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일반 [SS] 마리, 시차 - 1
- 글쓴이
-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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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gall.dcinside.com/sunshine/1924444
- 2018-07-16 15:15:21
- 121.162.*.*
쓰고 있던 ss 시리즈 하나 가져왔습니다 이 시리즈는 초기의 Aqours가 깨지고 난 직후의 이야기를 현 3학년의 나레이션을 빌려서 다루고 있는 단편집들로 구성되어있고 조금 시리어스하게 진행됩니다 아직 완결이 나지는 않아서 계속 쓰는 중이지만 쓴부분까지는 일단 되도록 매일 연이어서 올릴 예정이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pisode 「-1」 - 마리, 시차(時差, 視差) - (1), (2), (3), (完) - 카난, 별(星, 別) - 다이아, 우로 (雨露, 愚魯) - 예정 -------------------------------------------------------------------------
드라마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네 안에 감춰진 진심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지 너와 나는 다른 것을 다른 시간에 보고 있으니까 시차(時差, 視差)
한참 동안을 책상에 앉아 시간의 뒤를 따라 걸었다. 벽시계의 초침이 나아갈 때마다 째깍째깍하고 가느다란 몸을 비트는 소리가 머리 안에 시끄럽게 메아리쳐 어지럼증이 일어날 것 같아도, 오직 시간만을 따라서 계속. 시계 바늘이 마치 나침반이라도 되는 양, 길을 잃어버린 컴컴한 방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그 끝을 좇는다. 몇 시간 째 이어지는 줄다리기 같은 싸움에 슬슬 바늘을 좇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지만, 그깟 신체적인 피로 정도는 아무래도 좋다. 그보다는 일본을 떠나 이곳에 온지 한 달째 되는 오늘이 주는 피로감이 더 컸으니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참 미묘하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도 한 달 가지고는 티가 이제 막 날까말까 하는 정도고, 연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고 해도 완전히 입문 단계라 본격적으로 실력을 쌓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어쩌면 해외 어딘가로 여행가기에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굳이 해외여행으로 그 범위를 한정한다고 하면, 한 달의 시간은 여행자가 받는 즐거움에 따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 달은 커녕 몇 년이 지나더라도 새롭게 밟는 이 이국의 땅이 불편하게 느껴질 게 뻔하다. 물론, 내 경우는 여행이 아니라 유학의 형태가 되어서 그러한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요컨대 이건 그냥 넋두리다. 일본에 전학갔을 때도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결국에는 잘 적응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도 주위 환경에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은, 내 솔직한 마음의 불평이자 두려움의 표현이다. 이 차이는 역시 네가 없는 데서 오는 걸까. 지금 책상에서 수십 번이나 펜을 잡았다 놓으며 망설이는 이 모든 행위까지 전부 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진짜 미련한거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들려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마찬가지로 네게도 물었으면 좋았을 것을. 저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핑계삼아 그대로 서로의 손을 놔버린 건, 오래 못가 무너질 줄 알면서도 모래 위에 억지로 성을 쌓기 시작한거나 마찬가지였다. 설령 조금씩 쌓아올린 모래성이 미래에 황금의 성이 된다 한들, 모래성을 지탱해주는 마음의 주춧돌인 우리 셋의 관계는 여전히 어긋난 채일 테인데. 어리석게도 시간이 상황을 낫게 할 거라고..아니, 직접 우리가 놓인 상황을 스스로 전부 해결해보이겠다고 고집을 부린 결과가, 네게 보내려는 편지 한 통 못 부쳐 자괴감에 빠져있는 지금의 꼴이다. 몇 번이고 후회가 남아 자꾸 돌이켜봐도 이제와서는 다 이미 지나간 일. 어떻게 포장을 해도 if의 이야기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 발자취를 들여다보느니라 멍하게 넋을 놓고 있는 게 바보 같아져서 창문을 열기 위해 일어났다. 생각 자체를 관두고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일어난 김에 억지로 몸을 더 움직인다. 