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일반 [SS] 카난, 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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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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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16 14:54:18
- 121.162.*.*
------------------------------------------------------------------------- Episode 「-1」 - 마리, 시차(時差, 視差) - (1), (2), (3), (完) - 카난, 별(星, 別) - (1), (2), (3), (4), (5), - 다이아, 우로 (雨露, 愚魯) - 예정 ------------------------------------------------------------------------- 후두둑하고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팔에 물이 닿는 듯한 차가운 감각이 달린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다 보고 있던 창문 너머로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쏴르르 창문을 때리며 분무처럼 방 안으로 들이치는 빗줄기가 이미 꽤나 요란하게 나를 적셔놓은 상태였다. 냉큼 창문을 닫자, 탁 하고 창틀에서부터 손에 전해지는 둔탁한 느낌 때문인지 흠뻑 젖어버린 상체와 내가 앉아있는 컴컴한 방을 포함한 모든게 현실 같지 않았다. 창문도 혼탁하게 바깥의 풍경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초점이 흐려져 아득해진 시야에 머리가 멎고, 명령 체계가 사라진 몸도 이어서 멈춘다. 어딘지 허전한 마음은 진작부터 정지해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의 섬은 모든 것이 정지된다. 뭍으로 나가기 위한 수단인 배가 묶이고, 섬사람들도 매일 하던 일을 중단한 채로 건물 안에만 머문다. 그것만으로 한순간에 세상과 단절되어, 말 그대로 시간이 멈춘다. 그러나 이 멈춤은 딱히 휴식을 위한 정지가 아니기 때문에 대체로 또 다른 바쁜 일상을 불러온다. 만사가 천천히 돌아가는 섬에서도, 멈춰서야만 비로소 보이는 작업들이 날씨를 계기로 시작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께 있어서 비 오는 날은 할아버지와 함께 그간 정비하지 못했던 다이빙 장비를 손보는 날. 그리고 어머니께 있어서는 가게 안으로 들여놓은 건어물을 정리하느라 바쁜 날이었다. 그러니까 섬 전체의 입장에서는 딱히 정지했다고도 할 수 없는 편이었지만 항상 밖에 나가 놀던 어린 내게 있어서는 하루의 즐거운 부분들만 쏙 중단되었기에 여전히 정지의 날이었다. 창가에 앉아서 비 내리는 풍경을 흘리며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생기게 된 것도, 혼자 시간을 보내던 정지의 날들로부터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이 버릇은 어떤 소녀가 나타나면서 사라졌다. 그 소녀는 같은 반에 전학온 오하라 마리라는 이름의 아이로, 동양인 답지 않은 외모가 예쁘장한 친구였다. 으레 전학생이 그렇듯이 마리는 전입과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다만 평범한 전학생과 그 아이가 달랐던 게 하나 있다면, 내가 사는 곳은 외국인이 드문 시골인 우치우라였으며 마리는 혼혈이라는 점이었다. 마리가 갖는 특별함은 금세 그녀를 겹겹이 둘러쌌다. 마리는 우리반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시선에 익숙한 타입이 아닌 것처럼 보였던 그녀는, 주위로부터의 타산 없는 호의에도 반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은 학교에 갈 때마다 마리를 호위하는 듯한 인파의 구름이 생겨나서, 나는 갈수록 그녀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구름 한복판에 놓인 금색의 머리칼과 반투명의 구슬 같은 눈동자는 내가 줄곧 올려다본 어두운 밤하늘 속 별을 연상케 할 정도로 지켜보는 즐거움을 주었으나, 마리의 태도는 비 오는 날의 별 없는 나를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내심 남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그녀와 한 번 개인적으로 대화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고 선생님도 그녀의 신상을 함부로 학생들 앞에 꺼내는 일은 하지 않았기에 마리가 아와시마 호텔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전학온 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였다. 등교시간에도 하교시간에도 리무진이 와서 마리를 모셔갔으니까 내가 그녀의 거주지를 알 수 있을리 만무했지만 그래도 코앞이었는데 게다가 성이 그 '오하라'였는데 몰라봤던건가 싶어서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동시에 그것이 절호의 기회임을 깨달았다. 두텁게 벽을 세운 구름을 뚫고 별에게 말을 걸어볼 기회임을. 하지만 우연히 구름을 우회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찬스를 붙잡기에는 아직 걸림돌이 존재했다. 교내에서는 마리와 대화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있었고, 아와시마에서 마리를 만나러 가자니 내가 그때까지도 아와시마 호텔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직접 찾아가는 거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커다란 아와시마 호텔에 혼자 방문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물론, 섬의 어른들께 여쭈거나 친구라도 불러서 동행을 만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늘 바쁘시고 반 친구들은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마리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데 콕 찝어서 누구와 간단 말인가. 기회가 생겼다 싶더니 차례차례 막아서는 장애물들에 결국 판단을 며칠 더 미뤄두기로 했다.
고뇌로 우물쭈물하던 어느 날, 찬스의 신은 본인과 다르게 다소 앞머리가 짧은 소녀와 함께 갑자기 찾아왔다. 쿠로사와가의 장녀이자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학교에서 유명한, 친구 다이아가 내게 오하라가에 데려다 달라고 했던 것이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좀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일이 없는 그 다이아에게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정말 의외의 부탁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래서 다이아가 말을 끝마치고 났을 때, 내가 이것저것 자세하게 캐물어본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마리는 왜 만나려고 하는 건지, 다이아는 마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이 순수하게 궁금했다. 계속되는 일방적인 질문 공세에 다이아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나와 마찬가지로 마리에게 연민의 감정과 호기심을 모두 느끼고 있었던 건 분명해보였다. 섬에서 같이 지내는데도 우치우라를 소개해주지 않고 홀로 내버려두는 건 뿌뿌라며 오히려 이쪽을 나무라왔으니까. 다이아는 한참이나 나를 나무란 후, 곤란할 때마다 점을 긁는 버릇을 그대로 보여주며 쿠로사와가에서 오하라가에 예를 표하러 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얘기인즉슨, 그게 쿠로사와가의 장녀되는 자의 의무라던가 뭐라던가 하면서. 에둘러서 표현하는 다이아의 모습이 그저 귀엽기만 했다는 사실과 나 역시도 내심 누군가가 함께 가주길 바래왔다는 속마음을 삼키며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다이아에게 데려다 주는 대신 마리가 사는 곳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다시 되물었다. 그리고 다이아가 쉴 틈도 주지 않고 이어진 나의 질문에 놀라는 한편, 본인도 듣고자 했던 대답이었다는 듯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나는 바라 마지 않던 찬스의 끄트머리가 겨우 손에 들어왔음을 알았다. |
Myosotis | 정지의 날이라는 표현이 너무 좋다 비오면 확실히 시간이 멈춘 느낌이지 | 2018.08.16 14:57:52 |
Myosotis | 항상 좋은 작품 고마워~ | 2018.08.16 14:58:07 |
ㅇㅇ | 글 잘쓰네...잘 읽고잇당 | 2018.08.16 15:01:11 |
SS | ㄴㄴ댓글 감사합니다 계속 써오겠습니다 121.162.*.* | 2018.08.16 15:25: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