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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다이요시] 운명
글쓴이
바넷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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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2754452
  • 2019-10-06 13:51:01
 

"요시코 씨, 그 부분 아직도 실수하잖아요? 정말 어제 연습해오신 것 맞나요?"

"잠깐 헷갈렸을 뿐이야! 그리고 요하네!"


나는 불행하다. 더 정확히는 불행의 기운이 나에게로 모여든다. 분명히 어젯밤에 타천사 의식을 간소화 시키면서까지 안무 연습을 했는데도 또 이렇게 실수를 해버린다. 그리고 예상대로 다이아에게 혼난다. 딱히 혼내는 쪽이 나쁘다거나 생각은 안 한다. 누군가는 해야할 역할이니까. 내가 실수한 점에 대해 질책 받는 것은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겠지. 하지만..


"연습은 정말 해왔어!"

"그렇다면 연습한 걸 보여주세요."


타천사 요하네는 인간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 차가운 목각인형은 그다지 상냥하지 않다. 알게 모르게 잔소리도 점점 늘어만 가고 있고. 여러모로 성가신 존재다.


"자, 다시 한 번 해보죠."


가을이 다가왔다고는 해도 아직 덥고 습한 날씨였다. 내가 자꾸 실수하는 바람에 연습이 지체되는 것은 아무리 타천사인 나라도 뻔뻔해질 수 없는 것이다. 열심히 해도 실수하고 민폐까지 주게 되자 의욕이 사라지기까지 하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해야 하니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만 갔다. 연습이 끝날 때까지 나는 다이아에게 자꾸 지적 받았고, 연습이 끝나고 나서는 따로 다이아에게 불려 혼이 났다. 분명 걱정해주는 말도 있었고 나를 위해서 이러는 거라는 느낌도 있지만 자존감이 떨어진 탓에 속이 상해버리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하죠."

"다들 수고했어!"


보통 연습이 끝나고 나서는 다같이 카페에 가거나 하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도 아니어서 혼자 버스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스스로에게 억울하고 분했다. 차라리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고 게임을 하거나 했다면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태까지 집에 돌아가면 꼭 연습을 했지만, 오늘은 의욕이 없다.


도착하자마자 양말을 벗고 가방과 함께 구석에 던져버리고는 냉장고를 향해 초콜릿을 꺼내 소리 나게 씹어먹었다. 컴퓨터의 전원을 발가락으로 키면서 동시에 교복을 벗어 침대에 아무렇게나 두고는 의자에 걸려있던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러고 나면 모니터엔 타이밍 맞게 바탕화면이 떠있고, 초콜릿을 한번 더 씹으며 인터넷을 더블클릭한다. 그래, 이거지. 나는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오늘은 연습 따위 하지 않아.


해봤자 또 다이아에게 혼 나버릴 텐데.


언제 잠이 들어버렸던 건지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눈부신 아침햇살에 눈이 떠졌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곰 한 마리가 어깨에 매달린 것 같이 무거웠는데, 어제 개인연습을 하지 않아서일까 몸은 상쾌한 편이다. 오늘 또 다이아에게 혼나버리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학교에 가기싫은 기분이 커졌지만 또 무단결석을 했다간 마마가 걱정할 테니까 나는 단념하고 억지로 일어나 교복으로 갈아입으려고 했다.


"어라? 어제 분명 막 벗어뒀었는데..."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교복이 자가치유라도 한 걸까. 주름하나 없이 깔끔한 상태로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양말과 가방까지도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했을 리는 절대 없고, 마마도 아침 일찍 나가기 때문에 이렇게 준비해줄 시간이 없다. 그렇다는 건... 요하네에게도 드디어 사역마가!? 만나게 되면 반드시 칭찬해주겠다고 다짐하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양말을 신었다.


