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일반 [SS] 마리, 시차 - 完
- 글쓴이
-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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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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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gall.dcinside.com/sunshine/1929498
- 2018-07-19 15:29:01
- 121.162.*.*
------------------------------------------------------------------------- Episode 「-1」 - 마리, 시차(時差, 視差) - (1), (2), (3), (完) - 카난, 별(星, 別) - (1), (2), (3), (4), (5), (完) - 다이아, 우로 (雨露, 愚魯) - 예정 ------------------------------------------------------------------------- 사각사각. 마침내 펜이 종이 지도 위를 걷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여행 준비를 한다. 우리는 어디에 갔었지.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더라. 겹겹히 쌓인 추억을 하나 둘씩 떼어서 마음의 벽에 붙이며, 한나절 만에야 첫 발자국을 손으로 찍는다. 우선, 시작은 우리 사이를 강제로 떨어뜨려 놓고 있는 이 바다를 건너는 일부터다. 아무리 창 밖을 내다봐도 넘을 수 없던 컴컴한 바다를 새하얀 종이 위에서는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손이 금방 우치우라의 해변가에 도착할 것을 상상하며 힘을 낸다. 검정색 선이 그려지면 그려질 수록 무심코 바보 같은 웃음이 흐를 정도로 기세가 오르는게 느껴졌다. 주름 없는 대양을 순식간에 뒤로 하고, 그 다음 늘어져 있는 자국 중에서 일본을 닮은 부분을 따라 선을 그어 누마즈를 표현한다. 여기 이쯤에. 그리고 우치우라와 아와시마는 이쯤에. 입으로 소리를 내어가며 전체적인 윤곽을 잡자, 편지지 위로 번져가는 잉크의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흡사 늘 느끼던 바닷바람의 소금기와 닮아 있었다. 소금기를 맡으며 자세하게 해변의 테두리를 그린다. 오른쪽 위로 계속되는 테두리의 중간에 우라노호시 고등학교로 빠지는 길이 열렸다. 언덕길을 펜이 올라가자 카난과 같이 부르던 노래가 머릿 속에서 재생되기 시작한다. '마리는 음색이 참 곱네, 특히 후렴부분에서.' 라는 말에 'Of course~! 하지만 카난도 나쁘지 않은 걸?' 하며 맞장구를 쳤던 나와, '뻔뻔해졌네, 마리.' 하는 대답에 어우러지는 웃음소리. 바로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귀에 들려오는 그 소리와 함께 여름의 태양도 다시 떠올라, 후덥지근한 열기가 종이 너머로 전해진다. 그렇게 그리운 기억을 곱씹으며 정상에 오르는 길. 오른편으로 귤밭의 나무들이 우리를 반기고, 푸른빛의 수영장 뒤로는 새하얀 교정이 보이는 그 길. 날씨가 습했기에 올라가는 내내 펜을 쥔 손등에 땀이 났지만,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이쪽으로 다른 손을 내미는 너의 미소에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우라노호시는, 축제에 쓸 노래가사를 화이트보드에 적던 Aqours의 부실 - 안무연습을 하던 옥상 - 충실하게 수업을 받던 교실 등, 걷는 모든 곳에 Aqours의 시간이 새겨질 정도로 중요한 곳이라 따로 별표를 한다. 운동장에 검정색 펜으로 큼지막하게 shiny~*라고. 까끌하게 손에 부딪히는 모래를 느끼며 계속 글씨를 적어나간다. 미숙한 꿈의 멜로디가 크게 운동장에 메아리쳤다. 노래를 이어 부르며 학교에서 반대편으로 내려와 멀리 15cm쯤 가면, 소풍으로 갔었던 오세자키의 해변이 나온다. 다른 의미로 신경쓰이는 장소이기에 톡톡하고 펜의 뒷부분으로 그 바다를 두드렸다. 이곳에서 카난과 사소한 일로 말싸움을 했었지. 그런데 도대체 뭐 때문에 그랬더라. 머나먼 일이라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별 것 아닌 일들도 다 떠올릴 수 있게 되면, 내가 그녀로부터 놓친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어느 것 하나도 빼먹지 않고 다 그려내야한다.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게 된 카난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이제부터 그녀와 가본 모든 장소를 답사하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아직 남은 아와시마를 마지막으로 긴 여행이 마무리 되어간다. 현실에서는 훤하게 떠오르는 해로 창 밖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우리의 추억을 돌아보는데에, 기나긴 밤을 몰아낼 정도로 시간이 꽤 지나가버린 모양이었다. 정작 술래잡기 하듯, 카난과 펜 끝의 뒤를 좇고 있던 나는 그렇게까지 시간이 오래 흘렀다는 감각이 없었다.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모든 즐거운 시간들이 찰나에 지나가 버리는 것처럼, 여행을 하는 시간이 단지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좋기는 커녕, 끝이 올수록 안타까움만 커져가서 계속해서 머뭇거렸었다. 추억을 곱씹을수록 여유는 사라졌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마지막을 되풀이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거기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과 카난에 대한 상실감으로 머리가 가득이라, 돌아본 기억 속 어디에서도 내가 놓친 그녀의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너는 여전히 무언가를 감추는 너로, 나는 아직도 아무 것도 모르는 나로. 그냥 그렇게 남아있었다. 여러 감정들로 뒤죽박죽이 된 채로는 아주 작은 갈림길에서조차도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려웠다. 이미 종이 지도 위에서 왠만한 곳에는 다 다녀봤기에 가야할 선택지가 줄어드는 상황도 더해져서, 내 앞에 놓인 길이란 길은 어느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카난을 앞에 두고 문득 이제 나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번을 왔다갔다한 우치우라 해변은 더 이상 줄의 모양조차 아니었다. 숨이 막혀왔다. 바닷내음을 연상시켰던 잉크의 향도 더는 없었다. 마지막 저항이라도 할 셈으로 다시 볼펜을 힘줘서 긋는다. 그런데 때마침 잉크가 다했는지 검은 선 대신 상처 자국같은 푹 패인 선이 생겨났다.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갑작스럽게 찾아 온 이별의 날과 너무나도 똑같아 가슴이 답답하게 응어리지면서도, 끊임없이 웃음만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카난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여행의 마무리라도 아름답게 할 작정이었는데. 거기까지 이제 아와시마에 점 하나를 찍어 카난의 다이빙하우스와 오하라호텔의 완성만을 코 앞에 두고 있었는데. 다시 또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아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결국, 편지지는 다시 구겨졌다.
