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숭정(崇正) 392년, 저 바다 건너 왜국(倭國) 땅의 작은 마을인 내포촌(內浦村)이란 마을이 왜국 정강현(静岡県) 소진읍(沼津邑)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내포촌은 본디 어업(漁業)에 힘쓰고 있는 어부(漁夫)들이 살고 있는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이런 작은 마을에도 학당(學堂)이 있었으니 바로 계집들만이 다닐 수 있는 학당이자 이 이야기의 장(場)인 포지성여학당(浦之星女學堂)이었던 것이었다.
이 포지성여학당이란 곳은 학문(學問)에 힘쓰고 덕(德)을 쌓아가며 용모(容貌)가 빼어난 내포촌의 여학도(女學徒)들이 모두 다니어 멀리 소진읍성(沼津邑城)의 백성(百姓)들에게까지 소문(所聞)이 자자해 양갓집에서 규수(閨秀)를 포지성여학당에 보낼 정도라.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포촌과 소진읍의 젊은이들이 주변의 강호*(江戸, 양놈들과 왜놈들은 동경(東京)이라 부르더이다.)나 명고옥(名古屋)같은, 도성(都城)이나 큰 읍성(邑城)으로 터전을 옮기니 포지성여학당의 명성(名聲)도 땅으로 떨어져 폐당(閉堂)할 위기(危機)에 놓여있으니 이 비통(悲慟)한 현실(現實)을 어이할꼬.
*江戸, 양놈들과 왜놈들은 동경(東京)이라 부르더이다.
그러나 그 현실에 굴하지 아니하고 있던 고해천가(高海千歌)라는 한 계집이 있었는데, 마을 주막**(酒幕) 딸이었고 나이는 열여섯 꽃다운 나이였다.
용모는 수려(秀麗)하진 않았으나 가애(可愛)하였고, 머리가 주황색(朱黃色) 털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붉은색 눈동자가 수려하고 의기(意氣)가 넘쳐 모두들 그녀를 칭찬(稱讚)하곤 하였다.
**왜국에선 여관(旅館)이라고도 함.
아무튼 고해천가는 유람(遊覽)하러 강호로 떠났을 때, 강호에서 한창 유행(流行)하고 있던 학당악단***인 무주(舞主)를 보게 되었는데, 무주란 9명의 가무(歌舞)의 여신(女神)을 뜻하는 말이라 하더이다.
***學堂樂團, 학당(學堂)의 학도(學徒)들이 가무(歌舞)를 하기 위해 모인 무리. 양놈들 말로 School idol이라 한다.
이 무주는 이들의 학당인 음지목판학당(音之木坂學堂)이 폐당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학당악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자신(自身)들의 가무를 뽐내어 폐당을 막았으니 참으로 기적(奇跡)이라 하겠다.
이들의 가무를 본 고해천가는 자신들의 학당도 이와 같이 구할 수 있다 생각하여 여학도들을 모아 자신을 우두머리 삼은 학당악단, 악구아(樂求我)을 만들게 되었으니, 이 이름은 가무로 자신들의 학당을 살리리란 다짐이었다.
그리하여 학당의 폐당을 막진 못했지만, 라부라이부****라는 학당악단들의 경연(競演)에 당당히 장원(壯元)에 드니 학당악단들의 전설(傳說)에 무주와 아라이주(亞羅而珠)에 이어 오르게 되었다.
****羅部羅怡富,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가득 전하라.
그리고 저 멀리 북해도(北海道)의 성설(聖雪)과의 합동 가무(合同歌舞)를 성공함으로서 성악설(聖樂雪)이란 이름으로 활약(活躍)하였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 모든 것이 열여섯 어린 소녀(少女)에게서 나온 생각이었으니 참으로 장한 일이로다.
이러한 아이가 아직도 가무의 중심(中心)이 되지 못하여 막역지우(莫逆之友)인 도변요(渡辺曜)보다도 인기(人氣)가 낮으니 이를 슬퍼하지 않는 사람 어딨겠는가!
오집중심(五集中心)은 천가(千歌)가 될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