살짝 안을 들여다보니 일이 끝난 직장인인지 30대 정도 되어보이는 사람이 마이크를 쥐고 열창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노래를 했다간 몇 곡만에 목이 지칠거라고 생각했다. 'Get chance and luck 혼자라도 상처받은 꿈을 되찾자고'. 자신의 꿈은 상처받은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걸까. 눈을 돌리듯 그 자리를 피했다.


받은 돈이 남았기에 편의점에서 작은 컵케이크를 두 개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후우타는 집중해서 그리던 시간이 끝난 건지, 거실의 소파에 뒹굴며 복싱 경기를 보고 있었다. 시즈쿠는 있을 곳을 고르던 끝에 일단 카펫에 앉기로 했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돼"라고 해서 헛간 방으로 돌아왔다. 싫증날 정도로 읽은 소설을 다시 폈다. 밤이 되자 후우타는 "먼저 자도 돼"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시즈쿠는 배고픔의 수십배쯤 되는 졸음에 사로잡혀 이불 속에 들어가더니 인생에서 가장이라 말해도 좋을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



남자의 방에 들어온 이상 시간의 문제일 뿐이고 그렇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고 있었고, 각오를 다진다 표현할 정도로 순진한 것도 처녀인 것도 아니었지만, 새삼스레 자신은 걷기 힘든 길을 걷고 있구나 하고 질릴 정도로 몸이 반응해주지 않았다. 그 날은 드물게도 저녁부터 둘이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개인 전람회의 일정이 정해진 것에 대한 축배라고 하며, 후우타가 사 온 3000엔 정도의 와인을 딴 것이었다. 후우타의 개인 전람회는 처음인 것도 아니었고 개인 전람회를 계기로 크게 비약할 일도 없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비슷한 멤버가 모이고, 틀에 박힌 감상을 말하고, '다음은 내 쪽도 잘 부탁해'같은 이야기를 하며 기분 좋은 자기 만족에 잠기는 보통의 행사였다. 그래도 뭐, 극단의 가장 아래 팀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시즈쿠보다는 분명히 위에 있었다.


"시즈쿠쨩도 오디션 받아보는게 어때? 귀엽고"

"그렇네요. 기회가 있다면"


소파에 앉아 와인잔을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 '도'라니 뭘까? 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것을 노골적으로 묻거나 하진 않았다. 집 주인인 후우타가 기분이 좋으니까, 방을 공짜로 빌린 자신은 거기에 변경을 가하지 않도록 주의하는게 좋을 것이다. 클럽의 여종업원을 연기하는 기분으로 와인잔에 붉은 와인을 따랐다. 이윽고 취기가 올랐는지, 후우타는 일단 켜져있던 TV를 끄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반응을 살피는 듯한 키스를 받아, 시즈쿠의 키스 경험은 남자가 4명에 여자가 2명이 되었다. 20살로서 많은건지 적은건지 보통인건지 특별한건지 모르겠지만, '오사카 시즈쿠'라는 여자 아이는 아무래도 꽤나 방탕하네요 라고, 시즈쿠는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괜찮아? 시즈쿠쨩"


이 무대 설정에서 아직 허가를 얻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시즈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했다. 시즈쿠가 입고 있던 헐렁한 스웨터가 벗겨져 갔다. 부끄럽다기보다 조금 쌀쌀한 느낌이 들어 자신을 끌어 안았다. 안에는 회색의 히트텍을 입고 있어서 색기고 뭐고 없었지만, 흥분해서 여유를 잃은 남자에게 여자의 속옷 퀄리티 같은 건 문제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딥키스를 주고받으며 브래지어까지 벗겨졌지만 여전히, 시즈쿠는 전혀 흥분되지 않았고, 집세를 대신하는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세미더블 침대로 옮겨 불빛을 오렌지색의 보안등으로 바꿨다. 후우타는 지금까지 시즈쿠를 안았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중한 애무를 해왔다. 시즈쿠의 생김새나 행동이 아가씨 같았기 때문인지, 남자들은 모두 부서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듯이 시즈쿠의 알몸을 취급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리적으로 무리인 것도 아닌데 시즈쿠의 몸이 응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건 이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즈쿠가 전혀 준비되지 않는 것에 초조해진 것인지, 후우타는 슬쩍 속을 떠보듯이 물어왔다.


