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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반 국산 SS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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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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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2011343
  • 2018-09-15 22: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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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다지 많은 감정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기던 내 심장이 마치 로켓(Locket, 상자)처럼,
 치카를 향한 감정으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  치카가 내게 스쿨 아이돌을 권유하며 검은 깃털을 건네줬던 날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내가 생각하는 타천사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해줬던 날. 나의 많은 것이 그녀의 반짝임에 힘입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던 날.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커다란 마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까지 마음이 헤프지 않았으리라.
 그래. 처음엔 사랑이라 부르기에 아직은 설익고, 조그마한 것이, ‘설렘’ 에 가까웠다.
 상대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사소한 것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면서 따스한 ‘첫설렘’ 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의 상자에 치카가 자리했다.

 

  어디 그것뿐이었을까. 첫설렘이 첫사랑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수하면서도 올곧게 나아가는 모습, 진지하고 성실하게 연습하는 모습, 모두를 이끌어주었던 밝고 긍정적인 모습까지.
 가을날의 거리에 낙엽이 쌓여가듯, 매순간 그녀를 향한 감정이 쌓여갔다.
 그러다가 문득, 나에게 있어 반짝임을 넘어 번뜩이는 치카의 모습이 너무나 눈부셨기 때문일까,
 늘 그녀에게 향하던 시야를 넓혀보기로 했다. 순수한 모습의 치카는 다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습하는 모습의 치카는 다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올곧게 나아가면서도 이따금씩 치카는 다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상자 안에 놓인 나의 첫사랑은 짝사랑이 되었다.

 

 고백을 하자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실을 모를 때에는 ‘용기’가 부족했고, 알고 있는 지금은 ‘자신’이 부족했다.
 
‘만약 고백에 실패해서, 친구라는 관계마저 부서진다면?’

 

  마음 따듯한 그녀는 나와 계속 친구로 지내줄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형편 좋은 관계는 오히려 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고백하기’가 아닌 ‘사랑하기 때문에 친구로 남기’를 선택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겁고, 대화하는 것만으로 기쁘고, 이따금씩 닿는 것만으로 행복하기에.

 

 사랑을 하고 있는 그녀를 사랑하기에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조차도 사랑할 수 있었다.

 

 우연히 들렀던 가게에서 ‘짝사랑을 이뤄주는 목걸이’라며 진열 돼있던 목걸이에 혹했던 이유도,
 굳이 따지자면 이 짝사랑이 원인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사람과 행복하길 빌어주고, 내 마음을 전해선 안 된다.
 숱하게 되뇌어서 잘 알고 있을 텐데, 우연히 발견했을 뿐인 그 목걸이를 마치 그것만을 위해 이 가게에 온 것처럼 구매했다.
 물론 짝사랑이 이뤄지길 바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내가 그 목걸이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정성스럽게 치카의 사진 오려낸 뒤, 목걸이에 담고 의식을 거행할 준비를 한다.
 방에 불을 끄고, 목걸이는 침대 옆에 살며시 놓아둔 채, 침대에 누웠다.
 아무리 나라도 이번 의식은 마음에 준비가 필요했다. 그렇게 잠시간 마음을 다잡은 나는 몸을 돌려 누운 뒤,
 의식을 행하기 위해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양손을 깍지 끼고 목걸이를 꼬옥 쥐었다.

 

“이게 마지막이니까… 딱 한 번만 더….”

 

 혼잣말을 하며 가슴속에 자리한 상자를 열어 그녀를 향하는 감정들을 하나씩 새어보았다,

 

 처음으로 동료가 되었던 날의 설렘.
 무턱대고라도 전하고 싶은 간절함.
 그럼에도 전할 수 없는 애절함.
 나날이 더해가는 사랑까지.

 

 그렇게 수많은 감정들을 하나, 또 하나, 빠짐없이 헤아리고 나서. 그제야 나는 상자를 닫는다,
 곧바로 한쪽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눈에서 표현하지 못한, 아니,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숨도 못 쉴 듯이 가슴이 아파오고, 그와 동시에 정말 새삼스러운 것을 깨닫고 말았다.

 

 내 상자는 이미 치카로 가득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베개를 적셔오지만, 내게 그 눈물을 닦을 자격은 없었다.
 영원토록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감정들이, 애잔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방해할 수 있을까.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쏟아진다. 하지만 약해지면 안 된다. 아직 의식이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표현하기를 망설이는 나의 고민에 끝을 고하듯이, 나는 나의 상자에 자물쇠를 걸었다.
 목걸이에도 같은 의식을 행한다. 고백하기를 원하는 내 나쁜 마음을 한 웅큼 뜯어내서, 작은 로켓에 가둬버렸다.
 이걸로 끝이다. 남은 건 이 아픔을 참아내는 것 뿐. 내가 그녀를 이토록 사랑하는 것은 오직 나만 알고 있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나만 끝까지 참는다면 이 세상에 없었던 일이 된 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분명 그럴 텐데. 어째서 나는

 

“치카…… 좋아…해…… 사랑…해……… 정말…… 사랑해…….”

