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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SS 번역] 가랑 눈 내릴 무렵, 네가 생각 날 때 - 3
글쓴이
시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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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3649985
  • 2020-11-16 21:22:26
 

** 3장


 하늘은 흐리고 해는 약하고, 아직 낮인데도 어둡다. 지금이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은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더니, 깃털처럼 사뿐사뿐 눈이 내려온다. 손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소리도 없이 무너져 사라져간다.


「눈이네요」

「그렇네......」


 1월 1일. 설날.

 처음으로 둘이 보내는 새해는, 생각했던 이상으로 느긋하고, 그리고 무척이나 조용했다.

 차가워진 손바닥에 깊게 숨을 내뱉으면서, 눈으로 새하얘진 아스팔트 위를 나란히 걸어간다. 통, 쿵하고 카나타 씨의 발밑에서 울리는 소리가, 맑은 공기를 울리며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듯 했다.


「후리소데, 잘 어울려요」

「고마워~, 이거 하루카쨩하고 같이 고른거야~...... 하지만, 음-...... 역시 춥네」


 날카롭게 불어온 바람에, 매화색의 후리소데를 입은 카나타 씨는 움츠러들 듯이 살짝 떨었다. 우리들의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찢겨나갈 것만 같을 정도로 차갑다. 내뱉은 하얀 숨결조차, 얼어서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맞다, 시즈쿠쨩」


 카나타 씨의 목소리에 멈춰선다. 바로 옆을 보니, 명안이라는 듯 표정을 빛내는 카나타 씨의 모습.


「왜 그러시나요?」


 내 말에, 카나타 씨는 싱긋 웃으며,


「카나타쨩, 조금 추워서 잠들어버릴 것 같으니까,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나」


 손을 내밀면서, 그렇게 말했다.


「물론」


 내밀어진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포갠다. 카나타 씨의 손바닥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뜻하다. 그 손바닥에 머무는 부드러운 열이, 얼어붙은 내 손가락끝을 천천히 녹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카나타 씨의 손......」

「응-? 카나타쨩의 손에 무슨 일 있어?」


 말랑말랑, 떡처럼 부드러운 손바닥. 결코 크지는 않은 그 손이, 지금은 내 손바닥을 감싸주고 있었다.


「아뇨, 그, 따뜻해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카나타 씨가 조용히 웃었다.


「시즈쿠쨩이 귀여워서, 그만」


 뺨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가 옆에서 터진다.


「정말, 빨리 가요!」

「아, 부끄러워?」

「몰라요!」


 통. 쿵. 통, 통, 쿵.


 되살아난 것처럼, 멈춰있던 발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붙잡은 손을 잡아당기자, 머리 바로 뒤에서 카나타 씨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


「카나타쨩, 후리소데니까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구우」


 통...... 쿵.......


 아까 전보다도, 명백히 느려진 발소리에 무심코 쓴웃음 짓는다. 온몸에서 갑자기 힘이 빠져나가, 발걸음은 카나타 씨의 발걸음과 곧 맞춰졌다.


「어서와, 시즈쿠쨩」

「하아...... 정말...... 그것보다, 이제 슬슬이죠?」

「그렇네......」


 말하며, 카나타 씨는 시선을 앞으로 향한다. 그 앞에 있는 것은, 카나타 씨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신사. 여름 축제에도 갔던 그 장소에 가는 목적은, 물론 새해 첫 참배였다.


「앞으로 5분도 안 걸려」


 하얀 숨결이 회색으로 녹는다. 평온함에 감싸인 하늘은, 맞잡은 손바닥에서부터 카나타 씨의 심장 소리까지 옮겨주는 것 같았다.


 통, 쿵. 통, 쿵.


 두사람 치의 발소리가, 맑은 공기에 어디까지고 울려퍼진다. 그저 아무 것도 아닌 그것에, 막연한 행복의 소리가 들린 듯 했다.


 - 계속, 이 시간이 계속된다면 좋을텐데.


 통, 쿵. 쿵...... 쿵......


「시즈쿠쨩?」


 모르는 사이에 이어졌던 손이 떨어지고, 카나타 씨가 멈춰선다. 돌아보는 카나타 씨의 그 바로 뒤에는, 주홍색의 토리이가 보였다.


「...... 아뇨, 죄송해요」


 말하고, 바로 카나타 씨의 손을 다시 잡는다.


 울리기 시작한 발소리 속에 숨기듯이, 나는 조그맣게 숨을 내쉬었다. 그만 좀 전의 일을 떠올린다.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단 한순간이지만 뇌리를 스친 불안감. 그게 잡았던 손을 놓고, 그리고 내 발을 멈추게 했다.


 - 그만하자.


 머리 속에서 그 생각을 쫓아내듯이, 맞잡은 손을 의식한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열. 정말 좋아하는 그 열은 분명히 지금, 이 손바닥과 이어져있다.

 토리이를 빠져나가 돌계단을 오르자, 회색으로 탁했던 구름의 틈새로부터 가늘고 긴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은 완만하고, 햇살은 어딘가 따뜻하다.

 설날인데도 불구하고 경내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그 엄숙한 공기에, 자연스럽게 등줄기가 뻗는 것을 느꼈다.


「조용하네......」


 카나타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로 긴장된 분위기에,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붙잡은 손을 꼭 쥐고, 등을 펴고 걸어나간다. 신발 바닥이 돌바닥을 차는 소리가, 하늘 끝까지 울려퍼지는 듯 했다.

 그렇게 신사에 도착해,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푼다. 작게 숨을 내뱉은 뒤, 지갑 속에서 5엔짜리 동전을 꺼냈다.

 세전함에 그것을 던져넣고, 합장하며 마음 속으로 말을 한다. 그것은 내가 노리는 목표이기도 하면서, 그리고 마음을 태우는 꿈을 향한 말.


 - 한걸음 씩, 대 여배우를 향해.


 신님에게 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언을.

 30초동안 듬뿍. 신님을 향한 선서를 마치고 눈을 뜨자, 카나타 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카나타 씨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늘어져있던 우리들의 손은 자연스럽게 얽혀서, 다시 열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시즈쿠쨩은 무슨 소원 빌었어?」

「저는, 꿈을 향해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선언했어요」

「오오......」


 카나타 씨는 감탄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고,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 쪽을 바라보았다. 이끌려서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니, 온통 회색일 뿐 특별히 뭔가 있을 리가 없었다.

 아직 하늘을 바라보는 카나타 씨에게, 말을 건다.


「카나타 씨는, 무엇을?」

「음, 카나타쨩은, 올해도 하루카쨩이 건강하기를 하고 빌었어~」

「아하하......」


 얼마나 카나타 씨다운가. 부드럽게 웃은 카나타 씨와 눈이 맞자, 한 무리 차가운 바람이 우리들 사이를 날카롭게 지나 사라져간다.

