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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창작 [물갤문학][마루비]개그ss 찾길래 예전 쓴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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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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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18 16:44:28
[마루비]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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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데뷔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뿌뿌 데스와! 데뷔고 뭐고 미처 펴져야 하지 않겠어요!”하고 만다.
이 펴져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파트너가 될 루비의 팔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트레이닝만 하기를 삼 년 하고 꼬바기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펴졌다니까 이 팔은 언제야 펴지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춤을 좀 더 잘춰야 한다든지, 혹은 빵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허지만 루비가 아직 팔이 더 펴져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동생 팔이 펴지는 대로 데뷔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팔이 언제 펴지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팔이 저절로 펴지는 줄만 알았지 펴지지 않는 팔이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회장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연습과 잡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회장님이 제가 다 알아채서, “하나마루상, 정말 수고 많이 하셨어요. 그만 데뷔 하도록 하세요.” 하고 데뷔곡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스쿨아이돌 연습생이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 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루비의 팔 펴지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 덤벼들어서 그 팔을 한번 펴볼까 했다. 마는 우리는 회장님이 데뷔 전에는 신비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마디 하는 법 없다. 학교길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침 가서 ‘76!’하고 투덜거려 본다. 아무리 봐도 그 팔이 더 이상 펴지질 않는다.
시이타케는 푹푹 잘도 뛰어 다니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그런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자꾸 팔을 굽히고 간바루비만 하다 보니 뼉다귀가 움츠라드나보다, 하고 내가 넌즛넌즈시 대신 간바즈라도 외쳐 주었다. 뿐만 아니라 체력 단련을 위해 신사에 가는 길이면 신사에 동전을 던지며 ‘루비의 팔이 좀더 펴 지게 해줍소사. 그러면 담엔 더 많이 갖다 드리죠.’ 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되먹은 팔인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회장님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옥상의 풀을 뽑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렇게 백날 일 하게 되면 뭐하나. 루비의 팔이 펴 지는 것도 아닌데.
“아이구 배 아파유!”
난 일하다 말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그대로 그늘로 기어올랐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일이 급해도 나 배 아프면 고만이니까. 아픈 사람이 누가 일을 하느냐. 파릇파릇 돋아오른 풀 한숲을 뜯어 들고 주머니의 놋포빵을 만지작대며 회장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옥상 한 가운데서 회장님도 이상한 눈을 해가지고 한참 날 노려보더니,
“하나마루상, 왜 또 이러는 거에요? 뿌뿌데스와!”
“배가 좀 아파서유!”
하고 슬며시 쓰러지니까 회장님은 약이 올랐다. 저벅저벅 걸어 오더니 이내 내 볼따구를 움켜잡는 것이 아닌가……
“뿌뿌 데스와! 일 하다 말면 되나요? 이 즈라마루!”
우리 회장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아주 가차 없다. 또 같은 팀 동료에게 이러는 회장님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학교에서 누굴 물론하고 그녀에게 잔소리를 안 먹는 사람은 명이 짜르다 한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 세놓고 허당, 허당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허나 인심을 정말 잃었다면 잔소리보다 학교의 회장 일로 더 잃었다. 번히 회장이란 잔소리 잘하고, 사람 잘 야단치고, 그리고 생김생기길 카시코이 하게 생겨야 쓰는 거지만, 입술 밑에 점 달린 것까지 해서 회장님은 외양이 똑 됐다.