"시즈쿠쨩, 처음?"

"아니긴 하지만, 저, 잘 젖지 않아서"


여기서 '처음'이라고 말한다면, '처음이니까 아픈것이 당연'하다는 공통 인식을 방패로 삼아 끝까지 했을 것이다. 처음은 아니다. 그렇지만 잘 젖지 않는다. 솔직하게 그런 설명을 하는 것으로 후우타의 마음에서 최소한 억지로 하게 하려는 의욕을 잃게 했다. 일단 고무를 꺼내들고 매너 있는 남자라는 것을 호소해 왔다. 그가 꺼낸 상자에 써 있던 'sagami'라는 문자를 보고, 이 여배우는 분명 가나가와 출신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 sagami의 본사는 가나가와 현에 있다.


"그런가. 그럼, 천천히 할게. 아프면 솔직히 말해"

"부탁드립니다"


시즈쿠의 본가는 키보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넓은 마당에는 수국이 잔뜩 심어져 있었다. 중학교 시절, 장마철에 잠깐 맑은 날 같은 때에는 색색으로 만발한 수국에 둘러싸여, 살짝 축축한 돌계단을 무대로 연극 연습을 했었다. 본가에서는 커다란 개를 기르고 있고, 시즈쿠는 언니와 교대로 가마쿠라의 낡은 골목길을 산책했는데, 가끔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지카사키 근처로 나가 해안을 따라 걸었다. 그런 때, 시즈쿠는 스스로에게 깊은 방의 영애 역을 맡기고 우연히 알게 된 서퍼와 사랑에 빠져 달아나는 이야기 같은 것을 망상하거나 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에 걸쳐 쇼난의 해변이나 에노시마를 무대로 한 수많은 이야기를 생각했지만, 살 곳이 없어지는 이야기는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팟!"


참을 수 있을 정도라면 참고 싶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목소리가 나왔다. 후우타가 시간을 들여 애무해 주었지만, 완전히 무의미했다. 고무를 끼고 있으니까 마찰이 크다든가, 그런 차원을 넘어서 성기 자체가 물체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보안등의 오렌지빛 불빛 아래서 후우타는 병자를 연민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것은, 시즈쿠를 안으려 했던 다른 남자들이 보인 것과 같은 얼굴이었다. '처음'이라고 대답했다면, 아픈 대신 연민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즈쿠는, 마음이 아프거나 몸이 아프거나의 두 선택지 밖에 갖지 못한 오사카 시즈쿠를 동정했다.


"죄송해요"

"체질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네. 그럼 손으로 해줄래?"


체질인걸까. 타카사키 유우에게 안길 때에는 키스만으로도 속옷까지 잠겨버린다. 손가락으로 거칠게 휘저어져도 아프지 않고, 너무 느껴버려서 날카로운 울음 소리를 내어버린다. 남자가 생리적으로 무리인 것도 아니고, 타카사키 유우만을 받을 수 있는 몸이 된 것 뿐이다. 시즈쿠는 유우와의 성교를 돌이키면서, 후우타가 말한 대로 멸사봉공했다. 옆으로 나란히 누워 유두를 핥으며 페니스를 손으로 훑어줄 뿐이니, 꽤나 수월했다. 마음을 담지 않아도 리듬만 담으면 좋아해주니 간단했다.


이윽고 5분여만에 사정했을 때, 시즈쿠는 문득 오사카 시즈쿠가 언젠가 풍속점에서 일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본가에 머리를 숙이고 가마쿠라로 돌아가, 집안일을 도우며 인맥도 넓은 부모님에게 누군가를 소개받아, 평범한 주부의 배역을 마지막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지와 검지의 측면에 묻은 정액을 휴지로 닦아내면서, 오늘 정도는 같이 자는 건가 생각했더니, 방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내쫓겼다.


