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일반 [SS] 카난, 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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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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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20 14:53:28
- 121.162.*.*
------------------------------------------------------------------------- Episode 「-1」 - 마리, 시차(時差, 視差) - (1), (2), (3), (完) - 카난, 별(星, 別) - (1), (2), (3), (4), (5), (完) - 다이아, 우로 (雨露, 愚魯) - 예정 ------------------------------------------------------------------------- 사람들이 가장 쉽게 착각하는 사실 중에 하나가 별이 '지금'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었다. 눈으로 보이니까 거기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그에 대한 세부 설명을 해주실 때, 왜 별이 없을 수도 있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걸까하고 못마땅하게 여겼었다. 물론 학교에 들어간 후 부터는 여러가지 자연현상들에 대해서 배웠기에, 이제는 그 때의 말씀을 이해하고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우주는 별들끼리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빛이 여행하기에도 시간이 무척 걸리는 외롭고도 광활한 곳이며, 별빛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몇 억년 전의 빛이 날아와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하늘에 보이더라도 이미 거기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어렸을 때부터 바라보던 별도 단지 잔상에 불과할 뿐 어쩌면 그 자리에는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별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그러니까 어느 정도 머리가 굳어진 '지금'의 나는 아주 조금 남은 두뇌의 부드러운 부분을 사용해서라도 어렵게 상상을 이어나간다. 오늘 진짜 별이 무엇을 했을지... 진짜 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 상상력이 빈곤한 편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상은 떠오르질 않는다. 그래도 그건 그런대로 괜찮다. 가슴은 식어버린지 한참이지만, 머리는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므로.
눈을 떴을 때,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책상 옆 창가에는 간밤에 들이친 빗물이 묻어 있었고 내 팔에는 얼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서, 어제 창가에서 비 오는 풍경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그대로 잠들었다는 걸 알았다. 매일 밤새워 열심히 공부하는 우등생이나 할 법한 일을 했다는 게 스스로에게도 겸연쩍었다. 다이아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눈을 흘기는데 그쳤을까, 애정 섞인 힐난의 소리를 들었을까. 금방이라도 볼을 부풀리며 한마디 쏘아붙일 다이아가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당장이라도 옆에서 튀어나올 정도의 리얼한 다이아의 이미지에, 머리가 잘 작동한다 싶어 몸을 움직여본다. 그러자 베고 잤던 팔이 저려왔고 종아리도 어딘지 뻐근해, 몸의 어느 부분도 내 것 같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구부정하게 있었으니, 하룻밤 사이 피로가 쌓인 건 당연했다. 간밤에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는 거야 어쨌든 이걸로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다. 일어나서 창문을 활짝 열고 마음을 새롭게 하기로 했다.
창틀에 고인 빗물을 살짝 닦아내고 시선을 올리자, 빛이 쏟아지는 밖은 어제의 비구름은 어디로 갔냐는 듯이 쾌청하게 밝아져 있었다. 공기 속에는 여전히 습한 냄새가 느껴져서 언젠가는 비가 또 오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지금은 화창하게 개어 있으니 그걸로 일단 안심한다. 앞으로 몇 시간은 오늘밤 별을 볼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일기예보에서의 강수 확률이 지나치게 높지만 않다면, 주말인 오늘은 섬으로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이다. 자연스레 바빠진다는 거다. 일을 하는 시간은 이것저것 잊어버리게 되니 나로서는 퍽 달갑다. 섬 안에 일을 도울 젊은 사람이라고는 나뿐이라,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도 들지만 말이다. 정해진 일을 끝내고서는 돌아와서 다이빙 장비를 정비하고, 평범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만일 그 때까지 비가 오지 않는다면 별을 보러 가볼까 싶다. 그러고 나면 오늘 하루는 끝. 내일도, 그 다음날도 이렇게 채워나가면 된다. 이렇게만. 섬이 움직인다. 배편으로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다이빙 샵도, 수족관도, 아와시마 호텔도 전부 분주해진다. 