 내가 부들부들 몸을 떨자, 붙잡은 손을 카나타 씨가 강하게 잡아주었다.


「...... 집에서 하루카쨩도 기다리고 있고, 슬슬 돌아갈까」

「네 그렇네요」


 돌계단을 내려가, 도로에 다다른다. 인기척을 느끼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조금씩, 겨울 하늘로 퍼지는 듯 했다. 통, 쿵하고, 카나타씨의 발밑에서 울리는 경쾌한 소리가 얇은 눈보라 속으로 녹아 사라져간다.

 우리들 사이에 말은 없다. 이따금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흰 연기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하늘로 날아오를 뿐이었다.

 그저, 그 정적조차 카나타 씨와 함께라면 괴롭지 않다. 오히려, 어딘가 기분 좋은 따뜻함조차 느껴진다.

 걸으면서, 우리들은 붙잡은 손의 온기를 의식했다. 부드럽고, 상냥한 카나타 씨의 고동. 천천히 울리는 그 고동에, 막연한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 일까.

 이 시간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해버린 것은.

 소란스러움이 커져가기 시작했을 때였다. 옆을 걷는 카나타 씨가, 갑자기 그 발을 멈췄다.


「카나타 씨?」


 어느샌가 잡았던 손이 떨어져있다. 한걸음만큼의 거리를 둔 채 카나타 씨는 돌아보더니, 무언가를 생각하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 응, 미안해」


 카나타 씨는 시선을 내리고, 곧바로 내 손을 다시 잡는다. 차가워진 카나타 씨의 그 손에, 사라졌을 터인 불안감이 다시 되살아나는 감각을 느낀다.


「무슨 일, 있나요......?」


 묻는 목소리가 얼어있다. 손에는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고, 온몸의 신경이 카나타 씨에게 집중한다.

 하지만, 엇갈리는 그 제비꽃색의 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눈을 바라보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숨기는 것처럼 눈을 감고, 카나타 씨는 나아갈 길 앞쪽으로 돌아섰다.


「...... 괜찮아, 시즈쿠쨩」


 그 목소리는, 가슴 속의 불안을 없애는데 이르지 못한다. 하늘에 녹는 일도 없이,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겨울의 바람이, 발밑을 휭하고 흘러간다.



***



 갑자기 이름을 불린 것은, 점심시간이 막 시작했을 쯤이었다.

 수업의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며, 사각사각 펜촉을 달리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귀에 익숙해진 목소리가, 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머리속에 찾아온다. 달리고 있던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자, 교실의 입구에 카나타 씨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카나타 씨......?」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나타 씨는 검지손가락을 세우고 위를 가르켰다. 아무래도,「옥상으로」인 듯하다.

 노트도 그대로 둔 채로, 서둘러 교실을 나가 카나타 씨의 뒤를 쫓는다.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째서, 카나타 씨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새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3학년은 자유등교가 시작되었다. 실제로, 엠마 씨는 이 시기를 이용해서 한번 스위스에 돌아간 듯 하고, 카린 씨도 새학기가 시작한지 한달 정도 지났지만 그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3학년의 초록색 리본조차, 최근에는 볼 수 없었다.

 그 안에는, 물론 카나타 씨도 포함되어있다. 밤에, 전화를 주고 받고는 있지만, 학교 내에서는 전혀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 그런 카나타 씨가, 어째서 지금, 여기에?


 그건, 위화감에 가까웠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은 채, 나는 카나타 씨의 뒤를 쫓아 계단을 오른다. 한 단, 한 단 오를 때마다, 주위에서 소리가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카나타 씨의 사이에, 대화다운 대화는 없다. 두 사람 치의 숨결이, 얼음처럼 긴장된 공기 위에 미끄러져 간다.

 몇 번인가 정적이 오간 뒤, 우리들은 옥상으로 이어지는 문에 다다랐다. 카나타 씨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그 문을 연다. 평소에는 소리 따위 신경쓰지 않지만, 이 날만은 괜히 무거운 소리가 났다.

 벌어진 틈으로 스며든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우리 발밑을 지나간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밤처럼 몹시 탁한 하늘이었다. 바람에 날뛰는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붙잡으며, 카나타 씨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이런 곳까지,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카나타 씨」


 내뱉어진 목소리는, 곧바로 하얗게 얼어붙었다. 내 목소리에 카나타 씨가 돌아본다. 그 표정은, 여느 때와 달리 아주 칙칙한 것처럼 보였다.


「...... 시즈쿠쨩에게, 이걸 건네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며, 카나타 씨는 꾸러미 하나를 꺼냈다. 예쁘게 포장된 그것을 내밀며, 하늘하늘 웃는다.


「제게......?」


 카나타 씨가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내밀어진 그것을 손에 들었다. 정성스레 꾸러미를 열어보니, 부드러운 물빛을 한 것과 눈이 맞았다.


「이건, 머플러...... 인가요?」


 꾸러미에 들어있던 것은, 한 개의 머플러였다. 부드러운 물색을 한 머플러. 만져보면 푹신푹신하고 부드럽다. 둘러보면, 분명 따뜻하겠구나,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카쨩하고 아유무쨩에게 배우면서, 시즈쿠쨩을 위해 떠봤어」


「둘러봐도, 될까요?」

「조금 까칠까칠 할지도」


 꾸러미를 겨드랑이에 끼고 머플러를 목에 둘러간다. 피부에 닿는 감각은 솜털처럼 부드럽고, 카나타 씨가 말하는 까칠까칠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저, 길이만은 보통의 머플러보다 조금 긴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두 사람이 칭찬해줬다구? 그러니까, 분명 따뜻할거야~」


 다 두르고, 끝을 가볍게 맨다. 겨울의 바람이, 조금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와아...... 따뜻해요! 게다가, 폭신폭신해서, 기분 좋아요......」


 마치, 오필리아를 만지고 있을 때 같은 감각. 그것도, 햇빛을 잔뜩 받았을 때의 감각과 닮아있다.

 그 감각은 너무나 따뜻하고, 상냥해서. 품고 있던 위화감 같은 의문도 녹아 없어지는 듯 했다.


「훗훗후~ 카나타쨩이 없더라도, 그걸로 마음껏 따뜻해지거라~」


 카나타 씨가 웃었다. 방긋 하고, 평소처럼 따뜻한 미소를 띄, 우, 고......


「......읏!」


 그 순간, 나는 눈치채버렸다. 어째서, 이 시기에 카나타 씨가 찾아왔는지. 사라져가던 의심이, 의문으로 생각하고 있던 답이, 갑자기, 하지만 확실하게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간다.


