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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창작 [다이요시]다이아"죄송하지만 한 분만 도와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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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3 11:12:52
다이아가 부탁한 일은 별것 아니었다. 학생회실의 책상 밑을 청소하고 싶은데 책상이 무거워서 혼자서는 밀어낼 수 없다고 했다. 책상 위의 물건들을 잠시 치우고, 둘이서 책상을 살짝 들어 옆으로 옮겼다. 원래 책상이 있던 자리에 먼지가 있었다. 다이아는 그것을 빗자루로 쓸어 담고 밀걸레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책상을 다시 들어 원위치 시켰다.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좋아요."
"아아- 마력이 남아나질 않아.. 다이아- 뭔가 마력 보충할만한 것 없어?"
"아까 마리 씨가 간식이라면서 선반에 뭘 두고 갔었는데 그거 드실래요?"
다이아의 말에 방전되기 전의 나는 벌떡 일어나서 선반 쪽으로 향했다. 거기엔 뜯지도 않은 초콜릿이 있었다. 마치 운명처럼 만난 그 초콜릿에 입맛을 다셨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초콜릿을 접수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처음 보는 포장인데.. 게다가 초콜릿 포장지에 왜 양주 그림이 들어있는 거지. 게다가 마리가 두고 간 거라면... 역시 의심투성이지만 막상 포장을 뜯으니 영락없는 초콜릿이었다. 냄새도 굉장히 달아.. 한 입 베어 물었다. 역시 초콜릿이다. 초콜릿 안에서 뭔가 쓴 액체가 새어 나오는 느낌이지만 초콜릿과 섞이니 맛이 훌륭했다.
혼자 맛있게 그 초콜릿을 먹다가 눈앞에 책상 위를 열심히 정리하는 다이아가 보였다. 그렇게 단 걸 좋아하는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한 입 정돈 먹여주고 싶어 다이아에게 다가가 입에 초콜릿을 내밀었다.
"아, 감사합니다."
다이아는 옅게 웃으며 초콜릿을 한 입 먹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먹었던 건데, 루비도 있고 마리와 카난의 영향인지 간접 키스 같은 건 딱히 의식 안 하는 모양이다. 아니, 귀가 빨개진 것 같기도. 막상 부끄러워졌지만, 뭐 상관없겠지. 창밖을 보니 벌써 노을이 보인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지나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니, 지나가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정-말! 나도 요시코 씨에게 일을 시키고 싶었던 게 아-니-라-고-요-오??"
아까 초콜릿을 먹여주고 나서 회까닥해진 다이아는 아무래도 술에 엄청 약한 체질이었나 보다. 뻔히 양주가 그려져 있었고, 초콜릿 안의 액체가 술이라는 것을 먹고 나서 알게 되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술에 취하겠어? 이 정도로 취해버렸다... 정말, 마리는 왜 그런 걸 여기다 두고 간 거야! 나야 뭐 맛있게 먹긴 했지만...
"요,요하네야..! 그리고 알았다니까? 어쨌든 나도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우니까."
어느 정도로 취한 건지는 몰라도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 깔끔히 정돈된 흑발이 헝클어질 정도로 머리를 까딱거리면서 그동안의 진심이었는지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하는 건지 나에게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었다.
"감사합니다아-! 역시 요시코 씨는 제 맘을 알아주네요-"
"달라붙지 마! 그리고 요하네라고!"
빨개진 얼굴을 들이밀며 나에게 안겨들려고 하는 다이아를 밀쳐냈다. 싫다거나 불쾌하다고 생각해서 밀쳐낸 건 아니었지만, 다이아는 나에게 밀쳐지자 환하게 웃던 얼굴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요시코 씨는... 역시 제가 별로인 거죠?"
"하? 그게 무슨 소리야!"
"2학년 분들도 그렇고, 마리 씨랑도 엄청 친하잖아요? 맨날 둘이서 작당해서 이상한 장난을 치면서 저를 곤란하게 만들고! 제가 잔소리 밖에 할 줄 모르는 할머니 귀신같다고 그랬었잖아요!?"
"그런 적 없어!!"
"며칠 전엔 카난 씨한테 고민 상담도 했다면서요!? 어째서 저한텐 털어놓지 않으신 거죠?!"
"그,그건 사실인데..."
