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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SS 번역] 가랑 눈 내릴 무렵, 네가 생각 날 때 - 4
글쓴이
시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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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l.dcinside.com/sunshine/3649987
  • 2020-11-16 21:25:48
 

** 4장


 - 덜컹.

 

 우편함에 무언가가 던져넣어지는 소리에, 나는 펼쳐져있던 대본을 닫았다. 손땀으로 더러워진 대본을 작은 탁자 위에 올려두고, 재빨리 현관으로 향한다.

 낡아빠진 아파트에 빌린 다다미 여섯장 짜리 방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신고 어지럽혀둔 샌들에 발을 끼웠다.

 취출구를 열어보니, 갈색의 가늘고 긴 봉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오사카 시즈쿠 님』


 꺼낸 봉투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동시에, 심장이 경종을 울리는 것을 느낀다. 피가 도는 속도가 빨라지고, 체온의 상승을 느꼈다. 하지만-


「......읏」


 그건, 다음 순간에는 구름이 흩어지듯이 사라진다.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그 자리에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경치가 멀다. 내 몸인데, 어딘가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진다.

 기어가듯 방 한가운데까지 돌아와, 테이블 위에 봉투를 내던졌다.

 등받이 방석에 몸을 기대고,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7번. 니지가사키를 졸업하고나서 5년간, 내가 무대의 오디션을 받은 횟수다.

 결과는 어느 것도 참패. 주역은 커녕, 단역조차 받지 못했다.


 - 무엇이 부족한걸까.


 몸을 맡긴 등받이가, 삐걱거리며 항의의 목소리를 낸다. 그걸 무시하고 테이블 위의 대본을 넘겨, 맨 첫 장을 펼쳤다.

 그것은, 내가 연극부에 입부 했을 때, 처음으로 따낸 주역의, 그 대본이었다. 너덜너덜해진 종이. 긁혀나가기 시작한 글자. 손때 묻은 그것은, 당시의 오사카 시즈쿠라는 존재가, 한층 더 크게 빛나고 있던 증거이기도 했다.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던 휴대전화를 집어 영상을 재생한다. 저번에 찍은 자신의 연극의, 그 연습이다.


「......」

 

 하지만 어딘가, 그 내용은 색 바랜 인상을 받는다. 화면 속의 내가 연기하고 있는 것은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맥베스」에 등장하는, 스코틀랜드의 장군이다.


「...... 집중 할 수 없어」


 마음이 들어있지 않다. 가늘고 긴 화면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그것은 맥베스가 아닌, 그냥 오사카 시즈쿠였다.

 옛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대체 어떻게 생각할까. 경멸할까, 아니면 이런 나를 돌봐줄까.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고 눕자,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빛나는 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나를 연기하고 있다. 춤추는 것처럼 우아하게. 유리처럼 섬세하게. 넋을 잃을 정도로, 마음이 떨릴 정도로 강하게, 마치 만화경처럼 변하는 기억의 세계.


 - 아아, 눈부셔라......


 반짝반짝 눈부신 경치에, 머릿속이 타는 듯이 아프다. 지글지글 하고, 그리고 찌릿찌릿 하고.

 그와 달리, 지금의 나는 대체 뭘까. 연극의 연습이나 공부를 하는 한편, 아르바이트로 일당을 버는 매일. 연극도, 성장은 커녕 오히려 열화된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나는, 과연 그 오사카 시즈쿠일까. 그 반짝였던, 오사카 시즈쿠 본인일까.

 두통과 동시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 나쁜 감각이 온몸을 덮친다.

 오사카 시즈쿠라는 존재를, 그 하나의 역을, 전혀 모르는 다른 누군가가 연기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대로는 카나타씨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

 빨리, 빨리, 빨리-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얕은 잠의 어둠에 사로잡혀 있었다.


 눈을 뜬 것은, 시계의 침이 20시를 돌려고 하던 무렵이었다. 휴대전화에 설정해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몸을 일으키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창백한 달빛이 나를 맞이했다.

