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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SS]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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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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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2017579
  • 2018-09-19 14:13:34

 “후우~”


 늦은 밤. 나는 침대에 주저앉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박스, 박스, 박스 뿐이다. 방금 전 마지막 옷을 박스에 담으며, 나와 함께 해왔던 옷가지나 책 같은 잡동사니들은 이제 모두 박스 안에 들어가 있었다. 박스 외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피아노와 침대 뿐. 이렇게까지 텅텅 비어있으니 마치 남의 방에 찾아 온 것처럼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10년 넘게 살아왔던 집인데도 말이지.


 “누마즈...”


 이사갈 동네의 이름을 읊어본다. 누마즈,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들어본 적 없는 것 같기도 한 도시. 과연 평생을 도쿄에서만 살아온 내가 그 곳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교외에 위치한 학생수도 적은 그런 고등학교라니...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저냥 수수한 외모에 특이한 점이라고는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점 뿐이겠지. 그래봐야 피아노가 그렇게 특이한 취미도 아니었고, 칸다에서 음악깨나 한다하는 애들이 모이는 오토노키자카에 입학한 뒤로는 남들보다는 조금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실력마저도 사실은 별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피아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피아노는 뚜껑이 닫힌채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역시, 매일같이 닦은 보람이 있다.

 그래. 나는 매일매일 피아노를 닦았다.

 이제는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까. 추억이 담긴 이 방을 떠나는 마지막 밤이니까 오늘 만큼은 괜찮지 않을까? 나는 손을 천천히 건반을 덮은 뚜껑 위로 옮겼다.


 짝짝짝짝....


 그 순간,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그 때처럼,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나. 관중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진다. 박수는 내가 피아노 앞의 의자에 앉을 때까지 이어지더니, 내가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서야 그쳤다. 건반을 내려다보고, 첫 음계를 연주하기 위해 손을 움직인다.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내려 피아노를 연주하려던 순간, 나는 주변의 정적이 신경쓰였다.

 관객석의 수 많은 사람들이 내 연주를 듣기 위해, 숨까지 죽여가며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과연 내 연주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걸까? 이런 평범한 연주가? 나는... 나는 어쩌면 저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있는건지도 몰라. 내 피아노를 듣고 욕을 하고 나가버리면 어떡하지? 화가 나서 무대 위로 뭔가를 던져버리면... 어떡하지? 


 1초, 2초, 3초...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빨리 첫 번째 음을 연주해야했다. 분명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그 기세를 몰아 끝까지 연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아노를, 그리고 그 곡을 셀 수 없이 많이 연주해 봤으니까. 나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을만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커져버린 불안감을 끊임없이 불어나, 이미 내 경험과, 내 용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아무리 손을 움직이려고 해도 제 자리에서 떨리기만 할 뿐,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를 않는다.


 4초, 5초...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따라 수 많은 시선이 나에게 날아든다. 불빛이 따가운건지, 시선이 따가운 건지 구분이 가지를 않는다. 괜찮아. 이렇게 굳어버린 게 처음은 아니니까, 심호흡을 하고 어서 첫 음을 눌러서 시작하기만 하면... 어서 첫 음을... 첫 음을...!


 ‘뭐 하는거야?’

 ‘악보를 잊어버리기라도 한건가?’


 하지만 여전히 내 손은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웅성거리는 소리 속에 섞여드는 조소.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은 눈물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다시 숙였다. 돌아서 나오는 등 뒤에서, 사람들이 소근대는 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나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 나는 피아노에서 황급히 손을 뗐다. 피아노를 치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돼 버리고 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글쎄. 지금 느끼는 이 불안감은 실패하지 않았을 때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피아노에서 떨어져, 침대에 돌아가 앉았다. 다른 생각. 다른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좀 좋아질지도 몰라.

 그래, 내가 이사갈 곳은 어떤 곳일까. 엄마가 말하기로는 바다가 보이는 예쁜 집이라던데. 근처에 유명한 소설가가 그 바다를 보면서 소설을 집필했던 료칸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 말을 하는 엄마의 표정이 생각난다. 어딘지 모르게 기대를 하는 듯 한 표정. 예술의 길을 걷는 딸을 위해 그런 에피소드가 얽힌 집을 보고 이사를 결심한 거겠지. 듣기로는 도심지에서 버스로 30분이나 걸리는, 전철도 없는 시골마을이라던데. 본인의 일도 있을텐데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 주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한없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누마즈에 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자. 분명 나도 그 유명한 소설가가 영감을 받았던 그 바다에서 나도 뭔가 얻을 수 있을지 몰라. 우선 거기에 도착하면 바다의 소리를 들어보자. 바다의 소리가, 나에게 뭔가를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 것 같았다. 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방이 텅 비어버린 탓인지, 숨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소리를 들으니 정말로 이제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이 됐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으로 다가간다. 도쿄의 거리는 아직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쩐지 기분이 묘하다. 내일 밤 부터는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내 기뻤던, 슬펐던 추억이 녹아있는 이 도시, 이 거리, 그리고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다녔던 오토노키자카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안녕, 오토노키자카.

 안녕,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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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카처럼 근거없이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가 있다면 애니 초반 리코처럼 근거없이 열등감을 가진 캐릭터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오토노키자카가 음악 특화 학교다보니까 능력자들도 많았고 그래서 더 주눅들어 있었고 압박감을 느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 리코가 누마즈에 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영향을 받아서

마지막에 와서는 다른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스토리라인이 참 좋다.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쓴 생일 축하 소설.

생일 축하해 리코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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