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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창작 [SS] 요우 “노르웨이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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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gu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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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l.dcinside.com/sunshine/2137832
  • 2018-12-29 07:14:28
 

“...호세, 그리고 와타나베 요우. 이렇게 다섯 명이 외부 견학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은은한 박수소리, 그리고 이따금 들리는 휘파람 소리.


내가 3년 동안 노력을 쏟은 이유.
꿈을 향한 여정이자 아버지처럼 되기 위한 한 걸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문 과정을 밟았고 운 좋게도 대학교의 협력회사에 인턴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땐 운이 좋은 것들 중에서 인생의 운을 걸어도 될까 말까 한 기회에 내가 선정되었다는 것을 듣고는 잠깐 굳어버렸다.
그럴 것이 나보다 잘난 사람이 지천에 널려있었으니까.
옛날에 여러 기행을 보여줬던 카난짱을 능가하는 돌고래 수상 전문가,
5살 때부터 보트를 몰아봤다는 어처구니없는 스펙의 녀석,
이론 시험에서 뭐 하나 틀려본 적이 없다는 아이까지 별의 별 사람들이 학교에 몰려있었다.


한때 치카짱이 이야기했던 자신은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다...라는 말이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이 학생들은 노르웨이에서 대기하고 있는 ****호로 이동하여 실습할 예정입니다. 소중한 경험을 쌓고 돌아와 뱃사람으로서의 새로운 청사진을 가지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꽃다발과 편지봉투를 받아들고 단상을 내려온다.
학교 신문에 실리기 위해 터지는 플래시는 나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어렵사리 이겨내고 나면 얼마 전까지만 앉아있었던 맨 앞자리로 돌아가야겠지.


자리에 앉으면 지루한 연설.


왜일까, 기쁘지 않다.
대체 왜지? 흥분과 고양감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분명 오늘은 기쁜 날이어야 할 텐데도 가슴 깊이 우러나는 것이 없다.


카메라 앞에서 허울뿐인 앞으로의 목표를 말한 후 친구들을 따라 밖으로 나선다.


아침이지만 선명한 햇살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언젠가 개겠지?
지금 억눌린 내 마음도 딱딱한 분위기인 여기서 벗어나면 훌훌 풀어버릴 수 있겠지?
별 것 아닐 것이라 위안하면서 밖으로, 인도로, 그리고 기숙사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기말 시험을 막 끝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책과 노트로 어질러져 있었다.
곧 집으로 향하는 까닭에 치워야만 하는 사실.
그렇지만 뭔가 아쉬워서 책상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야 만다.


“요우 양, 뭐 해?”


“아, 이거 찍어서 얼굴책에다가 올리고 싶어서.”


“엥? 저 널브러진 모습을 가지고 뭘 하려고?”


“그래도~ 내가 지냈던 흔적이잖아. 이 순간은 꼭 남기고 싶어.”


“으, 나는 이젠 보기만 해도 싫어... 어찌되었건 인턴 가는 건 좋겠네. 축하해.”


“으흐흐, 고마워.”


모두가 원하던 것.
그러니까 기뻐해야만 한다.
설령 내 마음이 텅 비었어도 기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집으로 가면 부모님께 축하받으려나?”


“응, 아마... 그렇겠지?”


“‘그렇겠지’라니! 틀림없이 좋아하시겠지. 인턴 들어가면 바로 그 회사에 취직하는 거나 마찬가지인거고, 한 자리는 반드시 따라서 나올 거고, 게다가 앞으로 연금 보장되고 보험 보장되고 정년까지 탄탄대로인데 대체 뭐가...”


속이 메슥거린다.
누가 제발 이 나불이 좀 조용히 시켜줘...


“아하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어. 다녀와.”