 이상한 자세로 자고 있던 탓인가, 몸이 심하게 아프다. 시멘트를 들이부은 것처럼, 마디마디가 딱딱하게 굳어있다. 얼굴을 찌푸리며, 질질 끌듯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 머리를 말리며 토스트를 굽는다. 완성된 토스트를 먹으며, 최소한의 화장과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바로 근처의 편의점이었다.

 자동문이 열려도 카운터 쪽에서 목소리는 날아들지 않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지금의 나는, 손님이 아니라, 그저 아르바이트니까.

 계산대에 있던 점장에게 사무적인 인사를 건네고 돌아선다. 제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자, 그 점장에게 물건을 꺼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물론,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시간이라고 해서, 손님이 전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물건을 꺼내는걸 멈추고 계산대를 두드린다. 점장이라고 해봐야 서있기만 할 뿐, 혹은 앉아있을 뿐이고, 이제는 숨을 쉬는 석상 같은 존재다.

 카나타 씨의 목소리가 그립다. 카나타 씨의 온기를 원하는 것처럼, 손가락 끝은 심하게 얼어 있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생. 내 인생은, 그런 흔해빠진 것이었을까.

 품고 있던 꿈은 색이 바래고, 가슴 속에 남아있는 그 사람의 잔불에, 그저 매달리기만 하는 인생.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좀 더 연습을 거듭해, 한 걸음이라도 꿈에 다가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하아......」


 한숨만 쉬고 시간만이, 쓸데없이 지나가 아침이 된다. 집에 돌아가자, 곧바로 나른한 졸음이 몰려왔다. 입고 있던 옷을 그 자리에 벗어던지고, 욕실로 향한다.

 수도꼭지를 틀자, 벽에 걸린 샤워헤드에서 물이 힘차게 흘러나온다. 그게 따뜻한 물로 변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녹아들 듯이 벽을 등졌다.

 떠올리는 것은 지금의 나. 마음에 그리는 것은 과거의 나.

 시야가 하얗게 안개가 낀다. 흘러내리는 물은, 어느샌가 따뜻한 물로 변해있었다.

 강하게 몸을 문지르고, 길게 물을 끼얹으면. 살아있는 망자가 된 이 몸속에서, 그 때의 내가 태어나는 것일까.


 -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런 하찮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지금 생각해야 하는 것은 눈 앞의 과제다.

 적어도, 우선은 역을 따내는 것.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무대의 주역에 다가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기만 날 뿐인 시간이 아깝다. 빨리 다음으로, 빨리 이 너머로, 빨리 그 사람에게-

 배수구 속으로 사라져가는 물을 망연히 배웅하며, 나는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


 봄이 왔다. 니지가사키를 졸업하고서 여섯 번째의 봄이, 그 날은, 연극을 하나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도중이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의 벚꽃에, 번거로움마저 느껴진다. 흙과 풀의 향기가 달콤해 어쩔 수 없다. 눈을 돌리고는, 오늘의 대본으로 눈을 떨어뜨리고 귀가를 서두른다.

 오늘은 최악이었다. 자원봉사자니까, 초보니까...... 그렇게 변명하는 나도 있지만, 가슴 깊이 퍼지는 새카만 안개는 사라질 기미가 없다.

 바로 근처에 있는 유원지. 그곳에 있는 작은 무대가, 내가 오늘도 하나의 인생을 걸은 장소였다.

 내용은 아이들 대상의, 테마가 직접적인 권선징악. 내가 연기하는 것은, 그 악역.

 연기자 내역은 봉사로 모집한 수십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 안에는 나처럼 프로 연기자 지망인 사람이 몇명 있었다. 그리고, 유원지의 스태프거나, 흥미로 찾아온 사람 등, 어느 쪽이냐 하면 미경험자인 사람 쪽이 많았다.

 무언가 득이 될게 있다면, 그렇게 생각해서 참가해보았지만......


「실패였네」


 어설픈 배우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감정이 없는 주역. 초목이 되버린 듯한 단역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토 할 것만 같은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연기였다.

