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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창작 [물갤문학]'누가 리코를 죽였나?' '그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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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9 14:01:38
 



외래어 표기법에 맞춰 써봤습니다.



*

 “누가 리코를 죽였나” 라는 질문에 “그건 나” 라고 요는 대답했다.


#

 옅은 향 냄새. 지독하게 차오른 흰 국화의 향. 모든 것이 구역질 난다고 느끼며 구니키다 하나마루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향을 마쳤다.

 돌아선 그녀의 눈에 띈 것은 더는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유가족들과 빈소에 들어와 눈시울을 붉히는 조문객들과 한구석에 앉아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의 옛 친구들이었다.

 답답한 모습이었다. 본인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금연 안내판을 보고 멈추어야만 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빈소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임을 알고 이맛살을 꾹꾹 눌러 펴보지만 빳빳하게 굳은 표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 마루야, 왔어?”


 한껏 찌푸린 인상에 쏠리는 눈총을 의식한 사람이 있었다. 변함없이 질끈 묶은 말총머리가 인상적인 사람. 몰려들던 시선이 부딪힌 파도처럼 흩어진다. 마쓰우라 가난은 예전과 같은 미소로 그녀를 맞았다.


 “저리로 가자. 저기에 자리 있으니까.”


 복도로, 그 끝에 있을 자그마한 흡연 공간을 향해 턱짓하는 그녀에게 구니키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병원 벽에 둘러싸여 작은 사각형으로 쪼개진 밤은 재떨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찌그러진 스테인레스 강철의 재떨이를 앞에 두고 구니키다는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옅은 불티가 한 개피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 한 대 피우실래요?”

 “아니, 됐어. 절간 아가씨가 사람이 다 됐네.”

 “하하, 뛰쳐나온 지가 언젠데요……”

 

먼저 권하는 걸 잊었다고 허둥거리며 품에서 다시 담뱃갑을 꺼내려 들던 구니키다를 막는 마쓰우라였다. 대신 그녀가 바란 것은 그녀의 근황이었다.


 “루비는, 아직도 찾고 있어?”

 “……”


 옅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어둠에 잔잔히 녹아 드는 저릿한 냄새에 마쓰우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로사와 언니는 안 오셨네요.”

 “원체 바빠서.”

 

그게 그것으로 설명이 되나요─ 라는 질문을 삼켰다. 마쓰우라의 표정이라도 보였다면 그 아래의 저의라도 살피련만, 담배 끝자락에 붙은 불꽃은 한 자락 어둠조차 걷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우리 마루, 도시물 먹더니 말투가 그게 뭐야. 예전처럼 편하게 말해.”

 “아…… 그게, 저…… 역시 그만 둘게요.”

 

대답은 없었다. 늘 그러느냐 받아주던 바다의 목소리는 없었다. 달빛이 병원 벽에 부딪히다 떨어져도 마쓰우라의 표정이 보이는 일이 없었던 것처럼.

.

.

^

 사쿠라우치 리코는 도회 여자였다. 단순히 출신지 탓이 아닌, 천성이 그러했다.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살던 그녀가, 그래서 꿈결의 해변에 다다랐던 순간 빛나 보였던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다카미 지카에게 있어 그런 마천루의 반짝임을 간직한 소녀는 동경이자 환상이었다. 모래의 반짝임과는 다른 유리의 반짝임이었다.


 “리코……”

 러브라이브는 실패였다. 반절의 성공이 성공이라 긍정하고 웃을 수 있던 것이 천진난만한 소녀들의 특권이라면, 반절의 실패를 실패라고 부정하고 침잔 하는 것은 방파제를 잃은 어른의 결말이다. 지금 이 순간처럼 차가운 밤 속으로 가라앉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반짝임을 찾고 싶다고 했던 소녀는 없었다. 총기가 가라앉은 눈을 파묻고 다카미는 가만히 앉아 마천루를 떠올렸다. 반짝이는, 꿈결 같은. 가장 차가운 도시의 가장 따뜻한 손.


 ‘그래도 자주 함께했으면 좋겠어.’

 

순간 귓가에 들린 소리는 너무도 생생했지만, 다카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졸업식, 도쿄, 10년. 희망의 반짝임이 황금의 반짝임에 무너지기에 충분한.


 [요시코랑 만났었어. 드디어 타천사 컨셉에선 졸업했지 뭐야.]

 [가난 언니, 요즘 물이 올랐던데? 너무 멋있어졌어!]