"역시! 당신 카난 씨랑 마리 씨에 비해 제 취급이 너무하다고요!! 너-무-해-!"
마리랑 짜서 장난을 치고 다녔던 건 맞지만, 절대 다이아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한 적 없다. 그리고 카난한테 고민 상담한 건 어떻게 알고 있지? 그저 기억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과장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다이아는 우는 시늉을 하면서 나에게 하소연을 토해내었다. 당연히 술 주정이겠지만, 왠지 눈은 진정성이 느껴질 정도로 외롭고 슬퍼 보였다.
"정말 아니야! 아니라고! 난 다이아를 싫어하지 않아! 오모히토 때도 안무 잘 알려주고 공부도 잘 알려줘서 낙제점도 면했어! 그러니 절대 싫어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부끄럽긴 하지만 담아두고 있던 속마음을 꺼냈다. 다이아에겐 분명 감사하고 있다. 언젠가는 꼭 타천사로서 보답해야겠다고 여긴다. 어느 쪽인지 꼭 대답해야 한다면 당연히... 좋아하는 쪽이지만. 그것은 정말 부끄럽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요시코 씨..."
다이아는 감동받은 듯 반짝이는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곧 나에게 안겨온다. 딱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온순한 다이아는 정말 귀엽다. 원래 예쁜 얼굴인 건 알고 있었지만, 화를 내거나 진지한 모습만 보여줬으니까. 루비 이외에 스킨쉽은 잘 안하는 다이아라서 더 갭모에를 느끼는 걸지도.
"아아- 제가 오해했습니다. 역시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당연하잖아? 이게 바로 요하네님이라고."
다이아는 내 품에서 빠져나왔다. 특유의 시크한 향기가 빠져나가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며 아쉬워했다. 얼굴은 여전히 붉지만, 눈동자가 선명한 것을 보니 역시 술이 깬건가. 잠깐이었지만 레이한 다이아를 봐서 운이 좋았...
"그러엄!! 오늘은 요-시-코 쨩의 집에 놀러 가겠습니다!!!"
던게 아니잖아!! 아직도 혀를 꼬고 말도 길게 늘어트린다. 게다가 요시코 쨩이라고? 우리 집에 놀러 오겠다고? 오늘은 집에 마마도 없겠다 오랜만에 타천사 의식을 치르려고 했었는데!
그건 정말 곤란해. 라고 선을 그어버리면 다이아는 또 시무룩해져서 하소연하겠지. 이제는 그런 주정을 감당할 스테미너가 남아있지 않는다. 이런 상태의 다이아에게 타천사 오의를 쓰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런 상태의 다이아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루비가 충격받아 쓰러질지도 모른다.
아아 왜 이런 피곤한 일에 말려버린 거야!
"하는 수 없지. 방황하는 리틀데몬을 내버려 둘 수 없는 노릇. 타천사로서 자애를 선사하도록 하지."
"와아- 감사합니다 요시코 쨔앙!"
"그러니까 요하네라고!!"
우리 집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우선 손을 잡았다. 걷는 것은 제대로 걸었지만, 술에 취한 상태라고 하니 역시 불안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특별하게 말썽을 피운 것은 없었다. 어느새 팔짱을 껴오고 녹차쿠키를 사달라고 애교를 부린다거나 집요하게 요시코쨩 이라고 불러댄다거나. 그런 것은 역시 곤란했다. 아쿠아의 누구와 만나기라도 했다면 내일 등교거부했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다이아 같은 미인이 이 몸에게 달라붙어서 애정표현을 해주는 건 솔직하게 땡큐다. 미인도 미인이지만 내 취향이기도 하다. 나와 닮은 눈매와 하얀 피부, 부드러운 흑발. 타천사인 나의 파트너로 완벽한 비쥬얼이다. 물론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록 술에 취해있지만 나긋나긋한 다이아는 왠지 모르게 두근거린다. 인터넷에서 애인 자랑하는 리얼충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다이아 같은 애인이 생긴다면...
그렇게 자아가 멋대로 콩트를 하는 와중에 겨우 집에 도착했다. 방문을 열기 전에 정리를 안 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이아는 술에 취해 있으니 잔소리 같은 것 하지 않겠지.
"좀 지저분하지만, 멋대로 놀러 오겠다고 한 거니까. 참아줘."