 그런 평범한 연극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 악역은, 그렇게 평탄한 인생을 걷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악역의 인생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나의 연극이, 부숴버렸다.

 아스팔트를 차는 소리가, 내 심장의 고동처럼 거칠게 들려온다. 횡단보도의 빨간 불에 멈춰서자, 가슴이 선명한 산소를 찾아 ㅎ럴떡인다. 이마에는, 가볍게 땀이 배어 있다. 

 신호가 바뀌는 것을 기다리는 도중,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서 그 잠금을 해제한다. 화면을 몇 번인가 슬라이드 시키자, 오늘 날짜가 제목에 붙여진, 한 영상 데이터가 나타났다.

 스태프 쪽에 부탁을 해서, 오늘의 공연을 영상으로 찍어달라고 했다. 여기에 비치는 나는, 분명 서투른 연극을 하고 있겠지.

 그렇기에 더더욱, 어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추구해야만 한다. 나쁜 곳을 전부 고치지 않으면, 무대에는 오를 수 없다. 역도 따낼 수 없다. 빨리 무대에 올라가서, 나의 꿈을-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딱 신호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 역시! 어이 시즈코!」


 갑자기 들려온 그 말에, 어깨가 크게 뛰고 발이 멈춘다.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 그리고 특징적인 호칭.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머리 속으로 그녀의 표정을 떠올리며 뒤돌아보자, 그대로인 그녀- 카스미 양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정말이네요. 오랜만입니다, 시즈쿠 씨」

「카스미양 ...... 거기에 나나 씨까지」


 세갈래로 땋은 까마귀 색의 머리가, 봄 햇살에 옅게 반사된다. 안경 속에 보이는 주석색의 눈동자는, 태양처럼 빛나는 것처럼도 보였다.

 의기양양하게 카스미 양이 말한다.


「혹시나 하는데, 시즈코 아까 전의 스테이지에 있었지?」

「어어, 뭐......」


 그런 걸 물어서 어쩌려는 걸까. 카스미 양과는 아무 관계 없다.

 그런 것보다도 빨리 돌아가서, 촬영한 영상을, 나의 연극을 고쳐야만 한다. 그리고 반드시, 무대 위에......


「괜찮으시면, 같이 차라도 마시지 않을래요?」

 그런 내 가슴 속 따위는 알 리가 없는 나나 씨는, 몇년 전과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웃는 얼굴을 내게 향한다. 여름의 햇살처럼, 따뜻하고, 강한 빛을 내는 듯한 미소.


「저는......」


 죄송하지만. 그렇게 벌어진 입을, 손목에 깃든 열이 가로막았다.


「가끔은, 괜찮지? 시즈코」


 카스미 양의 새하얗고 작은, 부드러운 손바닥이 내 손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가련해보이는 그 손이, 집어삼키듯이 손목을 붙잡는다.


「알았, 어요......」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남겨진 선택지는 없었다.


 두 사람에게 이끌려 들어온 곳은, 근처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어딘가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 내에, 앤티크한 장식물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고 있다. 주황빛의 조명의 힘도 적지 않게 있겠지. 처음 들어온 커피숍인데, 신기하게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들어가서 바로 있는 테이블 석에, 두 사람은 나란히 앉고, 나는 두 사람을 마주 보듯이 앉는다. 나는 핫을, 나나 씨는 아이스 커피를, 그리고 카스미 양은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음료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들의 사이에 있던 것은 침묵 뿐이었다. 카스미 양은 바깥의 경치를 바라보고, 나나 씨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궁리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나대로,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주문한 음료는 금방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침묵이 녹아내리는 일은 없었다. 어색한 침묵에, 목구멍이 옥죄인다.

 침묵이, 방금 전 두 사람과 만났을 때의 광경을 희미하게 상기시켰다. 손을 잡고 걷고 있던 두 사람. 내가 스테이지에 있었는지 어떤지를 물어왔다는 것은, 분명 두 사람은 그 유원지에 간 것이겠지. 카스미 양과 나나 씨의 가방에 매달린 작은 동물 인형이, 웃는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이겠지. 장소, 분위기, 거리, 그 하나 하나에서 강하게 그렇게 느꼈다.