헛간 같은 방에 돌아왔을 때, 시즈쿠는 유체이탈을 한 듯 골판지 상자 위에서 오사카 시즈쿠를 바라보고 있었다. 칠흑같은 방 안에서 오사카 시즈쿠는 요 위에 정좌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이불에 뒹굴며, 잠옷 대신인 스웨트를 내리고 손장난을 시작했다. "유우씨, 유우씨". 선배의 이름을 반복하는 그녀의 손 끝이 작은 소리를 냈다. 조금 전까지 후우타에게 안겼을 때와 다르게 안쪽까지 촉촉했던 것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유키 세츠나에요'


시즈쿠가 정중한 문자를 받은 것은 후우타의 방으로 들어간 지 일주일 정도 지난 밤의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와 인터넷에 접속해 방을 찾아보고 있었다. 보증금이라든가 보증인이라든가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언제까지나 여기서 살고 있을 수 없는 것은 확실했다. 좁아도 좋으니 월 8만엔 정도를 찾고 싶었다.


맛을 들였는지 후우타는 약국에서 로션을 사오고, 그것을 사용해 시즈쿠의 봉사를 업그레이드 했다. 내친김에 그 윤활액을 이용해 시즈쿠에게 삽입하려고도 했지만 역시 통증이 너무 심해서 성공하지 못했다. 시즈쿠에게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은, 로션을 사용하는 것으로 불과 수 분만에 작업이 끝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지만, 입을 사용한 새로운 서비스를 요구받아 지도받았기 때문에 턱이 지쳐 있었다.


'시즈쿠씨에게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어요'


문자를 보낸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한 학년 위의 선배인 유키 세츠나였다. 다만 그건 본명이 아니다. 세츠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른바 '예명'을 사용해 활동하고 있었다. 학생회장과 양립하기 위한 조치긴 했지만, 시즈쿠는 세츠나의 연기를 결코 호의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배역을 받아 무대에 서도 '오사카 시즈쿠'라는 인간을 분리할 수 없는데, 세츠나는 손쉽게 그것을 해내고 있고, 지금도 아이돌과 일류 대학생을 공존시키고 있다. 그런 식으로 요령이 좋은 그녀에게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만나고 싶어요. 날짜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세요'


하고 싶은 말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만날 일정만을 물어왔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고 있는 시즈쿠는 극단의 연습 일정까지 더하면 매우 바빴지만, 그래도 평일 밤에 틈을 내 만나기로 했다. 솔직히, 지금의 자신을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의 동료와 만날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만나려고 하는 것은 상대가 세츠나였다는 것과, 그 문자에서 절실함을 느꼈다는 것과, 만일 세츠나가 절실한 상황에 있다면 자신에게 뜻밖의 희소식이 들릴지도 모른다는 그런 추악한 계산을 했기 때문이었다.


………


"오랜만이에요! 머리, 잘랐네요!"

"아아, 네, 기분 전환으로"


시부야에서 조금 언덕을 올라 골목을 들어간 다이닝바에서 만나고 있었다. 시즈쿠에게는 전철로 간단히 갈 수 있는 장소고, 세츠나는 소속된 사무소가 시부야에 있었다. 세츠나는 학생회장 때를 떠올리게 하는 땋은 머리를 하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일단 아이돌이므로 남의 눈을 피하려는 조치겠지만, 시부야는 각계의 유명인사가 길거리에 평범하게 다니고 있기 때문에 변장의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시즈쿠는 뚫어지게 선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츠나는 변함없이 에너지가 가득하고 밝았기에 마주보고 앉는 것만으로도 시즈쿠는 조금 압도당했다.


"성인식 전인데 잘라버린 건가요?"