「카나타 씨」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걸 입에 담는게 무섭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뭔가, 숨기고 계시지 않나요?」


 그 말에 차가운 바람이 분다. 카나타 씨가 입을 꾹 다물고, 내게서 시선을 조금 빗겨냈다. 좀 전까지와는 확 달라진 분위기가, 불온을 거느리고 퍼져나간다.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줬으면 했다. 무슨 말 하는거냐며, 그렇게 웃으며 넘겨줬으면 했다.


「시즈쿠쨩」


 말을 거는 것보다 먼저, 카나타 씨가 입을 연다. 방울이 울리는 듯한 맑은 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희미하게 흔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등줄기로 주르륵 땀이 흘러내린다.

 그 순간, 확실히 싫은 예감이 들었다.

 숨을 쉬면, 그게 현실이 되어버릴 듯한. 그런 긴장된 공기가, 내 호흡을 멈춘다.


「조금, 중요한 얘기를 할게」


 조용히 내뱉어진 말에 가슴이 크게 뛴다. 싫은 예감이 다가오는 것처럼, 가슴 속에서 덜컹덜컹 일그러진 소리가 난다.


「카나타 ㅆ-」

「이걸, 받아주세요」


 말을 가로막힌다.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일에, 나는 말을, 숨을 삼켰다.

 카나타 씨가 내민 것은, 하나의 봉투였다. 새하얀 그것의 가운데에, 부드러운 카나타 씨의 글자로 세 글자의 말이 적혀있었다.


「퇴부, 서......」


 그 말을 이해한 순간, 세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시간조차 그 숨을 멈춘 것만 같은 착각.

 천천히, 카나타 씨가 웃는다. 그것은 얕은 웃음이었다. 미안한 듯이 어깨를 떨어뜨린, 그런 가냘픈 웃음.

 싫은 예감이 커져온다. 하지만, 예감은 확신으로 모습을 바꾸기 시작하고 있었다. 카나타 씨가 입을 연다. 싫어, 싫어, 말하지 말아줘-


「- 저와, 헤어져주세요」


 그런 기도는, 카나타 씨가 말한 단 한 마디의 말 앞에서, 무정하게 부서졌다.


「어째, 서, 인가요......」


 그 말이 나오기까지, 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심하게 떨고 있던 것처럼 느껴진다.


「2주일 뒤에, 일하게 되었습니다」


 카나타 씨가 말했다. 수면에 파문조차 떠오르지 않을 듯한 조용한 목소리가, 내 가슴을 강하게 때린다. 정말 좋아했던 그 눈동자를, 지금은 볼 수가 없다.


「...... 설날 전에, 현외에서 학교를 경유해서 이쪽에서 일하지 않겠냐고 연락이 와서 말이야」

「그래서, 카나타 씨는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말하고, 바로 어리석은 질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카나타 씨가 퇴부서를 넘긴 것. 그리고,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꺼내온 것을 생각하면, 그 답은 곧바로 알 수 있다.

 답은-


「부탁드린다고」

「......읏」


 이 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뭐라고 대답했었을까.

 말이 되지 못하는 마음만이, 하얀 혼이 되어 입가로 빠져나가는 듯 했다.


「월급도 나오는 모양이고, 그걸로 조금이라도 하루카쨩이 편해진다면- 해서」


 카나타 씨의,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 나도 모르게, 양손에 힘이 들어간다.

 알고 있었다. 카나타 씨에게 있어 내가 제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나타 씨에게 있어서 제일은, 항상 하루카 씨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행복한 시간 같은건, 언젠가 반드시 끝나버린다는 것을.


「그래도, 그래도, 계속은, 아니죠......? 가끔씩이라도, 돌아와주실거죠?」 


 매달리는 듯한 내 말에도, 카나타 씨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사장에게도 확인받았어. 그렇게 하면, 일하면서 졸업하는 형태가 된대」

「그대로 졸업이라니......」 


 그 말인 즉슨, 그것은-


「졸업식도, 돌아올 수 없다......」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카나타 씨는 대답하는 것처럼 또 가냘프게 웃었다.


「미안해, 시즈쿠쨩」


 중얼거리는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움켜쥔 퇴부서의 의미도, 즉 그런 의미겠지. 니지가사키에서 없어진다. 한발 빨리, 카나타 씨는 이곳을 떠난다.

 카나타 씨의 말을 뇌가 조금씩 곱씹자, 뒤늦게 이해가 찾아왔다. 이해한 현실은, 머리 위로 펼쳐지는 흐린 하늘처럼 무겁고, 그리고 두껍다.

 숨이 막히고, 할 말을 잃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그렇게 있었을까. 바로 옆을 지나간 발소리에, 의식이 눈을 뜬다.

 눈 앞에 카나타 씨가 없다.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옥상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횡경막에 울리는 듯한 무거운 소리를 울리며 열린 문에, 카나타 씨가 있다.

 열린 문 앞은 어두워서, 마치 카나타 씨를 통째로 삼켜버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 기다려, 가지 말아줘.


「카나, 타, 씨......」


 떨리는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하지만-


「미안해」


 뻗은 손을, 목소리를, 카나타 씨의 목소리는 작게 뿌리쳤다.

 카나타 씨가 눈을 내리까는 동시에, 천천히 하얀 찬바람이 불어, 우리들의 발밑을 훑는다. 마치 그것을 신호로 한 듯이, 카나타 씨는 문 너머로 모습을 감춰간다.


「카나타, 씨......」


 중얼거린 내 손 안에, 퇴부서가 팔랑 흔들렸다.



***


「그래서, 카나쨩은 가버린거구나」

「......네」


 - 삐걱. 등받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눈 앞에서 들려온다. 그건, 아이 씨가 의자에 등을 맡긴 소리였다.

 난방을 켜지 않은, 아이 씨와 둘만 있는 부실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워져있다.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은 저녁인데도 잿빛으로 흐려져, 지금 당장이라도 눈이 내릴 듯 했다.

 하지만 한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기를 느끼는 뇌의 기능조차, 2주일 전의 그 사건에 지배당한거겠지.

 

 - 어째서 그 때, 나느 카나타 씨를 쫓아가지 못했을까


「읏......」


 후회가, 입술에 송곳니를 들이댄다. 그런 짓을 해도, 그 날로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입 안에서, 서서히 쇠맛이 퍼져간다.


「먹을래?」


 들려온 그 소리에 고개를 들자, 하늘색 봉지로 싸인 막대사탕이 내밀려져 있었다.


「아뇨, 마음만으로......」


 조금 망설이다가, 그렇게 대답한다.「그런가」하고, 아이 씨는 내밀었던 그 사탕의 봉지를 뜯어, 그대로 입에 던져넣는다.


 정적.


 얼음이 언 듯한 고요함이, 잿빛의 부실에 가득 찼다. 심장의 고동조차, 지금은 잠든 듯이 숨 죽이고 있다.


