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9, 그래도 가야지, 가야지⋯라고 타고 있었던 공항철도 직통 열차 안에서.
[지난 글]
(지난 글 목록은 추후 한꺼번에 정리합니다.)
~7/18 (출발 전야)
돈
벌면서 여행 다니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지난 해 8월 말에는 모종의 사유로 예약해 놓았던 항공권을 취소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겪어 봤습니다(취소에 따른 페널티는 즐거운 마음으로⋯ 제가⋯ 다 냈습니다. 그냥 술 한 잔 하고 에이 더럽다 하고
말았지요).
올해도 마찬가지인데, 분명히 휴가 일정 사이에 자리를 비워도 상관 없도록 모든 일정을 세팅해
놓았는데⋯7월 초부터 이상한 일들이 막 터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출발하는 주에는 한 달 전에 계획을 제출해서
재가를 받은 일정을 가지고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끼어든 일을 테트리스 하듯 이리 밀고 저리 밀어 맞추고 어찌어찌 짜맞추면서 참 이게 뭐하자는 건지⋯어디다 털어놓을 데도 없어서 눈물이 절로 나고 멘탈이 망가지기 시작하더군요.
아마
주위에서 여럿 말리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항공권이고 호텔이고 다 취소하고 다 내던졌을 것 같습니다. 취소 버튼을 누를까 말까 몇 번
고민을 했던지⋯ 결국 여행 일정 점검도 못한 채로, 정말 이렇게까지 가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참담한 마음으로, 그렇게 백팩
하나에 짐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습니다.
7/19, 서울-인천
머릿속이 복잡해서 여러 번 잠을
설치다가 아침 6시에 겨우 눈을 떴습니다. 여전히 마음은 심난하고 머릿속에는 안개가 낀 것 같은데, 그래 그래도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전날 밤, 아니 당일 새벽에 간신히 꾸린 짐을 챙겨 들고 나왔습니다.
타고 가야 하는 OZ 561편은 10시 15분 출발입니다. 분명히 여행 성수기라 보안 검색대와 출국 심사장이 밀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공항철도 서울역에 있는 도심공항 터미널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공항철도
서울역에 도착해서 직통 열차 표를 사려는데⋯여기서도 일이 꼬입니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자꾸 말도 안되는 걸로 실랑이를
벌입니다. 일단 직통 열차 표가 있어야 발권을 받고 출국 심사를 하는데, 앞에서는 10분 이상 싸웁니다. 맥이 빠집니다.
아 정말, 정말⋯을 연발하면서 연신 시계를 바라 보니 체크인이 가능한 3시간 전인 7시 15분까지 딱 2분이 남았습니다. 인내심의 끈이 끊어지기 직전에 간신히 그 사람이 비켜줬습니다.
그렇게 직통 열차 표를 사고, 발권을 하고, 출국심사를 마치고 나니 공항철도 탑승 3분 전. 얼른 자판기에서 커피 하나 사 들고 열차로 뛰어들어갑니다.
가는 길에 그래도 일정이라도 좀 보고 어떻게 할까 싶었는데 진을 다 빼고 나니 뭘 할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같이 데려간 요엥이 가지고 좀 사진이나 몇 장 찍고 나서 그냥 멍하니 그래 가야지, 일단 가자⋯만 반복할 뿐.
인천공항
도착해서는 우리은행 앱으로 미리 신청해 둔 여행 경비를 찾았습니다. 90% 환율 우대를 받아도 350유로를 환전하는데 50만원
가까이 들더군요. 뭐 비자카드도 두 장 들고 왔으니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그 정도만 환전했습니다.
[ ※ Tip : 유럽은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이외에는 안 받는 곳이 의외로 많습니다. 신용카드를 들고 가실 분은 현지에서 쓸 카드 하나, 그리고 만의 하나 도난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여분의 카드를 준비해서 따로 보관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발급사가 다른 비자 카드 두 장, 그리고 평소 공항 라운지 출입 카드로 쓰는 다이너스 카드 한 장을 들고 갔습니다. 다이너스
카드는 인천 공항과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라운지 출입할 때만 쓰고 잘 보관해 놨고, 비자 카드는 메인 카드 하나만 들고
다녔습니다. 결과적으로 다행히 도난이나 분실은 없었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
도심공항터미널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면 훨씬 이용객이 적은 전용 통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안 검색대와 출국 심사를 빨리빨리 통과하고, 전날 자기 전에
면세점 앱으로 예약해 놓은 여행용품을 찾고, 라운지에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게이트로 갑니다.
도심공항터미널 출국 수속을 마치면 입장 가능한 전용 게이트. 삼성동/서울역 모두 해당됩니다.
라운지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
다 모르겠다, 눈 뜨고 일어나면 공항이었으면 좋겠다, 근데 가도 되나, 아 정말 매번 이러는 것도 씨바 좆같아, 여행 간다고
설친 내가 그렇게 큰 죄를 지었나⋯ 등등 오만 생각을 하면서 12번 게이트로 갑니다. 이렇게 안 즐거운 여행, 처음입니다.
복잡한 심정으로 게이트로 갔습니다. 이 때 기분은 정말 돌이키고 싶지 않습니다.
탑승
확인을 하는데 제 탑승권을 스캔하는 순간 삐빅하고 경고음이 나고⋯ 아 정말 가지 말라는건가 하면서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게이트에
서 있던 지상직 직원이 뭔가를 줬습니다. 좌석 번호가 한 자릿 수, C, 비즈니스. 만석으로 인한 비자발적 승급입니다.
그 순간 온갖 암울하고 안 좋은 생각이 싹 사라지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다른 의미에서 눈물이 줄줄⋯. 그냥 감사할 뿐이죠. 온갖 거지같은 일을 다 겪은게 이래서 그랬나 싶었습니다.
탑승
후에 자리로 와서 인사를 하는 사무장급 승무원에게 물어봤습니다. "제가 올라올 신분이 안 되지 싶은데요⋯"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오늘은 만석이라고 합니다. 아마 만석이라서 시스템상 정해진 승급 시나리오에서 제가 막차를 탄 모양입니다.
(계속)
※ 질문 있으신 분들은 댓글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답변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