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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반 [ss/니지동] 질투 블루
글쓴이
Myoso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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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2009557
  • 2018-09-13 07:40:54


작가 ㅡ つくだに


링크 ㅡ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9527783


작가 모음 ㅡ つくだに



원래는 비온다고 해서 'Rain'을 할랬는데, 이번에 세츠나 곡이 공개된다니깐 세츠나 대사 있는 걸로 해옴


자각 없는 카스미와 자각 있는 카린의 이야기


댓글 항상 고맙고 재밌게 읽어줘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세츠나쨩 늦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올려다보며 아유무 선배가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에 따라가듯 나도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어디서든 팔 것 같은(좋게 말하면 심플하고, 나쁘게 말하면 평범한) 벽시계의 바늘은 오후 세 시를 지나고 있었다.

「정말 늦네, 세츠나」

「이제 기다리다 지쳐서 돌아가 버린게 아닐까요오~?」

 한숨을 쉬면서 적당히 말하는 나의 옆에 앉아 있던 카린 선배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건 아니겠지. 카스미쨩도 아니고」

「잠깐 그거 무슨 의미인가요~. 카스미도 일을 내버려두고 돌아가지 않는다고요!」

 완곡한 말투로 흘려 넘길 수 없는 말을 한 카린 선배를 으으 노려보았다.

 평소 같으면 이미 리뷰의 일이 시작했을 시간대. 그런데 부실에 놓여 있는 커다란 모니터 앞에는 게임기는커녕 리뷰에 관한 지시서도 영상을 찍기 위한 기재도 아무 것도 없다. 이 일을 시작한지 꽤 되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전격조 부실에는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의기양양하게 방에 들어갔더니 평소 같으면 빈틈없이 세팅되어 있는 장비가 아무 것도 없이 실내가 텅 비어 있어서, 「어, 어라…? 설마 날짜를 착각하고 온 건가?」 하고 순간 초조했다. 

 잠시 후 같은 전격조 멤버인 세츠나 선배와 카린 선배, 그리고 어째서인지 패미통 조의 아유무 선배도 왔으니(패미통의 부활동이 오늘은 휴일이라 이쪽으로 놀러 온 것 같다. 「놀러 왔습니다!」 하고 아유무 선배가 방에 들어온 순간 「켁」 하고 생각한 것은 비밀) 나의 착각이 아니었던 것은 바로 알았지만. 

 분명히 방송의 날인데도 부실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네 명이서 얼굴을 마주보고 있자 뭔가 어수선한 모습으로 찾아온 몇 명의 직원에게 대기 명령을 받았다.

 분주한 그 모습에서 무슨 트러블이 있는 것이라고 왠지 이해가 갔다. 그래서 「뭔가 있었던 거겠지」 하곤 이야기를 나누며 시키는 대로 얌전히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삼심분이 지나도 편집부에서는 전혀 아무런 소식도 없다. 

「이래선 대기라기보다 방치네요ㅡ」

 한숨과 함께 푸념을 하자, 「그러네요…」 하고 맞장구를 친 세츠나 선배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대로 종종 문을 향해 걸어간다.

「세츠나쨩, 어디로 가는 거야?」

 손잡이에 손을 댄 세츠나 선배에게 아유무 선배가 이상한 듯이 말을 걸었다. 손잡이를 쥔 채로 세츠나 선배가 가볍게 돌아보았다. 

「편집부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오려고 해서요」

「혼자서 괜찮나요ㅡ? 카스밍도 함께 갈까요?」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도 질렸고, 이렇게나 귀여운 카스미를 방치한 것에 대해서 한 마디 불평을 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미소를 띄운 채 세츠나 선배가 머리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금방 돌아올 테니깐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말한 세츠나 선배가 부실을 나간 것은 십오 분 정도 전의 일. 금방 돌아온다고 말했는데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틱탁틱탁 시간만 지나간다.

 스태프에게서도 세츠나 선배에게서도 방치 당하다니 정말 어떻게 된 걸까.

 하아.

 무의식중에 한숨이 흘러나온다.

 물론, 염원하던 아이돌로서의 일이니깐 이정도로 돌아가거나 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기운이 빠진다.

「모처럼 일이라서 힘내서 왔는데ㅡ…」

 화면 너머에서도 나의 귀여움이 120퍼센트 전해지도록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여러 가지 준비를 해왔다. 그런데 이런 방치 플레이를 당하다니, 그런 거 듣지 못했어. 텐션이 와르르 무너진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역시 카스미쨩. 프로 의식이 높네」

 관심이 있는 것처럼 카린 선배가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의 「카스미쨩도 아니고」 라고 말한 것과 정반대인 기분이 들지만 칭찬을 받아서 나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추락했던 텐션이 조금 오른다.

「좀 더 좀ㅡ 더 칭찬해도 괜찮다구요」

「네네」

 팟하고 얼굴을 들어 「흐흠」 하고 턱에 손을 대더니 갑자기 착하지 착하지 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카린 선배는 항상 나를 아이 취급한다. 그게 개인적으로 꽤나 불만이기도 하지만, 이 쓰다듬는 방법은 아이 취급을 한다기보다 어느 쪽이냐면 애완동물 다루는 것에 가까운 듯한….