 - 이대로 멈춰버리는 것도, 괜찮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카나타 씨는 이제는,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심장이 멈춰버려도, 이제는......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는 현실 도피가, 지금은 그저그저 마음이 편했다.

 데굴데굴 하고, 아이 씨가 입 안의 사탕을 굴리는 소리가 난다.


「시즈쿠는 말이야」


 콰작하고 사탕 알갱이를 부수는 듯한 소리가 나고, 아이 씨가 이름을 부른다.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거야?」

「......」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


 그 물음에,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카나타 씨의 꿈을 응원하고 싶다.

 만약, 정말로 이 이별이 카나타 씨에게 있어 플러스가 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 등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밀어주고 싶다.

 그건 진심이기도 하면서, 꾸밈 없는 본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외치는 나도 있다. 카나타 씨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확실히 있었다.


「저는......」


 그 때, 부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두 사람의 모습. 시오리코 양과, 그리고,


「얏호- 오랜만이네. 아이쨩. 시즈쿠쨩」


 엠마 씨였다.

 목에 두른 머플러를 풀면서, 아이 씨의 옆에 앉는다. 땋아내렸던 머리를 하나로 묶어 어깨 위로 흘린 엠마 씨는, 상당히 인상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엠마 씨...... 스위스로 돌아가셨던게......」


 자유등교가 된 이래로, 스위스로 돌아가 있었을 터인 엠마 씨에게, 나는 동요와도 닮은 놀라움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하루카쨩한테서 들었어」


 가슴 속에, 얼음을 집어넣는 듯한 감각. 오직 그것 뿐인 말로, 엠마 씨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곳에 찾아왔는지, 그것들을 한순간에 이해했다.


「......죄송합니다」


 눈을 돌리고, 중얼거리듯이 말을 내뱉는다. 내 옆에, 시오리코 양이 앉는 기척이 있었다.


「나는- 」


 엠마 씨의 목소리. 동시에, 바람이 들이닥쳐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 나는, 일본어를 그다지 잘하는건 아니지만, 지금의 죄송합니다는, 틀렸다고 생각하는걸」


 고개를 들어보니, 엠마 씨는 화난 듯한, 하지만 곤란한 듯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그치만 시즈쿠쨩,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걸」


 - 착각이라면, 미안해.

 한마디 그렇게 잘라 말하고, 엠마 씨는 작세 숨을 들이쉬고, 그리고, 계속했다.


「카나타쨩의 말. 시즈쿠쨩, 사실은 납득 못한게 아닐까?」

「읏......」


 가슴을 맞은 듯한 충격이 있었다.


「읏, 하지만, 카나타 씨는, 더는......!」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실제로, 연락은 몇번이고 해보려 했다. 메세지도 몇번이고 보내봤고, 전화도 몇번이고 걸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휴대전화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삐걱, 거리며 휴대전화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락, 되지 않는군요」


 시오리코 양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카나타 씨는 그것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메세지는 읽지 않은 채이고, 전화도 일절 연결되지 않는다.

 동호회의 단체 채팅도, 그 날 이후로 카나타 씨의 이름은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책상에 내려놓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시즈쿠쨩은, 그걸로 된거야? 이대로 괜찮은거야?」


 물처럼 맑은 목소리. 눈을 떠보니, 엠마 씨의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 씨도 물어본 그 말.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아직 찾지 못해서-

 그 때였다.

 책상 위에 내버려두었던 휴대전화가, 눈을 뜨듯이 떨리기 시작한다. 짧게 났던 그 소리는, 메세지가 도착한 소리였다.

 보낸 사람은, 하루카 씨.

 화면의 잠금을 해제하고, 채팅 앱에 도착한 메세지를 열어본다. 도착한 메세지는, 단 한마디였다.


『15시, 3번 홈이에요』

 

 고작 그것 뿐인 메세지. 역의 이름조차 적혀있지 않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역은 분명, 카나타 씨의 가장 가까운 역이겠지. 지금부터 가면,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는 시간.


「시즈쿠쨩 」


 엠마 씨와 눈이 맞았다. 상냥한 스카이 블루의 눈동자가, 내 고동을 빠르게 한다. 심장은 불이 붙은 것처럼 열을 가지고, 내 몸을 조금씩 태워간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줘」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에 넣고, 천천히 일어섰다.


「......아이 씨, 아까의 사탕 아직 있나요」

「아까 전의 건 먹어버렸지만, 다른 거라면」

「하나, 주세요」

「...... 네엡. 어떡할거야, 시즈쿠」


 그렇게 묻는 아이 씨의 입가는, 살짝 위로 올라가있다. 아마도, 내가 하려고 하는 것 정도는 꿰뚫어보고 있겠지.

 내밀어진 사탕은, 아까와는 달리 막대가 없는 타입이라, 봉지는 자원(紫苑)색을 띄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봉지를 열고 입 안에 던져넣는다. 포도 같은 달콤함이 퍼져간다.


「...... 조금, 급한 용무가 생각났습니다」

「보낼 수 없습니다, 시즈쿠 씨」


자리를 떠나려는 나를, 하지만 시오리코 씨가 가로막았다. 지금까지 조용히 우리들을 보고 있던 그녀가, 학생회의 완장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아당기며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회장으로서, 학생의 불량행위는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읏......」


문답을 주고 받고 있을 시간도 아깝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인데, 그게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차라리 밀고 지나가버릴까. 그런 생각조차 떠올랐다. 하지만-


「다만-」


 갑자기, 공기가 부드러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시오리코 양은 완장에서 손을 떼고, 치마의 주머니 속에서 작은 병 같은 것을 꺼냈다. 문 앞에서 물러나는 것처럼, 바로 가까이의 벽에 기댄다.


「 엠마 씨가 찾아올 때까지 학생회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무래도, 눈이 피곤한 모양이네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안약을 넣으려고 생각 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는 위를 바라볼 수 밖에 없겠네요」


 한순간, 시오리코 양이 말하는게 잘 이해 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말을 나에게 전할 필요가 있는걸까. 애초에, 어째서 이 타이밍에 안약을?


「그러니까, 그 때 까지는 절대로 아무 것도 하지 말아주세요? 시즈쿠 씨」


 그렇게 말하고 작은 병...... 안약의 뚜껑을 열고, 시오리코 양은 가볍게 위를 보았다.

 그 직전, 위를 향하는 한순간에, 시오리코 양의 윙크가 보이고-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읏, 고마워, 시오리코 양!」


 말을 남겨두고 가듯이, 가방을 잡아들고 나는 부실을 뛰쳐나갔다. 리놀륨 바닥을 박차는 소리가, 가볍게 복도에 울려퍼진다.

 문을 열고 뛰쳐나가기 직전,「다녀오세요」하고, 엠마 씨와 아이 씨와, 그리고 시오리코 양의 목소리가 들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떨어지는 눈이, 화살처럼 날카롭게 찔러온다. 강하게 불어닥치는 겨울 바람이, 내 발을 붙잡아 길을 가로막는 듯 했다.