 

 라며 울먹이는 걸까. 입가가 아플 정도로 강하게 막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혼잣말이 멎지 않는 걸까.
 그래, 이건 이제 막 의식을 마친 참이라서 그럴 것이다. 자물쇠를 막 잠근 후라 그저 갇힌 마음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뿐이다.
 게다가 평생 이 말을 전할 일은 없을 테니, 오늘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내가 아픈 만큼 치카가 행복해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나는 눈물로 얼룩진 시야에 다음날 아침의 햇살이 비출 때까지,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었다.

 의식이 효과는 탁월했다. 눈이 맞을 때마다 떨려오는 상자와 그 안 가득한 마음조차도 숨기고, 고백을 참고 참으며,
 나는 완벽하게 치카의 친구이자, 착한 후배이자, 아쿠아의 동료로서 그녀의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이거면 됐다.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가끔씩 의식이 약해진 듯, 굳게 잠근 상자가 떨려오고,
 목걸이의 로켓에 가둬둔 마음과 똑같은 마음이 자라날 때면, 그저 하룻밤 목걸이를 꼭 쥐고, 의식을 덧대면 해결되었다.
 내가 취할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취하며, 그녀의 곁에 남을 수 있었다.
 그랬을 텐데. 하루는 수업도, 연습도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치카가 나의 소매를 붙잡았다.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이 순간부터 나는 수많은 죄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 마치 수많은 죄를 짓고, 천계에서 추방된 타천사 요하네… 아니, 이게 아니라!
 무튼, 잘못한 것이 있다면, 욕심이 과했다는 것일까. 이 순간의 나는 그저 치카와의 기억을 하나라도 더 채우고 싶었다.
 되도록 아름답고, 밝은 것들로 채워지길 기대했다.
 결과적으론 기대를 충족하진 못했으나, 불만은 아니었다. 머릿속 그녀와의 기억들도,
 가슴속 상자에 가득한 그녀를 향한 감정들도, 무엇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그렇구나… 요우 선배랑 리리가 그런 관계였구나.”

 

 치카와의 대화에서 나는 그런 말을 했었다. 너무 그녀만을 보고 있었던 걸까.
 둘의 연애는 정말로 금시초문이었다. 놀랐다기보다는 그녀의 짝사랑이 나보다 가혹한 상황이라 애석하고, 안타까웠다.

 

“그거야 치카 선배가 고백하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어차피 그녀도 나도, 짝사랑으로 아파할 바에, 그녀라도 어서 행복해줬으면 했다. 그녀가 행복해진다면,
 나도 어느 정도는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우정을 연심으로라는 그거, 내가 해보면 어떨까?”
“리코쨩이 있으면 떨어뜨리면 되잖아?”
“사랑은 쟁취하는 거야. 그러므로 요시코쨩! 협력해줘!”

 

 죄가 있다면, 내 바로 앞에서 다른 사람을 원하는 치카의 얼굴을 미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며칠 밤을 숨도 못 쉴 만큼 눈물 쏟게 하는 이유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녀 덕분에 행복한 순간도 채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발! 부탁이야, 요시코쨩! 다음 곡은 다이아 씨랑 듀오로 만들어 줄 테니까!”
“리코쨩이 아니라도 내가 만들어 줄게!”
“도와줘어어어어, 요시코쨩~~~~!”

 

 치카가 다이아를 언급한 것이 적잖이 아프긴 했지만, 내 기대만큼 그녀안의 내 존재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내가 다이아를 좋아한다고 오인하고 있다면,
 둔한 그녀에게 내가 가슴속에 한가득 그녀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응. 분명 치카는 꿈에도 모르겠지.

 

“알았어, 알았으니까. 협력할게.”

 

 고민하는 척, 한손으로 얼굴을 가렸었던 이유는 지나치게 심각한 내 표정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치카의 사랑은 절친 커플인 요우와 리리를 갈라놓으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것일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순수한 그녀가 생각한 작전은 분명 그녀의 생각만큼 절친 커플에게 큰 충격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감정을 이입했다는 것이다.
 가련한 그녀의 모습에서 내가 그녀와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곤 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치카의 방법을 떠나서 말이다.
 그 탓에 결국 나는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치카는 테이블을 너머의 나를 껴안아왔다.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들이마신 치카의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녀는 분명 ‘감사’그 이상의 의미를 담지 않았을 것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야할 텐데,
 있는 그대로 그 감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미 나의 상자는 의식으로 봉해두었으니까.