「그ㅡ만ㅡ둬 주세요ㅡ. 카스미는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라고요!」

 으르렁 위협하며 이리저리 쓰다듬는 손에서 도망친다. 갈 곳을 잃은 손을 흔들흔들 거리며 카린 선배가 생긋 웃었다.

「아, 그랬어? 귀여운 고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귀여운 고양이.

 그 말에 아주 나쁘지도 않은 기분이 되어 몸의 움직임을 딱 멈춘다.

「…뭐 카스밍이 그렇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렇지? 좋ㅡ아 착하다 착해」

「아ㅡ! 그러니깐…!」

 간단히 붙잡혀서 다시 이리저리 쓰다듬 당한다. 쓰다듬을 거라면 적어도 좀 더 다정하게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다. 모처럼 예쁘게 세팅하고 온 앞머리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잠, 잠깐만요 카린 선배」

「응?」

「쓰다듬는게 거칠다고요! 좀 더 상냥하게 해주세요!」

 흐트러진 앞머리를 고치며 작게 외치자 카린 선배가 일부러 그러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냥하게 라니?」

 얼빠진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는 그녀에게 매서운 시선으로 향하며 푸르스름한 머리에 손을 댄다. 

 머리끝까지 느슨한 웨이브를 이루고 있는 카린 선배의 머리는 찰랑찰랑해서 만지면 항상 깜짝 놀란다(덤으로 좋은 냄새도 나고. 무슨 샴푸를 쓰는걸까. 다음번에 넌지시 물어보자)

「그러니깐 이런 느낌으로…」

 매끈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쓰다듬어 본다. 몇 번 반복하자 카린 선배는 기분이 좋은지 입가가 느슨해진다. … 쓰다듬는 걸로 기뻐하다니 강아지 같아. 이런 거 본인에게 말하면 성희롱적인 의미로 무엇을 당할지 모르니깐 아무 말 없이 손을 움직인다.

 내 손짓을 흉내내듯이, 내 머리 위에 놓여 있던 카린 선배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음ㅡ. 이렇게?」

「아니에요. 이렇게 라고요, 이렇게!」

 이리저리 말다툼을 하며 서로의 머리를 쓰다듬는 우리들을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채 보고 있던 아유무 선배가 쿡쿡 웃었다.

「두 사람 다 사이좋네ㅡ」

 웃으며 유유히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카린 선배와는 사이가 좋다고 생각한다. 선배지만 이야기하기 편하고, 내게는 없는 어른스러움이나 차분한 분위기에는 동경심마저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이좋네」 란 말을 듣고 「네!」 라고 즉답하는 것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상하다고 할까 부끄럽다고 할까 쑥스럽다고 할까…. 그렇다고 부끄러움을 감추려 「그저 그래요」 라던가 「별로 그러지도 않아요」 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왠지….

「…음ㅡ, 그런가요」

 애매하게 대답하며 카린 선배를 본다. 이쪽을 보고 있던 그녀의 푸른 눈동자와 눈이 맞았다. 그것과 동시에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 

「아, 돌아왔다」

 아유무 선배의 그 말에, 거의 반사적으로 카린 선배의 머리 위에 올렸던 손을 팍 떼고 문 쪽으로 돌아섰다. 한 박자 늦게 내 머리 위에 놓여있던 카린 선배의 손도 천천히 떨어져간다. 

「…세츠나 어땠어?」

 방으로 들어온 세츠나 선배에게 카린 선배가 묻는다.

 아유무 선배, 카린 선배, 그리고 나로 시선을 옮긴 세츠나 선배가 「아ㅡ…」 하고 어쩐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싫은 예감. 

「기재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더 기다려 달라는 것 같아요」

「조금이라니 어느 정도인가요?」

「음ㅡ 그러네요…. 아마 한 시간 정도라고…」

「에에ㅡ! 그렇게나ㅡ…」

 노골적으로 불만에 가득한 목소리를 내던 나에게 세츠나 선배가 난처한 듯한 미소를 띠고 달래듯이 내 어깨를 툭 가볍게 건드렸다.

「뭐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금방이에요」

「하아…그렇네요…」

 기운 없는 맞장구를 치고 옆에 둔 팩 주스를 잡았다. 가벼워. 좌우로 흔들어 봐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멋지게 텅 비었다. 

 한 시간 동안 기다리기만 하는 거라면 딱히 마실 것이 없어도 괜찮지만 이 일은 리뷰를 하면서 꽤나 말을 하기 때문에 마실 것이 없는 것은 괴롭다. 이 사이에 사러 갔다 오자.

 아래층 라운ㅡ지에 있는 자판기에 갈까, 건물을 나서 몇 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갈까. 잠시 생각하고 나서 편의점에 가기로 했다. 지갑을 들고 일어선다. 「어디에 가는 거야?」 라는 듯 한 눈으로 카린 선배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신장적으로 항상 내가 올려다보는 쪽이라서 카린 선배가 올려다보는 것은 조금 신선. 