 솔직히, 부러웠다. 그리고 어딘가, 두 사람의 광경에 질투하는 내가 있었다.

 나도, 카나타 씨를 좋아한다. 빨리, 만나고 싶다.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빨리 꿈을, 꿈을 이루지 않으면-

 그 때였다.


「있잖아」


 던져진 목소리가 내 사고를 찢었다. 시선을 향해보니, 그것은 카스미 양이었다. 좀 전까지 밖을 바라보고 있던 주홍색의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꿰뚫어보고 있다.

 놀랄 것만 같은 날카로운 눈동자. 그에 무심코 마른 침을 삼키자, 관자놀이에 땀이 흐르는 감각이 들었다. 숨 죽이고 말을 기다린다.

 아플 정도의 침묵이 찾아온다. 손님은 그 외에도 있을텐데, 소란스러움에 가까운 목소리도 들리고 있을 터인데, 그 목소리가 어딘가 먼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들 이외에는 여기서 사라져 있는 듯한 착각.

 내가 주문한 뜨거운 커피에서 나는 김이, 모락모락 흔들리고 잇다. 빙글빙글 올라가는 그것은, 가게 안을 도는 공기에 휩쓸려 투명한 실크처럼도 보였다.


「시즈코는-」


 카스미 양이 다시 입을 연 것은, 커피의 온기가 충분히 얇아졌을 즈음이었다.


「- 무엇을 위해 연극을 하고 있는거야?」


 수면에 파문조차 일지 않을 듯한 목소리. 차가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품은 눈동자가, 뱀처럼 나에게 휘감긴다.


「......읏」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목구멍 안쪽에 억지로 뚜껑을 덮은 듯이, 입술은 그저 떠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아무 것도 아닌 한마디였겠지. 하지만 나는, 내게는, 머리부터 양동이 한가득한 얼음물을 끼얹어진 듯한 충격이 있었다.


 - 딸랑.


 오렌지 주스에 잠겨있던 얼음이, 지루한 듯이 몸을 움직인다.


「......어째서」

「아까부터 계속 건성이고, 계속 웅성웅성거렸고」


 - 딸랑.


 이번 소리는, 카스미 양이 빨대로 잔을 휘젓는 소리였다.

 

「시즈코의 일이니까, 아마도, 연극 일이거나, 카나타 선배 일이겠지」


 그래서, 물어봤다.

 그렇게 말을 맺은 카스미 양은, 턱을 괴고 흥미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시즈쿠 씨. 저도 카스미 씨와 같은 의견이에요」


 침묵을 메우듯, 나나 씨가 그렇게 입을 연다.


「저는, 시즈쿠 씨의 연극을 보는걸 정말 좋아했어요. 하지만, 지금의 시즈쿠 씨의 그것은......」


 거기서 말을 한번 멈추고, 나나 씨는 아이스 커피를 한입 마셨다. 어색한 목소리로 이어간다.


「카나타 씨와 다시 만나기 위해, 연극을,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면, 그......」

「- 그만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말을 더듬는 나나 씨의 말을 잇듯, 카스미 양은 똑바로 그렇게 말했다.


「시즈코가 좋아하는건 뭐야? 카나타 선배가 좋은거야? 아니면 연극?」


 불이 붙은 것처럼, 카스미 양의 말이 이어진다. 열화처럼, 카스미 양의 말이, 멈추지 않는다.

 

「시즈코에게 있어서 연극은, 연기는, 카나타 선배와 만나기 위한, 그런 단순한 도구에 불과한거야?」


 -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났다. 다소 늦게, 양손에 저린 듯한 통증이 찾아온다.


