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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SS] RPS란 무엇인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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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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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1977362
  • 2018-08-12 04:26:01

1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unshine&no=1947893


※ 캐붕 주의







“리코언니... 저... 저랑... 사귀어주세요!”


 고백은 제가 했어요.

 이 날을 위해 빨간 보석이 박힌 반지까지 준비하면서요.

 언제부터였을까요?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아니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면 첫 눈에 반한 걸까요?

 루비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어느 순간부터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마 루비가 살아온 날 중에서 이 순간이 가장 떨리는 날이었고, 가장 용기를 낸 날이었을 거에요. 몇 번이나 그만 두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래, 좋아. 루비쨩. 잘 부탁해.”


 리코 언니가 반지를 받아들고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줬을 때,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상상만 했던 그 순간이 저에게 찾아온 게 너무나 기뻐서 살짝 눈물이 날 뻔했어요.

 앞으로 리코 언니와 함께 지낼 날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행복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초록색 눈을 한 괴물




 나와 리코쨩이 사귀기로 한지도 어느덧 세 달이 흘렀다.

 그 때 생각했던 것처럼 행복한 날들이었냐고 묻는다면 글세... 리코쨩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1학년, 리코쨩은 2학년.

 나는 샤론, 리코쨩은 길티키스.

 단체곡을 하는 날이면 같이 있을 수 있었지만, 수업을 들을때나 유닛 연습을 해야 할 때에는 우리는 떨어져서 서로를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다. 리코쨩이 치카쨩이나 요시코쨩과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분한 감정이 솟아올랐지만, 리코쨩이 1년 먼저 태어난 것도, 우리가 사귀기 전에 유닛이 이미 결정되어 버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 감정을 씹어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런 감정을 담아 리코쨩에게 투정을 부리면 리코쨩은 눈썹을 팔자로 세우고 쓴 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게 아니었는데... 내가 리코쨩을 좋아하는 만큼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 게 아닐까, 내가 아쉬워 하는 만큼 아쉬워 하지 않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옅은 반응이었다.

 그럴 때면 리코쨩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나를 꼭 껴안아줬다. 내가 마리쨩도 아니고 허그로 기분이 풀릴거라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었지만, 살짝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러분, 다 모이셨나요?”


 우라노호시 여름 축제를 한 달 정도 남겨놓은 어느 날, 학생회장인 언니는 Aqours 멤버들을 한데 모아놓고 뭔가 중요한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번 축제에서 우리가 연극을 맡기로 했어요.”

 “여, 연극? 연극부는 어쩌고!?”

 “연극부는 배우들이 작년에 다 졸업해버려서... 무대나 각본같은건 본인들이 맡을테니 저희가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라 되묻는 요시코쨩에게 언니는 차분히 대답했다. 학생회장으로서 곤란한 부분을 돕고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이 있으면 멤버들에게 상의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다이아씨, 무슨 연극을 하는 건가유? 배역은 어떻게 정할 건가유?”


 하나마루쨩은 연극에 흥미가 있는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연극은 ‘오셀로’를 할 거에요.”

 “Wow...”

 “오셀로. 좋은 작품이긴 한데...”


 오셀로라는 말에 마리언니와 하나마루쨩이 동시에 반응한다. 다른 멤버들은 아직 읽어본적이 없는지 멀뚱멀뚱 언니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오셀로같은 작품을 우리들이 해도 되는 걸까?


 “저희가 하기엔 좀 무겁지 않나유?”

 “저도 얘기는 해 봤는데 연극부에서 나름대로 정해놓은 로테이션이 있는 모양이라서요. 그리고 배역은 지금 사다리타기로 정할거에요. 그게 제일 공정하겠죠?”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화이트보드에 9개의 세로선과 무수히 많은 가로선을 긋기 시작했다. 공정하다... 라고는 말했지만 주역이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했다. 내가 혼자서 걱정하는 사이 위에 적힌 숫자에 멤버들의 이름이 새겨져간다. 결국 내 몫은 마지막까지 남은 9번. 마지막 숫자인 만큼 제발 비중없는 역이 걸리기를.


 “일단 1번. 치카씨는 카시오 역이네요.”

 “카시오? 시계 장인이야?”

 “...아니에요.”


 “그리고 2번. 카난씨가 기타역할 1이네요.”

 “좋은거야?”