「마실 것이 떨어져서 잠깐 편의점에 다녀올게요」

 지갑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자 카린 선배가 이상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자판기가 아니라 편의점?」

「마실 거랑 그리고 달달한 것도 사오려고 생각해서요. 마침 세 시의 간식 시간이라서요」

「아아」

「카린 선배도 필요한가요? 간식. 상냥한 카스밍이 덤으로 사드릴게요ㅡ」

「그러네, 그럼 가끔씩 상냥한 카스미쨩에게 부탁해볼까」

「"가끔씩"은 필요 없다구요…. 그래서, 무엇이 좋나요? 화과자? 양과자? 아, 아니면 스낵?」

「뭐든지 좋아. 카스미쨩의 초이스로」

「에ㅡ, 괜찮지만 나중에 불평하지 말아주세요」 

 이럴 때의 『맡김』 은 꽤 곤란하다. 카린 선배가 좋아하는 건 뭘까. 우유를 좋아한다고 전에 말했던 것 같지만 간식으로 우유는 아무리 그래도 있을 수 없다. 우유랑 관련 있는 유제품이라던가? 유제품이면… 요구르트?

 아, 잠시만. 이건 찬스일지도 모른다. 카스미쨩 초이스의 이상한 맛의 과자로 카린 선배를 꺄악~ 하게 할…! (꺄악~ 원문 ギャフンと)

「네타적인 건 말고」

 마음을 읽은 듯한 카린 선배의 날카로운 한 마디에 움찔 어깨가 튀어올랐다.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요…. 이상한 맛의 과자를 사온다던가 그럴 리 없잖아요~…」

 두리번두리번 시선을 헤엄치며 대답한다. 카린 선배의 눈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가늘어졌다.

 장난의 찬스라고 생각했었는데 무리, 완전히 간파당하고 있어…. 식은땀을 흘리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태평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는 세츠나 선배와 아유무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세, 세츠나 선배랑 아유무 선배는 뭔가 필요 없으신가요?」

「아, 저는 괜찮아요」

 이쪽을 바라본 세츠나 선배가 부드럽게 손을 저었다.

「나도ㅡ. 아까 포키 먹었으니깐」

「그런가요. 그럼 저 잠깐 다녀올게요」

 한 손에 지갑을 들고 허둥지둥 문으로 가려고 하자,

「아, 기다려 카스미쨩」

 갑자기 아유무 선배가 불러세웠다.

「뭔가요?」

「밖 흐렸으니깐 뭔가 걸치고 가는 편이 좋을거야. 아, 그래 내 가디언을 빌려줄게」

 그렇게 말하며 일어선 아유무 선배가, 의자 등받이에 걸어두었던 연한 핑크색 가디건을 잡았다.

「에, 괜찮다고요 별로. 금방 다녀올꺼고」

「괜찮다니깐 사양하지마」

「아니 사양하는 게 아니라…」

「카스미쨩 잠깐 팔 들어줄래?」

「아유무 선배 카스미의 이야기를 듣고 있나요…? 랄까 스스로 입을게요」

 가디건을 펼치고 스탠바이 하고 있는 아유무 선배를 진심으로 싫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유무 선배는 솔직히 조금 서투르다. 절대 지고 싶지 않은 라이벌이라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를 대하는 이 애지중지 모드가…. 「카스미쨩, 카스미쨩」 하며 과보호다 싶을 정도로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니깐 적대심을 불태우고 있는 자신과의 온도차를 느껴서 항상 미묘한 기분이 된다. 

 똑같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해주지 않아도 좋으니깐(아니 실은 생각해줬으면 하지만) 이 취급은 정말 어떻게 안 되는걸까. 잠자코 꿈틀꿈틀 가디건에 팔을 넣는다.

「카스미쨩 핑크도 어울리네」

 그런 나의 심정은 1미리도 눈치 채지 못한 모습의 아유무 선배가 생긋 웃었다. 스트레이트한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서둘러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히며 으스댄다. 

「뭐~ 카스밍은 어떤 색이든 어울릴 만큼 초~ 귀여우니까요~!」

 이런 말을 한 뒤의 전개는 대략 알고 있다. 전격조의 평소의 흐름이라면 태클을 걸거나 혹은 방치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유무 선배를 힐끔 쳐다봤다. 눈을 깜빡거린 그녀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

「응, 귀여워」

 설마했던 전면 긍정.

 괴롭힘 당하는 것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탓에 이런 반응을 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난처하다. 으스댄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서히 뺨에 열이 모여든다.

「우…」

 신음하며 세츠나 선배에게 눈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보고 있는 그녀가 나의 시선에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눈에 힘을 줬다.

 평소에 없던 진지한 표정. 곤란해 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고 도와주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역시나 세츠나 선배, 하고 기대의 시선을 향하고 있자 가슴 앞에서 불끈 주먹을 쥔 그녀가 힘차게 말했다.

