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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반 [SS] 마리, 시차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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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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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1928075
  • 2018-07-18 14:50:08
  • 12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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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 마리, 시차(時差, 視差)  -  (1), (2), (3), (完) 


- 카난, 별(星, 別)


- 다이아, 우로 (雨露, 愚魯)  -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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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가 켜진 책상에 다시 앉는다. 


책상 위에는 아까 창문을 열기 위해 일어나기 전과 동일하게, 찌그러진 종이와 펜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고급스러운 검정색의 펜과 보기 싫을 정도로 난잡한 내 감정을 닮은 쭈글쭈글한 편지지가.


배배 꼬여 뒤틀린 종이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펜을 잡아본다. 

그러나 손에 든 것은 단지 짧은 몇 초뿐. 호화스럽게 장식된 펜을 몇 번이나 잡았다가 내려놓았다. 


펜 끝에는 떨어질 듯한 잉크가 곡예를 하며 매달린다. 

뚜껑만 열어 놓은 채 한나절동안 아무 것도 쓰지 않은 펜인데, 용케도 잉크가 말라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특하기는 해도 그런 펜을 칭찬하고 싶다는 마음은 딱히 들지 않았다. 

벌써 한나절을 책상 앞에서 허송세월하며 보냈듯이, 잉크가 넘쳐날 정도로 많다한들 나는 카난에게 보내는 어떠한 문장도 써낼 수 없을 테니. 

 

펜에 주목하고 있는 사이 책상 위로 파삭파삭거리는 종이의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다시 내 이목을 끄는데 성공한 편지지가 내는 비명이었다. 


- 이제 나를 그만 괴롭혀. 너는 어차피 쓰지 않을 거잖아. 여태껏처럼 나를 쓰레기마냥 그저 손으로 구겼다가 다시 억지로 피는 작업만 반복할 뿐이잖아.


비난과 함께 끊임없이 부시럭대는 그 소리에 귀가 따갑다. 


하지만 내가 왜 종이에게서까지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지? 

애초에 나는 편지를 쓰는, 지금의 이 상황을 감사하게 여겼는데. 

오히려 어중간하게 가까워서 전화나 메신저로 바로 메세지를 주고 받지 않아도 될 정도의 시차가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짜증이 치솟아 입막음을 할 요량으로 종이를 손에 잡았다. 

그리고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접혀서, 짓이겨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그것을 또 한 번 강제로 넓혔다. 


손이 종이에 닿자 파삭파삭에 이어 이번엔 퍼서석하고 가로누였던 편지지가 홀로 오그라들기 시작한다. 

형태를 바꾸어 갈 때마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뾰로퉁하게 삐진 사람이 중얼거리는 궁시렁거림에 가깝다. 


멈출 생각이 없는 걸 보아하니, 녀석은 내가 못마땅한거겠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너에게 보낼 단어들의 조합을 깔끔하게 포기하든지, 아니면 어떻게든 녀석을 돌려놓아야 했다.


어차피 지금은 뭔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제대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편지지를 조금씩 반듯하게 해보기로 했다.



유리가 깨질 것처럼 새겨진 자국들을 몇 번이나 쓰다듬고 어루만진다.

종이의 형태는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고, 거기에서부터 나오는 소음 또한 사뭇 거슬려서 역시 관두는게 낫겠다 싶지만서도 천천히 행동을 반복한다.


그런다고 편지지가 다시 되돌아올 일은 없지만, 간단한 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내 마음을 다잡는 데에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 

스무시간이나 지난 끝에야 조금씩 이성적인 내가 돌아올 것 같이 느껴졌다. 


손으로 지긋이 눌러펴기를 한 30분 쯤 반복했을까. 

어느새 종이가 더 이상 살아 숨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정이 되자, 오른손으로 다시 펜을 들었다. 

묵직한 펜의 무게는 손목의 무리를 주기보다는 가슴에 돌을 얹어 놓은 듯 심장의 압력을 가했다.  


어떻게 하지. 

카난 그리고 다이야에게라고 시작하면 좋을까. 

'보고 싶은' 이라는 직설적 표현보다는 '친애하는' 같은 단어가 평범하니 건조하게 들려서 더 괜찮을까.


알맞은 말을 찾지 못해 애꿎게 혹사당하고 있던 종이를 더 반듯하게 펴나간다. 

어느 정도로 주름이 사라졌나 확인하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아까 전보다는 훨씬 깨끗했다.


새하얀 편지지 위로 손이 닿는 곳마다 구부러진 줄이 개울처럼 흐른다. 

그 옆으로 아무렇게나 나있는 주름은 기괴하게 꿈틀댄다.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그 모습은 마치 지도에서 산맥의 동고선을 연상케 하였다. 


어둠이 뒤덮은 방안에서 홀로 뽀얀색의 살을 드러내고 있는 편지지가 지도와 닮았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나자 단어를 고르려고 풀가동하던 머리가 이상한 곳에서 멈췄다. 

공교롭게 이번에도 역시 카난과의 추억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사회 수업 시간에 백지도를 접해 본 적이 있다.


지리상으로 구역을 대충 나누어 놓은 것뿐 아무런 특징도 없어 보이는 순백의 지도. 

잘 이해조차 되지 않는 일본 한자식 지명을 섞어서 한 시간 내내 테두리만 그려진 그 그림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당시의 나로서는 무척 고된 일이었다. 


참지 못하고 손으로 펜을 굴리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반 이상은 흘려듣는 나를, 선생님을 비롯해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한 손으로 비스듬히 턱을 괴고 옆에 앉아 있던 카난은 나의 지루함에 공감하고 있었던 건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자리에서 퐁하고 일어나서 '마리가 살던 곳을 알려줘'하고 물어왔었다.


당시의 수업용 백지도는 일본을 행정구역을 분류해 놓은 것이었기에 다른 대륙이 그려져 있을리는 만무했고, 

나 역시도 어디 쯤에 내가 살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종이 정반대편에 대충 점을 찍자 

그녀는 그 점부터 주욱 아와시마로 추정되는 곳까지 연필로 선을 긋고 '앞으로 마리는 여기서 함께 사는 거네'라며 순수히 웃어보였었다. 


그 웃음이 좋았던 나는 카난이 살면서 가봤던 곳을 지도 위에 그려달라고 주문했고, 

이후 '백지도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랍니다'하며 앞머리를 이상하게 자른 다이야가 기나긴 설명을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는 지도 위를 함께 걸었었다.  


그리고 지금. 


책상 위에 놓인 편지지는 백지도를 닮았다. 

언젠가 펼쳐졌던 새하얀 세계가 거기에 있다.


그렇게 여기기 시작하자 손이 강하게 펜을 쥐었다. 

머리는 편지에 쓸 단어들을 버리고 다른 목표를 떠올렸다.  


그리자. 


이 위에 우치우라를 그릴 수 있어. 

아와시마를 그릴 수 있어.


억지로 말을 쥐어짜내는 것보다 이러는 편이 훨씬 나아. 

지도 위 카난과의 추억을 그려내다보면, 전달할 마음을 구체화할 수 있을지도 몰라. 

줄곧 스스로 모른 척 해왔으면서도 알려주고 싶었던 나의 부분이 그 추억 안에서 태어났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지금까지의 맥없고 심란하기만 했던 자신이, 꿈을 꾸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카난과 함께한 장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는, 들뜬 기분으로 채워졌다. 


일시적 고양감에서오는 단순한 변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오로지 그려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Myosotis 재밌게 보고 있어~ 다음편도 기대할게 2018.07.18 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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