팔을 머리 뒤로 넘겨 스트레칭도 하고, 목을 양옆으로 기울여보기도 한다. 크게 벌린 손바닥으로 뺨도 두어번 치고나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싶어 해변가 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밖으로 밀었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는 바람이 세차게 들어와, 레이스가 달린 커튼이 이따금씩 팔락거린다. 바람의 강도 뿐만 아니라 온도가 팔에 소름을 돋게 만들 정도로 밤공기가 제법 찼다. 한기가 느껴지는 창문 뒤로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는 흑색의 장막이 펼쳐졌다. 시야에 아무 것도 보이질 않지만,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그곳에 바다가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뭔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 창 밖을 멀리 내다본다. 그러나 여전한 어둠. 수평선이 내 주변에서 빛을 빼앗아가는 상상을 불러일으켜, 기분 나쁘기 그지없다. 그래도 저 어둠 너머 멀리 어딘가에는 일본이 있고, 그 중에는 아와시마라는 섬도 있을 것이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내 방 창가에 앉으면, 유리창에 비춰지는 손전등의 빛이 따뜻하게 반짝거리는 섬이. 불행하게도 이 유럽대륙의 바다 위에는 별 하나 조차도 빛나고 있지 않으니까, 지금은 아무 것도 내 앞을 밝혀주지 않는다. 그 따스한 빛은, 같은 땅덩어리는 커녕 비행기로도 오랜 시간을 날아야 비로소 닿는 꽤 먼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게 현실이다. 목소리를 통해 온기라도 느끼고 싶지만, 시차(時差)가 존재해서 전화해도 바로 받지도 못한다. 그런 사실을 일일히 확인하자 바닥 없는 곳으로 마음이 추락하는 것 같았다. 헤어날 수 없을 만큼 긴 낙하. 고개를 숙인 감정들이 일어나지 못하고 떨어진다. 오래 전부터 품어온 마음은 구석부터 조각조각 찣겨져 허공에 흩날린다. 그걸 지켜봤다는 듯 밤하늘도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손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가슴이 새삼 후들거렸다. 이렇게 불안할 때, 나는 어떻게 했더라. ..그래. 네가 항상 손을 내밀어 주곤 했지. 따뜻하게 허그해 주었었지. 새로 접한 세계. 서투른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말하는 방법 조차도 너를 흉내냈던 때늦은 추위 속 봄날. 매서운 날씨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듯한 포근한 품과 다정한 말 한 마디에 몇 번이나 구원받았는지 모른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게 낯설었던 일본에서, 카난은 커다란 외투이자 다시 없을 쉼터였다. 어두운 곳에서 떨고 있는 싹을 언제나 비춰 주는 햇살이었다. 내가 모르는 점이 있다면 고집스럽게 끝까지 도움을 주는 손길. 할아버님 밑에서 자라왔기 때문인지 카난만의 개성이기도 한 조금은 남성적인 배려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당연해서 거기에는 어떠한 의도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피부색 다른 전학생에게 선의에 넘친 그 행위는 다소 치명적이었다. 마시면 마실 수록 더 갈구하게 되는 짜디짠 바닷물처럼,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해 더 크게 카난을 들이마셨지만 오히려 그게 가슴을 꾹 하고 조여 와서 끝없는 갈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마침내 카난에 대한 중독이 가속화 했을 때, 내 머리는 그녀가 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의존하기 시작한 삶의 줄기는, 카난이라는 기둥에 지탱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세계에 태어난 것은 카난이 내게 보내는 것과는 조금 핀트가 어긋난 감정. 그 감정 위로 푸른 빛을 띤 그녀의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났다. 꽃을 지켜주는 온실은 커녕 하나의 온전한 화분조차도 되지 못한, 척박한 내 마음에 핀 그 장미를 나는 한동안 소중히 여겼다. 한동안은.
영원히 소중히 할 수는 없었다. |
AsTimeGoesBy | 중간 찣->찢 | 2018.07.16 15:18:53 |
AsTimeGoesBy | 글 좋다. | 2018.07.16 15:19:03 |
SS | ㄴ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121.162.*.* | 2018.07.16 15:21:03 |
ㅎㅅㄷ | 2018.07.16 15:23:02 | |
Myosotis | ㅊㅊ 글 잘 쓴당 담편도 기대할께 | 2018.07.16 15:29:41 |
railgun | 기대할게요 감사해요 - dc App | 2018.07.17 02:11: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