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으로 아주 화끈하게 태워버린 2화, 잿더미를 걷어내고 어떤 연출을 숨겨놨는지 발굴해 보겠음.
전에 솔로곡 총집편에도 썼던 이야기지만 기본적으로 전통적 무대는 관객이 아래, 배우가 위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엠마와 아이를 제외한 모든 솔로곡은 이렇게 아이돌이 위, 팬이 아래인 구도로 이루어져 있어.
세츠나의 무대를 나란히 올려다보던 두 소녀는 각각 팬과 아이돌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아이돌인 소녀는 나도 너와 저런 위치에 서고 싶다는 꿈을 꿈.
그렇기 때문에 Dream with You의 구도는 Chase!의 구도를 그대로 차용했었음.
그리고 무대가 끝나자 아유무는 다시 유우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어. 아유무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셈이니까.
하지만 아유무가 한발한발 조금씩 나아가는 동안 유우는 훌쩍 달려 더 높은 곳을 보기 시작했고
어느새 유우는 아유무를 두고 세츠나와 같은 높이까지 올라가버리며
아유무만 뒤쳐지는 구도가 완성됨. 유우는 모두와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유무만이 낮은 곳에서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음.
누구보다 가까웠던 둘의 거리가 서서히 벌어지며 10화는 막을 내림. 한층 가까워지기 위해 열렸던 합숙에서 거리가 벌어지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지.
그리고 대망의 11화.
아유무가 유우를 보고 멈춰서지만 시즈쿠는 먼저 달려가버린다. 아유무가 어떻게 뒤쳐지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지?
유우와 아유무의 길은 이미 갈라졌음. 유우는 매니저가, 아유무는 아이돌이 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변할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이때도 아유무는 유우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아.
유우가 먼저 움직이고서야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하지.
방은 사람의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자 내면의 실체화임. 그런 유우의 방에는 어느새 피아노가 생겼음. 유우의 안에 아유무가 모르는 모습이 생겨나기 시작한거야.
여기서 퀴즈. 아유무가 지금 뭘 가리고 있을까?
바로 두 사람의 사진임. 아유무 단독샷인데도 사진이 블러 처리되어 있지?
만약 정말로 유우가 아유무를 두고 떠나버렸다는걸 묘사하고 싶었으면 여기서 두 사람의 약속의 표지를 나란히 놓는 연출을 하지는 않았을거야.
즉 유우는 아유무와의 사진을 여전히 방 속에(유우의 안에) 간직해두고 있었음. 하지만 정작 아유무는 그걸 자각 못하고 있어. 균열이 절정을 찍는 순간임.
역광이 문제, 순광이 해답이라면 절반 걸친 이 광원의 의미는 '불균형'임. 수평을 일부러 우그러뜨려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때 쓰이는 연출임. 심지어 유우랑 아유무랑 조명선이 정반대야.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 모두 빛과 그늘의 경계에 선 상태임.
나와 함께 빛을 향해 걸어가 달라고 부탁하던 소녀는(이때는 아유무쪽 배경이 빛, 유우 배경이 어둠이었음)
유우를 자신이 있는 곳, 어둠 속으로 붙잡아두기를 선택해버림. 이 장면에서 핸드폰들이 추락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야.
여기에 아유무 오시들의 심정이 많이 복잡했던 이유가 있음. 단순히 백합연출이고 얀데레처럼 묘사되서만이 아니라, 위와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아이돌이 나와 팬이 함께 추락하길 바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거 자체가 본능적으로 찜찜했을 거야.
이 장면만 해도 그래. 잘 보면 아유무가 그저 유우를 붙잡는게 다가 아니라, 유우가 조명을 받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어. 이건 다른 장르에서는 타락 장면에서나 쓰이는 정말 극단적인 연출임.
문자 그대로 '발목을 잡는' 장면으로 이 미친 연출의 화룡점정을 찍으며 11화는 막을 내림.
요약하자면 유우보다 위에 있었어야 할 아유무가 뒤쳐지면서 팬과 아이돌의 수직적 구도가 무너져버렸고, 아유무는 이걸 자기가 올라가는게 아니라 유우를 자기 아래에 묶어 두려고 함으로써 해결하려 했음.
단순히 연출이 에로해서가 아니라 스토리 전개 자체가 전례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어서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듯. 이번 화를 보면서 전세계의 물붕이들이 식은땀을 흘린 것은 아유무 네타의 선행학습이 아니라, 리미터 터진 제작진의 광기에 가까운 연출력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음 화가 정말 중요함. 갈등이 격정적일수록 모든 갈등이 봉합된 이후의 카타르시스도 커지는데, 갈등은 있는데로 벌려놓고 봉합 잘못하면 그냥 터진 멘탈만 남거든. 갈등 빌드업은 경이로울 정도로 잘 해놨으니, 충분히 잘 봉합해내기만 한다면 아마 러브라이브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개인 에피소드로 남지 않을까 예상함.
ps.
카메라가 아유무를 비출때는 격정적으로 흔들리는데 유우를 비출때는 빠르게 드래그 후 뚝 멈춰섬. 보통 액션 시퀀스에서나 쓰이는 카메라 연출을 잘도 이런데 써먹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