「귀여워요, 카스미씨!」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지원은커녕 추가타를 먹었다.

 천연스러운 세츠나 선배에게 기대를 한 것이 잘못이었다. 머리를 감싸고 싶은 마음에 카린 선배 쪽을 본다. 턱을 괸 채로 이쪽을 보고 있던 그녀는 나와 시선이 맞자 아주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방치ㅡ. 

 전격조의 선배들은 믿을 수 없다. 이제 이렇게 되었다면 아유무 선배에게 이 이상으로 페이스가 흐트러지기 전에 얼른 편의점으로 갈까.

「아, 그럼 카스미는…」

 그렇게 말한 시점에서 어쩐지 불안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유무 선배가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돈은 가지고 있어?」

 가지고 있어? 고 뭐고 지갑이라면 아까부터 계속 왼손에 쥐고 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넘어지지 않아요. 아유무 선배는 카시미를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정말로 이 과보호는 대체 뭘까. 혹시 아유무 선배는 나와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잊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기가 막힌다는 듯이 대답을 하자 그녀는 「아」 작게 중얼거리며 얼버무리려는 듯 웃었다.

「미, 미안해. 카스미쨩을 보고 있으면 그만 이것저것 애지중지 하게 되어버려서…」

「하아…. 그렇다면 카스미가 아니라 리나를 돌봐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같은 패미통 조이고」

「리나쨩은 착실하니깐…」

「기다려 주세요, 그럼 카스미가 착실하지 않은 멍청이 같잖아요!」

「그, 그런 건 아니라고? 그래도 카스미쨩은 눈을 뗄 수 없다고 할까 뭐라고 할까…」

 유감이에요! 라고 화내는 내게 아유무 선배가 횡설수설 대답했다.

 눈을 뗄 수 없다니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생각은 없는데. 눈썹을 내리고 웃고 있는 아유무 선배를 으그그… 노려보았다.

「아유무씨는 카스미씨의 언니 같네요」

 지금의 대화의 어디를 봐야 그런 감상이 나오는 걸까 싶은 말을 한 것은 아까 나에게 멋진 추가타를 가한 세츠나 선배.

 아유무 선배가 언니…? 잠깐 상상한 것만으로도 질렸다. 라이벌이 언니가 된다니 절대로 싫다. 그런 내 반응과는 대도적으로 「엣!」 하고 소리를 높인 아유무 선배가 아주 싫은 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뺨에 한 손을 댔다.

「…그러려나?」

「왜 부끄러워하는 건가요…. 랄까 저 이제 다녀와도 되나요?」

 이 상태로 아유무 선배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편의점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한숨을 내쉬며 허리에 한 손을 댔다.

「아, 응. 다녀와」

 여전히 수줍어하는 표정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인 아유무 선배를 곁눈질로 보며 문을 열고 부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를 몇 걸음 걷자 뒤에서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해!」 라는 아유무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듣지 못한 것으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을 향했다.

  

  

  

  

 망설인 끝에 카린 선배의 간식은 한정 프리미엄 우유 푸딩으로 했다.

 "프리미엄" 이라고 붙어 있고 우유도 들어있고 아마 맛있을 것 같다. 「맛있어. 고마워, 카스미쨩」 이라고 기뻐하는 카린 선배를 상상하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 항상 나를 괴롭히는 카린 선배를 이상한 과자로 꺄악~! 하게 할 예정이었지만, 뭐 이것도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자기 것으로 롤 케이크와 바나나 우유도 사서 서둘러 전격조 부실로 돌아왔다.

「다녀왔어요ㅡ」

 편의점 봉투를 흔들며 부실로 들어가자 곧바로 「카스미쨩 어서와!」 하고 아유무 선배가 달려왔다. 카린 선배도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지만, 아유무 선배도 꽤나 강아지 같다.

「이상한 사람이 말을 걸지 않았어? 괜찮아?」

「아무리 카스밍이 귀엽다지만 단 몇 분 외출한 것만으로 이상한 사람을 조우하진 않는다고요. …저기, 그런데 아유무 선배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가요?」

 아유무 선배가 있으면 여러 가지로 난처하다. 그런 마음이 목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그만 똑하고 흘러나와 버렸다. 「아」 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늦었다.

 충격을 받은 듯 아유무 선배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에…. 카스미쨩은 내가 있으면 싫어…?」

「아, 아니 별로 그런 건 아니지만요…. 앗, 가디건 감사해요」

「웅…」

 나한테 돌려받은 가디건을 바라보며 아유무 선배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카스미쨩, 역시 내가 싫어…?」

 아유무 선배는 싫지 않다. 서투른 것이다. 『싫다』 와 『서투르다』는 비슷한 것 같지만 크게 다르다. 그래도 그것을 내 입으로 설명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게…」

 어떻게 얼버무릴지 말을 고르고 있자 타이밍 좋게 아유무 선배의 스커트 주머니에서 포코포코 효과음이 울렸다.

「앗! 아유무 선배 전화! 전화에요!! 어서 받지 않으면!」

 자자! 하고 재촉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유무 선배가 느린 동작으로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냈다.