「- 읏! 카스미 양이, 뭘 아는거야!」

「알아! 지금의 시즈코의 연기가, 진짜 시즈코가 하는 연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 3년이나 함께 있었으니까, 그 정도는 알아!」


 가게 안이,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진다. 나와 카스미 양의 거친 호흡만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메아리 치고 있었다.


「- 돌아갈게요」


 카스미 양은, 나를 막으려 하지 않았다. 나나 씨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고 있었지만, 그걸 기다릴 시간도 의리도 없다.

 천엔 지폐 1장을 테이플 위에 두고, 나는 커피숍을 뒤로 했다.


***


 카스미 양과 나나 씨를 만나고서부터, - 일주일이 지났다. 아르바이트도 연기 연습도, 지금까지 이상으로 잘 되지 않았다.

 접객은 무뚝뚝하고, 연습은 어딘가 건성이다. 점장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지금까지 없었을 정도로 혼났다.

 집중 할 수 없다. 의식이 완전히 밖으로 나가있다.

 그녀들 탓으로 돌리는건 아니지만, 그저, 계기는 확실히 그 날의 일이었다.


「...... 다녀왔습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겉옷을 벗어 헤치고 침대 위에 쓰러진다. 양말을 벗는 것조차 귀찮아서, 내복에 양말을 신은 채로 볼품 없이 침대의 부드러움에 몸을 묻었다. 화장을 지울 여유 따위, 있을 리가 없다.

 몸이 무겁다. 한숨 쉬는 것조차 귀찮다. 침대의 부드러움에, 무거워진 몸을 깊게 파묻어간다.


 - 누구를 위한 연극. 무엇을 위한 연극.


 어렴풋이 얽혀있는 생각 속에서,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연극을 시작했을까. 나는 누구를 위해 연기를 시작했을까.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아가도, 나아가도,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깊은 어둠.

 그건 진흙탕 같은 점성을 지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조차 삼키려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어둠의 저편에 그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 진흙탕 같은 어둠을 뚫고 나아가야만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달콤한 잠기운이 눈꺼풀을 떨어뜨린다. 의식은 혼탁해지고, 사고를 돌리는 것조차 고통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카나, 타, ㅆ......ㅣ......」

 

 나는, 의식을 어둠 속으로 놓아주었다.


 - 시야가 낮다.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있는걸까. 오른손이 따뜻하다.


 나는,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 했다.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모르는 장소. 손을 잡은 존재는, 이 장소를 알고 있는지, 그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고, 매달리듯 내가 그 뒤를 따라간다.

 또각, 또각, 또각. 구두창이 울리는 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퍼져간다.


 - 어디로, 가는걸까.


 쳐다보려고 의식을 돌려보지만, 목은 고정된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간신히 보이는 세상은 희미하고, 인식에 방해가 된다.

 갑자기, 구두가 울리는 소리가 멈췄다. 하지만 시야는 아직 움직이고 있다. 그 때, 희미하게 발밑이 보였다. 어느샌가, 융단 같은 바닥이 되어있다. 적갈색을 띤 카펫. 발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깔린 그것이, 나는 눈에 익었다.


 - 아아, 이 광경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그 순간, 나는 이게 꿈이라고 이해했다. 안개가 껴있던 세계가, 막이 오르는 것처럼 밝아져간다. 혼탁했던 의식이 확실해지고, 물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기억이 넘쳐흐른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연극을 보러 간 날. 어머니가 데려가주신, 그 날의 광경이다.


「엄마, 연극이라는게, 뭐야?」

 

 흰머리도 없고, 주름도 없는 어머니의 옆모습. 그 어머니의 미소가 상냥하게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어머니는, 이 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분명 지금부터 시작되는 공연에, 그 답이 있다고 알고 계셨기 때문이겠지. 