 “비중이 덜 한 배역을 여러개 하는거에요. 3번은 저네요.”


 사다리를 따라 내려가던 언니의 손이 결승점 앞에서 멈춰선다. 그리고 그 곳에 적혀있는 이름을 본 마리 언니가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핫. 다이아가 Villan? 잘 어울리네!"

 “조용히하세요. 마리씨.”


 언니는 분노를 삭이며 마리 언니에게 대답했다. 이야고. 오셀로의 메인 악역. 언니는 팔방미인이니까 역할을 받으면 곧잘 하겠지만, 간악한 역할을 하는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언니를 시작으로 하나 둘 씩 배역이 정해져간다. 에밀리아역은 요우쨩이, 데스데모나 역은 리코쨩이, 주역이 하나 둘 사라져 갈 때마다 점점 기대감이 커져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나에게 맡겨진 역할은...


 “오셀로...”

 

 주인공. 최악이다.





 “리코쨩. 루비가 할 수 있을까?”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우리는 이렇게 해안가를 걸으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 평소는 주로 즐거운 얘기를 하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즐거운 얘기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루비쨩...”

 “루비, 잘 할 자신이 없어. 항상 실수투성이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는데 연극, 그것도 주연이라니...”

 “아니야, 루비쨩.”


 리코쨩은 조용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루비쨩이 정말로 겁쟁이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같이 걸으면서 얘기할 수 있었을까? 루비쨩이 그 때 용기를 내지 않았으면 우리가 이렇게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

 “루비쨩은 하려면 할 수 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니야?”


 리코쨩의 물음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리코쨩이 나를 믿어주는 것은 기뻤지만, 여전히 나는 자신이 없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리코쨩은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손을 꼭 잡아줬다. ‘분명 잘 할수 있을거야.’라고 속삭이는 리코쨩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쩐지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기분이다.




 “주인님!”


 어느덧 안무와 노래 연습이 끝난 뒤로 연극 무대를 준비하기 시작한지도 2주가 지났다. 여전히 언니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대사를 외우고 읽는 것, 그리고 낮고 굵은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정말 리코쨩 말대로 나는 하려면 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리코쨩이 나에게 마법이라도 건 걸까?


 “질투라는 놈을 조심하십쇼. 그 놈은 제 먹이감을 비웃고 조롱하는 초록색 눈을 한 괴물입니다. 적어도 자기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걸 아는 자는 행복한겁니다. 자기 부인을 사랑하면서도 그 진실됨을 의심하고, 그러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자를 생각해보십쇼.”

 “끔찍하군!”

 “가난하면서도 만족하는 자는 충분히 부유한겁니다. 하지만 무한한 부를 가졌더라도 항상 가난해질까봐 불안해하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죠. 신이시여, 우리가 질투하지 않게 하소서!”

 “왜 자네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가? 자네는 내가 매 시간마다 새로운 의심을 품는, 그런 질투에 가득찬 삶을 살고 있으리라라라... 으에. 미안.”

 

 다른 생각을 하다 그만 대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대사 실수는 누구나 가끔씩 하는 일이었지만, 그 다른 생각이라는 게 ‘나 생각보다 잘하는데?’ 였다는 것을 떠올리니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괜찮아요. 루비... 오늘 연습은 충분히 한 것 같네요. 벌써 꽤 어두워졌고, 슬슬 다들 돌아가죠.”

 “네~”


 언니의 말에 다들 짐을 싸고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빠르게 짐을 정리하고 리코쨩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오늘 열심히 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요즘 하교 시간이 늦어져 다같이 귀가하는 일이 잦아졌기에 둘만의 시간이 줄어들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말, 아니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리코쨩!”

 

 나는 리코쨩을 부르며 그녀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리코쨩은 미소띈 얼굴로 나를 쓰다듬으면서 ‘왜?’라고 다정하게 물었다.


 “이번 주 일요일에 같이 놀러가자.”


 이번 주 일요일이라는 말에 리코쨩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무슨일인가 싶어 위를 올려다봤더니 리코쨩은 정말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 이번 주말은 치카쨩이랑 요우쨩이랑 같이 신곡에 대해서 얘기하기로 했어.’ 라고 말했다.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다음에 같이 놀러가자.’라고 웃으면서 대답하긴 했지만... 아쉬웠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나는 이번 주말을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핸드폰이나 들여다보며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던 나는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언니 방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언니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책상 위에는 방금 전까지 공부라도 했는지 책이 정갈하게 놓여져 있었다. 쉬는 시간에 공부라니, 나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차라도 한 잔 할까요?”