「아, 아이쨩한테서다」

 그렇게 중얼거리고 화면을 탭해서 스마트폰에 귀를 댔다.

「여보세요, 아이쨩 무슨 일이야? 응. …에, 그래? 응, 알았어. 그럼 바로 그쪽으로 갈게」

 몇 분 정도의 통화를 마친 아유무 선배가 「하아」 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무슨 일인가요?」

 들은 대로라면 아이 선배에게 호출당한 것 같은데.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아유무 선배가 스마트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패미통 쪽은 쉬는 날이었을텐데 갑자기 미팅이 있으니깐 서둘러 오라고…」

「우와ㅡ, 큰일이네요. 그렇다면 바로 패미통 부실로 가지 않으면ㅡ」

 명백히 국어책 읽기 같은 나의 대사에, 아유무 선배가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슬픈 눈으로 나를 봤다.

「카스미쨩…」

 ……역시 죄책감이 쑤신다.

「자, 자요, 저기까지 배웅해드릴테니깐!」

「정말…?」

「네…」

 결국, "저기까지"를 지나쳐 패미통 건물 근처까지 바래다주게 되었다.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걸까.

 터벅터벅 전격조 부실로 돌아오자 기재 문제가 겨우 해결된 듯 스태프들이 기재의 설치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이런, 겨우 일이네. 아직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정신적으로 지쳤다. 의자에 앉아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분주히 준비를 하고 있는 스태프들의 등을 바라봤다. 

 아, 간식 먹을 기회를 놓쳤다. …뭐 됐나, 냉장고에 넣어 두고(부실에는 비치품인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다) 나중에 먹자. 그런 일을 머릿속으로 띄엄띄엄 생각하고 있자 문득 시선을 느꼈다.

 돌아본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카린 선배와 눈이 맞았다. 「뭔가요?」 하고 눈으로 물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린 선배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나서, 살짝 시선을 내렸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이어서는 또 다음 주에! 라고 세츠나 선배가 마무리를 지으며 리뷰가 끝났다. 평소대로 아무 문제없었다, 라고 하고 싶지만 문제가 있었다.

 리뷰의 도중부터 「어라?」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절대로 이상하다.

 모니터의 전원을 끄고 컨트롤러를 정리하고 있는 세츠나 선배의 등 뒤로 살며시 다가갔다.

「세츠나 선배 잠시…」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자 세츠나 선배도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죽였다.

「…무슨 일 있나요?」

「저기, 카린 선배 이상하지 않나요?」

 의자에 앉은 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카린 선배를 힐끔 바라봤다. 「에?」 하고 중얼거린 세츠나 선배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런가요?」

「그렇다고요! 말도 별로 하지 않았고, 아까 카스미가 장난을 쳐도 아무런 태클도 하지 않고…」

「듣고 보니 확실히…. 카스미씨가 『여기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라며 벼랑에서 뛰어내려서 게임 오버가 되었을 때도 『카스밍의 매력에 모두 헤롱헤롱이네요~!』 라고 발언했을 때도 리액션이 없었네요…」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카린 선배의 리액션을 기대하고 일부러 이것저것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무엇을 해도 방치ㅡ. 평소였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괴롭히는데….

「…이상하죠?」

「이상하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세츠나 선배가 카린 선배 쪽을 바라봤다.

 이렇게 둘이서 시선을 보내도 카린 선배는 눈치 챈 기색도 없이 멍하니 어딘가를 보고 있다. 이런 카린 선배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세츠나 선배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평소랑 같았는데 말이에요」

 카린 선배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세츠나 선배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농담도 하고 내 머리를 애완동물처럼 이리 저리 쓰다듬었으니깐, 모습이 이상하게 된 것은 역시 게임을 시작했을 즘부터이다. 

「음ㅡ…」

 세츠나 선배가 신음을 내며 팔짱을 꼈다. 그대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뭔가 떠오른 것처럼 작게 소리를 지른 세츠나 선배가 팟 엄지를 세웠다.

「사실은 감기에 걸려서 상대가 나쁘다던가」

「에ㅡ. 그런 느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요…」

 카린 선배는 기침도 하지 않고 재채기도 하지 않는다.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는 느낌으로 멍하니 있지만 상태가 나쁜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감기, 라기 보단 싫은 일이 있었다던가 풀이 죽어있다던가 그런 분위기에 가까운 것 같다. …아니, 카린 선배의 일이니깐 단순히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섹시에 대해서 궁리하고 있었다는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음ㅡ, 다시 세츠나 선배가 신음을 냈다.

「감기가 아니라면 어떻게 된 걸까요…」

「새로운 섹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던가」

「아ㅡ…」

 납득하는가 했더니 세츠나 선배가 금방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런 걸로 저런 식으로 될까요?」

「아니…」

 아무리 카린 선배의 머릿속의 절반이 섹시로 이루어져있다고 해도 역시 그건 아닌가.

 얼굴을 마주하고 침묵한다. 세츠나 선배가 천천히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풀었다.