 

 하지 마…. 그러지마… 그러면 의식이 무의해진단 말이야… 그걸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 
 평소대로라도 난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 이상은 다가오지 말아줘….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집도 반대 방향인 그녀는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그 사실에 마냥 기뻐했던 나는 너무 단순한 걸까.
 그녀의 작전에서 우려했던 악독함은 간데없이, 순수함만이 묻어났다.
 그저 예상이 적중한 것 뿐 인 것을 그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기뻐한 나는 너무 요란스러운 걸까.
 그녀의 손에서 건네받은 목걸이를 보며 처음 보는 양 아무렇지 않게 칭찬하고, 질문하던 나는 연기에 재능이 있는 걸까.
 아무래도 이건 정말인 것 같다. 고백을 가둬둔 나의 목걸이와 똑같은 목걸이를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며,
 사색에 잠겼으면서, 처음 보는 척 칭찬하고, 질문까지 하며, 평소의 나를 가장했다.
 치카는 이 목걸이를 보며 무슨 상상을 했을까. 이걸 요우에게 선물하며 고백하고, 요우가 눈물 날 정도로 기뻐하며,
 고백을 받아들이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쩐지 가슴이 아파왔다. 그것은 치카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결말일 텐데.
 시험하듯이, 치카와 요우가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째서인지 나도 그 상상 속에서 치카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덜컥. 하며 가슴이 아파오는 것이, 마치 쇳덩이에 부딪힌 것 같은 고통이었다.
 한 번 더, 치카와 요우가 서로 포옹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여전히 나는 멀리서 둘 사람이 겹쳐지는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덜컥. 덜컥. 덜컥.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치카의 옆모습인데, 그녀가 요우가 맺어진다.
 그걸로 좋았을 텐데, 지금은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아팠다.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자신할 수조차 없었다.
 정신을 차리니 버스에 올라타는 요우의 모습이 보인다. 어제 카페에서부터 방금 전까지의 연기에 비하면 여동생 연기는 부끄럽긴 했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연기하는 데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정말 그럴까? ‘연기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요우를 바라보는 나의 뒤에 있는 치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동자는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 그녀의 바로 앞에 있는 것은 나인데. 그녀에게 나는 그저 요우를 가리는 방해물일 뿐일까.
 요우와 리리를 갈라 놓는다느니 어쩌니 해도, 그녀는 그저 부끄러워하는 요우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모처럼 내가 이렇게 바로 앞에 있는데. 부끄러워도 그녀를 위해 협력하고, 이렇게 열심히 역할에 임하고 있는데.
 등으로 느껴지는 시선이 미미한 것이, 틀림없이 치카는 요우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죄가 있다면, 친구로서 만족하기로 했으면서 각오가 부족했다는 것일까. 나는 결국 그녀에게 질투를 향하고 말았다.

 그녀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작전을 완수하고 버스에서 내리면, 그녀는 오로지 요우 이야기만 할 것도 알고 있다.

 

 덜컥. 덜컥. 덜컥.

 

 그럼에도 가슴에 피멍이 늘어간다. 허나, 막바지에 이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가방에 덧붙어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분명 여기 어디쯤에 넣어뒀을 텐데. 뒤적이다 목걸이를 꺼낸다.
 치카의 진심을 상징하는 목걸이도, 요우만을 바라보는 치카도, 그리고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며 위선을 떨던 내 모습도.
 부족한 각오로 버텨내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결국 급한 마음 때문에 실수하고 말았다. 가방에 덧붙은 주머니에 완전히 똑같은 목걸이가 두 개 들어있다는 것을 모른 채,
 치카의 목걸이가 아닌, 고백을 가둬놓은 나의 목걸이를 주고 말았다. 이 시점에선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이 상황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내가 잘못 전해준 목걸이에 감동한 요우가 나를 껴안고, 그 모습을 리리가 목격한다.
 단단히 토라진 리리가 왜인지 요우가 아닌 나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왔지만, 치카는 정말 이걸로 둘을 사이를 갈라놓을 셈이었을까.
 순진한 그녀다웠다.
 버스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오른다. 치카는 그 와중에도 저 멀리의 요우를 바라보고 있다. 과연 그녀가 가장 먼저 어떤 말을 꺼낼지 궁금했다.
 어쩌면 요우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먼저 꺼내주진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아아~ 좋겠다~ 요우쨩의 모닝 허그라니…”

 

 혹시나 내가 먼저 그녀의 시선을 돌려본다면 어떨까. 이렇게까지 한다면 아무리 그녀라도 나에게 시선을 돌려주지 않을까.

 

“으으… 리리의 시선에 베이는 것 같았어…. 등굣길인데 하굣길보다 힘들어….”
“다이아 씨?”

 

 또다시 몇 번을 덜컥이며 가슴에 쇳덩어리가 부딪히는 아픔이 덮쳐온다. 알고 있었을 텐데.

‘어쩌면’에 상처받고, ‘혹시나’에 슬퍼하는 것은 금기였을 텐데.

 지금처럼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는데, 왜 계속 혼자 기대하고, 상상하며, 혼자 상처받는 걸까.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요시코쨩은 다이아 씨를 참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그제야 멀리서 요우와 리리에게 합류하는 다이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만해도 기대를 배신당한 고통에 눈만 뜨고 있었지,
 시야가 까맣게 가려져 있었다. 그랬지. 그녀는 내가 다이아를 좋아하는 줄로 알고 있었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이아라고 오인하는 그녀를 보며 아프면서도 한편으로 안도하던 어제까지의 내가 떠오른다.
 그랬었던 내게 대체 하루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같은 현상에 이렇게나 다른 감정을 느끼는 걸까.

