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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SS번역/복구] 악마에게 붙잡혀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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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12 03: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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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

방과후, 부실로 향하는 나의 등뒤에서 조금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한 명의 여자아이가 나를 향해서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완전한 검은색과는 조금 다른 어두운 파란색. 오른쪽 위에는 중간 정도 크기의 머리카락의 경단이 달려있어, 그녀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머리카락과 함께 작게 흔들린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포도같은 선명한 보라색의 눈동자는, 기쁨을 머금은 채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욧짜...”

나도 그녀를 보고 이름을 부르려 한 순간, 그 아이는 갑자기 넘어지고 말았다. 정말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주위에 발이 걸릴만한 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멋지게 안면 슬라이딩을 선보였다.

“괘, 괜찮아?”

당황한 내가 그녀 곁으로 달려가자, 그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몸을 일으킨다.

“거, 걱정할 필요 없어. 악마와 계약한 이 요하네님에게 있어서, 이딴 고통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구!”

그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그녀의 콧등은 빨개져 있고, 눈끝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 있다.

“정말 괜찮아?”
“괜찮다니깐.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단언하는 그녀에게 나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화를 끝낸다. 본인이 저렇게 말하는데 괜찮겠지.

“것보다, 그렇게 서둘러서 뭘 할 작정이었어, 욧짱?”
“부실로 가고 있었더니 리리의 뒷모습이 보여서... 너랑 같이 가고 싶었을 뿐이야.”

내 질문에 욧짱, 츠시마 요시코짱은 에헤헤, 라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 ★ ☆ ★


욧짱과 알게된 것은 내가 이 우라노호시 여학교에 전학와서 2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같은 반이자, 여기서 생긴 첫 친구이기도 한 타카미 치카짱이 스쿨 아이돌을 시작한다고 하기에 협력하고 있을 때 돌연 나타난 것이 바로 욧짱.
나의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별난 여자아이, 정도 될까.

“혹시 말이야, 너희들? 이 매력적인 나를 찾기 위해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는 게 아닌지? 그렇다면 아쉽게 됐네. 이 요하네님은 누구나가 다 친해지길 원하는 인기인이니까. 독점은 안돼.”

...라고 자신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해와서, 나는 적당히 웃음을 지으며 넘겨버렸다. 그러나 치카짱은 한번 이야기를 해본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거야? 그럼 우리 그룹에 들어올래?” 라고 역으로 욧짱을 끌어들였다. 욧짱 자신도 그 반쯤 강제적인 권유가 별로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라, 그렇게 함께 아이돌 활동을 하게 되었다.
나와 욧짱은 사는 곳이 가까웠던지라 누마즈 시내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많았고, 자연히 Aqours의 활동 이외에도 접점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에 있을 때도 그녀와 함께 있을 때가 점점 늘어났다.

“그러고보니 욧짱. 그 ‘리리’라는 호칭, 마음에 든 거야?”
“응. 네가 요하네에게 욧짱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으니, 나도 답례로서 한 번 생각해본 거야.”

미소지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던 욧짱은 갑자기 무언가 깨닫기라도 한 듯 핫, 하고 발걸음을 멈추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 혹시... 마음에 안 들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쁨을 표출하고 있던 그 눈썹이 축 쳐지면서, 풀죽은 표정으로 나를 살짝 올려다 본다. 그런 표정변화가 너무나도 귀여웠다.

“아니, 마음에 쏙 들어. 고마워, 욧짱.”

미소를 지으며 욧짱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간지러운 듯이 욧짱은 표정을 풀고, 축 쳐져있던 눈썹을 천천히, 기쁘다는 듯이 세워 올린다. 그런 욧짱을 보며 나는, 역시 좋은 아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자, 빨리 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거야.”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 내가 막 걸음을 내딛으려 한 그 순간.

“꺄앗?!”

발에 갑자기 뭔가가 걸린 듯하더니, 몸이 기우뚱, 하고 앞으로 기운다.

“으엇차...”

그러나 어떻게든 균형을 유지하는데 성공한 덕분에, 방금 전의 욧짱처럼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으, 위험했어...”

깜짝 놀라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주위를 돌아본다. 그러나 역시 발에 걸릴 만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라?”
“리리! 괜찮아?”

욧짱의 걱정과 놀람이 담긴 목소리에 “괜찮아.”라고 대답해주었지만, 욧짱의 표정은 어두워진 그대로였다.

“왜 그래, 욧짱.”
“내 탓일지도 몰라...”
“에?”
“요하네의 불운이 리리에게도 전염되고 만 거야. 그런 거야, 분명.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다니... 보통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어.”

여전히 어두운 표정의 욧짱을 보고, 정말로 이 아이는 상냥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악마라고 부르며 나쁜 사람인 척 연기를 하고 있지만, 본모습은 다른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상냥한 여자아이. 자신의 운이 나쁘니까, 다른 사람의 불운에는 더욱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마는 거겠지.
그런 상냥하고도 마음씨 좋은 욧짱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웃으며 말을 건넨다.

“너무 나갔어, 욧짱. 지금 건 그냥 어쩌다 발이 꼬인 것뿐이고, 욧짱 때문이 아니야.”
“지금 건 설령 그렇다쳐도, 앞으로 어쩌면 내 불운이 리리에게도...”

그렇게 욧짱이 말을 끝맺기 전, 나는 욧짱 앞에 손을 펼쳐보이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런 일은 절대 없으니까 안심해. 게다가 나, 예전부터 악운은 강했으니까. 응?”