그런 의문은 생각해도 입 밖에 내지 말았으면 한다. 시즈쿠는 예민해진 눈을 내리깔았다. 세츠나는 그 행동만으로도 짐작하고 화제를 바꿨다. 고등학교 시절의 스쿨아이돌 동호회에서 기쁜일과 슬픈일을 함께 했던 동료들의 이야기를 에피타이저처럼 나눴다. 그 때 재밌었어. 그 때 힘들었어. 세츠나는 변함없이 영리하고 언변도 뛰어나며 빈틈없이 시즈쿠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었다. 타카사키 유우의 이름이 나왔을 때, 어깨로 동요가 나타나버린 것을 놓치지 않았다.


"시즈쿠씨, 졸업하고 나서 유우씨를 만났나요?"

"네, 제 무대를 보러 와주니까요"

"그랬나요. 저의 미니 라이브나 악수회도 빠지지 않고 오거든요"

"세츠나 씨에게 '두근거리'기 때문이지 않나요?"


세츠나의 쑥스러운 듯한 태도를 보고 시즈쿠는 자신과 '같음'을 직감했다. 유명 대학에 다니며 마이너 아이돌을 계속하는 큰 이유에 타카사키 유우의 존재가 있다는 것. 타카사키 유우가 압도적으로 뜨거운 눈동자로 유키 세츠나의 등을 열정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것. 마음도 몸도 유우에게 독이 올라버려 도망치거나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수영복이나 코스프레를 담은 이미지 비디오를 내면서까지 '아이돌'이라고 하는, 유우에게 '두근거림'을 줄 수 있는 존재이고 싶어한다는 것. 유우와 세츠나의 관계는 손쉽게 상상할 수 있었고, 눈 앞에 있는 머리를 땋은 여자 아이가 폭력적인 유우의 성욕에 탐닉당하고 있다 생각하니 흥분이 더해지는 것이었다.


"유우씨에게 두근거림을 주고 싶다. 그게 원동력 중 하나였죠"

"그걸 일부러 전하러 온건가요?"


시즈쿠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일부러 시간을 비웠으니까, 아르바이트를 빼서 하루치 수입을 희생했으니까, 하나에 1000엔 가까이 하는 가게에서 벌써 1시간이나 마시고 있었으니까, 좀 더 재미있는 것을 이야기하며 즐기지 않으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연기를 써서 압력을 가했다. 세츠나가 절반 가까이 남아있던 사워를 단번에 마셨을 때, 마침내 나타난 본론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름이 끼쳤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유키 세츠나는 자살하려고 합니다"

"편안한 이야기는 아니네요"


세츠나는 과장된 표정을 지은 뒤, 작은 목소리로 한 사무소의 이름을 거론했다. 시즈쿠는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지금 있는 사무소에서 그쪽으로의 이적을 권유받은 듯 했다. 권유받았다고 해도 세츠나의 실적을 생각해보면 실질적으로는 회피할 수 없는 명령에 가까웠다. 이적을 권고해왔다는 것은 회사원이라면 인사이동의 이름을 빌린 좌천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자르지는 않겠지만 우리에게는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떤 탤런트가 소속되어 있나요?"

"요즘으로 치면 섹시 여배우에요. 저는 팬들과 유우씨의 미소를 위해 아이돌을 계속해 왔지만, K대 법학부생 나카가와 나나의 경력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싶진 않기에 5년 이상을 사귀어 왔던 유키 세츠나의 인생에 막을 내리기로 결정한 거에요"


세츠나는 창과 같은 시선을 향해 왔고 시즈쿠는 그것을 진흙 심장으로 받아냈다. 시즈쿠의 가슴에는 아무것도 와 닿지 않았지만 세츠나는 분명히 비극에 취해 있었다. 동정을 시도하기에는 너무 싸구려 같았다. 시즈쿠의 뇌에는 어둠의 막이 드리워졌다.


"자살이란건 뭘 하는 건가요?"

"손목을 자를거에요"

"죽는다구요?"