 

“요시코쨩!”
“고마워. 에헤헤.”

 

 치카가 나를 보고 웃는다.
 알고 있다. 이 미소는 온전히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말하자면 요우를 위한 자신의 부탁에 성심껏 응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미소다.
 어제의 포옹과 다를 것이 없다.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초라했다. 그런데도,

 마치 그녀가 내 마음에 보답해주는 것 같아서, 마냥 행복했다.

 점심시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치카와 헤어진다. 이제서야 겨우 심적으로 평온을 찾는 느낌이 들었을 때,
 뭔가가 뒤바뀐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평소의 나라면 그녀를 눈에 담는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마음이 따듯해지고, 평온해졌는데,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서 뭔가 그녀를 만나선 안 될 것 같은 예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고, 나는 치카를 만나 음악실 앞에 도착했다. 창밖에는 흐린 하늘이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와 리리의 피아노 선율이 합쳐진 이 소리를 리리가 듣는다면 금새 새로운 신곡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것보다 내가 비를 맞지 않다니. 드문 일이네.
 치카는 다음 작전으로 내게 리리를 꼬시라고 말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리얼 데몬도 될 수 있으니까!”

 

 그녀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기 때문에, 나는 멈칫했다. 그녀가 눈치 채지 못했다.
 내가 느끼는 것처럼 큰 의미를 담은 말은 아니겠지만, 당황한 나는 적당히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어떤 나쁜 짓인들 못할까. 리리를 꼬시라는 치카의 말에 내가 생각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요우를 유혹하는 내 모습, 그리고 이제 곧 리리를 유혹할 내 모습, 그 두 가지에서 정말 그녀는 무엇도 느끼지 못할까.
 그녀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을 향해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단 한순간도 가슴 시린 적이 없을까.

 그렇게 나는 치카의 상자를 엿보려 했다. 그녀의 상자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나의 상자가 그렇듯 그녀의 상자도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득차서, 정녕 내가 채워질 자리는 조금도 없는 걸까?

 그렇게 나쁜 의문을 품었다. 이미 그에 대한 대답은 내 안에서 나름대로 정해두었을 텐데.
 무슨 변덕인지, 나는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 생각자체가 사랑하기에 그녀의 곁에서 인내하자는 나의 선택에 반하는 행위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문을 열고 음악실에 들어선다. 일부러 문에 약간의 틈을 남길 수 있도록 힘을 조절해서 닫았기에,
 그 틈을 통해 대화는 물론 리리와 나의 모습도 조금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리리를 유혹하고,
 후에 치카에게 직접적으로 감상을 물어보자고 다짐했다.

 

“어쩨서 난 안 되는데? 나도 같은 길티 키스유닛으로 의지가 되고 서로 별명으로 부를 만큼 친근하고, 웃는 모습에 자신 있는데. 대체 왜!?”
 
 리리가 내게 연정이 없는 것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리리의 상자에는 요우가 있을 테니까. 나와 리리는 분명한 친구다.
 그럼에도 리리는 내게 질투하고 있다. 어쩌면 리리의 지금 반응이 친구를 향한 질투의 예가 아닐까.
 답을 찾기도 전에 리리에게 잡아먹힐 것 같았다. 이게 아니다. 최대한 내가 리리를 유혹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야한다.
 질투할만한 일도 하지 않고 치카에게 질투했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하는 수 없이 리리의 약점을 공략하기로 했다. 이거라면 치카도 조금은 나를 봐줄 것이다.

 

“………욧쨩”

 

 문 옆의 벽에 기댄 채 주눅이 들어 있던 내가 리리의 목소리를 신호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는다.
 갑작스런 내 반격에 그녀는 움찔하며 놀란다. 잠시 힘이 빠져있을 터인 그녀의 몸에 다소 힘을 가해,
 내가 기대고 있던 벽에 밀어붙인다.

 

“요요요, 욧쨩!?”
“아직도 모르겠어? 리리…? 나는 사이좋은 리리와 요우 선배를…”

 

 말을 맺지 못했다. 치카의 상태를 확인하려 슬쩍 곁눈질로 문을 봤다. 아무도 없었다. 기척조차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 사라진 걸까? 왜 가버린 걸까? 설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닐까. 굳이 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안 돼…. 이러면 안 된다구, 욧쨩… 나한테는 요우쨩이…… 응?”

 아니, 나는 치카를 잘 알고 있다. 치카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자꾸 나쁜 생각만 드는 걸까?
 애초에, 리리의 상자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인데, 치카는 어째서 그토록 멀쩡한 걸까? 설마 정말로…
 그녀의 상자에는 내 자리 따윈 추호도 없는 걸까?

 

“욧쨩?”

 

 덜컥 덜컥 덜컥 덜컥 덜컥 덜컥

 

 급습해오는 고통에 숨이 막힌다. 모든 게 의심스럽지만, 분명 치카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나서 물어보자, 어쩌면도, 혹시나도 금기니까. 혼자 생각하고 상처받지 말고, 일단…

 

“욧쨩!”