「…알겠어요. 저 잠깐 물어보고 올게요!」

「에, 물어보고 온다니…. 세, 세츠나 선배?」

 대체 뭐가 「알겠어요」 인거야, 말릴 틈도 없이 긴 머리를 흔들며 세츠나 선배가 카린 선배의 곁으로 걸어갔다.

「카린씨」

 카린 선배의 바로 눈앞에 멈춰서 세츠나 선배가 카린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멍하니 있던 카린 선배가 깜짝 놀란 듯 세츠나 선배를 올려보았다.

「응, 왜?」

「상태가 좋지 않은 건가요?」

「에? 」

 스트레이트한 질문에 카린 선배가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감기에 걸렸다던가…」

「매우 건강한데…. 왜?」

「아, 저기…, 어쩐지 카린씨가 기운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고개를 작게 갸웃거린 카린 선배에게 세츠나 선배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세츠나 선배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나서 카린 선배가 살짝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걱정해준거야? 고마워」

 카린 선배가 일어나 세츠나 선배의 뺨에 손을 댔다.

「세츠나는 귀엽네」

 얼굴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얼굴을 붉히며 「엣」 이나 「저기」 같은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당황하고 있는 세츠나 선배. 그 반응을 즐기고 있는 듯한 카린 선배. 사이좋다고 할까, 뭔가 수상한 분위기. 순간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 카스미도! 카스미도 『카린 선배가 어떻게 된 걸까ㅡ』 라고 생각했어요!」

 손을 들고 두 사람의 사이로 거세게 비집고 들어간다. 그러자, 아까까지의 웃음은 어디론가. 카린 선배가 왠지 나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래」

 짧게 한 마디 그리고, 다시 침묵.

「엣!?」

 지나치게 담백한 그 반응에 무심코 큰 소리를 낸다.

「뭔가요 그 반응은! 세츠나 선배와 너무 다르지 않나요!? 이상해요, 불공평해요!!」

 너무나도 다른 대우에 불쾌한 기분이 증폭되고 소용돌이친다.

 불만스럽게 다가간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카린 선배가 「그렇게 말해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카스미쨩이 나쁜거야」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려서 씩씩거리고 있던 감정이 갑자기 침착해진다.

「나쁘다니 뭐가요…」

 "나쁘다"고 원망 받을 것 같은 일, 오늘은 하지 않았다.

 이상한 맛의 과자는 사지 않았고 신발에 콧페빵도 넣지 않았다. 괴문서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머리 위에 몇 개의 물음표가 섰다.

 설명을 요구하려고 그녀의 팔에 닿아 봐도 카린 선배는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카린 선배?」

 상태를 엿보며 이름을 불러본다. 카린 선배는 역시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외면한 채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카린 선배. 저기요…」

 눈앞에서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봐도 반응이 없다.

 여기까지 오면 방치라기보다 무시이다. 방치라면 아직 괜찮지만, 무시는 싫다. 좋지않다. 정색하며 눈썹을 찌푸리자,

「카스미씨」

 어느샌가 방 구석으로 이동했던 세츠나 선배가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했다.

 카린 선배를 한 번 쳐다보고 세츠나 선배쪽으로 다가갔다. 곁으로 가자 곧장 세츠나 선배가 내 귓가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카린씨는 카스미씨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아니, 카스미 지금 엄청나게 무시당했는데요…」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는 세츠나 선배를 질렸다는 듯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의 카린 선배의 태도는 어떻게 봐도 「이야기 하고 싶어」 라는 느낌이 아니다. 저건 굳이 말하자면 「말을 걸지 말아줘」 라고 생각하는데….

 말을 걸지 말아줘, 인가. 왜일까. 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쌀쌀맞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몰라요」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내게 세츠나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에~? 카린 선배는 어린애 같은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후훗, 뭐 저는 조금 자리를 비울테니 두 분이서 이야기 해보는 건 어떨까요?」

「자리를 비우다니, 어디에 가는 건가요?」

 생각을 하려는 듯 세츠나 선배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편의점?」

「그 차림으로…?」

 세츠나 선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언제나 무대 의상을 입고 있다(이 일을 시작하고 그런대로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세츠나 선배의 사복도 교복도 본 적이 없다)

 화려한 무대 의상은 어떻게 생각해도 편의점에는 미스 매치. 이상한 의미로 주목을 끌 것 같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 세츠나 선배가 재밌다는듯 웃었다.

「농담이에요. 편집부에 일이 끝났다고 전하러 가는 김에 다음번의 게임 내용이나 여러 가지 물어보고 올게요」

 그런 말과 윙크를 남기고 세츠나 선배는 서둘러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렇게 넓지 않은 방에는 나와 카린 선배 단 둘. 

 …어색해.

 카린 선배 상대로 이렇게 어색하다고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이야기 해보라고 들었지만 쌀쌀맞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 탓인지 엄청 말을 걸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이대로 잠자코 가만히 서있을 수도 없다. 지금 상황을 내일이나 모레까지 미루고 싶지 않고, 아까의 「카스미쨩이 나쁜거야」의 의미도 신경 쓰인다.