"조금으로 괜찮아요. 다만 그 조금의 의식이 필요한 거에요"


손목에 약간의 상처를 내고 아이돌인 유키 세츠나를 매장하고 싶다고, 학생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학생 회장의 얼굴로 미련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시즈쿠는 눈을 크게 뜨고 관심 있는 척을 했다. 자신 안의 아이돌에 대한 이미지를 밀어붙이기도,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 동호회를 부숴버리기도, 역시 하고 싶다고 마음을 바꿔 부활시키기도 했다. 누군가의 등을 밀어주거나 손을 끌어주거나 했을 때도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세계를 움직이고 싶었을 뿐. 그리고 지금은 막다른 길에 선 '유키 세츠나'를 제거하고 왕도로 돌아오려 하고 있다.


"저는 뭘 하면 좋을까요?"

"입회해 주었으면 해요"


그런거라면 타카사키 유우를 입회하면 될 터이다. 거절하려다가 말았다. 80년을 산다 해도 누군가의 자살에 입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게 만약 엉터리 연극이라 하더라도 없을 것이다. 오사카 시즈쿠는 여배우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젋을 때 많은 고생을 하고 견문을 넓히며 경험을 쌓아 두는 편이 좋다. 상관 없어요라고 동의하자, 세츠나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어디서 죽을 생각인가요?"

"근처 비즈니스 호텔에 방을 잡았어요. 거기서."


여배우기 때문에, 엉터리 연극이라 하더라도 성실하게 공연하기로 했다. 둘은 체크인 시간을 역산해 가게를 나섰다. 한겨울이 다가오는데도 조금씩 때아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걸어서 호텔에 도착하고 간단한 수속을 마친 뒤 엘레베이터로 8층으로 이동했다. 방은 좁았지만 트윈베드였다. 상의를 벗어 옷장에 정리하고, 교대로 샤워를 한 뒤 실내복으로 침대에 걸터 앉았다. 땋은 머리에서 아이돌 때의 머리 모양으로 돌아와 안경을 벗은 유키 세츠나는, 가방에서 오렌지 색의 과도를 꺼내 칼집을 뽑았다. 날붙이가 방의 불빛을 튕기고, 시즈쿠는 우에하라 아유무에게 습격당한 밤의 일을 생생히 떠올려 몸서리쳤다.


"일단은 인터넷에서 알아봤지만, 조금 불안해요"

"손목을 자르는 것 말인가요?"

"오히려 지혈 방법이요. 너무 깊게 베지 않는다면 간단히 멈출 수 있는 것 같지만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

"이 상처는 나카가와 나나가 짊어지고 가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눈에 띌 때마다 나카가와 나나는 유키 세츠나에 대한 것을 떠올리지 않으면 안돼요"


세츠나는 가방에서 거즈와 붕대를 꺼냈다. 그 하얀 빛이 이상하게 눈부셨다. 자살하기 전에 지혈 방법을 알아봐두는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즈쿠는 즉흥적인 희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지만, 세츠나가 의외로 진지해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어쨌든 무언가 감각적인 의식을 하지 않으면 오랜 시간 같이 살아온 또 다른 자신을 지울 수 없는 것일 터이다. 지운다든가 지우지 않는다든가, 병행해서 걸어온 두 개의 인생의 한 쪽을 끝낸다든가, 지금의 시즈쿠에게는 완전히 속임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아이돌 유키 세츠나는 죽겠습니다"


세츠나는 과도의 칼날을 팔에 댔다. 손목에서 10센티미터 정도 팔꿈치로 향한 근처였다. 날붙이를 쥔 손은 분명 떨리고 있었다. 눈썹과 입술은 라이브 전보다도 굳어 있고, 매끈매끈하고 건강한 뺨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시즈쿠는 터질 듯한 기분을 필사적으로 누르고 있었고, 이렇게나 절실히 연기하는 세츠나를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는 소재라고 시샘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연극부 무대에서 자해를 반복하는 소녀를 소재로 한 적이 있어 시즈쿠도 다른 부원과 함께 자료 수집을 했었다. 사진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충격으로 토한 부원도 있었다. 상처입지 않으면 '자신'으로 있을 수 없는 여자아이들을 조사했던 사람으로서, 필요 없게 된 옷을 버리는 감각으로 손목을 자르려고 하는 세츠나는 분명히 이질적이었다. 온천에 놓여 있는 물뿌리기용 수통을 머리에 쓰고 목욕하는 외국인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좋아함'을 받아 행복했어요"