방으로부터 뛰쳐나온 후 화장실을 찾아 뛰었다.
변기를 찾은 즉시 문을 잠그고 게워낼 준비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속은 빙글빙글
머리는 어질어질
화장실에서 나와 마주치는 모든 시선은 나를 찔러보는 듯 했다.
2층 계단을 넘어 아래로 향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간신히 야외 테라스를 찾아 몸을 벽에 뉘일 수 있었다.
찬 공기가 등과 허리를 집어삼켰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문 너머 안쪽에 있는 시선이 더 두렵다.
난간 너머를 보면 넓은 공터를 사이에 두고 여러 건물들이 나를 마주봤다.
그나마 멀리 있는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낀다.


눈물이 샐 만큼 고통스러운 구역감이 가라앉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예약한 기차표를 날려먹은 덕분에 새롭게 구입한 열차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다.


휴대폰을 켜 보면


「와타나베 요우
10시간 전


우리학교 총회 끝!
또 다시 힘들었던 1년이 흘러가네...
그 동안 힘들었으니 앞으로 좋은 일들만 가득하겠지?


이제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여권 새로 발급받아야 할 거고
그리고 비누, 샴푸 있어야 할 거고 또 로션 바르던 거 가져가는 게 좋겠지
챙길 것투성이네 흥칫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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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미 치카 : 우와! 바다 밖으로 나가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거야?」


응. 어쨌거나 잘 해낸 모양이다.
조용하긴 해도 엄마한테 문자도 와 있고, 알릴 사람이랑 같이 기뻐해줄 사람은 많다.


[엄마☆ : 어디쯤이니? 저녁으로 뭐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엄마가 해 줄게.]


[학교에서 조금 늦어져서 늦게 출발할 것 같아요. 아마 8시에 출발할 듯해요.]


[엄마☆ : 많이 늦네. 무슨 일 있었던 거니?]


[별 건 아니고 기숙사 정리가 늦어져서 그래요. 걱정 ㄴㄴ]


[엄마☆ : 그렇다니 다행이네. 저녁은 어떻게 할 거니?]


[집에서 먹기엔 너무 늦을 것 같아서... 그냥 먹고 갈게요.]


[엄마☆ : 우리 딸 고생했는데 오늘 뭐 해 주지도 못하네. 그 대신에 맛있는 거 사먹고 와]


[넹~ 카드 맘껏 긁어도 되는 거죠??!!]


[엄마☆ : 너무 비싼 건 안 돼!]
[엄마☆ : (흥)]


[ㅋㅋㅋㅋㅋㅋ 알겠어요. 후딱 갈게요~]


[엄마☆ : 그래, 조심해서 와]


기차...
약간 늦은 것뿐이니까...
그러니까 누구의 탓도 아니니까...


그런데도 어께가 무거워지는 이 느낌은 뭐지.
그저 엄마랑 메시지 몇 개 주고받았을 뿐인데 라멘 맛이 떨어지는 건 뭐지.


젓가락을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기차를 타러 뛰었다.
넋을 놓고서 기차를 또 놓칠 뻔한 것은 비밀 아닌 비밀.



3일 후.


주변을 바라보면 온통 캐리어를 들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잠깐의 휴가는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고 나도 긴 줄의 한 성분이 되어있었다.


“몸조심하고 다녀와.”


“히히히, 바닷사람은 파도에 부서지지 않아요!”


“푸흡, 그래. 유료라도 상관없으니 연락해도 괜찮아. 항상 기다리고 있으니까.”


“넵. 시간 나면 얼굴책에다가 뭐 하는지 올릴 테니까 함 보세요. 재밌을 거예요.”


“그래. 소식 기다릴게.”


쭉 떨어진 탓에 인사는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여러 이유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정하기는 싫었다.


몇 달 동안이나 떨어졌다가 잠깐 만나고 다시 떨어지는 건데.
최소 3개월 정도는 해외에서 지낼 텐데.
그러면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된 걸까.
마치 누가 내 알맹이만 쏙 빼버린 것 마냥 허전하기 짝이 없다.
배가 고파서 그런 걸까?
맛없는 기내식을 꾸역꾸역 먹었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아침이었던 도쿄의 공항에서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훤한 낮이었다.
재밌네, 이미 기내식으로 저녁에 간식까지 먹었는데 또 식사를 해야 한다니.