 좋아, 용기를 내서 카린 선배를 향해서 다가갔다.

「아ㅡ…, 기재 문제라던가 여러 가지 있었지만 무사히 일이 끝나서 다행이네요」

 무난하게 그렇게 말을 걸자 외면하고 있던 카린 선배가 재빨리 나를 바라봤다.

「응」

 …응~?

 그런 짧은 맞장구로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대로 다시 침묵에 빠질 것 같아서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아니, 여기서 물러서면 안 돼. 주눅들 것 같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래 간식은 드셨나요? 우유 푸딩 사왔다구요. 카린 선배 우유 좋아했죠. 게다가, 어쩜 이건 그냥 우유 푸딩이 아니에요! 프리미엄이에요, 프리미엄! 프리미엄이란 말이 붙으면 왠지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에요ㅡ」

 평소의 세 배 정도 빠르게 말을 하며 냉장고에서 우유 푸딩과 롤 케이크를 꺼내서 카린 선배의 옆에 앉았다. 여기요, 하며 우유 푸딩을 그녀의 앞에 놓고 모습을 살핀다.

「우유…」

 우유 푸딩으로 시선을 떨어뜨린 카린 선배가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우유를 좋아한다고 말했던가?」

「말했다고요. 그, 휴일의 스케줄을 발표 했을 때 『아침에는 무조건 우유!』 라고…」

「아ㅡ…」

 생각이 나는 건지 나지 않는건지 애매한 소리를 낸 그녀가 어째선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지금의 대화의 어디에서 웃음 포인트가 있었던 건지 전혀 모르겠다.

 갑자기 쌀쌀 맞은 태도를 취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웃고, 역시 오늘의 카린 선배는 굉장히 이상하다.

「저ㅡ기, 카린 선배?」

 어리둥절하며 이름을 부른다.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점잖게 웃고 있던 카린 선배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무시당했던 반동 때문인지, 웃어준 것만으로 어쩐지 안심했다. 

「카스미쨩, 있잖아, 나는 아침은 우유인 것은 틀림없지만 딱히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 아니야」

「에」 하고 굳어버린 나를 보며 카린 선배가 더 웃었다.

「그, 그런건가요…?」

「응」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카린 선배가 바로 「그래도」 라고 덧붙였다.

「내가 뭘 좋아할지 생각해서 사온거구나.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내 손에 닿았다.

 평소의 성희롱 같은 스킨십과는 전혀 다른 무척이나 부드러운 접촉. 그런데, 어째선지 매우 부끄럽다.

「아, 아뇨… 딱히. 그 정도는…」

 고개를 숙이고 웅얼웅얼 대답한다.

 우유 푸딩의 덕분에(역시 프리미엄) 어떻게든 카린 선배와 평범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손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책상 위에 겹쳐진 손을 힐끔 본다.

 잡는 편이 좋을까? 란 생각이 들자마자 「아니, 어째서」 하고 자기 자신에게 지적한다. 잡는 건 이상하잖아. 아니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한가…? 그런데 카린 선배의 손 크네. 역시 키가 크니깐….

 사고가 관계없는 방향으로 척척 진행된다.

 잠깐 손이 닿은 정도로 왜 이렇게나 동요하는 걸까. 이상해. 속으로 중얼거린다.

 카린 선배의 손의 온기나 감촉을 최대한 의식하지 않도록,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사고를 한쪽으로 쫓아내고 입을 열었다.

「…저기, 카린 선배」

「왜에?」

「아까는 무슨 의미인가요?」

「아까?」

「카스미쨩이 나쁜거야, 라고 했잖아요. …제가 뭔가 해버려서 카린 선배가 오늘 이상한건가요?」

「이상하다…」

 직설적인 내 말에 카린 선배가 쓴웃음을 지었다.

「뭐, 그러네」

「……전혀 짐작 가는 일이 없는데요」

 라고 하자마자, 카린 선배가 목소리 톤을 낮췄다.

「흥ㅡ」

 눈을 가늘게 하고선 카린 선배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겹쳐있던 손을 카린 선배가 잡아서, 한쪽으로 쫓아내던 동요가 단번에 몇 배로 커졌다.

「…카스미쨩은 아유무랑 사이가 좋네」

「아, 아유무 선배?」

 갑자기 지금의 화제와는 관계없는 아유무 선배의 이름이 나와서 느닷없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거라면 저보다 카린 선배 쪽이 아유무 선배랑 사이가 좋잖아요…. 같이 프리마켓도 가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만, 나와는 사이좋은 종류가 다르다고 할까」

「종류?」

 무슨 말인가요, 라고 되묻자 카린 선배가 「시치미 떼는거야?」 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눈을 했다.

「방금도 밖까지만 배웅하는 건데도 이상하게 늦었고…」

「아아…. 밖까지만 배웅할 셈이었는데 결국 패미통 건물까지 배웅하게 돼버려서」

「건물까지?」

「네. 왠지 흐름상…」

「흐름상…」

 뭐가 나빴던 건지, 카린 선배가 다시 기운이 없어졌다.

