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두들 다 아시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치카네 집이 토치만 여관인 것 모르시는 분들 없죠?
그 모델이 야스다야 여관인 것도 모르시는 분들은 없으시죠??
넵 오늘은 야스다야 이야기 입니다.
워낙 러브라이버들에겐 유명하기에 오래된 여관인 것 정도는 다들 아실겁니다.
창업 시기가 메이지 시대인 것도 포함해서 말이죠.
야스다야 여관은 1887년 (메이지 20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고급 여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잡아올린 도미를 에도(지금의 도쿄)로 운송하던 상인들이 잠시 묵어가는 숙소였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1918년, 우치우라 도로가 정비되면서 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현재 위치로 이전을 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야스다야 여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게 되었지요.
90년 전과 현재의 우치우라 전경
처음에 현재 위치로 이전을 하며 "마츠 (松)" 동을 세웠습니다.
이후 1931년 "마츠(松)"동 뒤에 "츠키(月)"동을 건설하였습니다.
이후 약간의 개보수나 도로 확장을 위해 여관 앞 소나무 몇 그루를 베어낸 것 외에는 큰 변화 없이 현재까지 이어져왔습니다.
(지금도 여관 앞에 소나무들이 많은데, 엄청 오래된 나무들입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야스다야 여관의 모습은 무려 80년이나 된 것이지요.
때문에 이런 역사성을 인정 받아 2000년에 일본 문화재로 등록이 됩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주변을 대표할 정도가 되어 옛날 버스 노선도에 정류장 이름으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야스다야 여관이라 하면 작가 "다자이 오사무"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죠.
작가 자체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을 안해도 되니 생략을 하고,
이 작가가 1947년 2월 초에 약 보름 정도 기간 동안 마츠 동의 "달맞이꽃(月見草)" 방 (과거에는 마츠의 2번 방)에서 머물며
소설 "사양(斜陽)"의 1, 2장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이 소설로 유명 작가 반열에 올랐던 그 였지만, 이후 작품 "인간실격(人間失格)", "앵두(櫻桃)"를 탈고한 후
야스다야 여관에서 머문 이듬해인 1948년,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山崎富栄)"와 같이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현재 야스다야 여관에서는 그에 대한 자료를 모아 놓은 장소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여관 안의 작은 박물관
또한 그가 머물렀던 방 역시 약간의 개보수 외에는 머물렀던 당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혹시 관심있으신 분은 하루 정도 묵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여관 이름이 "야스다야 (安田屋)" 여관인 이유는 주인 분이 "야스다(安田)"씨이기 때문입니다.
야스다야 여관도 직역을 하자면 "야스다 네 여관" 이지요.
현재 주인 분은 "야스다 카즈노리 (安田和訓)"씨로, 증조 할아버지가 창업한 후 가업을 계승하여 4대 째라고 합니다.
때문에 예전 지도들을 보면, "야스다" 라고 쓰여진 집들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습니다.
1950년대에는 "安田六郎", "安田絹子", "安田久次郎" 라는 집이 여관 주변에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주인 가족들 집이었겠지요.
1980년대 지도를 보면 이름이 "安田昌訓"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족으로 개인적인 추측을 하나만 달자면,
러브라이브 선샤인 극중의 타카미 네 세 자매 중 맏언니인 시마 언니는 여관일을 하고 있는데,
둘째 언니인 미토 언니는 시내로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이긴 한데, 이것이 일본의 상속 관습에 영향을 받은 설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은 "가독(家督)" 상속이라는 관습이 있는데, 쉽게 말해 가문을 잇는 사람(가독)이 모든 재산을 상속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 중 하나가 현물이라면 나누기 쉽지만, 땅이나 건물 등은 나누기가 애매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독이 가문의 모든 재산을 상속 받는 대신, 가문의 다른 사람들을 보호해야할 의무도 같이 상속 받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장자가 가문을 계승하므로 맏이가 가독이 되어 모든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약간 한국의 장자계승 관습과 비슷합니다)
이런 관습이 2차대전 패전 전까지는 일본 법에 명문된 사항이었습니다.
전쟁 이후 GHQ가 이 제도를 폐지시키며 사라지게되었지만, 수세기 동안 관습화 된지라 아직까지도 조금은 인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나리타 공항 건설 때 원주민들의 투쟁기를 다룬 다른 작품인 "우리 마을 이야기" 라는 만화를 보면,
할아버지가 "차남은 집에 남을 수 없는 법", "동생을 내쫓는 것이 미안했던 것" 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상속 관습인 가독 상속으로, 큰 아들이 모든 땅을 물려 받고,
그 외 다른 형제들은 집을 떠나 알아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죠.
이런 일본의 옛 관습을 보니, 왠지 미토 언니가 회사를 다니고 있는게 이런 이유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공식 각본가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설정을 짜진 않았을거 같지만요... ㅎㅎ;;;
이번에는 다들 아시는 얘기라서 별로 재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