검색과 짐 찾기를 마친 후 나와 함께하는 네 명은 우리를 맞이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외곽 해안도시에 자리 잡은 이 회사는 여러 상선을 보유하고 있어서 스케줄 관리가 빠듯하다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정보들을 듣긴 했지만 이미 사전조사를 통해 알고 있는 정보들이라 바깥 구경에 더 힘썼다.


별 다를 것 없는 도시.
겨울이고 눈이 왔던 것인지 간간히 보이는 하얗고 작은 언덕들.
어딘가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큰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제법 큰 도로로 들어서면 완전히 깡촌이... 아니, 안 돼지. 우치우라에 실례가 되니깐.
도로 너머에는 나무뿐인 얕은 산과 함께 꽤 큰 강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저게 강이 아니라 바다의 일부라는 거.
집 앞이 곧바로 바다라니, 누군가가 듣는다면 우헤헤하면서 좋아하겠지.


짧게만 느껴지는 시간 이후 숙소에 도착했다.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 너머에는 책에서 봤었던 거대한 항만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제 곧 저기로 들어가겠구나.
저걸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온 거야.
그러면



이제 뭘 해야 하지?



응?
그거야 당연하잖아.
저기서 인턴 성공적으로 마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거지.


그럼 됐잖아?
나야 평소처럼 열심히 할 거고.
그럼 목표 끝. 다 끝난 거 아냐?


일을 해야 끝나는 거라니까?


응. 그런데 평소에 이미 잘 해 왔잖아?
그럼 저것도 잘 할 거고.
쭉 잘 할 거잖아. 그럼 끝났네. 영원히.


영원히...?


응. 넌 다 이뤘어.


“아니...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니까.
단순히 여기로 온다는 것 말고 더 큰 목표가 있었으니까.
아빠가 했던 것이 재미있어보여서?
이건 아니다. 이걸 목표로 정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럼 뭐였지?
난 나중에 뭘 하고 싶었던 거지?


쉽게 답을 내지 못하다가 버스는 멈춰 섰고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갑자기 멈춘 덕에 박아버린 이마가 아프다...


내 짐을 챙기고 배정된 다인실로 들어간다.
탁 트여서 넓은 방, 그 가운데에는 작지 않은 원탁이 놓여있었다.
모서리에는 개인적으로 쓸 침대와 서랍장, 그리고 4개의 작은 전등이 놓였다.
물품 정리하는 것에는 유용하겠어.


시차 때문에 8시간은 더 깨어있었더니 저녁을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자기소개 시간에도 몇 명은 졸고 있었지.


“좀 이르지만 일찍 자자~ 어차피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시간 좀 있잖아.”


“안 돼요, 요우 언니. 오늘은 흐아아아아암... 아직 남았다고요.”


“너도 졸리잖아... 나머진 내일 하자.”


“그래, 요우 양 말대로 하자. 다들 힘들잖아?”


“““네~”””


하고서는 모두 잠에 빠져들었다.
이런 곳에 오면 자기 전에 각자 느낀 점을 말하기 마련인데 그럴 새도 없었다.
아마 모두들 지쳐있기 때문이겠지.
나도 포함해서 말이야.



다음날, 일요일


3개월 동안 지내야 하는 곳이기에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기숙사는 약간 내륙 쪽에 가까운 탓에 본사와는 거리가 꽤 있었다.
아직 정식 출입증을 받지 못해 건물 안쪽은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다만 정박한 배와 짐을 나르고 있는 사람들은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린 나중에 뭘 할까? 저런 거 하게 될까?”


“짐 나르는 거? 저건 다 물류 관리 업체에서 하는 걸걸.”