 [요는 여전하더라. 오랜만에 만났는데 오히려 내가 위로 받았다고 해야하나.]

 

다카미가 하루하루 그저 짓눌리지 않기 위해 사는 동안, 도회의 소녀는 도쿄로 돌아가서도 여전히 반짝였다. 그녀가 꿈결처럼 울렁거리는 마천루를 향해 손을 뻗는 동안에도. 사쿠라우치는 여전히 그들을 잊지 않았다.


 ‘─음성 메시지가 한 건 저장되었습니다. 요즘 소식이 없어서 걱정이야. 연락해줄래?’’

 언젠가 끝도 없이 좇았던 반짝임에게서 어느 새 도망치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 다카미는 그 연락을 마지막으로 메신저를 지우고 연락처도 바꾸고 말았다.

 그러고 받은 처음 연락이 부고였다.


 “왜 이렇게 꿀꿀해?”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치켜 뜬 눈이 날카로운 여자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요시코……”

 “난 내가 제일 쩌들었는줄 알았더니 지카야말로 꼴이 말이 아니네.”


 퀭한 다카미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쓰시마 요시코의 눈가가 얇은 호선을 그렸다. 그것이 비웃음인지 반가움인지 분별할 판단력이 없던 다카미는 다시 무릎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리코가, 아니, 리리가 항상 찾았는데 말야. 언제부턴가 메신저를 아예 보지도 않는다고.”

 “……”


 부고도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다. 쓰시마가 연락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문자와 메신저 수십 통쯤 무시한 끝에. 말이 없는 다카미의 옆에 등을 벽에 기대고 앉는 소리가 들렸다.


 “제일 먼저 왔지?”

 “……”

 “루비는…… 소식이 없고, 다이아는 안 왔을 거고. 그래, 마리는 다녀갔어?”

 “……아니.”

 “그런가……”

 

내쉬는 숨소리가 흐릿했다. 께느른한 옅은 목소리에 다카미는 한 마디를 더했다.


 “대신 이 식장을 빌린 게 마리 언니야.”

 “아아.”

 

다카미는 사실 지금도 해외 어딘가에 있을 오하라 마리를 대신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영정사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살짝 웃고 있는 사진이 해맑다. 다카미는 다시 눈을 감아야만 했다.

 깊은 밤, 유가족들마저 자리를 비우고자 하는 순간에 와서도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순전히 오하라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래도 빈소가 비면 그녀도 자리를 뜨려고 했건만, 옆에 앉은 사람의 무게에 눌렸다. 나가고 싶었는데.


 “마루가 온 건 사실 의외였어. 마루도 꽤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됐거든.”

 “……”

 “다들 많이 바뀌었구나. 가난은 변함없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변했고. 이렇게 되니까 다이아랑 루비가 궁금해지네.”

 

말없는 다카미를 향해 그저 혼잣말을 할 뿐인 쓰시마였다. 다카미는 그런 그녀에게서 향수를 느꼈다. 감상에 젖어 아무 말이 없어진 자신처럼, 감상에 젖어 말이 많아진 것일까. 아니, 그녀는 본래 그랬다. 다카미는 무릎을 좀 더 세게 끌어 안았다.


 “그러고 보니 요는? 요도 일찍 왔을 텐데.”

 “잠시 볼일.”

 “그럼 좀 있다가 다들 모이는 거겠네. 다이아랑 루비도 없고, 마리도 없지만, 바쁘니까 이해해줄 거야.”

 

그렇게 다들 모이자고 하더니. 쓰시마의 중얼거림에 다카미는 살짝 움찔했다. 누군가 하나 죽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반짝임은 그런 물거품이었다.


 “아, 요시코, 왔구나?”

 “가난, 오랜만이야. 마루도 오랜만이야.”

 “요시코, 바쁘다고 들었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도, 하루 정도 짬은 낼 수 있으니까.”

 

구니키다와 함께 있던 마쓰우라가 빈소로 되돌아왔다. 향냄새와는 다른 옅은 매캐한 냄새가 풍겼다. 쓰시마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다카미를 둔 채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이제 나가도 될지 고민했다. 세 사람은 묘하게 달뜬 분위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가도 될 것 같았다.


 “다들 왔구나.”

 

향냄새에 반쯤 넋이 빠진 그녀가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찰나였다.

 셋과는 다른 목소리였다.

 와타나베 요였다.


 “좋은 소식이야. 마리 언니가 올 수 있을 것 같데.”

