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코 할머니, 아프지 마...” 침대 너머, 내 손을 어루만지는 손녀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쇠약해진 때부터 병문안만 온다고 하면 한 번도 빼놓지 않은 아이.
미안하구나, 이제는 마지막일 것 같아.
“엄마, 뭐 먹고 싶은 것 있어?”
“아니. 딸내미 과자나 사 줘.”
“...알았어. 잠깐 애 유치원 좀 데리러 갈게.”
“할머니 또 올게!”
“그래. 잘 가거라.”
하고 손을 힘겹게 꺼내 흔들어보였다. 그랬더니 문 밖으로 나가다가 말고 손을 크게 흔들어서 인사를 하는 손녀를 보았다.
그 녀석은 다음이라면 또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 충격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는 딜레마. 하지만 끝내 감추고 말았어. 미안해.
“저도 가보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딸에겐 제가 잘 말해놓을게요. 쉬고 계세요.”
“응. 조심히 나가 보고.”
마지막 인기척이 사라짐과 함께 방에는 조용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또 다른 ‘조용함’이 찾아왔다.
‘마지막 인사는 그걸로 끝이야?’
“마지막 인사랄 것까지야...”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하는 게 어때? 유예는 조금 남아있으니.’
“충분히 했어. 내 수명은 오늘 지금 이 시간까지라며? 그럼 그걸 지켜야지, 어기면 쓰나.”
‘정말로 괜찮은 거냐?’
“응.”
‘그렇다면... 여기, 손을 잡아.’
“마지막에 잡는 손이 저승사자의 손이라니 재미있네, 후후...”
‘영혼 요시코의 승인에 따라 인도식을 진행한다. 요시코, 그대는 이제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며 천계의 법도에 따라 영혼은 대천사님께 귀속된다. 이 사실에 동의하는가?’
“동의.”
‘...그래.’
그 순간, 나는 두 명이 되었다. 하나는 가벼운 나 자신, 다른 하나는 잠들어있는 나. 잠들어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평안해보여서 영원히 잠들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미 영원히 잠들어있는 상태겠지만.
“가자. 먼 길이 될 테니 꽉 붙잡아야 할 거야.”
“어차피 날아가는데 무슨. 내 걱정은 마시죠?”
흔쾌히 대답은 했지만 나는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을 뚫고 나가기 전에 본 것은 달음박질하는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 그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연락하고는 숙연한 표정으로 내 병실로 향했다.
높이, 더 높이. 지구의 지평선이 보임과 함께 병원에 오기 전에 살았던 집이 아주 작게 비쳤다. 어딘가에서는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최고 경관 뭐시기해서 올라왔던데 죽어서 보게 되다니. 사람 일... 아니 영혼 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우주를 넘어, 우리은하 넘어. (같은 길을 가는 존재들)
7과정의 제련을 거친 후 나는 육체와 비슷한 영체를 얻었다. 길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던 여정 끝에 나는, 내 영체는 새로운 땅을 밟았다. 시험을 마주하고 수 없이 많은 세계 속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자연천사가 되기 위한 수련. 그것을 담당하는 아크로폴리스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길안내 고마웠어요. 언젠가 다시 만나죠.”
“부디 훌륭한 천사가 되시길.”
하고 저승사자는 훌쩍 이승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새로운 삶을 향한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윽, 잠깐!” “으, 응? 익숙한 목소리...”
“리코? 왜 거기에 숨어있는 거야?”
“앗, 조용!”
“...?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무튼 조용. 나는 여기서 들키면 안 되니까...”
기세에 밀려 그만 나까지 속삭임으로 말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리코는 고등학생 때 모습 그대로네.”
“으, 응? 요시코도 똑같은걸?”
거울을 건네받아 본 나의 모습은...
“와! 진짜 고등학생 모습이잖아!!”
“조용...!!!”
하고서는 고요한 외침이 몇 번 더 반복되었다.
“자아, 공통물리 수강령들은 모두 이 책을 받아두세요~” 하는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책들이 영체들 앞으로 움직였다. 뭐야 이거! 생전에도 이렇게 두꺼운 책은 못 봤어!
“이 책은 양이 정말 많아 보이지만 많은 게 사실이에요. 앞으로 자연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지식들이니까 원리와 개념을 중심으로 들어갈게요. 마법 실습도 있으니 그리 심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이상, 질문 받습니다!”
그 순간 먼 옆자리의 영체가 손을 들었다.
“이 곳의 환경 조건은 이승과 똑같나요?”
“좋은 질문 들어왔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손바닥 위로 지구본을 비추더니 선 하나를 그었다. 그런데 손을 대지도 않고 그냥 저 스스로 쓱쓱 그려지는 것이었다. 아마 마법으로 그린 거겠지만... 오랜 친구들 중 한 명이 같이 왔다면 ‘미래예유~’라고 외쳤을 것이 분명하다.
“이 곳의 날씨는 2018년 기준 북위 45도의 맑은 날씨에 남중고도는 최고 60도! 한낮 최고 기온은 알아서 계산해보시길!”
“넵, 감사합니다.”
...뭐야. 뭐가 지나간 거야? 남중고도? 고도를 가지고 날씨를 예측해? 저게 뭔 미친놈인지 원!
“유성 옵니다, 천사장!!” “모두 제 뒤에서 술식 증폭해주세요. 주요 연산은 제가 합니다.”
마리는 혼자 밖에 서 있었다. 유성 따위는 겁나지 않는다는 듯이.
그리고 계산을 시작했다. 계산에 걸리는 시간만큼 마리의 몸은 마르고 있었고 기억 속의 모습과 같아졌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마법을 한 번 사용할 때 필요한 에너지 역시 엄청나다는 것을 반증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사상력으로 모두 사용되겠지.
유성을 막기 위해서는 유성의 운동량뿐만 아니라 구형 사상방패에 충돌한 후의 잔해도 예측해야 한다. 구 뒤쪽으로 넘어가지 않기 위한 지면과의 각도 계산, 여기서 또 유성의 속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속도는 유성의 음파 진행으로부터 구한다. 질량은 불꽃색으로부터 원소를 추정한 후 원자량에 크기를 곱해 구한다.
계산을 끝낸 마리는 마침내 눈을 떴고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직후...
지쳐서 주저앉은 마리 앞에는 거대한 흙산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거대한 돌덩어리가 이렇게 흙으로 다져지다니... 마리는 내 생각을 훨씬 뛰어넘었다.
“천사장님!!”
다른 동료들이 주저앉은 그녀들 들쳐업었다.
“다른 이들은...”
“괜찮습니다. 당신 덕입니다.”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땀투성이로 곯아떨어진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수학적 원리를 이해하면 어렵지 않아.” 리코는 손을 올리더니 투명한 공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공기를 뭉쳐서 그 가운데에 위치시켰다. 뭘 하려는 거지...?
그랬더니 갑자기 가운데로부터 전기가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교과서에서 흔히 보던 전기가 바깥쪽으로 일렁이는 모습, 이건...
“플라즈마...?”
“맞아. 전자를 떼어버리는 에너지만 계산해내면 돼. 그 상태가 플라즈마, 그리고 우린 그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는 거지.”
“우와...”
일렁이는 반짝이는 빛이 뭐가 그렇게 아름다웠는지 한참동안을 지켜보았다. 아닌가, 그 너머의 얼굴이 더 아름다웠던가. 구별할 수 없네.
그 모습에 취해 밤은 이야기하는 것으로 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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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저승 이과 판타지. 안드로메다 은하가 우리은하에 10광년 안으로 접근할 때 마저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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