「핫, 하앗, ㅅ......!」


 달리고 있는데, 체온이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숨결이, 마치 기관차의 증기처럼 뒤를 쫓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으면, 카나타 씨가 떠나버린다. 엠마 씨가, 아이 씨가, 시오리코 양이 밀어준 등이 전부 쓸모 없게 되버린다.

 내딛는 발이 빨라진다. 고동이 격렬해지고, 맥박 소리가 바람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달리기 위해, 크게, 강하게, 발을 내딛은 때였다.


「- 앗!」


 둥실.

 

 갑자기, 싫은 부유감이 찾아왔다.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스스로가 넘어지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그 한순간 뒤, 충격이 찾아왔다.


「읏......」


 아픔이 온몸을 덮친다. 둔하면서도, 날카로운 그 아픔은, 일어설 기력을 전부 먹어치우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시즈쿠는, 이대로 괜찮은거야?』


 아이 씨의 말.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젓는다.


『시즈쿠쨩은, 그걸로 된거야? 이대로 괜찮은거야?』


 엠마 씨의 말.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젓는다.

 끝나버리는 걸로, 괜찮을리가 없다.

 그 때, 그 옥상에서 나는 후회했다.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후회. 어째서 카나타 씨의 뒤를 쫓아가지 않았을까. 어째서 카나타 씨의 손을 붙잡지 못했을까.

 어금니를 세게 물고, 천천히 일어선다. 무릎은 벗겨져서 피가 나고 있다. 교복은 눈에 젖은 흙에 더럽혀져, 탁한 색을 띠고있다.

 조금 앞까지 날아간 학교 가방을 주워, 머플러를 꺼내 목에 두른다. 말랑말랑하고, 푹신푹신한 맑은 물색의 머플러. 카나타 씨가 나를 위해 떠준,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소중한 물건.


『그걸로 마음껏 따뜻해지거라~』


 카나타 씨의 말이 되살아난다.

 분명, 굉장히 시간을 쏟았겠지. 분명, 마음을 잔뜩 담아주었겠지. 목에 두른 머플러는 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상냥하고, 따뜻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눈이 몸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듯 온몸을 덮쳐온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래서 어쩔건데. 멈출 수 있으면, 멈춰봐.

 손수건으로 감듯이 상처를 억누르고, 나는 다시 한걸음 달리기 시작한다.

 카나타 씨에게 있어서는, 내 이 행동은 성가신 일일지도 모른다. 카나타 씨를, 그저 곤란하게 할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건 상관 없다. 이게 내 어리광이다.

 왜냐면 나는, 카나타 씨를, 이렇게나-

 그러니까, 서둘러. 서둘러. 서둘러.

 카나타 씨가 있는 곳으로, 달려! 오사카 시즈쿠!

 겨울의 하늘이, 카나타 씨를 데리고 가버리기 전에-


「읏, 하아, 하아, 하, 아......」


 바람에 흩날리는 머플러를 그대로, 역의 구내로 발을 들인다. 흘러내리는 땀이 시야를 가로막아서 성가시다. 쨍쨍 울리는 안내 방송의 목소리에, 가벼운 두통조차 있었다.

 사람에게 부딪히지 않도록 달리면서, 지갑을 꺼내고 학교 가방을 어깨 위로 다시 멘다.

 숨을 가다듬을 시간조차 아깝다.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채로, 몇백엔과 바꾼 역의 입장권을 손에 들고 개찰구를 향해 바람을 가른다.

 초조한 마음 채로 구입한 입장권을 개찰구에 넣고, 긴 계단을 단숨에 달려 올라간다. 3번 홈에는 아직 전차는 오지 않았다.

 심장이 거칠게 숨을 뱉는다. 신선한 산소를 요구하는 것처럼, 입가로부터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산소가 부족한 몸의 시야는 희미해진다. 마치, 물 속에서 눈을 떴을 때와 같은 세계. 눈을 비비고, 모은다. 카나타 씨는, 어디 있지.

 홈의 끝에서 끝까지 시선을 둘러본다. 드문드문하지만 사람은 많다. 그 인파의 한 사람 한 사람을 확인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이해는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을 리 없다.


 - 카나타 씨.


 가슴 속에서, 몇번이고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초조함이 하얀 숨결로 새어나오고 멈추지 않는다.


 - 카나타 씨......! 

 

 홈을 재빠르게 달리면서 머리를, 시선을, 뇌를 움직인다. 간혹 보이는 구내에 설치된 스피커는, 전차의 도착을 알리는 벨을 울리고 싶어 근질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가 아니라, 다른 역일지도 모른다. 이미 떠나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들이, 눈동자 속에서 넘쳐흘러 시야를 흔든다. 그 때였다.

 갑자기, 시야의 끝에 크림색의 니트 모자가 보였다. 순간,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 체온이 급격히 올라간다.


「-읏!」


 카나타 씨가, 있었다. 니트 모자 속에 머리카락을 넣은 탓인지, 그 분위기는 여느 때와는 조금 달라져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가 카나타 씨를 잘못 볼 요소가 되지 않는다.

 홈의 끝으로 향하는 카나타 씨는, 작은 륙색을 등에 메고, 자원색의 슈트케이스를 끌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카나, ㅅ......!」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숨을 갖추지 못한 폐는 공기를 뱉어내지 못하고, 목을 잘 울리지 못한다. 내 입에서 뱉어진 것은, 몸이 다 써버린 낡고 새하얀 공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척을 눈치 챘는지, 카나타 씨가 한순간, 내 쪽을 돌아보았다.


「읏......!」


 눈이 마주쳤다. 제비꽃색의 예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 눈동자도 카나타 씨를 바라보았다. 순간, 카나타 씨가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홈 내에 샛된 벨 소리가 울렸다. 전차가 역에 찾아오는 신호다. 나는 가방을 던져버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카나, 탓, ㅆ,ㅣ......!」


 다리가 아프다. 폐가 아프다. 몸 안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듯 하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입안 가득 피의 맛이 나고, 거기서 새어나오는 하얀 숨결이, 궤적처럼 뒤를 따라왔다.


「오지 말아줘......!」


 카나타 씨의 목소리. 그럼에도 다리를 움직였다. 그럼에도 몸을 움직였다. 그럼에도 팔을, 카나타 씨를 향해 계속해서 뻗었다.

 멀리서, 전차가 달리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조금씩, 카나타 씨의 등도 가까워져 온다.


「기다려, 주세, 요......ㅅ!」


 넘어지는 것처럼, 지면을 박차올랐다.


 - 닿아, 라......!