 “응!”


 언니는 내 대답을 듣더니 미소지으며 차를 가지러 나갔다. 나는 그 동안 언니의 방을 살짝 둘러보았다. 올 초에만 해도 삭막하게 느껴지던 방이었는데. 여기저기에 Aqours 멤버와 찍은 사진, 옛날 3학년 언니들 3명이서 찍은 사진, 그리고 치카쨩과 같이 찍은 사진 같은 추억들이 장식되어 있으니 훨씬 따뜻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치카쨩과 단 둘이 찍은 사진이 그 안에 있는 건 좀 의외였는데... 왜?


 “루비, 남아있는 쿠키가 좀 있길래 차랑 같이 가져왔는데 같이 먹어요.”

 “와~ 쿠키!”


 사진에 의문을 가지려는 찰나, 언니가 쿠키와 차를 들고 돌아왔다. 태어나려던 의문은 따뜻한 차와 달콤한 쿠키에 녹아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평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루비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응? 아... 아니...”


 평소 언니가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황해서 거짓말을 해 버렸다. 아니, 애초에 언젠가는 언니에게 리코쨩과의 사이를 얘기해야 했지만, 아직은 자신감도, 용기도 없었다. 언니는 ‘그렇군요.’라고 짧게 대답하더니 한참을 말이 없었다. 불편한 침묵이 흐르고 내가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말을 꺼내려던 순간, 언니가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치카씨는... 리코씨와 사귀는 걸까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치카씨랑 리코씨랑 같이 있으면 그런 분위기가 느껴져서요... 전에 지구예선 전에 합숙할때도 둘이서만 새벽에 나간적도 있고요.”


 대체 이 사람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두 사람이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아니, 리코쨩의 연인이 지금 눈 앞에 있는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때 둘이서만 나가서 얘기한 적이 있다고?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언니의 착각일 뿐이겠지만, 약간 기분이 나빠지는 것 만은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차를 마실 기분이 아니게 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언니가 당황했는지 나를 불러세웠다.


 “루비?”

 “...쿠키가 다 떨어졌네. 루비, 좀 더 먹고 싶어서.”


 그래, 바람을 쐬자. 바람을 쐬면 복잡한 기분도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




 “항상 감사합니다~”

 

 짤랑거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제과점 문이 닫힌다. 확실히 바람도 쐬고 달콤한 디저트를 구경했더니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다. 약간 가벼워진 기분으로 바닷바람을 크게 한 모금 들이마시던 나의 눈에, 선착장 옆 모래사장에서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치카쨩이 들어왔다. 사실 지금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어쩐지 뭘 보고 있는지가 신경쓰여 말을 걸기로 했다. 기왕 만난 김에 그 날 둘이서 뭘 했는지도 알아내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가까이서 본 치카쨩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는지, 내가 바로 뒤에 와 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살짝 발 끝을 들어 치카쨩의 손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익숙한 모양의 반지가 있었다.


 “히익! 깜짝이야~”

 치카쨩은 그제야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반지를 든 손을 황급히 등 뒤로 숨기며 펄쩍 뛰어올랐다.


 “반지?”

 “에? 아. 응.”

 “무슨 반지야? 누구한테 받은 거야?”

 “아니, 집 앞에서 주웠어.”

 “근데 왜 여기서 그걸 보고 있어?”

 “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좀 더 생각해보면 기억날 것 같아서. 근데 잘 안되네, 헤헤.”


 정말일까? 정말로 리코쨩이 내가 준 반지를 흘리고 치카쨩이 그걸 주운걸까? 치카쨩을 믿고 싶었지만, 방금 전 언니가 한 말이 자꾸만 머리 속을 멤돈다.


 ‘치카씨와 리코씨가 같이 있으면 그런 분위기가 느껴져요.’


 믿을 수가 없다. 정말 그렇다면 반지를 굳이 숨길 필요가 있는걸까? 만약 치카쨩이 나를 속이고 있는 거라면? 리코쨩이 치카쨩에게 저 반지를 선물해준 거라면? 그렇다면 치카쨩은 분명 리코쨩과 내가 사귄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지금 치카쨩은 나를 보면서 배신당한 줄도 모르는 멍청이라고 생각하며 비웃고 있는 건 아닐까.