회장 앞에서 뮤즈에 대한 이야기를 틀린다든가, 수영장 청소 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락없이 동아리 지원금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뮤즈 굿즈도 바치고 라이브 정보도 빨리 알려주던 놈이 그 지원금을 받아 먹는다. 이 바람에 회장님집이나 회장실에는 알터 피규어가 절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학교 사람들은 그 잔소리를 다 먹어가면서도 그래도 굽실굽실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내겐 회장님이 감히 큰소리할 계제가 못된다. 뒷생각은 못하고 딱밤 한 개를 딱 때려 놓고는 회장님은 무색해서 덤덤히 쓴 침만 삼킨다. 난 그 속을 퍽 잘 안다. 조금 있으면 단체곡 연습도 하고 동선도 짜야 하고, 한참 바쁜 때인데 나 연습 안하고 우리집으로 그냥 가면 고만이니까. 작년 이맘때도 트집을 좀 하니까 늦잠 잔다구 네소베리를 집어 던져서 자는 나의 발목을 삐게 해놨다. 사날씩이나 건숭 끙끙, 앓았더니 종당에는 거반 울상이 되지 않았는가……
“하나마루상, 그만 일어나 일 좀 해요. 그래야 올 갈에 잘되면 데뷔 하지 않겠어요.”
그래 귀가 번쩍 띄어서 그날로 일어나서 남이 이틀 일해야 할 분량을 혼자 삶아 놓으니까 회장님도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다. 그럼 정말로 가을에 와서 데뷔를 시켜 줘야 온 경우가 옳지 않겠나. 일을 다 해내고 연습에서 덤블링을 척척 해내도 다른 소리는 없고 삐기 거리며 들어오는 루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뿌뿌! 저 보세요, 팔도 안 펴진 애랑 무슨 데뷔를 한다고 그래요!”하고 남 낯짝만 붉혀 주고 고만이다.
골김에 그저 이놈의 회장님, 하고 놋포빵으로 때려 준 다음 우리 고향으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말았다. 참말이지 난 이꼴하고는 집으로 차마 못 간다. 데뷔 한다고 나섰다가 오죽 못났어야 그대로 쫓겨왔느냐고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그늘에서 벌떡 일어나 한풀 죽은 회장님 앞으로 다가서며,
“난 갈 테야유. 그동안 사경 쳐내슈.”
“하나마루 상, 당신은 데뷔 하러 왔지 어디 일만 하러 왔어요?”
“그러면 얼른 데뷔를 시켜줘야 안하지유. 밤낮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글쎄, 제가 안 하는 게 아니잖아요, 루비가 좀체 안 펴지니까.”하고 어름어름 점만 만지작 거리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이렇게 따져 나가면 언제든지 늘 나만 밑지고 만다. 이번엔 안 된다, 하고 대뜸 이사장님한테로 판단 가자고 소맷자락을 내끌었다.
“아, 이 분이 정말. 왜 이래요 선배를 가지고.”
안 간다구 뻗디디구 이렇게 호령은 제맘대로 하지만 회장님 제가 내 기운은 못 당한다. 막 부려먹고 동생은 안 주고, 게다 땅땅 치는 건 다 뭐야…….
그러나 내 사실 참 회장님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전날, 왜 내가 회장님 명령으로 교정 한 구석을 혼자 쓸고 있었을 때. 화단 가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가끔 뱃고동 소리밖에 안 들리는 바닷가 시골 학교다 보니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몸살(병을 아직 모르지만)이 날려구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머릿결이 흩날려~크게 크게 돌아라~방긋방긋 닿아라~”
이렇게 유명 스쿨 아이돌의 노래를 하며 일을 하고 있으면 여느때 같으면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웬일인지 반도 쓸지 않아서 온몸이 맥이 풀리고 대구 짜증만 난다. 공연히 빗자루로 화단 바위만 들입다 두들기며……
“즈라! 즈라! 이 망할 자식의 화단(회장님의 화단이니까) 부셔 놓을거에유.”