"어머 요시코 씨, 좋은 아침입니다. 깨워드리려고 했는데 알아서 일어나셔서 옷까지 갈아입으셨네요. 착하십니다. 다만,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둔다거나 교복을 구겨지게 방치하진 말아주세요."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다이아가 내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라...? 뭔가 이상해. 하지만 나를 상냥히 다뤄주는 다이아는 정말 예뻐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침이 준비되었으니 먹으러 오라는 다이아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아침은 내가 좋아하는 딸기잼이 발린 토스트와 샐러드, 계란 후라이였다. 내일은 밥과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겠다는 다이아의 말에 끄덕이며 토스트를 한 입 먹었다.


"잠,잠깐!! 다이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쇼크가 오며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되었다. 다이아가 어떻게 아침부터 우리집에 와 있는 거지?


"그렇게 당황하시지 않아도 된답니다. 오늘부터 요시코 씨와 함께 아침 등교를 하고 싶다고 요시코 씨의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좋아하시면서 스페어 키를 저에게 주셨어요."


마마가 열쇠까지 줬단 말야? 예전부터 나에게 친구는 언제 놀러온다거나 하지 않냐면서 은근히 나에게 친한 친구가 생기길 바랐던 마마의 입장에선 다이아의 말에 확 넘어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것보다도 어째서 이러는 거냐니까? 이제 집까지 찾아와서 잔소리할 셈이야!?"


다이아에 대해서 특별히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존경하고 싶은 점도 있고. 하지만 자존감이 많이 상처 입은 지금 상태에선... 다이아를 마주하는 게 달갑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 서운한 말씀 마세요. 오늘부터 저는 요시코 씨의 자존감 회복을 도와드릴 테니까요."

"요시코가 아니라 요하네야!"


마치 여러 번 집에 놀러왔었던 사람 처럼 뻔뻔하게 굴면서까지 나를 위한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루비의 말에 따르면 다이아는 도저히 내버려 둘 수 없는 사람에게는 오지랖을 넓히면서까지 챙기려 든다고 했다. 이번엔 그 내버려 둘 수 없는 사람이 이 요하네가 된 것 같다. 일단, 내버려 둘까. 교복도 입기 좋게 다려주고, 아침도 꽤나 맛있게 만들어 주고.


얼음 마녀 같은 다이아가 이렇게나 관심 써가며 챙겨주는 것도, 싫지는 않네.


아침을 먹고 다이아와 나란히 등교했다. 사실은 둘이 있으면 형식적인 얘기 외엔 거의 사적인 얘기는 잘 하지 않았지만, 다이아가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갔고, 게다가 잔소리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편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학교에 도착해 1학년 교실 앞까지 다이아가 바래다주었다. 먼저 와있었던 루비와 즈라마루가 무슨일로 다이아와 함께 왔냐면서 물어보는데, 나도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나저나 요하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겠다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이아는 나에게 더 관심을 갖고 상냥히 대해준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일을 크게 벌린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점심까지의 오전 수업시간 내내 일절 터치도 없고, 점심 시간에도 학생회실로 호출 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전엔 몇 번 불려가서 혼났었는데. 달라진 걸 굳이 찾자면.


"요시코쨩 또 그런 걸로 점심 때우는 거야?"

"든든히 먹지 않으면 연습 시간에 힘들어유."

"점심은 많이 안 먹는 게 습관이 돼서 말이야. 내버려 둬."

"언니가 하나마루쨩이랑 요시코쨩이랑 같이 먹으라고 도시락을 많이 싸줬는데 같이 먹자?"


나는 점심시간마다 초콜릿이나 과자를 먹는데, 언니가 도시락을 많이 싸줬다며 같이 먹자고 했다. 3단 도시락을 열어 책상에 놓자 10가지는 될 정도로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이 늘어섰다.


"우와아..! 나도 루비쨩네 집에 살고 싶어지네유."