방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다이아가 비틀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선 다이아는 복잡한 듯 인상 쓰며 굳어있었다. 그리곤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는데 눈빛이 무섭다?
"요-시-코쨔앙!! 당신! 문제아에 불량아라고 조금은 생각했씁니다마안!! 그래도 깔끔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실-망이네요!"
"은근슬쩍 심한 말 끼워넣지마!! 그리고 요하네!"
다이아는 정말 독하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까지 설교를 늘어놓다니. 역시 집에 괜히 데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대충 상대해주다가 술이 깨면 바로 집으로 돌려보내야지.
"오늘은 특! 별히!.. 이 제가-! 방을 정리해드리겠어요!"
다이아는 언제 설교를 했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검지로 나를 가리키곤 다시 홱 등을 돌려선 내 방에 널린 옷가지들을 한곳에 모았다.
"킁킁... 이건 빨래통에 넣으세요 요-시-코쨔앙."
"남의 옷 냄새 맡지 마!!"
다이아는 내 옷을 정리하고 침대 위의 이불을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하게 폈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쓰레기들도 치우고, 방 전체를 물티슈로 닦았다. 그러고 나니 방이 쾌적해졌다. 나는 한 시간은 걸리는 방 청소를, 다이아는 술에 취한 상태인데도 20분 만에 끝내버렸다.
"고..고마워."
얼떨결에 술에 취한 사람에게 방 청소를 맡겨버렸다.
"에헤헤, 그렇다고 매일 방 치워 줄 수 없냐고 고백하시면 안돼요오-?"
"뭘 고백했다는 거야!"
나는 고맙다고 딱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다이아는 머리가 이상하게 된건지 얼굴을 한층 더 붉히며 몸을 배배 꼬며 파렴치한 말을 한다. 왠지 열받지만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청소를 담당해주는 리틀 데몬이 생긴다면 편리한 건 사실이니까.
"정말- 요시코쨩은 솔직하지 못하다니까요. 귀엽지 않아."
"네네 귀엽지 않거든요. 난 이제 게임할 거야."
자꾸 뭐라고 칭얼대는 다이아를 내버려 두고 컴퓨터 전원을 켜서 요즘 인기 있다는 레이싱게임을 실행했다. 그걸 보더니 다이아도 흥미가 생긴듯 내 옆에 붙어서 내가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더 잘하고 싶게 되어 집중했다. 게임 실력으로는 적어도 학교에서 탑인 나였기에 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이아는 옆에서 왜 운전을 그렇게 하냐고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게임까지 잔소리를 하다니 정말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어서 서랍에서 과자를 꺼내 다이아에게 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라며 다람쥐처럼 과자를 갉아먹는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먹기는 하지만 차라리 이게 낫지. 나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이거 맛있는데 저만 먹기도... 요시코쨔앙도 같이 먹어요오?"
"게임 중이라 여유가 없어."
"그럼 제가 먹여드릴게요. 자 , 아앙-"
혼자 먹기가 미안했는지 다이아가 나에게 과자를 권한다. 딱히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다이아가 아앙- 이라며 과자를 권하니까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개를 잠깐 돌려 받아먹게 된다. 아직 여유롭게 1등 중이고, 지금은 직선 코스를 주행 중이니까 잠깐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읏!!..."
고개를 돌리자 다이아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요염한 눈빛으로 입에는 과자 조각을 물고 있었다. 그 탓에 숨이 탁 막히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입으로 먹여주려는 거야? 어이가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내 얼굴은 점점 다이아에게로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그야, 이렇게 매혹을 거는 비겁한 행동은 타천사인 나라도 아직은 저항력이 없다. 입을 작게 열어 다이아가 건네주는 과자를 받아먹으려는 순간.
"앗!"
게임에서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본능을 수플렉스로 날려버리고 이성을 되찾았다. 허겁지겁 키보드에 손을 올렸지만 카운트다운은 끝나버려 리타이어라는 불명예스러운 치욕을 맞이했다.
"아 정말! 리타이어 당했잖아! 한 번만 더 이기면 퀘스트 깨는 건데!!"
"흥! 요시코쨔앙이 그 정도 실력인 거예요."