 

 드물게 큰 소리를 내는 리리의 목소리에, 계속 문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그녀에게 옮긴다.
 측은한 표정의 그녀는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를 낸다.

 

“안 돼지… 이러면. 욧쨩이 좋아하는 사람은 치카쨩이잖아…?”
“………어떻게 알았어?”
“쿡, 아마 치카쨩만 빼고 다 알고 있을 걸?”

 

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

 

 아니야. 그래. 섣불리 판단하지 마. 혹시나도 어쩌면도 금기라고 했잖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치카에 대해 세세한 것까지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하잖아? 치카가 널 이용했다던가, 친구이하의 동료라던가. 그런 게 아니야. 죽어도 아니야.

 

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

 

 …의심하지 말라고…? 그럼 지금까지의 일을 다 설명해볼래? 리리조차 날 질투했는데 치카는…?

 작전이라고 리리를 꼬시라면서 사라진 거는? 아쿠아 전원이 아는데 혼자만 모른다고?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

 

“미안… 리리. 나 중요한 일이 생각나서… 가볼게.”
“에? 잠깐, 욧쨩!?”

 

 음악실을 나서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달렸다. 손톱을 손바닥에 찔러 넣듯이 주먹을 꼭 쥐고 달린다.
 냉정해지자. 제발, 넘겨짚지 마. 무엇도 확실한 건 없으니까. 의심은 잠시 내려두고, 교실 책상에라도 앉아서 잠시 진정하자.
 바로 치카를 만나서 묻고 싶지만, 지금 그녀를 만나면 내 입이 사고를 칠지도 몰라.
 교실에 도착한다. 점심 시간이라 그럴까, 아직 사람이 많지 않다. 루비도 하나마루도 보이지 않는다.
 내 책상에 가서 앉았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아니, 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아플 순 없을 거다. 그래. 갈갈이 찢어진 거다.
 질투가 의심으로 바뀌어버린 걸까. 계속 혼자서는 해답을 내선 안 되는 물음을 되풀이한다.
 답답함에 호흡이 막힌다.
 내가 틀린 거지? 오해지…? 싫어…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너를 사랑하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거야…?
 왜…? 아니야, 내가 잘 못했어…. 미안해…. 이제 질투도 안하고 의심도 안 할 테니까. 아니라고 해줘, 아니라고 듣고 싶어….
 네 목소리로 아니라고, 듣고 싶어…. 제발, 곁에 있게만 해줘… 이제 욕심 부리지 않을 테니까… 부탁이야……….
 절실함을 간절함으로 바꾸기 위해, 치카의 얼굴이라도 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가방에서 목걸이를 꺼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로켓을 열자 웃고 있어야 할 터인 치카가 아닌, 요우가 보인다.
 생각하기보다 먼저 행동했다. 격발된 탄환처럼 자리를 박차고 달린다. 목걸이가 바뀌긴 했으나, 아직 절망하기엔 이르다.
 요우니까, 요우라면 로켓 목걸이를 모를 수도 있다. 아직 사진을 본 게 아니라면, 다시 바꾸면 된다.
 변명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엄마에게 줄 목걸이하고 헷갈렸다고 하자. 그럼 이미 한 번 열어본 게 아닌 이상 별말 없이 바꿔줄 거다.
 벌써 2학년 교실이 보인다. 만약 이 안에 없다면 어디로 갔을까. 부실? 아니면 옥상……….
 요우가 있다. 그리고 옆에 치카가 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냉정하게 추측하는 것을 잊은 나의 눈에 그 상황은 그저 치카가 나를 이용해 리리를 따돌리고 요우와 노닥거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텐데. 요우의 손엔 내 목걸이의 로켓이 활짝 열려있다.
 의식으로서 그 안에 치카의 봉인했던 고백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결국 나는 치카에게 실수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

 

 반사적으로 눈물부터 흘렀다. 울지 마. 네가 잘한 게 뭐 있다고 우는 거야? 다 네가 잘못한 거잖아?
 자신을 책망해 봐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끝났다. 나 때문에 나의 사랑은 결딴나버렸다. 내가 나의 사랑을 죽였다. 살해 현장에서 도망치듯, 나는 힘껏 달려 그 자리를 떠났다.
 빛을 볼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끝이 나다니…….
 내가 내 다리를 부러뜨리려는 듯이 달렸다. 자신에게 벌을 주는 것 같이 아프도록 빠르게 도약했다.
 어디로 가야할까. 일단 치카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자. 그리고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버리자.
 전학도 불사하고, 그녀에게서 멀어지자.
 모든 일을 망쳐버린 주제에 곧바로 따라오지 않는 치카에게 서운해 하는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 때,

 

“빨리 안 쫓아가아아!!!”