즈라마루는 그것에 눈이 돌아가버렸고, 다이아가 만들었다는 말에 군침이 돌아 흔들리기 시작한 나도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밥은 굉장히 맛있었고 평소의 점심 시간보다 텐션이 올라서 루비와 즈라마루와 신나게 떠들기도 했다.


그리고 공포 게임보다 무서운 연습 시간이 되었다. 의욕이 나지 않아 무거운 다리, 또 혼날까 봐 두려워 흔들려버리는 시선.. 어제 개인연습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또 실수를 해버렸다. 그런데 어제처럼, 여태 까지처럼 혼내지도 않았다. 말투도 온도가 좀 더 높아진 느낌. 오늘은 다이아가 기분 좋은 일이 있었나 생각했지만 역시나, 한 번에 잔소리를 할 생각인지 잠깐 쉬는 시간에 역시 다이아가 다가온다.


"그렇게 풀죽어 있지 않아도 된답니다. 이렇게까지 땀 흘리시면서까지 힘내고 있으시네요. 지금 연습하는 파트가 제일 어려우니까요. 여기만 넘어갈 수 있다면 진도가 쭉 나갈 수 있어요. 이거 마시고 다시 힘내보자고요 요시코 씨."


상냥한 눈매로 땀을 닦아주고 내가 좋아하는 딸기 주스까지 건네준다. 나는 딸기 주스를 받고 다이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태껏 본 다이아 중에 가장 상냥한 얼굴이었다. 머리가 하얘져서 고맙다는 인사를 할 여유가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버려 고개를 숙였다. 다이아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나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으려고 주먹을 꽉 쥔다.


"그 동안 혼내기만 해서 미안했어요. 요시코 씨."

"요하네야!..."


왜 울음이 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얗게 된 머릿속에서 딱하나 드는 생각이 있다. 조금만 더 힘내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다이아에게 격려가 아닌 인정을 받고 싶다고. 온몸에서 에너지가 솟구쳐 의욕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 순간부터 나는 각성해서 연습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실수하더라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다이아에게 먼저 다가가서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무거웠던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풀어버린 것처럼 가벼워졌고, 마음도 무겁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서는 예전보다 더 철저하게 개인 연습을 시작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내 스스로가 맘에 들때까지 안무를 했다. 다리가 풀릴 정도로 지칠 때까지 연습을 하고 나서 잘 시간이 다가오면 다이아에게 전화가 왔다. 


「숨이 거치신 걸 보니 아직도 연습하고 있으셨던 건가요? 무리하시면 안 된답니다. 내일 연습 전에 저랑 같이 스트레칭 하도록 하죠.」


다이아의 나긋나긋한 중저음 목소리는 달콤해서 귀가 사르르 녹는 것 같다. 다이아가 무슨 말을 해주든 다이아의 목소리를 들으면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고, 덕분에 늘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다이아가 찾아와 맛있는 아침을 차려주고, 같이 등교하고, 같이 하교하고, 자기 전엔 꼭 통화한다. 그렇게 일주일을 넘어 2주 정도를 반복하고 나서의 요하네는 어느새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곡 전체의 안무를 처음으로 실수 없이 끝내고 나서는 다이아에게 다가가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다이아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듯 뺨이 붉어진 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장하네요 요시코 씨. 전 요시코 씨가 해낼 거라고 알고 있었어요."

"다이아의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그리고 요하네!"


아무리 타천사인 나라고 해도 인간 세계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서툴고 불안할 수 밖에 없었던 나에게 다이아는 큰 힘이 되어준 리틀 데몬이었다. 마치 내가 사역마라도 된 것처럼 어느샌가 다이아를 따르게 되고, 다이아가 칭찬이라도 해주는 날에는 천계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인간의 감정이란 건 참 신비하다. 이 요하네를 이렇게나 기쁘게 해주고.


다이아와 함께라면, 다이아가 계속 지켜봐준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날이 되었다. 러브라이브 본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동안 하드 트레이닝을 해왔고 컨디션 관리를 위해 오늘은 연습을 쉬는 날이었다. 그럼 다이아랑 같이 연습 못하게 되는 걸까 하고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침에 볼 수 있으니까...