 고개 숙인 꽃처럼 침울하게 어깨를 떨구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조금 전까지의 동요와는 또 다른 의미로 안절부절못한 기분이 된다.

「카, 카린 선배? 저기, 그러니깐, 괜찮은 건가요…?」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걸어봐도 카린 선배는 「음」이나 「으음」이나 신음 밖에 내지 않아서 엄청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카린 선배의 웃는 포인트도 침울해지는 포인트도 나는 전혀 모르겠다. 알 수 없다면 내버려두면 좋을텐데, 하고 머리 한 쪽에서 이성이 냉정하게 속삭였다.

 지당한 말이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내버려두지 못한다. 카린 선배라서, 신경이 쓰여 어쩔 수가 없다.

「카린 선배?」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러본다. 항상 나를 놀리는 장난기 어린 푸른 눈동자가 힘없이 나를 봤다.

 조금 주저하고 나서, 잡혀 있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거나 격려한 경험 같은 거 나는 그다지 없으니깐 이걸로 카린 선배가 기운을 내줄 지 알 수 없다. 완전히 빗나갔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이것 말고 카린 선배가 기뻐해줄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원인을 모르는데 사과하는 것도 이상하고….

 잠시 쓰다듬고 있자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카스미쨩」

「네」

「카스미쨩은 누구에게도 이런 일을 하는 타입?」

「이런 일?」

「머리를 쓰다듬는다던가…」

「하지 않아요」

 이쪽을 살피고 있는 카린 선배에게 쓴웃음으로 대답한다.

 저는 우정놀이 같은 건 좋아하지 않아요. 대가도 없이 이런 일을 하는 건 특별한 사람에게만.

「카린 선배에게만 특별이에요」

 슬쩍 입에서 그런 말이 새어나왔다.

 한 박자 두고, 스스로 정말 이상한 말을 한 한 것 같아 급격하게 부끄러워진다. 농담이라고 얼버무리려고 해도 정작 그 농담이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다.

 혼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자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카린 선배가,「그렇구나」

 하고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대화를 하고 나서, 카린 선배는 완전히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구나ㅡ. 나는 카스미쨩에게 있어서 특별하구나」 하고 엄청 놀리고 나서 무슨 영문인지 카린 선배의 상의를 입혀주었다.

 그녀의 짙은 블루의 파카는 내게는 헐렁해서 "입고 있다" 라기 보다는 "입혀져 있다" 라는 느낌.

「카스미쨩은 핑크도 어울리지만 블루도 어울리네」

 기분이 좋아진 카린 선배가 살짝 미소 지었다.

「하아. 감사합니다…?」

 어울린다는 말을 들어서 기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역시 사이즈가…. 소매가 손을 푹 숨기고 있어서 마치 리나같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 저의 뭐가 나빠서 카린 선배가 이상했던 건가요?」

 소매를 걷으며 물어본다.

「음ㅡ…」

 생각에 잠긴 카린 선배가 긴 검지를 아랫입술에 댔다.

 섹시 노선을 노리는 것답게 그녀는 행동이 하나하나 요염하다.

「안 가르쳐 줄래」

「에?」

 뭐야 그게

「신경 쓰이는데요…」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카린 선배를 지그시 바라본다. 훗 하고 웃은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뭐 오늘 일은 러브레터로 용서해줄게」

「러브레터?」

「저번에 세츠나에게 전해줬잖아」

「아ㅡ, 그거 말인가요ㅡ. … 아니 그건 진심이 아니니깐요! 농담이니깐요!」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선 그녀가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내 귓가에 입술을 붙인 카린 선배가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조용히 속삭였다.

「내게는 진심인 걸로 줘」

 …응?

「그건 무슨…?」

 진심인 러브 레터를 바란다니 그건 즉…?

 카린 선배는 의미심장한 웃음만 짓고 내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뒤는 스스로 생각해」

 그렇게 말하고, 혼란해 하는 나를 내버려두고 우아한 손놀림으로 우유 푸딩의 뚜껑을 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평소에 어른스러운 사람이 질투 때문에 삐져있고, 상대방은 아직 자각이 없어서 안절부절만 하고 있는게 되게 귀여움 ㅎㅎ


りわる 작가님 카나요시 만화 생각나네 ㅡ 링크 


누가 카스미 디시콘 좀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카스밍 귀여워요

Myosotis 아니 ㅋㅋ 방ㅡ구석이 금지어에 걸리네 ㅋㅋ 2018.09.13 07:41:54
황토찜질기 마지막에 카나요시 만화 작가님 이름 りねる 2018.09.13 07:41:54
황토찜질기 ss는 자기전에 읽을게 항상 번역 ㄱㅅ 2018.09.13 07:42:17
Myosotis ㄴㄴ 이번엔 다른 작가님 이름을 틀리네 ㅋㅋ 지적 감사해요 2018.09.13 07:43:21
ㅎㅅㄷ 2018.09.13 07: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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