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ㅡ 보라색 제비꽃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날씨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오늘은 늦잠을 자버린 탓에 화면에는 항상 보던 키상 캐스터분이 아니라, 일기예보가 끝나고 나서 이어지는 운세 코너를 진행하는 분이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그마저도 이제 끝난 것인지 '오늘의 운세는 이걸로 끝입니다. 시청자분들의 오늘 운세는 어떠신가요?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 라는 클로징 멘트가 흘러나왔다.
광고가 흐르기 시작한 텔레비전을 끄고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아쿠아의 연습이 없는 토요일. 나는 오늘 요우씨와 데이트를 한다.
오늘은 내게 과연 어떤 하루가 될까.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갑작스러운 요우씨의 말에 당황해 우선 사태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니깐 요우씨가 지금 뭐라고 하신거죠.
사귀어 달라고? 나와?
하지만 한 번 흐트러진 머릿속은 정돈되지 않고 점점 더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역시... 안 되는 건가요..."
침묵을 거절로 받아들인 것인지 요우씨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그렇게 말했다.
"없던 걸로..."
"아닙니다! 그게, 그러니깐 너무 갑작스러워서... 설마 요우씨가 저를 좋아하고 계실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해서..."
나는 황급히 말을 막으며 대답했다.
같은 스쿨 아이돌의 동료. 남들보다 더 열심이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러면서 한 번도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지 않는 좋은 사람.
나와, 닮은 사람.
내게 있어 요우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저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요우씨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
"..."
"그러면"
제 말을 듣고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요우씨가 결심을 다진 듯 입을 열었다.
"다음 주 토요일. 저와 데이트를 해주세요."
"네?"
"다이아씨가 잘 모르시겠다면,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기회라뇨?"
"그 날 다이아씨를 돌아보게 만들게요. 제가 다이아씨를 좋아하는 것처럼 다이아씨도 저를 좋아할 수 있도록.
저와 데이트를 하고, 그러고 나서 다이아씨의 대답을 들려주세요. 마침 연습도 쉬는 날이니 잘 되었네요."
"저기...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뭐하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갑작스러운 고백이기도 했네요."
아하하. 요우씨는 밝게, 하지만 명백히 힘없이 웃었다.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요우씨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차분해진 나는 내가 요우씨에게 너무나도 지독한 짓을 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심을 담아서 고백해준 상대의 앞에서 한 번도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해버리다니.
그뿐만 아니라 고백의 대답마저 미루어 버렸다. 그것 역시 또 최악의 방식으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라고 했다면 요우씨는 침울한 표정을 짓지 않았을 것이고, 힘없이 웃어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아 요우씨가 그 말을 하게 되었다.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내게 애원하는 식으로.
아무리 당황해서 정신이 없었다고는 하나 정말 최악이었다.
요우씨는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침울해 하던 그 표정을 떠오르니 나는 자괴감이 일었다.
앞으로 요우씨의 얼굴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학교에서 만난 요우씨는 평소대로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백 같은 건 한 적 없다는 듯.
그래서 나는 더욱 고민이 되었다.
"oh~ 요우에게 고백을 받은 거야? 그런데 대답을 미뤘다고? 역시 다이아는 여자를 울리는 나쁜 여자라니깐~"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닙니다!"
"으앙~ 카난~ 다이아가 화냈어! 위로해줘."
"그래그래. 착하지. 다이아도 너무 뭐라하면 안 된다니깐."
"어째서 제가 지금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건가요!"
고민 끝에 나는 마리씨와 카난씨에게 상담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리씨는 장난만 치고, 카난씨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상담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일까. 자연스럽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런데 말이야, 다이아.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건 거절은 아니라는 거지? 정말로 관심이 없다면 깔끔하게 거절하면 되는 거잖아."
"그것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우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다이아는 이상한 부분에 완고하다니깐."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요우씨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건 아니야, 다이아."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가 된 마리씨.
"만약 다이아가 요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확실하게 거절하는 편이 좋아. 괜한 동정심 때문에 사귀는 건 좋지 않아. 사랑과 연민을 착각해서는 안 돼."
"그런...건까요."
"그래. 요우는 좋은 애니깐 만약 상처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걸로 다이아를 원망하지 않을꺼야."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난씨도 말을 꺼냈다.
"혹시 요우가 그걸로 다이아를 탓한다면 내가 가서 요우를 때려줄게."
"정말~ 카난은 violence 하다니깐. 박력 있는 모습도 멋지지만."
"고마워, 마리. 마리도 정말 귀여워서 좋아해."
"저기, 애정 행각은 두 분이서 계실 때 따로 해주시지 않으실래요?"
"너무해! 흠흠. 어쨌든 지금 다이아가 해야 하는 것은 요우가 진심을 전해준 것처럼 솔직하게 대답을 해주는 것.
그것이 어떤 대답일지는 다이아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만큼은 우리들도 뭐라고 해줄 수가 없어."
평소에는 장난기가 넘치면서 막상 이럴 때는 진지한 모습으로 정답을 가르쳐 주는 마리씨.
그리고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지 내 편을 들어주는 카난씨.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보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리씨. 카난씨."
"그럼 다이아. 보답을 받고 싶은데."
"보답이라뇨?"
"상담에 어울려 줬으니깐 두 사람이 데이트 할 때 따라가도 되는 거지? 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물론 뒤에서 몰래 지켜보기만 할 테니깐."
"어 그거 재밌겠다. 나도 갈래."