그러나 내 속은 정말 화단 때문이 아니라 간식을 안고 온 루비의 팔을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루비는 썩 예쁜 아이이다. 귀엽게 생긴 것이 꼭 내 파트너가 돼야 할 만치 그저 이쁘장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6개월이 위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팔은 남보다 두 배나 덜 펴졌다. 헌데 한 가지 과가 있다면 가끔가다 몸이(회장님이 이걸 채신이 없이 들까분다고 하지만)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빵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서 깨빡을 쳐서 흙투성이 빵을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 할까봐서 이걸 씹고 앉았느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빵을 먹는 겐지……,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지 성한 빵채루 화단 옆 벤치에 곱게 내려 놓았다. 그리고 또 신비주의를 지켜야 하니까 저만큼 떨어져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아서 먹고 난 봉지가 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다 먹고 물러섰을 때, 쓰레기들을 챙기는데 난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봉지에 봉지를 포개면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제 소린지,
"밤낮 일이랑 연습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나 없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떡해유?"
하니까,
"데뷔 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그저 도망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심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내에 부쩍 (속으로) 자란 듯싶은 루비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멀쩡하게 아직 어리구 팔이 안 펴졌다구 하니까…….
우리가 이사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호텔 로비에 있는 자기 동상을 열심히 닦아 주고 있었다. 외국엘 좀 갔다 오더니 사람은 점잖아야 한다구 머리에 도넛 하나를 달고는 그걸 샤이니-!, 라고 하며 늘 쓰담는 손버릇이 있다.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고 미리 알아챘는지,
"왜 일들 하다 그래yo?"하더니 손을 올려서 그 샤이니-!를 한번 후딱 했다.
"이사장님! 우리 회장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먼저 덤비는 회장님을 뒤로 떠다밀고 내가 허둥지둥 달려들다가 가만히 생각하고, '아니 우리 학생회장님과 츰에.'하고 첫 번부터 다시 말을 고쳤다. 회장님은 학생회장님, 해야 좋아하고 밖에 나와서 회장님, 하면 괜스리 골을 내려고 든다. 시이타케두 개새끼라 하면 좋겠냐구, 창피스러우니 남 듣는 데는 제발 학생회장님 하라구 일상 당조심을 받아오면서 난 그것두 자꾸 잊는다.
당장두 회장님, 하나 옆에서 내 발등을 꾹 밟고 곁눈질을 흘기는 바람에야 겨우 알았지만……
이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사장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 게다.,
"그럼 다이아! 얼른 데뷔를 시켜 줘yo, 그렇게까지 제가 하고싶다는 걸……"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말에 회장님이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데뷔고 뭐고 루비가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요? 맨날 당황하면 삐기 으유만 하는 애를 무슨 데뷔를 시키나요?"
하니까 고만 멀쑤룩해져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그것도 그래!"
"그래, 거진 사 년 동안에도 안 펴지더니 그 팔은 은제 펴 지지유? 다 그만두구 사경 내슈……"
"글쎄, 하나마루 상! 제가 펴지질 말라구 했나요? 왜 절 보고 그러세요?"
"회장님도 무서우면 삐갸 삐갸 하는 분이 그럼 어떻게 데뷔를 했지유?"
회장님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 해두 돌 씹은 상이다) 날 은근히 곯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치사하다. 나두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 회장님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바닥으로 쓰러질 듯하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쏘았다. 뿌뿌 데스와!,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니 차마 못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러웠다.
그러나 이 밖에는 별반 신통한 귀정을 얻지 못하고 도로 논으로 돌아와서 연습에 잡일이나 하게 되었다. 왜냐면 회장님이 뭐라구 귓속말로 수군수군하고 간 뒤다. 이사장님이 날 위해서 조용히 데리고 아래와 같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뭉태의 말은 이사장님이 회장님에게 반해 있으니 그래 꾀엿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하나마루쨩 말도 옳지yo, 나이 찼으니 데뷔가 급하다는 게 잘못된 말은 아니야. 하지만 일도 한층 바쁜 때 일을 안한다든가 연습도 빼먹고 집으로 달아 난다든가 해서 출석을 못 채워서 낙제라도 했다간 스쿨 아이돌 데뷔를 못 하거든!(여기에 그만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고 하나마루쨩은 솔로 데뷔라도 한대지만 그러면 괜스리 죄를 들쓰고 들어가는 거에yo.