과자를 안 받아먹었기 때문인진 몰라도 다이아는 토라져있었다. 조금은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술에 취했을 뿐이라는 생각에 피곤해졌다.
"요하네야.."
이렇게 된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은 맞지만 더 이상 다이아의 주정을 받아주는 것에 한계를 느낀 나는 피로해져서 게임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다이아가 손가락으로 나를 톡톡 건드린다. 그런 사소한 장난조차 받아줄 힘이 없다. 좀 화가 나기도 하지만 다이아에게 화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저.. 죄송해요."
그렇게 10분 정도 누워있는데 다이아가 풀 죽은 목소리로 사과를 한다.
"요시코쨔앙에게 결국 민폐였던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돌아가보려고요."
만약 강아지였다면 귀랑 꼬리가 축 늘어졌을 것 같은 가여운 모습으로 정좌를 하고 나에게 말했다. 술이 좀 깬건가..?아직도 요시코쨔앙 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술에 취한 상태의 다이아는 확실히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아직 술도 다 안깼으면서 어딜 가려고? 가만히 있어."
"그래도.."
"이미 요하네가 타천술로 결계를 만들었어. 이제 절대 못 나가니까. 오늘은 여기 있어. 이따 루비한테 연락해 둘 테니까."
다이아가 돌아가면 편하게 쉴 수 있고 타천사 의식도 진행할 수 있겠지만, 저대로 돌려보내는 것은 역시 무책임하다. 돌아가는 과정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나에게도 이렇게나 들이대는데, 혹시나 나쁜 사람과 꼬여버리면... 그런 경우엔 정말 위험하다. 어쨌든 나의 리틀데몬이니까.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
"고마워요 요시코쨩..."
다이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고는 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뭘 하려는 거려나 싶어 지켜보니 침대로 올라와서는 나에게 달려들더니 멋대로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뭐,뭐하는 거야!?"
"집에 하루 묵게 해주시는 거니까, 그에 대한 답례에요."
"이런 답례 따위!...."
필요 없어! 라고 외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이아의 허벅지가 부드러워서 말문이 막혔다. 마치 환술에 걸린 것처럼 머리가 새하얗게 되고, 코를 자극하는 좋은 향기가 오늘의 스트레스를 전부 지워주는 느낌이다.
조금은 루비가 부러워...
가 아니지! 이건 뭔가 잘못됐다. 나는 유혹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다이아를 똑바로 쳐다봤다.
"답례? 다이아는 스스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하지만! 그런 거 평상시의 다이아는 무조건 파렴치하다고 생각한다고!"
이쯤 되면 진심으로 걱정된다. 성인이 되어서 술을 마시면 아무에게나 달라붙어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거잖아. 물론 지금의 다이아에게 말해봤자 의미 없는 짓이긴 하지만. 멀쩡한 상태로 옆에 있는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요시코쨩이 아까부터 저를 취했다고 구박하시는 건 알겠지만..."
다이아는 곤란하다는 듯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다이아의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 된다. 다이아의 눈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입가도 미소를 짓는다.
"제가 아무한테나 이러지 않는 거라면요?"
"그..그게 무슨 소리야?"
상기된 얼굴도, 이마에 약간 흐르는 땀에 젖은 앞머리도, 나를 다시 유혹의 함정으로 빠트리려고 하는 것 같아 긴장이 되었다.
"저는 눈앞의 당신이 요시코쨩이라고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만해."
"자신만의 매력을 추구하며 당당히 세상과 맞서 싸우고 쉽게 기죽지도 않는 멋진 타천사 님이란 걸 알고 있다구요."
"그만하라니까!"
머릿속의 사고 회로 가 망가져버려 더 이상 다이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었다. 다이아의 얼굴, 체온, 향기, 그리고 다이아가 해주는 말은 내 머리가 아닌 내 가슴에 호환이 되는 것처럼 심장을 빠르게 뛰도록 만들었다. 다이아의 말을 끊고 달려들었다. 침대에 등을 대고 엎어지는 다이아의 양 손목을 붙잡고 내려다보았다. 흘러내리는 내 머리카락이 다이아의 뺨을 간질여 다이아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놀리는 것도 이제 그만해."
"놀리는 게 아니라면요?"