"다이아? 어디 있어??"


아무리 불러봐도, 그리고 집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다이아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침도 차려져 있지 않았고, 교복도 주름이 그대로였다. 내가 일찍 깨어버린 건가 싶어 시계를 보니 평소라면 이미 다이아가 와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해도 다이아에게 특별히 연락이 온 것은 없었다. 그렇게나 부지런한 녀석이 늦잠을 잤을 것 같진 않고,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걸까.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지만, 다이아라면 무언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다이아가 없으니 정말 맥빠지는 아침이다. 오늘따라 머리 손질도 잘 안되고, 준비를 다 끝내고 신발을 신으려고 보니 양말에 구멍이 뚫려있기도 했다. 다이아 덕분에 찾아오지 않았던 불행의 기운이 오늘 한꺼번에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진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학생회실에 찾아가 보았다. 다이아는 늘 여기서 점심을 먹으며 학생회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찾아가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똑똑 노크를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다이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시 생기가 돋는 것 같다. 나는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이아!"

"앗, 요시코 씨.."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어? 아무 연락도 없이... 타천사인 요하네라도 그렇게 나의 부름에 불응해버리면 심려한다고?"


나는 자주하는 타천사 포즈를 취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지만 기쁨과 안도의 감정이 솟구치는 감정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오늘도.. 찾아갔어야 했나요?"

"..무슨 말이야?"


다이아는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감정이 더 복잡하게 얽혀가기 시작해 마음이 동요했다.


"저는 요시코 씨의 자존감 회복의 일환으로 그동안 멋대로 찾아가고 간섭했었던 거고, 이제는 예전처럼 기죽지도 않으시고 안무도 훌륭히 소화해내잖아요? 제가 도움이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요시코 씨가 그렇게 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 응.. 그렇네."


정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나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급하게 쏟아내고 있다는 느낌의 다이아에게 계속 집에 와달라거나 계속 간섭해달라는 식의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급해보이기도 하지만, 무언가 할말을 감춰두고 있는 것도 같다. 입가의 예쁜 점을 긁는 행동도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부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츳코미를 걸고 싶은 점이 한 두개가 아니지만, 더 이상 자신의 도움은 필요없다는 듯한 다이아의 말에 알게모르게 상처받아버린 나 역시도 아무 말이나 쏟아내고 다이아에게 손을 흔들고 빠르게 학생회실을 나와버렸다.


나름 인간들과 섞이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고 감정을 느꼈다고 자부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건 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쓸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옆에서 날 바라봐 주기만 해도 든든하던 사람이 멀어져 가는 건... 타천사인 나라도 가벼이 여길 수 없구나.


수업이 모두 끝나 종례하고, 오늘은 연습도 없으니 곧장 집으로 가도 좋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대로 집에 가봤자 울적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상하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싸우거나 연이 끊기더라도 집에 가서 게임을 한다거나 인터넷으로 타천사 콜렉션을 찾는 걸로도 충분히 기분이 풀리고 행복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나는 학생회실을 한번 더 찾아갔다. 머리는 정말 백지상태다. 이성이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본능은 내 몸은 저절로 다이아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일단 만나서 어떻게든 마음 터놓고 얘기하면 뭐 하나라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요시코 씨? 어쩐 일이신가요?"


나는 노크도 하지 않고 불쑥 학생회실로 들어갔다.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평소의 다이아라면 분명 노크도 하지 않았다고 혼냈을텐데. 나는 다이아의 손목을 탁 잡았다.


"요..요시코 씨?"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무례하다고 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언제나 흔들림 없이 자신감 넘치던 에메랄드 색의 예쁜 눈동자가 지금은 칠칠치 못하다 싶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정말 수상하다. 나는 붙잡고 있던 다이아의 손목을 더 세게 힘을 주어서 밖으로 끌고 나갔다.