 정말이냐 되묻는 쓰시마. 다카미는 그 소식을 한 귀로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와타나베가 물었다.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았던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어디 가게?”

 “잠시, 숨 좀 고르러.”

 

와타나베의 고개가 조용히 끄덕거렸다.

.

.

~

오하라 마리에게 있어 세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 길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으되 길이 막히면 헤쳐나가 보였다. 어렵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러브라이브는 첫 실패나 다름 없었다. 실패를 오점이 아니라 덮어둘 수 있는 것은 청춘의 특권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실패가 실패란 사실만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영리했고, 그 사실을 금새 깨달았다.

 좋은 추억, 하지만 매여있을 수만은 없는 것.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큰 원동력이었다. 곱씹을수록 그때만큼 그녀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것을 추억이란 화분에 담아 잘 가꾸어 보였다. 모두가 흩어져도 혼자서 빛날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또각또각.

 오늘은 사쿠라우치 리코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선 어떤 사건이 일단락 나는 날이기도 했다. 사실 그것을 위해 오늘 이란 날짜를 고른 것이었다.

 또각또각.

 사람이 거의 없는 장례식장의 복도에 울려 퍼지는 발소리. 두 개의 다른 발소리.

 거침없는 발걸음의 끝에는 옅은 불빛이 아직도 흐르고 있는 하나의 빈소가 있었다. 사쿠라우치 리코. 맞게 찾아온 것 같았다.


 “여러분, 다들 기다리고 있었나요?”


 당당히, 큰 목소리로. 전혀 장례에 찾아온 사람 같지는 않은 태도였지만 괘념치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마리, 왔구나.”

 마쓰우라는 여상한 일이란 듯 인사를 건넸다. 제대로 본 것은 그녀도 몇 년 만임에도. 오하라 또한 호들갑 없이 인사를 받았다.


 “그나저나 뒤에는……”

 “그래요, 오는 길에 데려 왔답니다.”

 “마리, 그만 좀 놔요. 이제 와서 도망 같은 걸 갈 것 같나요?”

 “이런, 다이아도 왔나.”

 

거의 끌려오다시피 함께 온 것은 구로사와 다이아였다. 보통이었다면 반겼을 마쓰우라였지만, 지금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곁에 있던 구니키다를 흘끗 보았다.

 

“아.”

 

숨을 흘린 것은 구니키다와 구로사와가 동시였다.

 

“마루양도…… 있었군요.”

 “다이아…… 씨.”

 

구로사와는 살짝 눈을 돌렸다. 하지만 구니키다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 똑바로 향하는 시선을 보며 오하라는 웃었다. 마쓰우라가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마리, 일부러 그런 거구나.”

 “응, 해결편은 모두 모여서 하는 거잖아?”


 악취미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마쓰우라는 거기서 더 뭐라 하지는 않았다. 득의양양 하게 오하라는 팔짱을 꼈다.


 “해결편……?”

 “그래, 해결편.”

 

쓰시마가 되묻자 오하라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본래라면 해소하는데 더 오래 걸렸겠지. 하지만 리코가 판을 깔아줬는데 안 쓰는 게 더 아깝잖아?”

 

손가락을 튕기며 오하라는 구로사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입술을 씹으며 노려보았다. 다음은 구니키다를 보았다.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좋아, 좋아. 솔직히 이건 다이아 너한테도 말하기 좋은 기회잖아. 여기 사람들 이외엔 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거기다 애초에 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니. 없을 리가 없잖아.”


 구로사와의 말에 대답한 것은 오하라가 아니었다. 구니키다는 파르르 떨리는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루비가…… 그 아이가 없는데 아무런 할 말도 없다고……?”

 “네, 없어요. 그 아이를 찾는 데에는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몇 년 동안이나 보이지 않으니 저도 이젠 지치네요.”

 “거짓말하지마!”

 

고요하던 빈소가 울린다. 모두가 그 고성에 놀라는 동안 오하라 만이 웃었다.

 

“그렇게 아끼던 동생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는데 겨우 그 정도야? 아니면 그 잘난 가문 꼭대기에 올라서니 뭔가 바뀌어 보였던 거야? 지금도 루비는 어딘가에서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

 “그런데 언니란 사람이, 그것도 그렇게나 사랑했던 언니란 사람이 자기 일이 바쁘다고 관심조차 없다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노력하고 있어요. 그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뿐이지.”

 “너……!”

 

순간 구니키다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운동신경으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자부하던 마쓰우라조차 순간 놀라버린 창졸 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손이 닿는 일은 없었다.