 

 목소리로 학교를 무너뜨리려는 듯, 소리치는 요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치카가 나를 쫓아오겠지.
 왜 안심하는 걸까. 이제 그녀와는 끝났을 텐데. 그 이전에, 그녀는 나를 따라잡지도 못 할 텐데.
 나무 타기나 쿠로사와 자매를 따라잡는 내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거다. 달리기는 본래부터 못하는 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몇 개월 동안 아쿠아의 강도 높은 체력단련도 소화해왔다. 적어도 늦게 출발한 그녀에게 따라잡힐 일은 없겠지.
 가방을 놓고 왔다는 것. 아직 수업이 남아있다는 것. 모든 게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교문을 나가면 이제 그녀와 나는 영원히 작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

 

 한 걸음마다 가슴이 아파온다. 시퍼렇게 멍든 상처위에 쇳덩이가 수 없이 부딪히고, 상처에서 피가 흐르듯이, 눈물이 쏟아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아직도 치카가 나에게 스쿨 아이돌을 권유했던 그 날에 살고 있다고 해도,
 이제 이별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내 사랑을 전하고 말았으니까.

 

 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

 

 그녀가 나를 쫓아오는 이유도 내 사랑을 전했기 때문이다. 고백을 받았으니 대답을 할 생각이겠지.
 그 대답을 듣는다면 내가 죽인 내 사랑과 같이 처지가 될 것이기에 나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

 

 학교를 나오자 쏟아지는 빗물이 순식간에 옷과 얼굴을 적셔온다. 아니, 지금 내 눈에서 흐르는 것은 정말 빗물이 섞인 걸까.
 내 눈가를 타고 흐르는 모든 게 눈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실 앞에서 오늘은 젖지 않은 것에 안도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굳이 비가 오지 않았어도, 나는 젖을 운명이 아니었을까, 비가 아니라도, 땀과 눈물 때문에.

 

 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덜컥……

 

 교문을 지나서 그저 달린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녀의 곁에서 그녀가 사랑을 이루고, 행복해지는 것.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난 충분히 만족할 텐데. 혹시, 그건 내 생각인 게 아니었을까?
 애초에 정말로 내가 나의 결의에 따라 행동했다면, 이런 파국에 치달을 일은 없었을 거다.
 악한 나는 그제야 내가 저지른 수많은 죄를 떠올릴 수 있었다.

 

 더 많은 치카와의 기억을 욕심낸 죄를 처음으로 모든 일이 시작되었고
 그녀의 얼굴을 미워할 수 없었던 죄로 그녀에게 협력했고,
 친구로 남을 각오가 부족한 죄로 그녀의 시선을 돌려보려고 했으며
 치카의 상자를 엿보려 한 죄 덕분에 나는 결국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하나하나가 내가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피해갈 수 있는 죄였다.
 하지만 오직 치카만을 보고 있던 나는 단 하나의 죄도 피해가지 못한 채 차근차근 죄를 쌓아갔다.
 그 결과, 그녀의 친구로 남자는 내 결의는 뒤틀렸고, 내 진심은 친구가 아닌 연인이 되기를 원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도 내 가슴을 울려오는 이 고통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고통은 내 상자를 잠근 자물쇠가 부딪히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널 사랑하고 있다고, 자물쇠를 부수고, 굳게 잠긴 상자를 열어 숨김없이 그녀에게 표현하길 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코, 내 결의가 약한 것은 아니리라. 따지자면,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너무나 강했던 것이 아닐까.
 애초에, 이 사단이 난건 정말 나 혼자만의 잘못일까? 악하기에 비할 데 없는 나는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치카는 왜 하필 자신을 사랑하는 나에게 하소연한 걸까.
 치카는 왜 하필 자신을 사랑하는 나에게 협력을 구한 걸까.
 치카는 왜 버스에서도, 음악실에서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은 걸까.
 치카는 왜 자신의 상자에 나를 채워주지 않은 걸까.

 

 그렇게 요우를 사랑하는 걸까? 사랑을 하고 있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왜일까,
 사랑하는 그녀가 요우와 손을 잡고, 껴안고, 입을 맞추는 것을 상상하자,
 누군가 내 상자에 기름을 퍼붓고, 불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 누군가는 요우와 많이 닮아있다.
 치카가 밉다.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치카가 밉다. 함께일 때도 외롭게 하던 치카가 밉다.
 대체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나로는 부족한 걸까?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치카의 상자 속 한 구석에서, 쉼표만큼의 작은 자리만이라도 허락해줬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을 텐데! 단 한번만이라도! 나를 허락해준다면! 적어도 요우만큼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는데!
 도대체 왜? 왜!? 왜에!! 왜에!!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알았다고! 알았다고! 알았다고! 나는…! 나는…! 치카를 갖고 싶어! 치카와 맺어지고 싶어!
 딱 한 번만 치카를 마음껏 껴안아보고 싶었다고! 근데 어쩔 수가 없잖아!? 치카는 요우를 좋아하니까!!
 치카랑 요우는 몇 년을 함께했어! 요우가득차서 내 자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고! 그런데 나보고… 나보고…

 

“나보고 어쩌라고!! 어쩌란 거냐고오!!!”