 그 순간, 시간의 흐름이 완만하게 변한다. 벌어져있던 거리가 줄어든다. 카나타 씨의 등이 눈 앞에 펼쳐진다. 손을, 팔을, 뻗는다. 그리고-


「카나타, 씨.....!」


 눈처럼 새하얗고 가느다란, 카나타 씨의 손목에, 닿았다.

 꼬옥 쥔 손에, 카나타 씨가 드디어 멈춰선다. 하지만, 돌아보려 하지는 않는다.


「어째서, 여기에, 온거야」


 가랑눈 같은 목소리. 이 손을 놓아버린다면,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듯한 목소리였다. 주변의 소리가, 어딘가 멀다. 숨이, 아직 갖춰지지 않는다.


「좋아, 하니까, 요」

「그건, 안돼......!」


 지체 없이 날아드는 카나타 씨의 목소리. 좀 전과는 달리 노기를 포함한 듯한 목소리에, 나는 한순간, 숨을 삼켰다.


「어째, 서......인가요」

「왜냐면 나는, 시즈쿠쨩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으니까......」


 카나타 씨의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시즈쿠쨩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런데! 시즈쿠쨩을 생각할 때, 하루카쨩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어......! 하루카쨩을 계속 잊을 수 없었어......!」


 이어진 팔에서부터, 카나타 씨가 떨고 있는 것이 전해져온다.


「나는, 연인인 시즈쿠쨩 보다도, 하루카쨩이 소중하다고...... 그런 나로는, 시즈쿠쨩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


 그 말에, 그 옥상에서의 일이 되살아난다.

 이별을 고한 이유. 그건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카나타 씨는 말했다. 그리고, 하루카 씨의 생활을 더 편하게 해주고 싶다, 고도.


「시즈쿠쨩의 마음을 더럽혀버리니까...... 시즈쿠쨩의 족쇄가 되어버리니까...... 그러니까 헤어지려고 했는데, 이제서야 내 마음을 정리했는데, 어째서, 온거야......!」


 카나타 씨의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이어진 손을 풀려고, 맺어진 인연을 끊어내려고, 팔을 크게 휘두른다.

 이게 카나타 씨가 고른 답. 여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 그게 지금, 카나타 씨가 흘리고 있는 목소리고, 눈물이고, 그리고, 감정인 거겠지.


「......저는」


 이어진 손에 힘을 담는다. 그 손을 놓치지 않도록, 그 봄에 만난 인연을 껴안듯이.


「하루카 씨에 대한건, 알고 있었어요. 어렴풋이, 카나타 씨의 제일이 하루카 씨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저는, 카나타 씨를 정말 좋아해요. 계속 함께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노성과도 닮은 목소리가, 역의 홈에 울려퍼진다. 목소리에 카나타 씨가 돌아보고, 그 박자에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날아가 흩어지고, 사라졌다.

 나는 붙잡은 채였던 카나타 씨의 그 손을 내 가슴에 가져가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거짓말이 아니니까, 저는 지금, 여기에...... 카나타 씨의 눈 앞에, 있어요......! 그게, 이게, 증명이에요......!」


 숨을 삼키는 기척이, 이어진 손가락으로부터 전해져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옥상에서, 나는 분명 카나타 씨의 뒤를 쫓지 못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어떻게 해야할까를 모른 채 움직일 수 없었다. 분명, 이별을 받아들이려 하는 이성과,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본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카나타 씨-」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나는 이곳에 있다.


「- 정말 좋아해요」


 그러니까 이게, 내 답이다.

 홈에 벨이 울려퍼지고, 전차가 찾아온다. 전차가 몰고 온 바람이 휭 하고 불어, 내뱉은 말을 채간다. 목에 두른 머플러가, 파닥파닥 내 뒤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더는, 시간이 없다.


「하나만, 카나타 씨에게 어리광 부릴게요」

 

 포개진 내 손가락에, 힘이 모인다.


「...... 응」


 카나타 씨의 손가락 끝에 힘이 모인다.


「제가 꿈을 이루면, 카나타 씨를 데리러 갈게요. 카나타 씨가 어디에 있더라도, 반드시 데리러 갈게요」


 언젠가 카나타 씨에게 이야기했던 꿈. 그것은, 연극으로 봐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여배우가 되는 것.


 - 만약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내 안의 내가 그렇게 묻는다. 그 때는, 내게는 카나타 씨의 곁에 있을 자격 같은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카나타 씨에게 약속을 한다. 그러니까, 카나타 씨에게 선언한다. 하나의 어리광을, 카나타 씨에게 선서한다.


「꿈을, 반드시 이룰게요. 그러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응......!」


 하얗게 물든 시간이, 얼음에서 녹아내린 물처럼 흘러간다.

 맑게 흐르기 시작한 그것은, 이윽고 역의 홈에 샛된 소리를 가져왔다.

 그것은 전차가 역을 떠나려 하는 소리. 우리들의 길이, 어긋나는 소리.

 그 소리에, 계속 이렇게 있고 싶은 마음도 든다. 본심을 말하면, 이 손을 놓고 싶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선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카나타 씨」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계속 함께 있기 위해-


「저와, 헤어져주세요」

「- 네」


 - 그러니까 지금은, 이 손을, 놓자.

 

 나는, 카나타 씨는, 이어진 손을 누구 먼저랄 것 없이 놓았다. 손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열이 멀어져간다. 몇번이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정말 좋아하는 열. 그 열이 조금씩 멀어져간다.

 시선이 교차한다.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흰 선의 안쪽까지 내려가자, 짐작한 대로 차량의 문이 닫혔다. 반투명한 벽이, 나와 카나타 씨의 사이에 생겨난다.

 마음을 겹쳤다. 꿈을 전했다. 미래를 그렸다. 잡았던 손바닥에는, 카나타 씨의 온기가 남아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눈을 돌리지 않고 안녕을 말할 수 있다.


「카나타 씨」

「시즈쿠쨩」


 내가 입을 연다. 카나타 씨가 입을 연다. 그 목소리는 분명, 반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서로에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카나타 씨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카나타 씨도, 분명 내 말을 이해했을 것이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야에서 카나타 씨가 사라지고, 곧바로 전차의 뒷면이 시야에 나타났다.

 백은 속으로, 카나타 씨가 사라져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가슴 속에는, 카나타 씨의 체온이 확실히 숨쉬고 있다.

 백은을 향해 손을 뻗어, 그리고 강하게, 강하게, 나는 그것을 붙잡았다.



** 4장


 - 덜컹.

 

 우편함에 무언가가 던져넣어지는 소리에, 나는 펼쳐져있던 대본을 닫았다. 손땀으로 더러워진 대본을 작은 탁자 위에 올려두고, 재빨리 현관으로 향한다.

 낡아빠진 아파트에 빌린 다다미 여섯장 짜리 방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신고 어지럽혀둔 샌들에 발을 끼웠다.

