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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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아직은 볕이 따갑지 않고 그나마 돌아다닐 만한 날씨입니다.
새벽부터 침대 다리가 부서지도록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옆 방 소리에 번쩍 눈이 떠졌습니다. 입에서 험한 욕이 저절로 나오면서 짜증이 확 밀려 옵니다. 이따위 호텔이 110달러 넘는다니, 진짜 너무합니다.
여기가 어디지? 한 10초간 눈을 떠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여기가 베네치아의 어느 호텔이며 어제 긴 하루동안 인천에서 베네치아로 넘어와 온갖 곳을 들쑤시고 다녔다는 사실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굴러다니던 아이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니 7월 20일 오전 6시. 조식 시간은 오전 8시입니다. 배가 고파 오는데 아침 나오는 시간은 8시부터라 한참 멀었습니다. 잠을 청할까 하다가 그냥 샤워 뒤집어 쓰고 나와서 오늘 계획을 세워 봅니다.
오늘 돌아야 할 성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극장판 키 비주얼에서 리코 배경으로 등장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2) '도주미주'에서 마리가 얼굴을 내미는 듀오도 오 바르바리고 다리
3) 월요 자매가 점프한 콘타리니 델 보볼로 궁전
그런데 이렇게만 돌 것이라면 두 시간만에 모두 볼일이 끝나고 할 것이 없습니다. 어디 한국처럼 흔한 카페에 들어가서 시간을 때울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오전에는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늘어선 부라노 섬, 유리 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대강 루트를 살펴보고는 미적미적하다가 아, 이럴게 아니라 내려가야지⋯하고 8시 30분에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어제 부랴부랴 익힌 이탈리아어로 "챠오, 우나 퍼슨"했더니 자리로 안내해준 다음에 빠른 이탈리아어로 뭐라뭐라 설명하는데⋯알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죠.
외국 호텔에서 조식을 먹어 본 경험을 되살려 보건대, 이것은 음료로 뭐 마실 거냐고 묻는게 틀림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카푸치노' 비슷한 말이 들렸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카푸치노 플리즈"했더니 정말로 카푸치노를 가져다 줍니다.
자리에는 빵과 잼, 과자 같은 것이 있고 앞 테이블에는 떠먹는 요거트와 시리얼, 우유 같은 것도 있습니다. 눈치껏 챙겨먹고 칼로리를 보급한 다음 다른 손님들이 하는 대로 "챠오, 그라치에"하고 일어납니다.
[ * Tip : 챠오(Ciao)는 정말 아무 때나 쓰는 말 같습니다. 가게 들어갈 때도 챠오, 나갈때도 챠오⋯ Hello, Bye에 모두 대응되는 말입니다. 발음은 오하라 마리의 '챠⤻오→→' 보다는 오히려 챠↗오+↘+'에 가깝습니다. 액센트가 '챠'에 있고 의외로 빨리 발음합니다. ]
산타 루치아 역 광장 앞에 있는 수상버스 정류장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구글 지도에 나오는 수상버스 시간표나 각종 버스 도착 시간은 오히려 잘 안 맞습니다. 조금 더 일찍 오거나, 아니면 엄청 늦게 오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스마트폰 보면서 한눈 팔다가는 자기가 타야 할 버스를 놓치게 되니 잘 보셔야 합니다.
수상버스 안에서 베네치아 대운하 사이로 늘어선 건물을 찍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무라노 섬으로 가는 수상버스 안에서.
토요일을 맞아 강화 훈련에 나선 메스트레 섬 카누 팀.
일단은 무라노 섬을 거쳐서 부라노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 일정은 성지와는 큰 관계가 없어 사진 몇 장과 간단한 설명으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부라노 섬은 베네치아 섬 북동쪽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입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돌아올 때 자기 집이 어딘지 찾기 쉽게 하려고 갖가지 색상으로 집을 칠해 놨던게 오늘날 관광 상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섬 전체를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고 구경하려면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립니다. 1시간은 약간 빠듯한 감이 있습니다.
무라노 섬은 부라노 섬에서 수상버스로 다시 20분 정도 가면 되는 섬입니다. 유리 공예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막상 저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섬의 풍경은 오히려 부라노 쪽이 더 예뻤고요.
더 큰 문제는 무라노 섬에 어째 점심을 먹을 만한 쓸만한 식당이 없어 보였다는 겁니다. 트립어드바이저로 어느 식당 이름을 검색했더니 알게 모르게 동양인 손님을 차별한다는 평가가 가득하고, 피자를 먹고 싶었는데 피자를 제대로 파는 곳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는 본 섬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수상 버스를 타고 산타 루치아 역 앞으로 돌아간 다음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근처까지 가는 수상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이 과정만 해도 거의 40분 이상이 걸립니다.
수상 버스를 타고 성당 근처에 있는 아카데미아 정류장에 내린 다음 다시 도보로 걸어갑니다. 벌써 시간은 오후 1시 50분. 점심 시간은 이미 애저녁에 지났고 허기와 갈증이 밀려 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는데, 길을 가다 보니 여러 조각 피자와 음료수를 2.50 유로에 파는 집을 발견했습니다. 프로슈토가 들어간 피자 한 조각과 레몬 소다, 5유로. 그늘에 서서 물어 뜯으면서 허기와 갈증을 달랩니다.
여기에서 구걸꾼을 처음 만났습니다. 갑자기 손을 쑥 내밀더니 헬프, 헬프 이럽니다. 손을 저으며 "No"라고 했더니 다른 사람에게 갑니다.
(계속)
※ 질문 있으신 분들은 댓글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답변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