 “치카쨩.”

 “응?”

 “...나 그 반지 누구 건지 알아. 전해줄게.”

 “정말? 다행이다~ 그럼 루비쨩 잘 부탁해~”

 

 치카쨩은 웃으면서 나에게 반지를 건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안심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 치카쨩은 나를 비웃으며 ‘어차피 나한테 돌아올 물건이니까, 그냥 넘겨줄게.’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말도 안되는 의심이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수업 끝나면 부실로 바로 와줘.’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맞이한 월요일. 수업이 끝나고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리코쨩에게서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평소라면 기쁘게 부실로 갔겠지만, 오늘은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마루쨩과 요시코쨩에게 잠시 후에 보자는 인사를 하고 내려와 조심스럽게 부실로 들어서자, 갑자기 뒤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누군가가 나를 껴안았다.


 “삐깃!”

 “루비쨩.”


 그 누군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바람에 실려오는 향긋한 냄새와 그 부드러운 목소리. 나는 그게 리코쨩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리코쨩... 작곡이 잘 안돼?”


 리코쨩은 곡이 잘 안써질 때 마다 나를 이렇게 껴안고는 했다. 나를 껴안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작곡이 좀 더 잘된다나 어쩐다나.


 “응... 요즘 루비쨩이랑 둘이서 있는 시간이 적어서 그런거려나?” 

 리코쨩은 그렇게 말하며 내 어께에 턱을 올렸다. 하긴 이렇게 둘만이서 보낸 시간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둘 만의 시간도 앞으로 10여분. 다른 멤버보다 조금 서둘러 얻어낸 잠깐의 시간.


 “그럼...”

 “응?”

 “그럼 모두한테 얘기하는 게 어떨까?”

 “그건... 안돼.”

 “왜?”

 “나는... 아직 확신이 없어. 모두가 우리를 받아들여줄지 어떨지.”


 평소와 같은 대답. 평소대로였다면 나도 여기서 물러났을 테지만, 어쩐지 오늘은 좀 더 강하게 나가고 싶었다. 어제 일이 신경쓰여서 모두에게 알려두고 싶었다. 리코쨩을 넘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계속 이러기는 힘드니까...”

 “나도 알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줄래?”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축제도 얼마 남지 않아 연극과 라이브도 해야하는데, 팀워크가 무너져버리면 큰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모두’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걸까? 아니면 특정한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걸까? 내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부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황급히 떨어져야 했다.

 반지는 건네주지 못했다.



 라이브의 연습이 끝나고 우리는 연극의 마지막 씬을 연습하기로 했다. 마침 연극 무대 설치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아 우리는 실제 세트에서 연습할 수 있었다. 마지막 씬에서는 대부분의 멤버가 방 밖에서 들어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방 쪽에는 사실상 나와 리코쨩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연습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리코쨩은 대본 리딩이라고 생각하자고 말해주었다. 나는 모형 전등을 들고, 침대에 누워있는 리코쨩에게 다가갔다. 나와 리코쨩은 대사를 주고 받았다. 캐릭터의 어조가 고조될때마다, 내 감정까지 고조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자가 손수건을 들고 있는 것을 봤소! 당신은 내 마음을 돌처럼 굳게 만드는구려. 그리고 내가 희생이라 생각하던걸 살인이라 부르고 있소! 내게 손수건을 보여보시지.”


 그 때, 저번 주말 치카쨩이 반지를 들고 있는 것이 생각이 난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럼 그 자가 어디서 그걸 주웠겠지요. 나는 그걸 그에게 준 적이 없어요. 그를 여기로 불러보세요. 진실을 말해줄테니.”


 치카쨩도 반지를 어디서 주웠다고 했었지.


 “이미 그 자는 진실을 말했소.”

 “뭐라고요?”

 “당신과 뜨거운 밤을 보냈다더군.”

 “네? 저랑 말이에요?”


 이미 리코쨩과 치카쨩이 그런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닐까? 치카쨩은 나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니까. 리코쨩이 끌리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를 배신하고 뒤에서 나를 비웃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 그자는 더 이상 아무말도 못할걸세. 충직한 이아고가 그렇게 만들었지.”