 취출구를 열어보니, 갈색의 가늘고 긴 봉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오사카 시즈쿠 님』


 꺼낸 봉투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동시에, 심장이 경종을 울리는 것을 느낀다. 피가 도는 속도가 빨라지고, 체온의 상승을 느꼈다. 하지만-


「......읏」


 그건, 다음 순간에는 구름이 흩어지듯이 사라진다.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그 자리에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경치가 멀다. 내 몸인데, 어딘가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진다.

 기어가듯 방 한가운데까지 돌아와, 테이블 위에 봉투를 내던졌다.

 등받이 방석에 몸을 기대고,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7번. 니지가사키를 졸업하고나서 5년간, 내가 무대의 오디션을 받은 횟수다.

 결과는 어느 것도 참패. 주역은 커녕, 단역조차 받지 못했다.


 - 무엇이 부족한걸까.


 몸을 맡긴 등받이가, 삐걱거리며 항의의 목소리를 낸다. 그걸 무시하고 테이블 위의 대본을 넘겨, 맨 첫 장을 펼쳤다.

 그것은, 내가 연극부에 입부 했을 때, 처음으로 따낸 주역의, 그 대본이었다. 너덜너덜해진 종이. 긁혀나가기 시작한 글자. 손때 묻은 그것은, 당시의 오사카 시즈쿠라는 존재가, 한층 더 크게 빛나고 있던 증거이기도 했다.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던 휴대전화를 집어 영상을 재생한다. 저번에 찍은 자신의 연극의, 그 연습이다.


「......」

 

 하지만 어딘가, 그 내용은 색 바랜 인상을 받는다. 화면 속의 내가 연기하고 있는 것은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맥베스」에 등장하는, 스코틀랜드의 장군이다.


「...... 집중 할 수 없어」


 마음이 들어있지 않다. 가늘고 긴 화면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그것은 맥베스가 아닌, 그냥 오사카 시즈쿠였다.

 옛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대체 어떻게 생각할까. 경멸할까, 아니면 이런 나를 돌봐줄까.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고 눕자,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빛나는 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나를 연기하고 있다. 춤추는 것처럼 우아하게. 유리처럼 섬세하게. 넋을 잃을 정도로, 마음이 떨릴 정도로 강하게, 마치 만화경처럼 변하는 기억의 세계.


 - 아아, 눈부셔라......


 반짝반짝 눈부신 경치에, 머릿속이 타는 듯이 아프다. 지글지글 하고, 그리고 찌릿찌릿 하고.

 그와 달리, 지금의 나는 대체 뭘까. 연극의 연습이나 공부를 하는 한편, 아르바이트로 일당을 버는 매일. 연극도, 성장은 커녕 오히려 열화된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나는, 과연 그 오사카 시즈쿠일까. 그 반짝였던, 오사카 시즈쿠 본인일까.

 두통과 동시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 나쁜 감각이 온몸을 덮친다.

 오사카 시즈쿠라는 존재를, 그 하나의 역을, 전혀 모르는 다른 누군가가 연기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대로는 카나타씨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

 빨리, 빨리, 빨리-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얕은 잠의 어둠에 사로잡혀 있었다.


 눈을 뜬 것은, 시계의 침이 20시를 돌려고 하던 무렵이었다. 휴대전화에 설정해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몸을 일으키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창백한 달빛이 나를 맞이했다.

 이상한 자세로 자고 있던 탓인가, 몸이 심하게 아프다. 시멘트를 들이부은 것처럼, 마디마디가 딱딱하게 굳어있다. 얼굴을 찌푸리며, 질질 끌듯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 머리를 말리며 토스트를 굽는다. 완성된 토스트를 먹으며, 최소한의 화장과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바로 근처의 편의점이었다.

 자동문이 열려도 카운터 쪽에서 목소리는 날아들지 않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지금의 나는, 손님이 아니라, 그저 아르바이트니까.

 계산대에 있던 점장에게 사무적인 인사를 건네고 돌아선다. 제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자, 그 점장에게 물건을 꺼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물론,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시간이라고 해서, 손님이 전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물건을 꺼내는걸 멈추고 계산대를 두드린다. 점장이라고 해봐야 서있기만 할 뿐, 혹은 앉아있을 뿐이고, 이제는 숨을 쉬는 석상 같은 존재다.

 카나타 씨의 목소리가 그립다. 카나타 씨의 온기를 원하는 것처럼, 손가락 끝은 심하게 얼어 있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생. 내 인생은, 그런 흔해빠진 것이었을까.

 품고 있던 꿈은 색이 바래고, 가슴 속에 남아있는 그 사람의 잔불에, 그저 매달리기만 하는 인생.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좀 더 연습을 거듭해, 한 걸음이라도 꿈에 다가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하아......」


 한숨만 쉬고 시간만이, 쓸데없이 지나가 아침이 된다. 집에 돌아가자, 곧바로 나른한 졸음이 몰려왔다. 입고 있던 옷을 그 자리에 벗어던지고, 욕실로 향한다.

 수도꼭지를 틀자, 벽에 걸린 샤워헤드에서 물이 힘차게 흘러나온다. 그게 따뜻한 물로 변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녹아들 듯이 벽을 등졌다.

 떠올리는 것은 지금의 나. 마음에 그리는 것은 과거의 나.

 시야가 하얗게 안개가 낀다. 흘러내리는 물은, 어느샌가 따뜻한 물로 변해있었다.

 강하게 몸을 문지르고, 길게 물을 끼얹으면. 살아있는 망자가 된 이 몸속에서, 그 때의 내가 태어나는 것일까.


 -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런 하찮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지금 생각해야 하는 것은 눈 앞의 과제다.

 적어도, 우선은 역을 따내는 것.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무대의 주역에 다가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기만 날 뿐인 시간이 아깝다. 빨리 다음으로, 빨리 이 너머로, 빨리 그 사람에게-

 배수구 속으로 사라져가는 물을 망연히 배웅하며, 나는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


 봄이 왔다. 니지가사키를 졸업하고서 여섯 번째의 봄이, 그 날은, 연극을 하나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도중이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의 벚꽃에, 번거로움마저 느껴진다. 흙과 풀의 향기가 달콤해 어쩔 수 없다. 눈을 돌리고는, 오늘의 대본으로 눈을 떨어뜨리고 귀가를 서두른다.

 오늘은 최악이었다. 자원봉사자니까, 초보니까...... 그렇게 변명하는 나도 있지만, 가슴 깊이 퍼지는 새카만 안개는 사라질 기미가 없다.

 바로 근처에 있는 유원지. 그곳에 있는 작은 무대가, 내가 오늘도 하나의 인생을 걸은 장소였다.

 내용은 아이들 대상의, 테마가 직접적인 권선징악. 내가 연기하는 것은, 그 악역.