 홀 안에 들어서서 어머니와 나란히, 다섯째 열의 한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어린 나는, 이 때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바닥에서 살짝 뜬 발을 흔들거리며, 그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 순간이 찾아온다. 무거운 버저가 울리고, 조명이 천천히 떨어져 간다. 한순간의 암흑이 시야를 뒤덮고, 흔들흔들 흔들리던 발이 멈췄다.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진 장내에, 버저의 잔음만이 퍼져가듯 녹아들어간다. 그건 작은 기계의 동작음으로 바뀌고, 눈 앞의 스테이지에서 천천히, 천천히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막이 올라간다. 이야기가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오사카 시즈쿠가, 눈을 뜬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시작을 떠올렸다. 빛을 떠올렸다. 오사카 시즈쿠가, 연극이라는 세계를 동경한 계기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맛본 감동. 마음이 움직이고, 목소리가 새어나온 그 감각.

 나는 그저 애가 탔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비추는 연극에.

 나는 그저 목표하고 있었다. 그 대 여배우 같은 강한 빛의 연극을.

 나는 그저 동경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선사하는 연극을.

 그 때의 반짝임에, 빛에, 눈부심에 매료되어, 나는 연극에 뜻을 두었다.

 그건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고개를 든다. 몸을 일으킨다. 몸의 무거움은 사라져있었다.

 바닥에 내던졌던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전화를 건다. 두세 번의 콜 뒤에,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왜, 시즈코」

「카스미 양. 나, 떠올렸어」

「...... 응」

「내가 연극을 뜻하게 된 계기를. 추구하고 있던 반짝임을. 전부, 떠올렸어」


 모든 것은 그 날, 어머니가 데려가주셨던 날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어째서 떠올릴 수 없었을까.

 꿈의 시작, 오사카 시즈쿠의 시작. 막이 올라가는, 나의 이야기.

 

「전부, 카스미 양과 나나 씨가 말한대로였어」

 전화의 저편에서, 카스미 씨가 숨을 삼키는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카스미 양은 내 말을 기다려주는 것처럼 잠자코 들어주고 있다. 나는 말을 이어나간다.


「카스미 양이 말해준 것처럼, 나는 카나타 씨를 위해서만 연극을 하고 있었어. 겉만 그럴싸한 얄팍한 연기를 하고 있었어」


 눈 앞의 것만을 쫓아, 내 꿈의 입구에조차 서있지 않았다.

 카나타 씨를 만나고 싶다. 카나타 씨와 웃고 싶다. 그건 흔들림 없는 나의 본심.


「하지만, 아니였어, 아니였던거야. 오사카 시즈쿠는, 이렇지 않았어」


 무엇보다 약속을 했다. 그 겨울 날에, 나는 카나타 씨와 약속을 했다.

 그것은 재회의 약속이 아닌, 나 자신의 꿈을 이루는 약속.

 그걸 이루기 위해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다시 한번 약속을 한다. 이번에는, 그 때의...... 눈을 반짝이며 연극을 뜻했던, 그 어린 시절의 나에게 선서하자.

 

「그러니까, 다음은 진짜 연극을 할거야. 진짜 오사카 시즈쿠로 무대에 오를거야」


 내 꿈은, 대 여배우가 되는 것. 그건 연극으로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람. 그것이 나의 꿈. 내가 목표하는 길.


「그리고 정했어. 만약, 진정한 나로 다음에도 안된다면-」


 어쩌면, 우연히, 혹은 변덕으로 역을 받을지도 모른다.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한 우연으로 얻은 꿈으로, 고작 그 정도의 꿈으로 카나타 씨를 웃게 할 수 있을까. 카나타 씨는 내게 웃어줄까.

 아니, 아니, 아니.

 그런거, 웃을 수 없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선언한다. 그러니까 나는 약속한다. 그러니까 나는 선서한다.

 소중한 친구에게.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이것이, 오사카 시즈쿠가 사는 방식이다.

 이것이, 오사카 시즈쿠의 각오다.

 이것이, 오사카 시즈쿠의 진심이다.

 그러니까, 내 진심이 닿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 나의 무대는, 거기서 끝인걸로 할게」


 이것이, 틀림 없는 오사카 시즈쿠다.

시즈코 http://m.dcinside.com/board/sunshine/3649988 다음 2020.11.16 21: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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