 언니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경고를 한 게 아니었을까? 이미 우리 관계를 다 알고, 나에게 더 이상 속지 말라고 힌트를 준 게 아닐까?


 “조금 무서워지네요. 그가 죽었나요?”

 “그가 그의 머리카락 수 만큼 많은 목숨을 가졌다 할 지라도, 나는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 모두를 죽였을거요.”

 “아, 그가 배신당했군요. 그리고 나까지 망가트려버렸어요.”

 “지금 내 앞에서 그를 위해 울고 있는거요!?”

 “절 보내주세요. 하지만 절 죽이지는 말아주세요!”

 “당장 거기 누워!”

 “내일 절 죽여도 좋아요. 하지만 오늘은 절 살려주세요.”

 “아니, 나한테 반항한다면...”

 “30분만이라도요!”

 “내가 이걸 하는 동안, 나는 단 1초도 멈출 수 없소.”

 “기도 한 마디라도 하게 해주세요!”


 리코쨩의 대사가 끝나고, 나는 누워있는 리코쨩의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양팔을 무릎으로 눌러 움직일 수 없게 하고, 손을 모아 목에 가져다 댄다. 리코쨩은 팔이 아팠는지 살짝 표정을 찡그린다. 어서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이 너무나 많아서 대사가 튀어나오지를 않는다.


 “루비쨩...?”

 “리코쨩. 루비가 준 반지는 어딨어? 오늘 안끼고 있네?”

 “그게...”

 “없는거지? 그거, 루비한테 있거든. 치카쨩이 가지고 있더라. 왜 치카쨩이 그걸 가지고 있었던거야?”

 “어쩌다 떨어... 잠깐, 지금 나를 의심하는거야?”

 “지구예선 전에, 합숙했을 때도 치카쨩이랑 둘이서 나갔다면서. 나가서 무슨 얘기를 한거야?”

 “그건 피아노 콩쿨...”

 “루비가 이러니까, 둘이서 몰래 만나도 알아채지도 못할거라고, 알아채더라도 아무 말도 못할거라고 비웃은거지?”

 “아니야. 아니야, 루비쨩. 난 한 번도 그런식으로 생각한 적 없어. 지금 너무 극에 몰입한거야. 정신 차려.”

 “아니... 아니야.”

 “진정해. 루비쨩.”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른다. 나는 리코쨩의 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들이마신 숨이 내 손가락에 걸리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늦었어!”

 “주인님, 주인님! 저기요! 주인님!”


 내가 대사를 뱉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요우쨩이 대본을 읽는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연극? 아니면 복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젠 멈출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루비쨩?”


 내가 대사를 계속 잇지 않자, 요우쨩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요우쨩의 목소리를 들으니, 지난 주말 리코쨩이 요우쨩과도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요우쨩이랑 같이 있었던거지? 치카쨩 말고 요우쨩이랑도 그런 관계인거지?”

 “큭... 아, 아니야... 루비쨩... 믿어줘...”

 “루비! 지금 무슨... 요우씨! 얼른!”

 “뭐? 무슨일이야!?”


 상황을 보러 온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요우쨩이 문에 몸을 들이박는 소리가 들려온다.


 “세트니까 벽이 없어요! 바깥쪽으로 돌아서!”

 “알았어!”


 문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루ㅂ... 리코쨩!”


 요우쨩이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이윽고 나는 몸에 커다란 충격과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혔나봐요. 눈에 초점이 안맞고, 모든게 흐릿하게 보여요.

 저 멀리에서 요우쨩이 리코쨩의 뺨을 두드리고 있어요. 제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요? 항상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 항상 따뜻하게 껴안아줬는데.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져요.

 눈 앞이 새까매져가고 있어요.

 그리고 저 멀리에서.

 저를 닮은 누군가가.

 초록색 눈을 빛내며 저를 바라보고 있어요.

 저를 비웃으면서.










 “삐... 삐기~!”