“정말로요? 요우 언니, 맞아요?”


...어?


“어? 어... 아마...도?”


“얘가 하는 말은 영 믿기지가 않는다니까요. 언니도 잘 모르면 어쩔 수 없지만...”


받아쳐지지 못한 갑작스러운 질문은 땅 속으로 묻혀갔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끝으로 현장 구경을 마치고 정 반대편에 있는 시내로 향했다.
공항이 있었던 도심과는 다르게 여기는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귀엽네.”


“응? 뭐가요?”


“저 건물이. 왠지 커피향이 나는데 들어가 볼까?”


“좋죠.”


짧은 메뉴 선택 이후에 들어온 카페는 뜨끈뜨끈한 덕에 몸이 녹아내리는 듯 했다.


약간의 잡담 끝에 고른 음료가 나왔고 손에 각자 한 병씩 들고 거리행진을 이어갔다.
한 모금 하면 이야깃거리가 나오는 것이 옛날 Aqours 때를 떠오르게 한다.
그 때는 아마 시간이 없어서 걸어 다니면서도 회의를 했었지 아마?


“내일부터 진짜 일 들어갈 텐데 이렇게 여유로운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재수 없는 소리! 주말마다 이렇게 모여서 커피 한 잔씩 하면 되잖아.”


“그래. 뭘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해.”


“글쎄다, 일하면 다들 바빠진다고 그러던 걸.”


“같이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쁘면 우리 방의 원탁은 왜 있었겠어. 정 힘들면 누구 한 명이 페트병 음료수라도 사오면 되잖아.”


“어차피 다 겪을 거 같이 하자고. 됐지?”


“응. 오키”


이야기는 그 뒤로 끊일 줄 몰랐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이랑 길게 대화하면서 웃어댄 날이었다.
아니, 아닌가... 어쩌면 마음속으로 그의 직감이 틀렸다고 발악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음 날.


집합 장소로 모인 우리 다섯 명은 6일간 교육을 받은 후 적성에 맞는 곳으로 이동한다.
첫째 날인 오늘은 공통교육.
둘째 날부터는 5개 구역을 돌아가면서 체험한다고.


선장, 조타수, 엔진실 관리, 선박 종합 관리, 안전규정으로 이루어진 5개 구역.
ppt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실체감이 없다.
그래도 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출력된 자료에 필기를 하다가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하루의 마무리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좀 무난하네.”


“응...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긴장한 건가?”


“내일부터가 진짜잖아.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이번에 필기한 거에서 궁금한 거 있는데 이 표 맞는 거야?”


“응, 맞는데... 글씨를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써?”


“뭐 어때서?”


“자, 이거 좀 봐봐요. 이렇게 깔끔한 거.”


“아니... 너도 형이랑 그다지 다를 게 없는데.”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한 판 붙었어...
이대로 끝나길 기다리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네.
확인을 위해서 노트를 폈는데


“와...”


“응? 뭔, 왜?”


“와타나베, 노트 함 봐도 돼?”


“응. 여기.”


“뭐야, 이렇게 깔끔한 필기는 처음 봐.”


“나도... 가 아니라, 필기해둔 표가 맞구나. 그럼 내가 이해를 잘못하고 있었던 건가?”


“와 세상에. 사진 찍어놔야지.” 찰칵


“눈으로 외워. 눈으로 외워.”


“이제 공부할 거니까 돌려줘!”



그리고 남은 5일이 시작됐다.


직감은 불행히도 정확했다.
5일 동안 모두가 함께 모이는 일은 없었다.


선장과 조타수 체험은 암기, 엔진실은 엔진 이론과 영단어, 선박 종합 관리는 얼마나 배에 익숙한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각 체험이 끝난 뒤면 다음 체험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선장과 조타수가 쓰는 용어와 행동 요령의 순서, 작업 방법 등을 암기하느라 머리가 빠질 뻔 했지.
마지막의 안전규정은 가장 쉬워 보이는 것이 가장 많이 알아야 해서 멘탈이 나가기도 했고.