희고 매끄러운 피부에 길이 5센티미터 정도의 칼집이 생겼다. "감사했습니다". 나카가와 나나는 유키 세츠나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한 일자(一) 모양의 상처에서 순식간에 붉은 피가 넘쳐났다. 넘친다고 해도, 번진다는 표현을 조금 강하게 한 정도였다. 지금 입은 상처는 분명 본가의 기둥에 있는 '키 표시용' 상처보다도 훨씬 얕은 것이겠지 하고, 결국 언니의 키를 추월하는 일은 없었지 하고, 시즈쿠는 선혈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괜찮나요?"

"괜찮아요"


세츠나는 완전히 당황한 호흡을 하며, 그래도 예행 연습을 반복했는지 솜씨 좋게 거즈로 압박하고, 출혈을 막는 자신의 손을 살기 어린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자 튼튼하게 붕대를 감고 성취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상처와 그 출혈량으로 자신을 지워 없앤 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극단에 권유하고 싶을 정도였고, 그녀가 참가한다면 싱겁게 자신을 넘어설거란 예감도 들었다. 자신은 자신의 상식을 벗어난 연기를 할 수 없는게 아닐까 하고 우울해했다.


"무사히 죽였나요? 유키 세츠나를"

"네. 사무소에 사표를 냈기 때문에 완전히 끝났어요"

"세츠나씨의 온기는 아직 남아 있나요?"

"네? 무슨 말인가요?"

"밤이 밝아 시체가 되어버리기 전에 아이돌 유키 세츠나를 안고 싶어요"


트윈 베드를 가로막던 공간이 급격히 좁아졌다. 시즈쿠는 망설임 없이 세츠나에게 입술을 포갰다. 이건 유명 대학에 다니고 있는 나카가와 나나의 육체가 아니고, 이미 차갑게 식어 썩어버린 시체니까 입회한 인간이 조금 더럽히더라도 죄가 되진 않겠지.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에 모든 설득을 쏟아 넣었다. 세츠나는 무저항으로 침대에 밀려 넘어졌고, 실내복과 속옷 모두가 벗겨지면서도 여전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해의 흥분에 싸여 있는지, 시즈쿠가 손가락을 쓰면 씩씩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몸부림쳤다. 타카사키 유우 이외의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 자신과 달리, 유키 세츠나는 처음 살결을 주고받는 상대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목소리와 체액이 넘쳐났다. 시즈쿠도 맹렬히 욕정하고 있었지만, 그게 자신의 육체에 작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머릿 속으로만 무한히 흥분하고 있었고, 모든 상상력은 세츠나의 피부로 향하게 됐다.


2시간이 지나도 유키 세츠나의 시신은 식지 않았다. 한편, 시즈쿠의 흥분은 완전히 가라앉아 오히려 냉담해져 있었다. 예의 바르게 "잘 자요"라고 인사한 후, 아이돌 유키 세츠나는 마지막 잠에 들었다.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꽤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불도 끄지 않고 알몸인 채로 어린아이처럼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걸로 죽을 생각인 건가요?"


시즈쿠는 세츠나가 완전히 죽은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고 스마트폰 셔터를 눌렀다. 그 스마트폰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세츠나의 것이었다. 나란히 걸을 때 비밀번호를 몰래 엿보고 기억해 두었었다. 마음속으로 외칠 정도였기에 중얼거리고 있었다. 손목에 살짝 상처를 내서 끝인가요? 침착하게 지혈을 해서 끝인가요? 땋은 머리를 한 채 안경을 쓰고, 고인이 된 유키 세츠나의 DVD를 '그런 건 존재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사는건가요? K대 학생으로 순조롭게 취업에 성공하고 대기업에 종사하게 되는 건가요? 연인을 만들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정말 좋아하는 건 가족'이라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하는 건가요?