유독 관광객이 많은 건 비단 끝나가는 성수기를 마지막으로 즐기려는 사람들 때문만이 아니라, 오세자키에서 이 맘때 즈음에 여름의 열대어들을 만나기 위한 다이버 들의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축제 스케쥴에 맞추어 아와시마에서도 다이빙체험 코스가 운영된다. 아와시마 인근이 5m 정도의 얕은 바다이니만큼, 손님들은 대부분 부부나 연인 혹은 친구들의 단체로 가볍게 다이빙 경험을 하거나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이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아와시마를 찾는 사람들 외에도 아와시마 호텔에 다녀가는 투숙객들이 고객이 된다. 그래서 샵에서는 장기간 숙박하는 손님들에 한해 무료 코스 또한 실시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여러 손님들이 샵에 방문하는 오후 시간대가 되면 장비를 갖추고 아버지를 따라 배에 오른다. 모두가 안전하게 요트 안에 자리를 잡은 후, 아와시마 선착장에서 출발한 배가 지정된 구역의 바다로 나가는 동안 나는 간단한 교육을 실시한다. 다이빙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손님들이 더러 있으니, 장비에 대한 소개와 사용법 그리고 기술연습을 포함해서. 손님들을 수중세계로 안내한다는 것은 본래 무척 보람된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이미 이런 교육을 수십 번도 넘게 해왔기 때문인지, 손님들에게 살갛게 가르친다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일을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더 많다. 생명과 연관되는 안전 수칙도 빼먹지 않고 설명해야 하니, 단지 진지해지는 까닭일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그런 날들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갈 모양이다. 무엇보다 선내의 분위기부터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보통 가족 단위로 체험을 하는 손님들이 많을 때에는 아이들도 많아서 가정적이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지속되기는 해도 화사하게까지 와닿지는 않은데, 오늘은 여름보다 봄에 가깝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배에 오른 승객들 중에 일부 젊은 손님들로, 인근 누마즈 고등학교에서 왔다고 하는 다소 발랄한 여학생 세 명이었다. 같은 나이 또래의 여고생이 일을 가르칠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학생들은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세 사람은 장비를 만져보며 이제부터 경험할 다이빙이 벌써부터 즐거웠는지 시종일관 깔깔댔고, 오랫동안 유대를 쌓아온 듯한 그 모습에 여고생 특유의 활기가 더해져 내 얼굴도 평소보다 풀어졌다. 이어서 손님들에게 다이빙 장비에 대해 설명하는걸 잊고, 사이 좋게 나란히 앉아 포니테일 다이버 언니가 미리 건네준 장비를 이목저목 뜯어보는 셋을 지켜보며 나도 친구 두 사람을 떠올렸다.
아직 아버지의 일을 돕는 걸 퍽 좋아하던 시절, 다이아와 마리도 열대어를 찾는 이 특별한 순례에 왔던 적이 있었다. 여느 날처럼 아버지를 따라 나섰는데, 배에 오르고 보니 온다는 말이 전혀 없었던 두 사람이 배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꿍꿍이 섞인 미소의 다이아와 마리를 마주한 후로는 어떻게 해도 착실하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내 쪽을 향할 때마다 웃음이 나와서 하마터면 다른 손님들한테도 폐가 될 뻔 했다. 둘은 얼떨떨해 있는 나를 보고도 못본 척 한 상태로 아주 뻔뻔스럽게 앉아서 내 이름까지 거론하며 '마츠우라 언니, 이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하고 이것저것 물어왔고, 나로서는 그 상황이 아주 곤혹스럽기 짝이 없어서 머리를 살짝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힘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에 갓 진학한 그 때는 틈만 나면 서로 장난을 쳤었다. 마리는 아가씨다운 우아한 외견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장난기가 있는데다가, 뼛속까지 우치우라 태생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메리카식 죠크를 즐기는 아이었고. 다이아는 다이아대로 마리와 죽이 잘 맞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진지하고 성실함이 강점인 쿠로사와가 장녀로서의 모습이 사라질 때가 은근히 많았다. 나와 마리의 엄마라도 된 듯 몸가짐이나 학업에 대한 잔소리를 하는 점을 제외한다면. 어쨌든 두 사람이 다이빙 체험을 하러 방문해온 날도 우리 사이에만 있는 몰래카메라 같은 장난의 일환이었고 둘의 계획은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두어서, 마리와 다이아 앞에 선 내가 겨우 기본적인 설명을 마치고 났을 때 나는 완전히 진이 빠져 있었다. 결국, 그 날은 아버지께 양해를 구하고 중도부터 두 사람과 함께 손님으로서 수중 여행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내 설명에 유심히 귀기울이고 있는 누마즈 시내의 세 여학생처럼. |
Myosotis | 개추 기다렸어!!! | 2018.08.21 04:51:56 |
Myosotis | 양자와 전자 사이에도 퀀텀 보이드가 있어서 실은 붙어 있는것처럼 보여도 떨어져 있다고 들었는데, 별끼리도 마주보고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이 애절하당 | 2018.08.21 04:53:16 |
SS | ㄴ댓글 감사합니다 굉장히 이공학적인 내용인데도 그렇게 안들리네요 121.162.*.* | 2018.08.21 15:00: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