 부실에 도착해 항상 그래왔듯이 노트북 화면을 켠 루비는, 리코가 띄워놓은 소설을 보더니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캐비넷에 숨어있던 리코는 RPS의 매콤한 맛을 본 루비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른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원래 쿠로사와가의 두 자매는 모두 잡지같은 지류에 의지하는 옛날 스타일의 오타쿠였다. 하지만 다이아의 실패로 인해 여기에 변화가 생겼다. 지난 2년. 루비가 집에 스쿨아이돌 잡지를 가지고 갈 수 없었던 지난 2년 간, 루비가 어떤 방법으로 스쿨아이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였는가. 바로 인터넷이었다. 그래. 루비는 인터넷 스쿨아이돌판에 있어서는 리코보다 한참 선배였던 것이었다.

 그런 루비에게 있어 이런 소설따위는 별 거 아닌 그 무언가였다. 그냥 보고 피식 웃어 넘길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녀가 이렇게 깜짝 놀랐는가.


 ‘어제 내가 보던거잖아...’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보여지기 싫은 비밀이 있다. 루비에게 그 비밀 중 하나가 자신이 속해있는 그룹인 Aqours 멤버들로 쓰여진 RPS를 본다는 사실이었고, 또 하나의 비밀은 자신이 주로 보는 커플링이 리코루비였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껐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네.’

 사실 루비는 리코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고백을 받아줄 거라는 자신감이 부족해서, 용기가 부족해서 말하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소설을 찾으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루비에게 있어 RPS는 드림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리코루비는 마이너였다. 오히려 루비가 리코와 눈이 마주쳐 긴장해 얼어버렸을 때의 모습들이 캡처되면서 ‘루비를 리코가 괴롭힌다.’라는 소문이 장난스럽게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루비가 그런 소문이 사라졌으면 해서 리코와 친하게 연출하여 찍은 사진을 올리면 거기에는 ‘리코와 루비의 참된 약속’이니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진’이니 하는 멘션이 줄줄이 달리는 상황이었다.

 이미 인터넷에서, Aqours 팬 사이에서 ‘리코루비’라는 커플링은 하나의 밈이었고, 하나의 웃음벨이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이렇게 가끔씩 올라오는 제대로 된 리코루비 소설이나 만화는 루비에게 있어서 생명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보통은 집에서만 보지만, 가끔씩은 부실에서 보는 날도 있었다. 물론 항상 뒤처리는 깔끔하게 해 왔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부실 노트북에 어제 자신이 보던 소설이 띄워진 채였다. 가능성은 두 가지. 자신이 뒤처리에 실패했거나, 아니면...

 루비는 뭔가 떠오른 듯이 황급히 노트북에 띄워진 창을 모두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비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띄워져 있었지만, 리코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본인의 성공에 취해 소리없는 웃음만 지을 뿐. 루비가 부실을 나가자, 리코는 캐비넷에서 나와 다음 타겟을 위한 셋팅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곧 무슨 일이 덮쳐올지도 모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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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딴걸 4부작으로 기획한거지. 머리속에 있을때는 분명 재밌었는데.

ㅇㅇ 개추 2018.08.12 04:29:42
Myosotis 2018.08.12 04:33:46
Myosotis 개추와 댓글을 받고 이 시리즈 끝나면 오셀로 시리즈 뒷편도 써주셈 2018.08.12 04:34:25
이나미안쥬 ㅋㅋㅋㅋ 2018.08.12 04:34:38
치나미니 보던거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8.08.12 04:36:47
greenbean 2018.08.12 04:41:23
YYY크림 루비는 모든 커플링 다봤겠네 ㅋㅋㅋ 2018.08.12 05:14:57
요솔로 2018.08.12 05:18:49
ㅇㅇ 2018.08.12 05:28:51
ㅇㅇ 2018.08.12 05:29:17
불토리 갓플링 럽잘알 2018.08.12 05:54:59
지모아이 어께→어깨. 39.118.*.* 2018.08.12 06:58:48
TWAFL 재밌는데 ㅋㅋ ss안읽는데 이건 끝까지 읽어본다 - dc App 2018.08.12 08:16:06
ㅇㅇ 이중구조가 몰입감 오지게올리네. 필력 좋다야 2018.08.12 11:25:08
ㅇㅇ 2018.08.12 11:25:24
애플이쓴모든화이트픽셀 오셀로 부분은 진짜 숨죽이고 봤다ㄷㄷ 2018.08.12 13:20:27
리코쨩마지텐시 2018.08.12 15:22:38
Tummy 와 진짜 잘 쓰시네요 정말 잘 읽었어요 꼭 완결내주세요! 다 볼께요 - dc App 2018.08.21 16: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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