훌쩍 떠났던 여행이 그 시작만큼이나 제대로 된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막을 고하고, 다시 찬 바람이 휩쓸고 간 방안으로 돌아온다. 방안에는 이제 종이조차 아닌 하얀 쓰레기가 책상을 벗어나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펜은 펜대로 앞대가리가 부러져 있는 채로 수명을 다했고, 마구 흩어진 금색의 머리카락들이 초라하게 그 위를 덮고 있었다. 책상 위 야간비행은 실패의 흔적 외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나는 쓸쓸하게 과거를 돌아본 것 뿐이고 지도 위에 있던 카난도 전부 허상으로, 어떠한 말도 전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집어도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시선의 차이(視差)를 여전히 뛰어넘질 못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마지막. 마음 속에서 줄곧 하나로 존재했던. 그리고 지도 위에 온전히 하나의 섬으로 존재했어야 할 아와시마는, 이제 볼펜 자국으로 생긴 푹 패인 선으로 갈려 두 개의 따로 떨어진 섬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지도가 그러하듯. 너를 찾아 여행했던 편지지 지도에도 너와 나를 가로지르는 시차(時差)는 그려지지 않았다. ----------------------------------------------------------------------------------------------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 추천주신분들,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감상을 방해할 듯 하여 일부러 진행 중에는 본문 중에는 잡설을 넣지 않았지만, 번잡한 글에 조금이라도 이해를 돕고자 여기에 짧은 설명을 덧붙입니다 단편집 ' Episode 「-1」'은 첫 결성된 Aqours가 해체된 직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단편집이고 그중에서 "시차"는 마리가 카난, 다이아와 헤어져 이탈리아의 어느 바닷가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한 달 정도 유학을 하고 있는 마리의 이야기입니다
1기 9화의 카난과 마리의 설명하기 어려운 애틋함을 떠올려보면, 역시 마리는 유학 내내 카난을 가장 많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런 내용과 함께 약간 여성스러운 면을 부각시켜 진행하였습니다 끝이 깔끔하지 않거나 거부감을 갖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는데, 이는 세 사람이 당시에 느꼈을 개운하지 못한 마음들을 표현하고자 했던 거고 이 시리즈 뒤로 연계되는 다른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번 단편집의 제목으로는 전부 같은 단어 안에 두 가지 의미를 담는 통일성을 두었습니다
그 중 마리의 SS "시차"는, 카난과 마리의 시선의 차이라는 의미에서의 視差와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실제 시각이 차이가 나게 되는, 흔히 여행시차를 말할 때의 時差를 가지고 썼습니다
카난과 다이아의 제목들도 비슷하게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작성하였고 여기에 대한 이유는
세 사람 모두 Aqours가 해체를 맞이하게 된 것을 자신이 직접 내린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 판단을 후회한다는 이중성을 담기 위함이었습니다만
중간부터 조금 어긋나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다음 단편이 되는 카난의 이야기는 다음주부터 올라갈 예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추천과 댓글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틈틈이 써오겠습니다 |
Myosotis | 2018.07.19 15:34:24 | |
H_ERO | 오늘 처음 봤는데 직접 쓴거임? 엄청나다... 전것들도 봐오겠음. | 2018.07.19 15:34:28 |
Myosotis | 표현력 갓갓 다음 작품도 기대할께요~ | 2018.07.19 15:34:54 |
물알못물송합니다 | 재밌게 잘 읽고 있음 좋은 글 ㄱㅅㄱㅅ | 2018.07.19 15:35:52 |
SS | 댓글들 감사합니다 제 글이 갤에 전부 올라와 있지 않지만 시간나면 여기도 전부 올려보겠습니다 121.162.*.* | 2018.07.19 15:36:51 |
ㅇㅇ | 오오 이새끼 글 좀 쓰는데? 1.228.*.* | 2018.07.19 16:21:43 |
애플이쓴모든화이트픽셀 | 글 잘쓴다 표현력이 책 많이 읽은 것 같음 근데 마리편만 보면 카나마리가 부각돼서 다이아가 약간 소외되는 느낌인데 카난, 다이아 편에서 그 부분은 보강되는거지? 네가 쓴 다른 글들도 다 읽어볼 수 있음 좋겠다 | 2018.07.22 01:16: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