"저,저기이.. 요시코 씨!? 읏! 아, 아파요! 놔주세요! 요시코 씨!"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저항하지만, 타천사 요하네의 힘을 인간이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다이아는 속수무책으로 질질 끌려나왔고 결국엔 체념하고 손목을 붙잡힌 상태로 나를 따라오는 것 같다. 정말 정말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꼭 사과할테니까. 그러니까..


담아두고 있는 걸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해.


근처에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다이아는 벤치에 앉혀두고 나는 자판기로 가서 딸기 주스 두개를 뽑았다. 그 때 다이아가 건네주었던 거와 똑같은 제품이다. 다시 벤치로 돌아가 다이아에게 건네주니, 다이아는 그것을 알아본듯 잠시 상냥한 눈매가 되다가 곧 슬픈 듯한 눈빛이 된다.


조금은 떨어져 앉아서 딸기 주스만 홀짝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끌고 왔는데도, 다이아는 내가 왜 자신을 이렇게 끌고 왔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얘기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다이아의 머릿속이 정리될 때까지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주스를 거의 다 마셔갈 때쯤에 다이아가 입을 열었다.


"연습이 끝나면 자주가는 카페 있잖아요. 거기에서의 요시코 씨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어요. 초코브라우니와 딸기빙수를 좋아하셨죠. 그렇게 카페를 좋아하던 요시코 씨가, 어느 날 카페에 가자는 우리들한테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어요.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그 뒷모습이 저는 견딜 수 없었어요. 얼마나 연습이 힘들었으면 그렇게 좋아하는 카페도 마다했을까. 그리고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왜 연습 시간에는 요시코 씨가 카페를 좋아하는 만큼의 반절도 요시코 씨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을까. 그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후후, 역시 상냥하네요 당신은. 아무튼 요시코 씨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선 제가 가까이 다가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서, 갑작스럽긴 해도 아침에 찾아가는 강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가까워지면서 알게 된 요시코 씨는 루비처럼 어리광 많은 여동생 같기도 하고, 하나마루 씨처럼 성실하기도 했어요. 요시코 씨를 조금은 문제아라고 생각했었던 지난날의 저를 용서할 수 없었어요. 제가 엄하게 다루지 않았다면, 요시코 씨는 진작 빛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진솔한 얘기를 듣던 와중에 다이아의 손이 내 손 위로 겹쳐졌다. 몸도 어느샌가 나에게 가까이 붙어 있었다.


"1학년때 스쿨아이돌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저만의 잘못이 아니긴 하겠지만, 제가 그때 이렇게 했었다면, 저렇게 했었다면, 소중한 사람과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2년 동안 괴로울 필요도 없었을 거에요. 하지만 저의 행동 하나하나가, 말 한마디가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에 일조한 거에요. 카난 씨와 마리 씨, 게다가 루비까지.... 제가 자의로든 타의로든 소중한 사람의 운명을 바뀌게 할 수 있다는 게 무서웠어요. 그 불안함이 이번에도 의식이 되어서... 요시코 씨를 위해서 멀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개를 숙이던 다이아의 무릎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평소에 자신감 있게 연설을 하던 모습, 부대를 지휘하는 장군처럼 아쿠아 멤버들을 가르치는 모습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다이아몬드 같은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여리다 못해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동안 속상했기 때문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이렇게 울어버릴 만큼 나와 멀어지기 싫었던 게 아닐까.