고된 하루를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오래된 밀크티가 여러 층으로 분리된 것이 나의 기억을 때렸다.



토요일.
마지막 체험이 끝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끝났고 이제 자신의 특성화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포함한 5명 중 3명은 이미 멘토에게 불려가서 앞으로의 할 일을 전달받고 있겠지.


저녁으로 먹은 것이 초조함으로 떨리던 중 남은 후배 한 명이 나를 불렀다.


“요우 선배, 밖으로 나가지 않을래요.”


“그래, 밖으로 나가자.”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눈이 내렸다.
시야를 해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눈은 좋았으나 어두운 탓에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저는 요우 선배를 따라 여기까지 왔어요.”


이렇게나 난데없이?


“어, 응. 잘 됐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요우 선배는 정말 의지할만한 사람이에요. 뭐든지 성실하고, 노력파인데다가 사람을 이끄는 능력까지.”


그만 해.
나는 이제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저도 지금 하는 인턴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요.”


“다른 일? 어떤 거...”


“찾아보면 알게 되겠죠. 선배는 이전부터 여기에 몸담으려고 하셨잖아요. 꼭 정식 직원이 된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요.”


보통 중요한 프로그램을 그만 두는 경우에는 미안함이나 죄스러움이 담겨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요 녀석은 혼란스러움이 아닌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머리에서 걸러지지 않은 뭔가가 목구멍을 두들기고 있었다.
하지만 뭔지도 모르는 말을 함부로 내버리면 안 될 것 같다..
있는 힘껏 입을 틀어막은 후에 “응” 하나의 울림만을 내보냈다.


“저번 금요일에 학교랑 회사에다가 그만한다고 이야기해뒀고 승인 받았으니까 괜찮아요. 왜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계신 거예요?”


내 얼굴?
내 얼굴이 어떻다고 그런...


불이 꺼진 상가의 유리에 내 모습이 비쳤다.
거울에는 팔자주름과 울상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저게 내 본모습이구나.
아무것도 못하는 나는 후배의 결정 앞에서 이렇게나 무기력하구나.


“떠나는 건 난데 왜 선배가 그러고 있어요? 전 지금 후련해요. 그러니까 선배도 웃으면서 지내요.”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입술 가장자리에 힘을 주었다.
감정이라곤 하나도 담기지 않은 억지웃음, 웃는 방법도 잊어버렸다는 것이 슬펐다.
그랬더니 이 아이는 만족했다는 듯 미소 지으며 앞장서 걸었다.


“기숙사로 가요. 늦었잖아요.”


그래... 기숙사로 가야지.


왔던 길은 눈에 가려져 더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앞으로 헤쳐 걸었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잘도 걷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쫓아가질 못한다.
저 멀리로 멀어져가는 것은 무엇일까.
내 꿈?
내가 예전에 생각했었던 미래의 나 자신?
아니면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는 희망?
저 자신감은 어디에서 샘솟는 걸까.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순 없어 따라가려고 하지만 간격은 쌓이고 쌓여 거대해지고 말았다.
너무도 아득해보여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일요일 아침.


한 명이 떠난 것을 나머지 세 명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슬퍼해줬다.
그리고 나는 결국 불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멘토를 따라 기숙사를 떠난다고 한다.
나 혼자서 이 큰 방에 남는다.


그 사실이 나를 너무 아프게 만든다.


휴대폰을 켜고 메시지와 SNS를 살핀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멋지게 살고 있는데 나는 왜 이럴까.
나에게 아무나 관심 가져주면 안 될까?


내가 먼저 관심가져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당연한 건가...


월요일부터 떠나갈 친구들을 위해 작은 파티를 열었다.
작은 케이크 하나와 과자 몇 봉지.
초라한 상이었음에도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해줬다.
그들의 기쁨에 맞춰 입술 가장자리에 힘을 준다.