"오면 절교할 겁니다!!!"
혼자서 고민을 하는 동안 날짜는 지나 토요일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오늘 나는 대답을 해야 한다.
약속 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한 장소를 향해 집을 나서기로 했다.
나를 배웅해주려고 현관에 나온 루비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걸었다.
"저기, 언니."
"네? 왜 그러시죠 루비"
"언니가 요즘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거 말인데... 어떤 결과가 되어도 나는 항상 언니의 편이야."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아마도 그 내용까지 알고 있는 루비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정말 내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여동생이다.
"감사합니다, 루비. 이 언니는 루비 같은 여동생을 두어 정말 행복하답니다."
"나도! 언니 같은 사람이 내 언니라서 정말 좋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요소로~ 좋은 아침이에요, 다이아씨."
"좋은 아침입니다. 요우씨."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요우씨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빠르시네요. 저도 늦지 않으려 오 분 전에 왔는데. 많이 기다리셨나요?"
"아뇨. 저도 온 지 얼마 안 되었어요."
"거짓말이시네요. 볼이 추위로 새빨개져 있으신데."
"아하하. 실은 오늘이 너무 기대되서 그만 빨리 나와버렸어요."
들켰네요. 혀를 빼꼼 내밀며 다시 미소를 짓는 요우씨.
"그럼 오늘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데이트 장소는 전부 요우씨가 비밀로 했기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모른 체로 나왔다.
"음. 그 전에 먼저 약속! 오늘 하루는 경칭을 생략하고 부를 것!"
"경칭 말인가요? 그건 좀 부끄럽습니다만..."
"부탁이야. 다이아쨩♡+"
"... 어쩔 수 없죠. 요우...쨩."
"응! 그럼 가볼까? 오늘은 내가 실컷 에스코트 해줄게!"
"여기 여기 여기! 저번에 리코쨩이 말해줬는데 여기 팬케이크가 정말 맛있대!"
"팬케이크인가요. 기대되네요."
"후후. 기대해. 정말 맜있는 걸 먹여줄테니깐."
"우와아~ 이 목걸이 정말 예쁘다."
"어디. 정말이네요."
"우리 서로 선물해주기로 할래?"
"네??? 아니 그건..."
"실례합니다~ 저기 이거 좀 볼 수 있을까요?"
"요우ㅆ... 요우쨩.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요."
"스티커 사진 찍자. 다이아쨩은 어떤 포즈가 좋아?"
"저는... 잘 모르겠네요. 저번에 마리씨와 카난씨와 찍어본 적은 있지만 평소에 이런 데를 잘 오지 않으니깐요."
"그럼 나랑 손으로 하트 그리자! 응응. 그게 좋아."
"네??? 아니 저기..."
"다이아쨩, 어서! 이제 사진 찍힌다구."
"에? 아, 네. 그러니깐 이렇게인가요?"
"오늘은 즐거웠어, 다이아쨩?"
"네, 덕분에 정말 즐거웠습니다. 요우씨. 아니, 요우쨩."
"하하. 이제 데이트도 끝났으니깐 평소처럼 말해도 괜찮아 다이아쨩."
어느덧 날이 저물어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정말 즐거웠다. 요우씨와 단 둘이서 노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집으로 가는 것이 아쉽다고 느껴졌다.
"그럼."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빙글 돌아서 나를 보는 요우씨.
데이트가 끝났으니 약속대로 대답을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대답을 해주세요. 그 말을 기다리며 나는 숨을 삼켰다.
"오늘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이아씨. 학교에서 뵈요."
"저는... 네???"
그만 얼빠진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잠시만요 요우씨. 그 전에 할 말이..."
"다이아씨는."
내 말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고 다시 말을 시작하는 요우씨.
"다이아씨에게 오늘은. 어땠나요?"
"데이트 말인가요? 무척이나 즐거웠답니다. 아까도 물어보셨잖아요?"
"...저는 오늘 하루 종일 두근두근 거렸어요. 맛있다는 표정을 짓는 다이아씨는 무척이나 귀여웠고, 목에 목걸이를 채울 때의 그 몸짓은 무심코 꿀꺽 소리가 날 정도로 아름다웠고, 스티커 사진을 찍을 때 같이 하트를 만들려고 손이 닿았을 때는 죽을 정도로 긴장했어요.
저에게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어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요우씨만 기뻤던 게 아닙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우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나도 필사적으로 말에 끼어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네. 저도 다이아씨가 즐거웠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건 친구로서 재밌다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행복했다는 거랑은 다른 거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고 할 건가요? 오늘 하루 당신을 바라 보고 있던 제가 다이아씨의 표정에서 느낀 감정은 즐겁다 였지 두근거린다던가 행복하다던가 그런 게 아니였어요."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오늘 하루 나는 즐거운 나머지 고백의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마저 잊고 있었으니깐.
"... 이번에는 부정하지 않으시네요."
"..."
"... 저는 두 번이나 같은 대답을 듣고 예전처럼 대할 자신이 없어요. 그러니 오늘은 이대로 헤어지기로 할게요. 안녕히 가세요. 다이아씨"
이윽고 다시 등을 돌린 요우씨는 미처 잡을 겨를도 없이 전력으로 질주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따라가는 것도, 그대로 집으로 향하는 것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체로 우둥커니 남겨져 있었을 뿐이었다.
ㅡend
매번 단편만 쓰다 보니 장편을 쓰는 게 많이 어려워 자꾸 나쁜 글이 됩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