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리코 참전한거 이제야 실감해서 재업
때는 단기(檀紀) 4353년 어느 봄 날, 저 바다 건너 왜국(倭國)의 서울인 강호(江戸)와 다리로 이어져 있는, 대장(臺場)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작지만 번화(繁華)한 섬이 있었다.
이 섬은 본디 서양(西洋) 오랑캐들을 막기 위해 만든 포대(包臺)였으나 오랑캐들에게 항복(降伏)하여 쓸모가 없어졌으니 이 얼마나 무의미(無意味)할꼬.
그러나 그 뒤로 왜국이 번성(繁盛)하여 집과 건물(建物)을 대장에 새로이 지었으니, 이 글은 그 섬에 있는 학당(學堂)에 다니는 한 학도(學徒)에 대한 이야기렸다.
혹, 홍소학당(虹咲學堂)이라는 학당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무지개가 핀다라는 뜻의 이름으로 왜어(倭語)로는 「니지가사끼ー」라 읽는다.
이 홍소학당은 번화한 섬 대장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으로 다섯 날은 학당으로, 학당이 열지 않는 이틀은 여름과 겨울마다 한 번씩 모든 왜국의 오덕후(汚德厚*)들이 모여 각자 그린 민화(民畵)나 「굳쯔ー**」, 만화(漫畵) 등을 내다 팔거나 사는 「만화장터」가 열린다하니 왜국은 얼마나 개방적(開放的)인가.
* : 더럽지만 덕이 많은 두터운 종자들
** : 양어(洋語)로 인형(人形)이나 그림이 그려진 상품(商品)들
이런 개방적인 학당에 다니는 학도는 또 얼마나 우수(優秀)할꼬. 이 학당은 저마다 잘하는 것을 살려서 내가 학문(學文)에 밝다 하면 학문에 힘을 쏟게 하고, 내가 공학(工學)에 뜻이 있다고 하면 공학에 전념(專念)케 하니 이는 조선(朝鮮)도 배워야 한다고 필자(筆者)는 고(考)한다.
이 학당은 또한 뜻이 맞는 학도가 모여 이른바 「구락부」를 꾸려 각자의 뜻을 이루고자 하니 이 또한 이 학당이 우수한 까닭 중 하나렸다.
이 「구락부」는 학당에서 학도들이 낸 학비(學費)로 움직이는데, 이 「구락부」들의 예산(豫算)은 학당을 꾸려나가는 이사회(理事會)에서 각 「구락부」에 나누는 모양새로 주어진다. 그러나 어찌 이를 모두가 만족(滿足)할 만큼 공평(公平)하고 넉넉하게 쥐여줄 수 있는가. 「구락부」에 들어가 있는 학도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니 이것을 해결(解決)할 사람은 학도들의 대표(代表)인 생도회장(生徒會長)밖에 없었다.
그러나 생도회장을 맡고 있던 중천채채(中川菜菜)는 가지고 있는 권한(權限)안에서 예산의 비율(比率)을 맞추어 나누는 수 밖에 없었고, 그 책(策)이 가장 이치(理致)에 맞는 수단(手段)이니 학도들이 이를 어찌 탓하리오. 그러나 중천채채를 중도반단(中途半端)이라 꾸짖으며 생도회장이 된 당돌한 학도가 있었으니, 성(姓)은 삼선(三船)이요 이름은 간자(栞子)라.
삼선간자의 가문(家門)은 본디 왜국에서 알아주는 상인(商人) 집안으로 덩치가 큰 상단(商團)을 움직이며 왜국의 중앙(中央)인 막부(幕府)와도 이어진 이름있는 집안이니, 삼선간자의 성인 「삼선」도 이 집안이 상인 집안이라 칭(稱)하는 것이리라.
삼선간자의 부친(父親)의 「상인은 모름지기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라는 뜻을 듣지 아니하고 자신(自身)의 뜻을 이루고자 출가(出家)한 언니와 다르게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홍소학당에 들어온 삼선간자는 지 아비를 닮아 사람을 보고 재목(材木)인지 판단(判斷)할 줄 알고 효율(效率) 좋게 쓸 줄 아는 대장부(大丈夫)라, 중천채채를 중도반단이라 꾸짖으며 생도회장이 되자마자 「구락부」를 효율 좋게 바꾸기 시작했다.
먼저, 가문과 이사회에 납득(納得)을 얻어 「구락부」에 쓰일 예산을 더 받아오고 낡은 비품(備品)을 버리고 새 것을 들여오거나 왜국의 이름난 훈장(訓長)을 모셔오는 등「구락부」의 환경(環境)을 개선(改善)하야 학도들의 호평(好平)이 자자하니, 이런 대장부가 또 언제 날꼬.
그러나, 삼선간자가 이를 갈며 「이 구락부 반드시 없애리라.」하여 벼르고 있는 「구락부」도 있었으니, 학당소리패동호회(學堂소리패同好會)라는 이름을 가진 「구락부」이 그것이라.
학당소리패란 학도들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군중(群衆)들을 매혹(魅惑)하는 무리로, 삼선간자는 이러한 것을 「학도에게 필요(必要)치 아니하니 없애야 마땅한 것.」이라 하니 삼선간자의 뜻도 맞는 말이라.
그러나 삼선간자의 심성(心性)은 본디 따뜻한 편이라 탁아소(託兒所)의 어린 아이에게 미소를 보이며 같이 놀기도 하며, 중천채채에게 생도회장을 뺏은 이유도 「이 학당의 모든 혜택(惠澤)은 학도 모두가 받아야 하며 중천채채도 그 학도 중 하나이나 지금까지 그렇지 못하니 이 썩어빠진 고리를 내가 끊어내리라.」하는 의기(意氣)였고, 「구락부」이 더욱 잘되기 위한 간언(諫言)도 하니 일부(一部) 학도들의 악의(惡意)가 가득한 소문(所聞)은 낭설(浪說)이렸다.
그러나 이러했던 삼선간자도 이들의 진심(眞心)에는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인지, 평소 자신이 눈여겨보던 상원보몽(上原步夢)의 호소(呼訴)로 마음을 바꿔먹고, 이들의 학당소리패잔치 준비를 도우며 우애를 다지고 자신의 언니인 삼선훈자(三船薫子)의 말로 인해 자신이 없애려던 「구락부」에 들어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 먹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결말이 없으렷다.
필자는 논(論)한다. 사회(社會)의 썩은 고리를 끊어내고 원(員)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힘을 들이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것을 이룬 사람은 많지 아니하다. 그것을 실제로 해낸 삼선간자는 대체 무엇인가? 이 삼선간자라는 대장부는 장차 왜국을 넘어 조선과 대륙(大陸), 서양(西洋)까지 뻗어나갈 것이라 필자는 감히 고(考)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