 

“자, 여기까지. 마루, 쌓인 게 많았을 테지만 이젠 진정하기.”

 “어.”

 “그리고 말야, 예나 지금이나 전하는 게 서툴러. 좀 더 빨리, 자신 있게 말하지 않으면 안 돼.”

 “읏……”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둘 사이를 막고 구니키다의 손목을 부여 쥔 것은 오하라였다. 그녀의 미소는 간드러지게 구로사와를 향했다. 그녀가 입술을 계속 씹었다.


 “자, 이쯤에서 해결하자. 마루가 여기까지 오해할 줄 몰랐던 거 아냐?”

 “……”

 “말했잖아, 여기서 말하는 게 가장 좋다고. 아니면 내가 대놓고 얘기하길 바래?”

 “그건…… 하지만 전 말할 게 없……”

 “우물쭈물하기엔 이제 너무 멀리 왔잖아? ‘언니’도 없는데.”

 “……뭐?”

 “겉을 따라 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은 힘든 걸까, 루비야?”

 

구로사와의 입술이 멎었다. 구니키다가 되물었다.

 

“뭐, 라고요?”

 “다이아는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고를 당했어. 눈이 보이지 않게 됐지. 후계에게 큰 지장이 생긴 구로사와 가는 허겁지겁 루비를 준비시켜야만 했지.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가 그 집 사람이 아니니까 모를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구로사와 루비는 사라지고 구로사와 다이아만 남게 됐다는 거야.”

 “그, 그런……”

 

구니키다가 큰 눈으로 구로사와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든 하길 바라는 눈이었다. 구로사와는 그 눈을 바라보다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아냐! 그런 게 아냐…… 저는 다이아야…… 다이아 언니라고요…… 루비가, 제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아냐…… 루비는…… 저는…….”

 

풀썩.

 주저앉은 것은 구니키다였다. 비틀거리며 머리를 쥐어뜯는 구로사와를 살짝 부축하며 오하라는 쓰게 웃었다.

 

“이게 무슨 일의 결과인지는 나도 몰라. 구로사와 가의 잘못인지도, 루비 스스로가 다이아를 대체할 수 없다는 부담감에 변화한 건지도.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희들은 알아야 하니까.”

 

천천히 벽에 기대어 앉히며 오하라는 구로사와의 산발이 된 머리를 살살 쓸어 넘겨주었다. 그녀는 이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구니키다는 천천히 엉금엉금 기어서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쓸어 넘긴 앞머리 너머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구니키다는 가만히 자신을 보지 않는 그 눈에 눈을 맞추었다.

.

.

&

 “한 건 해결이네. 이제 시원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오하라는 상쾌한 웃음을 지었다. 마쓰우라는 그런 그녀를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무래도 다들 쉬어야 할 것 같네. 특히 지카는 며칠 내내 있었잖아. 내일은 마지막 날이니까 오늘이라도 가서 푹 자고 와. 정히 불안하면 나랑 마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

 “지카는 왜 저래?”

 “오고 난 뒤부터 계속 저랬어. 리코랑 가장 가까웠잖아. 충격이 컸겠지.”

 

자신의 일에 정신이 팔려 이제야 다카미의 용태를 살피게 된 오하라는 마쓰우라의 눈치를 살폈다. 허나 뾰족한 답변이 돌아오지 않자 이번엔 와타나베를 돌아보았다.

 

“요, 네가 지카를 좀 돌봐줘야겠는데.”

 “그럴까요.”

 

담담하게 답하는 와타나베에게 오하라는 싱긋 웃었다.

 “자, 그럼 나는 내일 일정이 있어서 이만……”

 “아직이야.”

 “응?”

 

다카미가 입을 열었다. 해결편은 아직이었다.


 “지카, 그게 무슨……”

 “그럼 리코는 누가 죽였나?”

 “……”


 담담한 말투였다. 하지만 내용은 담담하지 않았다.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돌아가려던 오하라도, 그런 그녀를 배웅하겠다던 마쓰우라도, 가만히 구로사와의 머리를 쓸어주던 구니키다도, 다카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축하려던 와타나베도. 아직도 바들바들 떨고 있던 구로사와 만이 정적을 조용히 갉아먹었다.

 다카미에게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직이 한 번 더 말했다.


 “누가 리코를 죽였나?”

 

그들 중 누구도 입도 벙긋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요가 답했다.


 “그건 나야.”