 연기자 내역은 봉사로 모집한 수십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 안에는 나처럼 프로 연기자 지망인 사람이 몇명 있었다. 그리고, 유원지의 스태프거나, 흥미로 찾아온 사람 등, 어느 쪽이냐 하면 미경험자인 사람 쪽이 많았다.

 무언가 득이 될게 있다면, 그렇게 생각해서 참가해보았지만......


「실패였네」


 어설픈 배우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감정이 없는 주역. 초목이 되버린 듯한 단역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토 할 것만 같은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연기였다.

 그런 평범한 연극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 악역은, 그렇게 평탄한 인생을 걷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악역의 인생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나의 연극이, 부숴버렸다.

 아스팔트를 차는 소리가, 내 심장의 고동처럼 거칠게 들려온다. 횡단보도의 빨간 불에 멈춰서자, 가슴이 선명한 산소를 찾아 ㅎ럴떡인다. 이마에는, 가볍게 땀이 배어 있다. 

 신호가 바뀌는 것을 기다리는 도중,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서 그 잠금을 해제한다. 화면을 몇 번인가 슬라이드 시키자, 오늘 날짜가 제목에 붙여진, 한 영상 데이터가 나타났다.

 스태프 쪽에 부탁을 해서, 오늘의 공연을 영상으로 찍어달라고 했다. 여기에 비치는 나는, 분명 서투른 연극을 하고 있겠지.

 그렇기에 더더욱, 어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추구해야만 한다. 나쁜 곳을 전부 고치지 않으면, 무대에는 오를 수 없다. 역도 따낼 수 없다. 빨리 무대에 올라가서, 나의 꿈을-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딱 신호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 역시! 어이 시즈코!」


 갑자기 들려온 그 말에, 어깨가 크게 뛰고 발이 멈춘다.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 그리고 특징적인 호칭.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머리 속으로 그녀의 표정을 떠올리며 뒤돌아보자, 그대로인 그녀- 카스미 양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정말이네요. 오랜만입니다, 시즈쿠 씨」

「카스미양 ...... 거기에 나나 씨까지」


 세갈래로 땋은 까마귀 색의 머리가, 봄 햇살에 옅게 반사된다. 안경 속에 보이는 주석색의 눈동자는, 태양처럼 빛나는 것처럼도 보였다.

 의기양양하게 카스미 양이 말한다.


「혹시나 하는데, 시즈코 아까 전의 스테이지에 있었지?」

「어어, 뭐......」


 그런 걸 물어서 어쩌려는 걸까. 카스미 양과는 아무 관계 없다.

 그런 것보다도 빨리 돌아가서, 촬영한 영상을, 나의 연극을 고쳐야만 한다. 그리고 반드시, 무대 위에......


「괜찮으시면, 같이 차라도 마시지 않을래요?」

 그런 내 가슴 속 따위는 알 리가 없는 나나 씨는, 몇년 전과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웃는 얼굴을 내게 향한다. 여름의 햇살처럼, 따뜻하고, 강한 빛을 내는 듯한 미소.


「저는......」


 죄송하지만. 그렇게 벌어진 입을, 손목에 깃든 열이 가로막았다.


「가끔은, 괜찮지? 시즈코」


 카스미 양의 새하얗고 작은, 부드러운 손바닥이 내 손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가련해보이는 그 손이, 집어삼키듯이 손목을 붙잡는다.


「알았, 어요......」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남겨진 선택지는 없었다.


 두 사람에게 이끌려 들어온 곳은, 근처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어딘가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 내에, 앤티크한 장식물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고 있다. 주황빛의 조명의 힘도 적지 않게 있겠지. 처음 들어온 커피숍인데, 신기하게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들어가서 바로 있는 테이블 석에, 두 사람은 나란히 앉고, 나는 두 사람을 마주 보듯이 앉는다. 나는 핫을, 나나 씨는 아이스 커피를, 그리고 카스미 양은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음료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들의 사이에 있던 것은 침묵 뿐이었다. 카스미 양은 바깥의 경치를 바라보고, 나나 씨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궁리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나대로,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주문한 음료는 금방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침묵이 녹아내리는 일은 없었다. 어색한 침묵에, 목구멍이 옥죄인다.

 침묵이, 방금 전 두 사람과 만났을 때의 광경을 희미하게 상기시켰다. 손을 잡고 걷고 있던 두 사람. 내가 스테이지에 있었는지 어떤지를 물어왔다는 것은, 분명 두 사람은 그 유원지에 간 것이겠지. 카스미 양과 나나 씨의 가방에 매달린 작은 동물 인형이, 웃는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이겠지. 장소, 분위기, 거리, 그 하나 하나에서 강하게 그렇게 느꼈다.

 솔직히, 부러웠다. 그리고 어딘가, 두 사람의 광경에 질투하는 내가 있었다.

 나도, 카나타 씨를 좋아한다. 빨리, 만나고 싶다.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빨리 꿈을, 꿈을 이루지 않으면-

 그 때였다.


「있잖아」


 던져진 목소리가 내 사고를 찢었다. 시선을 향해보니, 그것은 카스미 양이었다. 좀 전까지 밖을 바라보고 있던 주홍색의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꿰뚫어보고 있다.

 놀랄 것만 같은 날카로운 눈동자. 그에 무심코 마른 침을 삼키자, 관자놀이에 땀이 흐르는 감각이 들었다. 숨 죽이고 말을 기다린다.

 아플 정도의 침묵이 찾아온다. 손님은 그 외에도 있을텐데, 소란스러움에 가까운 목소리도 들리고 있을 터인데, 그 목소리가 어딘가 먼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들 이외에는 여기서 사라져 있는 듯한 착각.

 내가 주문한 뜨거운 커피에서 나는 김이, 모락모락 흔들리고 잇다. 빙글빙글 올라가는 그것은, 가게 안을 도는 공기에 휩쓸려 투명한 실크처럼도 보였다.


「시즈코는-」


 카스미 양이 다시 입을 연 것은, 커피의 온기가 충분히 얇아졌을 즈음이었다.


「- 무엇을 위해 연극을 하고 있는거야?」


 수면에 파문조차 일지 않을 듯한 목소리. 차가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품은 눈동자가, 뱀처럼 나에게 휘감긴다.


「......읏」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목구멍 안쪽에 억지로 뚜껑을 덮은 듯이, 입술은 그저 떠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아무 것도 아닌 한마디였겠지. 하지만 나는, 내게는, 머리부터 양동이 한가득한 얼음물을 끼얹어진 듯한 충격이 있었다.


 - 딸랑.


 오렌지 주스에 잠겨있던 얼음이, 지루한 듯이 몸을 움직인다.


「......어째서」

「아까부터 계속 건성이고, 계속 웅성웅성거렸고」


 - 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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