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시코 쨩. "
" 요하네야, 리틀 데몬 4호. "
" 오늘, 우리 집에 자러 올래? "
" 크헉! 켘! 콜록! 콜록! "
그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맛 음료수를 다 마시지도 못하고 반절 가량 바닥에 쏟아버린 건 순전히 루비 때문이었다.
" 요시코 쨩. 바닥을 그렇게 더럽히면 못 써? "
" 아니, 너, 너희 집에? 자고 가라고? 오늘...? "
" 응. 오늘, 우리 집. 요시코 쨩, 혹시 바빠? "
순진함만 200% 정도 담긴 듯한 눈망울을 또르르 굴리면서, 되묻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재차 확인시켜 주는 루비.
나랑 루비는 연인의 계약을 맺은 지 한 달쯤 된 커플이다. 루비 쪽에서 고백해 왔고, 첫 키스도 루비가. 유약한 소동물계인줄만 알았던 이 아이와 사귀고 나서, 루비는 진심이 되면 무섭다는 걸 점차 알게 되었다. 고백도 살짝 붉어진 얼굴이었긴 했지만 말조차 더듬지 않고 했었고, 첫 키스도 너무 자연스럽게 루비 쪽에서 입을 맞춰왔다. 내가 알던 삐기- 나 오네쟝- 을 입에 달고 살던 루비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루비가 싫어졌단 얘기는 절대 아니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오히려, 전보다 두근거리는 느낌... 조금 분하지만.
그리고 지금 이 무서운 아이는, 사귀고 나서 한 달만에 연인에게 자러 오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저 혼자 있는 집에!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 루비, 오늘은 분명... "
" 응, 본가에 일이 생겨서 언니랑 부모님 없이, 집에는 루비 뿐이야. "
" ...음, 음. 루비 혼자... 그렇구나. "
" 응, 루비 혼자야. "
" 아~! 그런데 오늘은 리틀 데몬들과의 인터넷 방송 약속이! "
말을 끝내기도 전에 루비가 핸드폰을 꺼내서 무언가를 뒤적인다.
" 요시코 쨩, 오늘은 분명 방송 없는 날이지? 여기, 방송 일정표 봐. "
그러고 보니, 루비는 내 방송 매번 챙겨볼 정도로 열성 리틀 데몬이지... 루비가 나를 보고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 요시코 쨩, 최근 피곤해 보인다 싶더니... 착각했구나? "
" 요하네야!! ....여, 역시 리틀 데몬 4호네! 나랑 특별한 연인의 계약을 맺은, 최상급 리틀 데몬다워. 그런 충성심, 아주 기특해! "
" 에헤헤... 루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
생글생글 웃는 루비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나는 왜 도망치려고 했던 거람, 거짓말까지 하면서... 생각해보면 루비랑 같이 자는 건 연인이 아니었던 때에도 자주 있던 일인데 말이야. 그 루비가 설마! 아무리 진심이 된 루비라도 나랑 루비 사이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이상한 상상만 잔뜩 해 버린 내가 밉다.
" 아하하... 그거 좋네! 루비만 그 큰 집에 남겨둘 수는 없으니까, 즈라마루도 부를까? 오랜만에 셋이서 아이돌 비디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거나 하고! 이거야말로, 리틀데몬들과 타천사 요하네의 비밀의 연회... "
" 요시코 쨩. "
" 왜, 루브읍...! "
내 입술에 살짝 손가락을 대고, 귀여운 동물이라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능글맞은 눈웃음을 친다.
" 마루쨩은 다음에. 나는 요시코 쨩한테만 권유하고 있는 거야. 우리 집에 자러 오라고... "
" 루, 루비, 너 무슨... "
" 그래서, 요시코 쨩은 좋아? "
요하네, 침착해!!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이게 무슨 네가 히키코모리 시절에 맨날 보던 만화책인 줄 알아!? 그 루비야!! 간바루비에, 삐기 삐기 하고, 소동물에, 언니바라기인... 이렇게 순수한 애를 네 망상으로 더럽히지 마! 그냥 나랑 단둘이, 연인다운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것 뿐일거야...! 생각해보면 요즘 둘만 있을 기회가 없었지? 루비는 단지, 나랑 같이 있고 싶었던 것 뿐...