"사람의 운명이란 건 자연현상이라고 여기는 게 속 편해. 나도 히키코모리인 탓에 중학교 때도 친구없이 지냈어. 한 두명 쯤은 친해지고 싶은 녀석이 있긴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가까워질 수 없었어. 하지만 그랬던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루비랑 즈라마루라는 친구가 생겼잖아? 내가 친해지려고 딱히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나는 다이아의 손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힘을 주어 잡았다. 눈물을 흘리던 다이아가 그제서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다이아도 책을 많이 읽으니 알 것 같지만, 운명에 관한 명언은 많아. 그 많은 명언들도 각자가 믿는 것들이 있잖아? 다이아에겐 이게 딱이야.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다이아는 용맹한 리틀 데몬이야. 넘어서야 한다면, 피하지 않고 부딪혀. 지키고 싶은 건 후일도 생각하지 않고 달려들어. 이 요하네에게도 그랬잖아?"


남아 있는 딸기 주스를 전부 마시고는 2m 정도 떨어진 쓰레기통을 향해 캔을 던졌다. 캔은 쓰레기통에 안으로 들어가 청량한 소리를 내었다.


"와, 성공했다. 여태 성공해본 적이 없었거든. 다이아랑 같이 있으니까 성공한 게 아닐까? 요하네도 운명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과하게 의식할 필요도 없어. 혹시 다이아는 나와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는 거야?"

"무,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쿠로사와의 이름으로 해내지 못할 것 따윈 없습니다."


승부욕을 긁어주자 눈물을 흘리던 다이아는 바로 돌변해서는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앗' 하고 당황하다가는 곧 예쁘게 미소짓는다.


"나는 다이아와 가까워지고 나서 모든 게 잘풀렸어. 몸도 건강해지고, 시험도 잘봤고, 안무도 완벽하게 해내게 되었어."

"그건, 요시코 씨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에요."

"그래, 이게 운명이야. 다이아가 맛있는 아침을 챙겨줘서 건강해진거고, 다이아가 칭찬해주는 게 기뻐서 공부도 열심히 했고, 다이아의 격려에 보답하고 싶어서 안무도 열심히 연습했어. 나는 다이아를 만나서 이렇게 된 거야."

"요시코 씨..."


나는 다이아의 어깨를 붙잡고 끌어 안았다. 겉으로 보기엔 강직한 사람. 이름도 그렇고. 처음 안아보는 다이아는 가냘프고, 아쿠아를 지켜주던, 나를 지켜주던 어깨도 생각보다 작았다.


"마마 이외에 이렇게 안아본 사람도 다이아가 처음이야. 이것도 운명이지?"


다이아가 운명에 대해 너무 얽매이지 않도록, 족쇄가 채워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물론 운명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이아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요하네는. 다이아를 향한 요하네의 마음은 운명에 져버릴 정도로 약하지 않다.


"복잡할 필요도 없었던 거네요."


다이아는 내 허리에 팔을 감았다.


"요시코 씨를 만난 것도 운명이었는데."

"요하네야."


하늘이 점점 깜깜해져가고, 슬슬 한기도 느껴지는데, 주변에서 누가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한데, 나와 다이아는 떨어질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동안 각자 견뎌냈을 고난과 역경, 이정표도 없는 길에서 겪은 수많은 착오. 외롭고 쓸쓸했던 순간들. 서로 끌어안아 마음이 맞닿은 상태로 서로를 치유해주고 있었다.


동시에 허그를 풀고 마주본 순간에는 나도 다이아도 옅지만 깊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도 간섭해줄 거지? 아침에 와줘, 오늘 아침에 다이아가 없어서 쓸쓸했어."

"알겠습니다. 나중에 오지 말라고 해도 갈게요."


지금도 튀어나올 것 같이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차마 입 밖으로 좋아한다는 말은 못하고, 다이아의 손바닥에 '좋아해' 라고 손가락으로 썼다. 다이아는 그걸 또 알았는지 요염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저도 좋아해요. 요시코 씨."


라고 말해준다. 그말에 머리에 쇼크를 받으면서 몸이 반사적으로 다이아를 다시 끌어안게 만든다.


앞으로도 다이아가 이런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운명에 져버리지 않도록, 이 타천사 요하네가 꼭 지켜줄 거라고 소리 없이 속삭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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