또 데뷔도 그렇지. 법률에 성년이란 게 있는데 그 전엔 데뷔를 해도 학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에 yo. 학교의 허가? 인정할 수 없어!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그렇지만 아까 다이아의 말씀이 올 가을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도 데뷔를 시켜주겠다 하니...빨리 가서 연습이나 더 하세yo."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끽소리 없이 왔다. 회장님과 내가 싸운 것은 지금 생각하면 전혀 뜻밖의 일이라 안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자면 결국 어젯밤 요시코쨩네 집에 놀러 간 것이 썩 나빴다. 낮에 이사장님 앞에서 회장님과 내가 싸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구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고도 그걸 가만 둬?"
"그럼 어떡해유?"
"어휴 이 즈라마루, 회장을 그냥 타천류 포박술로 꽁꽁 묶어서 데뷔 시켜 달라 해야지 뭘 어떡해?"
하고 괜히 내 대신 화를 내가지고 주먹질을 하다 경단까지 쳤다. 이 아이가 좀 엉뚱한 곳은 있지만 그래놓고 날더러 경단 침해 하지 말라고 막 시비를 붙는다. 난 어안이 벙벙해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저만 연신 말하는 소리가,
"밤낮 일이랑 연습만 해주고 있을 거야?"
"치카는 일년만에 데뷔 했는데 넌 사년이나 살고도 더 해야 해?"
"네가 세번째 연습생인줄이나 아니?"
"남의 일이라두 분하다. 이 바보야, 가서 타천이나 하라구."
나중에는 겨우 놋포빵으로 목을 따라고 까지 하고, 제 경단같이 함부로 훅닥이었다. 별의별 소리를 다해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으나 그 줄거리는 이렇다…….
나는 겉으로 즈라, 즈라, 하며 귓등으로 들었다. 요시코쨩은 타천사 겸 점술 동아리를 하다가 정식 동아리에서 떨어진 뒤로는 회장님만 보면 공연히 못 먹어서 으릉거린다. 그것도 회장님이 그만 하라고 할 때 타천류 포박술인가 뭔가를 풀기만 했더라도 그럴 리도 없었던 걸…….
그러나 나는 요시코쨩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꼭 곧이들었다면 간밤에 와서 회장님과 싸웠지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동생에게까지 인심을 잃은 회장님이 혼자 나빴다.
실토이지 나는 루비가 아침상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는 오늘은 또 얼마나 빵을 담았나, 하고 이것만 생각했다. 상에는 놋포빵하고 커다란 햄버거, 그리고 밥보다 더 수부룩하게 담은 귤이 한 대접, 이렇다. 귤은 루비가 틈틈이 서리 해오니까 두 대접이고 네 대접이고 멋대로 먹어도 좋으나 빵은 회장님이 정해진 양 외엔 더 주지 말라고 해서 안된다. 그런데 루비가 그 상을 내 앞에 내려 놓으며 제 말로 하는 소리가,
"이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
하고 엊그제 화단에서와 같이 되우 쫑알거린다. 딴은 내가 더 단단히 덤비지 않고 만 것이 좀 어리석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저쪽 벽을 향하여 외면하면서 내 말로,
"안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대유!" 하니까,
"점을 뽑지 그냥 둬, 이 바보야! 으유!"
하고 또 얼굴이 제 머리 색 마냥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안으로 샐죽하니 튀들어가지 않느냐,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 망정이지 보았다면 내 얼굴이 치카 잃은 요우처럼 가여 웁다 했을 것이다.
사실 이때만치 슬펐던 일이 또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암만 못났다 해두 괜찮지만 내 파트너가 될 루비가 날 바보로 본다면 참 신세는 따분하다. 밥을 먹은 뒤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갈려 하다 바깥 마당 공석 위에 드러누워서 나는 차라리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생각했다.