" 아하하... 죄 많은 리틀 데몬이네. 요하네 님을 독점하고 싶은 거구나? 즈라마루도 끼어 있다면 더 즐겁겠지만, 가끔은 우리 사이의 계약의 밀도를 재확인하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니까... "
내 말을 들은 루비가 쿡쿡 소리 죽여 웃더니, 속삭이듯 대답한다.
" 싫다, 요시코 쨩... 마루쨩까지 데려오고 싶다니, 변태. "
" 너, 뭐라고... 방금 무슨... "
루비가 살며시 의자에서 일어나서 내가 앉은 자리 뒤쪽으로 다가와서는,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루비가 항상 쓰는 달큰한 딸기 향 샴푸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지근거리에서 루비의 숨결이 귓가에 닿는다.
" 그야, 연인다운 놀이 할 건데... 마루쨩까지 욕심내는 건 변태잖아? "
" 연인... 놀이...? "
" 우리 집은 좀처럼 비지 않으니까, 지금밖엔 없는 걸...? "
" 루비! "
내 귀에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루비의 팔을 잡고 단호하게 외친다. 그냥 기회가 왔다고, 흐름에 휩쓸려서 해 버릴 수는 없다. 루비는 유약한 아이니까, 부담감을 느껴서 서두르는 건지도 몰라... 내가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애인 실격이야.
" 엣...? 요시코, 쨩...? "
" 그러니까, 정말 하고 싶은 거야...? 물론 싫다는 건 아니야!! 어느 쪽이냐고 하면, 나도 루비랑 그, 그런 걸 하고 싶어.. 루비는 예쁘고, 상냥하고... 무엇보다 내 리틀... 아니, 여자친구니까.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라고! "
" ...... "
" 그래도, 루비가 혹시 서두르고 있는 거라면... 무서운데도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말해두겠는데, 나는 루비를 정말 좋아하니까! 물론 연인으로서... 루비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미리 말해두는 거야. 무리하게 스킨십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내 쪽에서 루비를 싫어하게 될 일은 없으니까... 그... 그런 건, 루비가 정말 나를 믿을 수 있을 때 해 버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
" ... 아하하하!!! 정말, 요시코 쨩~!! "
갑자기 박수까지 치며 웃는 루비를 멍하니 바라본다. 나, 나 방금 무슨 말실수 했나...?
" 요시코 쨩, 역시 착한 아이네! 진짜 이름대로 착한 아이... 에헤헤. "
" 요하네!!! "
" ...불안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 맨-날 사귀기 전이랑 똑같이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스탠스로 일관하는 겁쟁이 타천사 요시코 쨩을 보면, 루비가 그다지 매력이 없나~ 하고 조바심이 났던 적도 없지는 않다구? "
" 미, 미안... "
" 그래도 말이야, 요시코 쨩이 루비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걸. 루비를 볼 때의 표정이나, 요시코 쨩의 말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애정이 묻어 나와서... 루비는 그게 너무 좋아. 안심이 돼. "
" ....... "
" 아, 부끄러워한다~ "
" 아니얏!! 타천사를 희롱하는 사역마라니, 요 앙큼한 리틀 데몬!!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
" 그럼, 타천사 요하네 님? "
" 응...? "
" 오늘 밤에 건방진 리틀 데몬한테 다시 알려 주세요. 요하네 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요시코 쨩, 이제 도망가면 타천사 실격이다? "
" ....네. 갈게요... "
" 요시코 쨩, 좋아해~! 그럼, 루비 먼저 돌아가서 집 정리 좀 할게? "
오케이 사인을 받자 마자 부실을 빠져 나가는 붉은 트윈테일만큼 아마 지금 내 얼굴도 빨갛겠지. 붉어진 뺨을 부실 테이블에 대고 억지로 식히며 생각한다.
아이돌이든, 사랑이든. 진심이 된 루비는 역시 무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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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런 팬픽 올려도 돼? 옛날에 ss 읽으러 여기 많이 왔었는데 요즘도 선샤인 백합 얘기 하는지 잘 모르겠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