친구들을 보내준 후에 침대에 쓰러졌다.
아무런 힘도 안 난다.
뭔가에 잡아먹힌 듯 한 느낌이 났다.
끝도 없이 바닥으로 당겨지는 것 같은, 그러면서 둥실 떠오르는 것 같은.
이게 흘려듣기만 했던 타천이라는 건가...


이렇게나 어려운 해외유학, 인턴을 왔으면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



그리곤 월요일 아침.


남들은 모두 출근하는 시간.
그리고 나는 인턴백수.
와... 나는 잉요우구나...
잉여랑 요우를 합쳐서 잉요우...
하하... 하...


똑똑똑


어? 올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누구세요?”


“인사지원팀입니다. 잠깐 이야기 가능할까요?”


아! 이제 잘리는구나.
해고라는 말의 무게감이 제대로 와 닿았다.
아버지, 어머니... 딸은 갑니다...




“ㅋㅋㅋㅋㅋㅋ 잘리는 걸로 이해하셨다니. 소식 늦어서 죄송합니다.”


“진짜... 놀랐다니까요.”


사색이 되어 연 문 뒤에는 파일 한 개와 넓적한 종이봉투 한 장을 들고 선 외국인이 있었다.
뭔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나본지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힌 그는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면서 나를 달래기에 힘썼다.
그제야 좀 안심이 된 나는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선장 멘토는 알려드렸고... 다른 동기들 이사하는 것도 보셨죠? 요우 양도 옮겨갈 겁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여기는 혼자 쓰기에 외롭잖아요. 멀지 않은 1인실로. 찬성?”


“어... 네. 찬성.”


“좋아요. 그럼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사무실로 오세요. 멘토 붙여드릴게요.”


“넵. 안녕히 계세요.”


어제 오늘 진짜로... 황천길 세 번은 다닌 느낌이네.



화요일.


일을 한다는 것은 잘 하고 못 하는 것 이전에 환경이 나에게 맞아야만 하는 것이었나 보다.


멘토님은 친절했다.
회사는 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었고 편했다.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의 기대감이 나를 압박하기 때문인 것일까?
이전에 각인되었던 ‘해고’라는 단어의 압박감도 굉장했나 보다.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긴 커녕 심해지기만 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 덕분에 속이 뒤집어져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받아든 영어 문서는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와타나베 양, 오늘은 거기까지 하고 병원에 다녀오세요. 3일 전부터 심각했던 것 같은데.”


“요것만 다 해놓고 가겠습니다...”


“아뇨! 지금 바로 가세요. 당신 손해는 우리도 손해니까. 그리고 이것도 챙기고.”


“넷, 네... 감사합니다.”


“갔다가 푹 쉬어요. 카드는 내일 가져오시고.”


회사의 모든 분들이 걱정해줘서 오늘은 그만두고 병원이라도 다녀오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들었다.
인턴 따위에게 병원을 다녀오라고 법인 카드까지 빌려주다니...
몇 그램짜리 플라스틱 카드가 이렇게나 무거울 줄은 몰랐다.


버스를 타고 지정된 병원으로 향했다.
차멀미는 애들 장난 수준이고 뱃멀미보다도 더 힘든 고통을 억누르며 접수처로 향하면 내가 누군지 알아보곤 곧바로 준비시켜주었다.


“스트레스가 심하네.”


“네?”


“신체적인 문제는 없어요. 이건 아마... 마음의 병이겠죠. 정신과에서 상담을 좀 받아보면 좋을 텐데...”


마음의 병...
몸은 건강한데 마음의 병이...


“일하거나 공부하는 데 잘 안 풀리는 거라도 있어요?”


“어... 아뇨. 그런 건 없어요.”