"너어무 무르지 않나요?"


시즈쿠는 느슨한 미소를 지으며 세츠나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성인계의 '마토메 사이트'를 방문해 알몸으로 자고 있는 세츠나의 사진에 '유키 세츠나・사후'라 코멘트를 덧붙여 그럴듯한 스레를 3개 정도 골라 투고해 주었다. 슬쩍 흘러갈 지도 모르고, 흥미를 가진 누군가가 유키 세츠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볼지도 모른다. 그건 어느쪽이라도 좋았다. 다만, 꿈이 무너졌다고 해서 자작극으로 간단히 자살하는 것만은 용서하기 어려웠다. 이쪽이 주소 불명・자칭 극단원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데, 작은 상처 하나로 K대 법학부 3학년으로 돌아가려 하는 보험이 미웠다. 최소한 확률 수준의 위험은 져야 한다고, 심판을 내릴 생각으로 인터넷에 집어 던졌다.


"애통하네요"


시즈쿠는 옷을 입고 더플을 걸친 뒤, 작별의 대사를 남기고 방의 조명을 껐다. 막차 직전의 혼잡함에 시달려 가장 가까운 역까지 돌아오니 겨울인데도 비가 심하게 내리고 있었다. 개찰구 근처에서 무섭도록 가슴께가 기분 나빠져 화장실로 달려갔다. 오열을 거듭하며 소용돌이치던 어둠을 속이 텅 빌 때까지 토해내려 했다. 시즈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거리를 걸었다. 더플 후드도 쓰지 않은 채, 미세한 빗방울에 얻어맞으며 작은 공원까지 찾아왔다. 그 곳은 날씨가 좋을 때 대본을 읽을만한 장소였다.


공원의 불빛이 빗물 섞인 하얀 빛을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은 무대의 배우에 닿아야 할 스포트라이트였다. 시즈쿠는 어깨 길이로 가지런한 머리를 감는듯이 적시며 빛을 받았다. 코트는 비를 머금어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표정은 우는 것 같기도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시즈쿠는 팔을 벌려 밤과 비를 받아냈다.


"자신을 드러낸다!? 아무리 드러내도, 드러내려 해도 계속 새로운 자신이, 본 적 없을 정도로 추악한 자신이 안에서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거야!? 드러내기 싫은 곳을 정성스레 깎아내고, 진짜 자신을 제대로 알리려 하고, 그런데도, 그런데도! 자신의 심지 자체가 가장 썩어있다고! 썩어있는 근성을 연기로 감추고 있을 뿐이란걸 알아버린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거야!?"


이번에는 분명히 눈물이 쏟아진다. 자신을 드러내는 듯한 연극을 한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계기로 자신을 좋아하게 되진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정말 좋아한다면, 연기 같은 건 하지 않고 나카스 카스미처럼 밝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걸 할 수 없다는 것은, 역시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자신을 발견했다. 자신이 유키 세츠나에게 품은 것은 질투와 경멸이었다. 자각한 적 없는 무관용이, 고요히 자살한 세츠나의 시체를 세계에 유기하게 만들었다.


"이제 싫어! 이제 싫다고! 더 이상 나 자신을 알고 싶지 않아!!"


초겨울의 거센 비를 맞고 있었다. 너무나 차가운 비는 금세 외로움을 식혔다. 고등학교 때는 동료가 있는 주제에 어딘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혼자였다. 마지막에는 "도와줘"라며 웅크린 여자아이를, 드라마라면 누군가가 도와줄 법 한데도, 공원의 등불을 스포트라이트 삼아 1인극을 펼치는 시즈쿠를 발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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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캬코 오 기다리고 있었다 2020.12.28 08: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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