내가 일 안하고 연습 안 하면 회장님 저는 나이가 먹어 못하고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만다. 뒷짐으로 대문 밖으로 나오다 날 보고서,
"하나마루 상, 왜 또 이래요?"
"배탈이 났어유, 아이구 배야!"
"기껏 밥 먹고 무슨 배탈이에요, 뿌뿌 데스와! 학교 안 가면 낙제 한다 구요!"
"낙제 해도 좋아유, 아이구 배야!"
참말 난 학교 안 가서 낙제 해도 좋다 생각했다. 오늘은 열쪽이 난대도 결정을 내고 싶었다.
회장님이 일어나라고 해도 내가 안 일어나니까 눈에 독이 오르더니 날 마구 굴리기 시작했다. 밥을 잔뜩 먹어 딱딱한 배가 그럴 적마다 퉁겨지면서 속이 메슥거렸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까 이번에는 배를 쿡쿡 찌르고 발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까지 했다. 아픈 것을 눈을 꽉 감고 넌 해라 난 재밌단 듯이 있었으나 볼기짝을 찌를 적에는 나도 모르는 결에 벌떡 일어나서 그 팔을 붙잡고야 말았다. 마는 내 골이 난 것이 아니라 정말은 아까부터 벽 뒤 울타리 구멍으로 루비가 우리들의 꼴을 몰래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 한마디 톡톡히 못한다고 바라보는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장 바보로 알 게 아닌가. 또 루비도 미워하는 이까짓 놈의 회장님하곤 아무것도 안되니까 막 때려도 좋지만 사정 보아서 팔만 잡고(제 원대로 했으니까 이때 루비는 퍽 기뻤겠지) 저기까지 잘 들리도록 '이걸 동생 팔뚝 마냥 접어 버릴까봐유!'하고 소리를 쳤다.
회장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 내 어깨를 덥석 물었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 회장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대로 떠밀어 굴려버렸다.
"부려만 먹구 왜 데뷔 안 시켜 주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허지만 회장님이 선뜻 알았어요, 내일이라도 데뷔시켜 드릴게요,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 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회장님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그러니 회장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볼따구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회장님! 회장님! 회장님!"
"뿌뿌 데스와! 버릇 없는 아이는 봐 주지 않을 거에요!"
"즈라! 즈라! 회장님! 살려줘유, 회장님!" 하고 두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보다 했다.
그래두 회장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이게 회장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그러나 얼굴을 드니(눈엔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회장님의 점 근처 턱과 볼을 꽉 움키고 잡아나꿨다.
내가 볼따구가 팅팅 붓도록 꼬집힌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회장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그냥 당장 내어쫓았지, 부은 볼따구를 얼음으로 손수 마사지 해 주고, 호주머니에 놋포빵 한 봉을 넣어 주고 그리고,
"올 가을엔 꼭 데뷔를 시켜 드리겠어요. 그러니 어서 가서 풀장 옆의 풀을 뽑도록 하세요."
하고 등을 뚜덕여 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회장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덧 눈물까지 났다.
루비를 남기고 인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회장님! 인제 다시는 안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부랴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갔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회장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삐갸! 삐갸! 이거 놔요! 삐갸아아아!"
회장님은 헷손질을 하며 시이타케에게 쫓기는 리코 같은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 마는 회장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삐갸! 선배님! 놔요, 놔."
그래도 안되니까,
"루비! 루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카난상과 루비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 나왔다. 나의 생각에 카난상은 제 친구이니까 역성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루비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 하겠지---. 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언니를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겨들며,
"삐기이이이! 이 망할 게 언니 죽이네!"
하고, 귀를 뒤로 잡아댕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카난상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놓고 회장님은 손으로 내 볼따구를 콱 쥐었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루비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뿌뿌 데스와! 회장 입에서 선배 소리가 나오도록 하다니요?!"
-완-
ㅇㅇ | 이거 꾸르잼이었음 | 2019.03.18 16:47: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