“힘든 일이 있다면 주변에 알려요. 다 같이 돈 벌러 나왔는데 나만 아프면 안 되잖아요. 아주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좀 더 의지해 봐요.”


“네, 감사합니다.”


하고서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1층에서 고이 모셔둔 법인카드를 내밀었더니 상담으로 30크로네가 결제되었다.
현지에서 돈을 써 본 적이 없어 저게 얼마인지 모르겠네.
그저 비싼 값은 아니길 기도할 뿐이다.


알게 모르게 기다린 시간이 많았던 탓인지 벌써 어두워지는 시간.


영수증을 챙기려고 지갑을 열어보니 그 속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잠깐 병원 외출을 끝낸 카드만이 덩그러니.


입국할 때 환전해두었던 약간의 돈은 다 써버린 지 오래였고 몇몇 동전만이 자리를 지켰다.
엄마가 국제 통장에 용돈 있으니 부담 없이 쓰라고 하셨던 것 같지만 쓸 일이 없어 방치되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왜 쓸 일이 없었던 거지?
기숙사 식당에서 밥 먹고 물도 제공하니까.
빈 노트랑 필기구는 충분히 가져왔으니까.
샴푸랑 비누도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탓에 가져온 샤워용품은 의미가 없다.


같이 돈을 쓰면서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으니까.
지금까지 일만 했잖아.


일을 했다곤 해도 영 만족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특기를 발굴해서 나갔는데 나는?


억울하다.
나 스스로에게 억울하다.


“내 열정 돌려줘!”


기회만 보이면 무작정 들이박았던 패기


“내 열정 돌려주세요!!”


사람이 보이면 친해지고 싶은 마음.


“제발 제 열정 좀 돌려주세요!!!”


내가 했던 일에 가질 수 있었던 긍지.


“제가 가졌던 열정은 다 어디로 간 건가요!!!!”


미래는 반드시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


제발 돌아와 주세요, 과거의 저 자신.
이대로는 안 돼요.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어요.
그런데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아요.


나를 이끌었던 것이 사라지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진 다 여기 오기 위해서만 노력했던 건데 막상 이루어져버리니 여기서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정말로 모르겠어요...




2개월간의 일정 후 마지막 1달은 일본으로의 복귀 여정이다.


우리 다섯 명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수행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항구에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그 때까지 그저 내 역할을 다하면서 기다린다.


“여어, 꼬마선장, 약은 먹었나?”


“멀미약 대량으로 챙겼습니다.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조타수님.”


“명령만 내리셔.”


「여기는 선장 대행 와타나베 요우. 모든 선원들에게 알립니다.
이제 ****호는 노르웨이를 떠나 희망봉을 거쳐 일본으로 향합니다.
각자 자리를 잘 지켜주길 바라며, 저도 안전한 항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


“...?”


“뭐야, 꼬마선장?”


「...안전한 항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OK. 모두 제자리에.”


“엔진룸, 보고하세요.”


「예열 완료. 연료 공급 안정, 출력 안정.」


“화물칸 확인됐나요?”


「출입구 잠금 완료. 화물 고정했습니다.」


“고정 해제.”


“닻 올려. 그리고 다리 회수하고.”


「선박 폐쇄 완료. 폐쇄 완료.」


『좋은 여행하길 바란다, ****호.』


「신세졌다. 좋은 하루 보내도록.」


“이제... 가죠.”


「추진기 가동.」



조금씩 멀어지는 철탑이 보였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도시를 덮고 있었다.

하얗게 감싸여서 홀로 솟아 있는 철탑이 외로워보였다.

잠시 뒤의 망망대해를 나아갈 우리도 같은 처지가 되겠지.



온전한 혼자를 가르쳐주는 곳
텅 비어있는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 곳


나에겐 얼어붙은 노르웨이였다.




BGM : Nor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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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수 없는 비전은 인간을 이끈다.

한 번 닿아버린 비전은 인간을 만족으로 끌어내린다.



튜닝 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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