 

 한참을 빗속을 달리며 나는 목청껏 소리쳤다.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소리치며 비워낸다.
 그러지 않으면 상자 속에서 부풀어 오른 치카를 향한 감정들이 그렇게 단단하지도 않은 내 상자에 균열을 내고,
 이내 조각나버릴 것 같았다.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눈물은 더욱 거세진다. 역시 아까의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내 눈가를 타고 흐르는 모든 액체가 눈물이었다. 평생 흘릴 눈물을 지금 흘리고 있다.

 이제… 그만하자.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이렇게 아플 바에는, 처음부터… 사랑하지 말았으면 했다. 사랑하는 만큼 아픈 것일 테니,
 모조리 비워내자, 비워내고, 또 비워내자. 그리고선 오늘의 기억을 상자에 새겨 넣고, 사랑 따윈 없이, 평생 혼자서 살자.
 이렇게 아프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줄곧 달리고 있던 몸을 한적한 도로에 멈춰 세운다. 나는 눈을 감는다. 누군가 나를 치어, 이 고통을 끝내줬으면 했다.

 

“요시코쨩!”

 

 등 뒤에서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아니. 좋아했던 목소리가 들려와서, 눈을 뜨고 소리를 향했다.
 거기엔 나와 똑같이 비를 맞고, 빗물에 섞인 눈물을 흘리는 그녀가 보인다.

 아니,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정말 빗물이 섞인 걸까. 그녀의 눈가를 타고 흐르는 모든 게 눈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습이 슬펐기에 오히려, 나는 모든 것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천천히 다가오며 입술을 떼는 그녀를 떠나보내야 한다.
 착한 사람이니까. 상냥한 사람이니까. 어디까지고 계속 나를 쫓아올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여기서 끝내야 한다.

 

“할 얘기가 있어! 요시코쨩.”
“난 없어. 그러니까 이제 따라오지 마.”
“잠깐이면 되니까, 얘기를…”
“필요 없어. 가.”
“그러니까, 정말 잠깐…”
“가 라니까!!”

 

 다가오는 그녀가 멈춘다. 처음으로 치카에게 소리를 질렀다. 손이 떨려오고, 목소리도 떨려온다.
 눈물이 턱 끝에서 떨어지는 만큼 다시 흘러나오고, 가슴도 아프다.
 소리치며 비워냈던 마음이 두 배로 다시 채워지는 것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나는 양손으로 내 상자를 누르듯,
 가슴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래도 역부족이라 나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호소한다.

 

“이제 그만 할래………. 아퍼………. 너무 아프단 말이야……. 이렇게 아플 바에는 그냥……

 포기 할게……. 그러니까… 다가오지 마……. 제발…….”

 치카에게서 등을 돌린다. 이걸로 끝이다. 나는 몰라도, 그녀는 이제 나에 대한 마음을 분명히 비워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치부하고, 몇 걸음 걸어가자,

 

“츠시마 요시코쨩!”

 

 아무래도 그녀는 나에게 꼭 거절의 말을 전해야겠나보다. 차라리 들어주자. 들어주면 내 감정도 깔끔하게 최후를 맞을 수 있을 테니.
 그녀를 사랑하다 그녀에게 최후를 맞는 것. 가장 행복한 최후가 될 테니까.
 내 감정도 이제 여한은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녀를 볼 수 있었으니까.

 

“저한테… 고백해 주실래요?”

 

 눈물이 멎는다. 거절도, 수락도 아니라, 그녀는 나에게 고백을 요청해왔다. 내 꼴이 그렇게 말이 아닌 걸까. 이런 장난까지 칠 정도로.
 치카는 눈물을 닦고, 표정을 진지하게 가다듬고선 다시 목소리를 낸다.

 

“으응, 고백해 주세요! 저한테, 츠시마 요시코가!”

 

 그녀의 손에 내 목걸이가 보인다. 처음 의식을 통해 로켓에 나의 고백을 봉인한 그 날.
 왜 그 날 나는 그토록 눈물 쏟으며 봉인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건 그녀는 요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야…? 치카 선배가 좋아하는 건 요우 선배잖아 그런데 어떻게…”
“괜찮아. 내가 요우쨩을 좋아해도, 요시코쨩이 나를 좋아한다면 고백해도 되는 거야.”

 

 그녀는 그저 내가 좋아한다면 고백해도 된다며 억지를 부린다. 게다가… 역시 부정은 하지 않는구나.

 

“안 돼….”
“아, 기다려!”

 

 계속 그녀의 이곳에 있으면 정말로 그녀에게 고백할 것 같아서 달렸다. 몸이 지친 나머지 아까보다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지금이라면… 지금 고백한다면 내가 그토록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있겠지만, 그토록 원하는 아름다운 연인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치카 선배가 좋아하는 건 요우 선배잖아!?”

 달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고백해달라는 말에 기세등등해져서는, 제일 물어선 안 되는 말을 했는데,
 내내 가슴을 울려대던 자물쇠가 조금 잠잠해진 것 같다.