 다카미가 고개를 들었다. 와타나베는 밝게 웃고 있었다. 그때처럼.

.

.

/

 [요, 잠시 시간 돼?]

 [??]

 [내 모든 걸 주고서라도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

 [아, 갑자기 미안;;

 조금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어서]

 [오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그런 사람 있어?]

 [있지

 당연히 있지]

 [그렇구나

 미안! 이상한 소리 해서]

.

.

#

 “지카, 리코는 네가 많이 걱정 됐던 거야.”

 

와타나베는 화사한 미소를 띄우며 다카미의 눈을 맞춘 채 말했다.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얼굴도 보지 못했고, 몇 년 전부턴 메신저조차 닿지 않는 네가 걱정됐던 거야.”

 “……”

 “만나러 가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리코가 몇 번이나 발걸음을 돌렸는지 알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카미는 와타나베의 말을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짓고 있는 미소가 빛났다. 피할 수 없도록.

 

“장례식이라면 오지 않을까.”

 “……”

 “나는 농담처럼 말했는데.”

 “……”

 “그러고 얼마 뒤에 나한테 연락이 왔어. 나를 찾으러 와달라고.”

 “……”

 “자기 방에서 조용히 죽어있는 걸…… 찾아달라고 예약 문자를 보낸 거였어……”

 

와타나베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었음에도 그것은 미소였다.


 “그러니까 누가 리코를 죽였냐고 물었지?”

 

다카미는 눈을 내릴 수 없었다.

 

“그건 나야.”

.

.

-

 “고마워요, 마루양. 신세를 졌네요.”

 “아, 아뇨…… 다이아 씨.”

 “오랜만에 보니 어색한가요? 예전처럼 다이아 언니라고 불러줘도 괜찮은데.”

 “그건. 역시 괜찮아요.”

 

구로사와를 부축하며 떠나가는 구니키다. 간밤의 일은 까맣게 잊은 듯 아무런 언급도 않는 구로사와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구니키다였다.


 “마리.”

 “응?”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는 오하라를 마쓰우라가 불러 세웠다.


 “이걸로 된 거야?”

 “뭐가?”

 “네 계획.”

 “어머, 난 딱히 뭘 짜고 있진 않은데.”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진 말아줬으면 하는데.”

 “아하하.”

 

웃음소리가 파도소리에 섞여 영롱했다.


 “모으고 싶었던 것은 결국 완전히 쪼개졌지.”

 “전부 그렇게 되는 것보단, 하나라도 남는 게 낫잖아?”


 툭.

 싱글벙글 웃는 오하라. 마쓰우라는 그런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어깨를 툭 밀쳤다. 휘청거리던 찰나, 오하라의 모습이 휙 사라졌다.

 첨벙.

 파도 사이로 들리는 웃음을 내려다 보며 마쓰우라는 등을 돌렸다.

 

“좋아! 파도가 치면 항상 네 생각도 해줄게!”

 

대꾸는 없었다.

 젖어서 빛 바랜 꽃에 미련은 없었다.

.

.

@

 입관도, 화장도 일사천리로 끝났다. 정오의 태양이 뜨끈한 공기를 뿌려댈 때쯤에 사쿠라우치가 남긴 것은 작은 항아리 하나뿐이었다.

 파도 소리.

 방파제에 부서지는 바닷소리가 푸르게 넘실거렸다.

 

“이 방파제에서, 바다에 뿌려달라고 남겼으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다카미 지카가.

 사쿠라우치의 의사는 존중되어 다카미는 지금 파도 앞에 서있었다.

 그 뒤에 선 와타나베는 가만히 그녀에게 말했다.

 

“아홉을 모두 봤으니까 가벼운 마음이겠지. 그 중 가장 보고 싶었던 너를 봤으니까 여한도 없을 거야. 잊지 못했던 바다로 가니까 이보다 완벽할 순 없어.”

 

그래, 그럴 거야. 와타나베의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미소가 아니었다.

 부스러지는 모래를 쏟아내며 와타나베는 말했다.


 “지카, 리코는 다름 아닌 너와 함께 하고 싶었던 거야. 네가 있는 바다에 있고 싶었던 거야.”

 

울렁거리는 마천루가 파도에 씻겨나간다.

 심원한 바다는 깊고 푸르렀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것이 파도인지 햇살인지 알 길도 없이 다카미는 품에 안은 항아리가 문득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와타나베가 일별한 자리.


 파도가 깊었다.



서진희 Yo 2019.06.29 1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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