"아직 술 안 깼잖아! 믿지 못해!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곤혹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다이아는 표정을 한층 더 섹시하게 짓고는 내 눈을 흔들림 없이 마주한다. 내 눈동자가 마치 다이아의 눈동자 색으로 물들어버릴 것 같다.
"그럼 여기에 입 맞춰보세요. 하고 나면 뭔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다이아는 자신의 입술을 가리킴과 동시에 쓰지 않는 손으로 내 머리를 당겼다. 숨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눈빛 교환을 하고 있었다. 정말 해도 되는 거야? 눈으로 다이아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그런 거 아무래도 좋다는 듯 이성이 다이아의 매력 앞에 뚝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이아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입가에 미소도 더 이상 짓지 않고 내 입술을 기다리는 것 같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이아에게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첫 키스는 레몬 사탕 맛이라는 기만자 녀석들의 인터넷 글들이 생각난다. 그런 거 순 거짓말! 전혀 모르겠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릴 뿐이었다. 완전히 입술을 대고 나도 눈을 감았다. 그 다음엔? 전혀 모르겠다. 숨이 차서 힘들어지기 전까진 계속 입술을 맞대고 싶다.
조금 지나서 다이아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다이아도 숨이 차는 건가. 모양 빠지게 허겁지겁 입술을 떼었다.
"미,미안해! 나 키스 처음이라... 어라..?"
방금 키스를 당한 사람 치고는 너무 평온한 얼굴이었다. 눈은 감아서 붙어버린 듯 뜰 기미가 안 보이고, 숨도 일정한 간격으로 쉬고 있다. 자..자는 거야? 키스 당하면서? 결국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술이 든 초콜릿을 먹고 취한 사람 치고는 어쩐지 오래 버틴다 싶더니. 루비에게 라인으로 연락해야지.
김이 샐만한 경우지만 나는 아직도 가슴이 떨려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다이아의 술 주정인지도 이쯤 오니 잘 모르겠다. 아까 다이아의 말대로 추측해보면, 평소에 나를 좋아했는데 취한 김에 그 힘을 빌려서 이렇게 대시했다?
는 아니겠지. 나도 너무 들떠버린 것 같다.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하는 걸로 하고, 다이아를 똑바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자는 모습을 보면서도 얼굴의 열이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까 했었던 입맞춤 이외에도 오늘 하교하면서 있었던 일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전부 생각나니 이불을 발로 차버렸다. 나도 싫은 척하면서 은근히 다이아의 애정 표현을 좋아했던 걸지 모른다. 좋아하게 되어버린 거구나.
피곤이 확 몰려와서 자고 싶어졌다. 근데 나 어디서 자야 하지..?
*
다음 날 커튼이 쳐져 있지 않아서 아침 햇살에 눈이 떠졌다. 어제 일이 너무 많았던 탓에 여전히 피곤하지만 눈을 비비면서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켰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이아의 옆에 잤었는데, 다이아는 침대에 보이지 않았다. 설마 먼저 일어나서 가버린 건가. 상황 파악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목이 너무 말라서 마실 것을 찾기 위해 일어났다.
"!!...다이아?"
발에 무언가 걸려서 보니 사람인가? 사람이 있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방바닥에 대고 있어서 처음엔 귀신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요시코 씨,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왜 취했는지 까진 기억이 안 나지만, 취한 김에 요시코 씨에게 했던 짓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쿠로사와의 이름을 걸고 당신을 책임지겠습니다. 부디 제가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이미 어젯밤 침대에서.."
"자,잠깐 다이아!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이아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면서 방바닥에 자신의 머리를 몇 번이나 스스로 부딪히며 나에게 연신 사과했다. 나는 말리기 위해 억지로 다이아를 일으키려고 달려들었다.
"요시코 씨를 몰래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정당당하게 고백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려서.."
"알았어! 나도 어제 일로 다이아를 좋아하게 되었어! 그럼 된 거잖아? 그런데 뭔가 오해하는..."
"파렴치하고 불순하게 연하의 요시코 씨를 꼬드겨서!..."
얼떨결에 서로 고백을 했고 사귀는 사이가 된 것 같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쉽게 다이아와 이어졌다. 다이아는 이마에 멍이 들었지만 내가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에 기뻐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달달한 분위기 내고 싶은데... 또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이 허당!
"그러니까! 우린 어제 키스만 했다고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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