 

“아니야! 그건 내가 요시코쨩을 좋아한다는 걸 몰랐던 거야! 내가 나빴던 거니까! 요시코쨩은 괜찮아!

 날 좋아하는 모습 그대로 고백하면 돼!”

 치카가 처음으로 스쿨 아이돌을 권유한 날이 떠올랐다. 아쿠아 다섯명이 나를 쫓아오며 나를 설득했던 날.

 

“무슨 소리야 대체!?”
“버스에서도 요시코쨩을 바라보고 있었고! 음악실에서도 난 요시코쨩만 보고 있었어!

 요우쨩이 두 사람을 보면 안 되니까. 같이 교실로 간 거고!”

 그 날에도 치카는 끈질기게 나에게 따라붙으며 나를 설득했다. 왜였을까. 왜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나에게 권유했던 걸까.
 그것은 진심으로 내가 아쿠아에 합류하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 말이야! 리코쨩이랑 요우쨩이 어떻게 서로의 마음이 이어질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연인이 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알게 됐어!”

“제발, 그만 좀 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외쳤다. 손의 떨림도 목소리의 떨림도 멈췄는데, 내지른 목소리는 아까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그녀가 무릎을 잡고, 상체를 지탱하며 숨을 고르고 있다. 무릎과 팔꿈치의 상처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빗속을 뚫고, 상처 입은 몸으로, 나를 위해 여기까지 쫓아와줬다.

 

“자신이 좋아한다는 걸 고백했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상대가 받아들일지 말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지 없는지도 상관없이,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표현했고, 정말 사랑한다는 걸 고백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치카의 목소리가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해준다. 그리고 일순간, 카페에서 우리가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어째서 치카 선배가 아니라 리코쨩이었을까? 라던가!”
“그거야 치카 선배가 고백하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리리가 더 매력적이다! 라기 보단,

 리리가 먼저 고백해서 우정을 연심으로 바꾼 덕에 사귀게 된 거 아닐까?”

 그래… 내가 그토록 원하는 해답은 간단한 것이었다. 고백하는 것.
 그런데도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나는 나 자신은 물론 치카까지 상처 입히며 이만큼이나 멀리 돌아왔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가 정말 좋아했던, 아니 정말 좋아하는 그녀가 입술을 떼며, 또렷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요시코쨩도 포기하면 안 되는 거야! 아직… 나를 사랑한다면!”

 

 거의 항상 옆모습만 보여주던 그녀가 지금은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처음인 듯한 그녀의 앞모습에,
 그녀가 내게 고백해 달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수개월동안 표현하는 것을 참고, 또 참아온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괜찮겠어…? 여자끼리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가끔씩 질투도 하고 의심도 많은데…?”
“내가 잘 행동할게!”
“한밤중에 보고 싶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언제든지 달려가 줄게! 지금처럼!”

 

 아아. 정말 그 날과 똑같다. 치카가 내게 검은 깃털을 건네주었던 날.
 내 상자에 그녀가 선물해준 ‘첫설렘’이 자리한 날. 치카의 손에 구원받았던 날.

 

“그러니까.”

 

 치카가 내게 다가와, 내 목걸이를 쥔 손을 내민다. 전부터 열려있던 로켓에 그녀의 사진이 보인다.
 상자를 잠근 자물쇠가 격하게 떨려온다.

 

“으…… 읍… 흡………”

 목걸이를 받는다. 눈물을 참고, 또 참으며 목걸이를 걸어주기 위해 그녀의 목 뒤로 손을 넘긴다.
 그녀도 눈물을 참고 있는 걸까. 이따금씩 새는 소리가 더욱 애절하게 들린다.
 그렇게 목걸이 걸어주자, 뒤이어 그녀는 별안간 목소리를 낸다.

 

“아프게 해서…… 미안해… 요시코쨩….”

 

 자물쇠가 부서진다. 봉인돼있던 상자가 활짝 열리고, 치카를 닮은 빛이 뿜어 나온다.
 그와 동시에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뒤이어 그녀도 눈물을 쏟아낸다.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러자 담아두는 것만으로 죄였던 이 마음을 남김없이 받아주듯,
 지치고 아픈 몸으로 그녀는 굳세게 버텨주었다. 그리고 평생 상자 밖을 나올 수 없을 줄 알았던, 사랑을 처음으로 표현해본다.

 

“치카…… 좋아…해…… 사랑…해……… 정말…… 사랑해…….”

 

 침대에서 혼자 중얼거리던 것에 너무 익숙해졌나, 치카도 나도 사랑한다며 대꾸하는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려왔다.
 그래서 현실이란 것을 인지하려는 듯, 그녀를 아프도록 껴안았다.
 문득 눈을 떠보니 태양이 떠있었다. 구름을 가르듯, 햇볕을 내리쬐고 있었다. 빗물에 젖은 둘의 포옹은 차가워야 할 텐데,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따듯했고, 치카의 심장소리와 내 심장소리가 겹쳐진다.
 내 상자에 짝사랑이란 감정이 사라지고, ‘맞사랑’이란 감정이 채워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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