그래도 뭔가를 더 말하려는 욧짱을 나는 단호히 막아섰다. 그러자 욧짱은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 ☆ ★


그 때 이후로 뭔가 이상해졌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면, 내가 사려던 것과 다른 음료수가 튀어나온다.
분명 가방에 넣었을 거라 생각한 교과서가 들어있지 않았다.
찻물이 어쩐지 미지근하게 데워져서, 차가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지우개나 샤프심이 바로바로 부러진다.
등등, 어쩐지 어중간한 느낌의 불운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하루에 2, 3번씩이나.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게 불운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 주의력이 산만해진 탓이겠지. 최근 연습도 점점 하드해지고 있으니, 그 피로가 내 주의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욧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항상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던 그 얼굴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져 갔다.

“욧짱.”

어느 날 연습이 끝난 뒤, 나는 혼자 걷고 있던 욧짱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집에 같이 갈까?”

그렇게 말하며 욧짱의 옆에 나란히 서니, 그녀는 걷는 속도를 높여 나와 거리를 두려 했다. 나도 그에 맞춰 걷는 속도를 높이니, 이번에는 속도를 늦춰서 나와 거리를 두려 한다.

“정말. 그런 심술궂은 짓은 하지 말아줘, 욧짱.”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한 가벼운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욧짱의 고개는 계속 숙여진 채였다. 그 고개가 내 쪽을 향하는 일은 없었다.

“욧짱?”
“안 돼, 리리. 나랑 같이 돌아간다던가 하는 일을 해버리면, 또 다시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 말거야.”
“괜찮아.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이 불행한 일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걸?”
“그렇지만, 혹시 본격적으로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면...”
“괜찮아. 전에도 말했잖아? 나, 에전부터 악운이 강한 편이라고.”

그래도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만 있는 욧짱에게, “그렇지.” 라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저기, 욧짱. 이번 일요일에 같이 어디 놀러가지 않을래? 욧짱이 먹고싶다고 했던 슈퍼 에베레스트 마운틴 파르페. 그거 먹으러 가자.”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랑 같이 어디 가기라도 하면, 그 때야말로 엄청난 불행이 들이닥칠 거야.”
“걱정하지마. 분명 괜찮을 테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의심하는 욧짱에게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싶었지만...

“그냥,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뭐라고?”
“응, 그래. 근거는 찾을 수 없지만,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째설까, 라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정말로 그냥 그럴 것 같다는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모범답안 같았다.

“그, 그게 무슨...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는 말로 어떻게 될 문제가...”
“욧짱은 나랑 어디 놀러 가는 거, 싫어?”

그 말에 욧짱은 웃, 하고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고선,

“리리는 치사하다구... 그런 식으로 말해버리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선 작게 속삭이는 욧짱의 얼굴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나는 무심코 미소를 짓고 말았다.


☆ ★ ☆ ★


“리코짱, 요즘 왠지 기뻐보이네.”

등굣길, 내 옆을 걷고 있던 치카짱이 문득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응? 어떻게 안 거야?”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누구라도 알게 된다구.”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지금까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부끄러워져서 얼굴에 열이 오른다. 뭐하는 거람, 나.
치카짱은 그런 나를 보고선 즐겁다는 듯이 미소짓는다.

“요시코짱이랑 뭔가 있었던 거지?”
“응? 아니, 그게.”
“숨기려고 해도 소용없어~ 리코짱, 요즘 요시코짱이랑 같이 있을 때 엄청 행복해보이는 걸.”

서, 설마...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줄이야... 아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그런데 그러고보니, 그 때 이후로 특별히 눈에 띄는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그것들은 나의 주의력 산만이 부른 결과였던 거야. 그런 거라고 욧짱에게 말해줘야겠어.

“요시코짱이랑 무슨 약속이라도 했어?”

갑자기 치카짱이 그렇게 물어왔다.

“음, 아, 그, 그, 그게 그러니까... 마, 맞아.”

별로 뒤가 켕기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선지 솔직하게 대답하기가 부끄러워져서, 나는 무심코 말을 더듬고 말았다.

“뭐야, 뭐야? 무슨 약속을 한 거야?”

엄청 신경쓰인다는 표정으로 나의 바로 앞에 서서, 기대의 눈빛을 보내오는 치카짱. 나, 나는 왜 이렇게 기대받고 있는 걸까...

“다음주 금요일에 슈퍼 에베레스트 마운틴 파르페를 먹으러 가자고...”

치카짱의 반짝이는 눈빛을 버티지 못하고 눈을 살짝 돌리며 대답하자, 치카짱은 뭐어어?! 라고 오버스럽게 화들짝 놀라며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슈퍼 에베레스트 마운틴 파르페라니, 그 레전드급으로 커다란 파르페를 말하는 거야?”
“으, 응. 욧짱이 전에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그, 그렇게 대단한 거야?”
“대단하다, 는 말로 끝낼 게 아니라구! 크기는 카난짱의 가슴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닿을 정도고, 사용되는 아이스크림이나 생크림은 그야말로 일품 중의 일품! 평범한 여자아이라도 감히 먹어보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물건이란 말이야.”
“그, 그렇구나...”

설마 그 정도로 대단한 파르페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그냥 이름만 그렇지 실제로는 평범한 파르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였다니. 그런 걸 먹자고 하는 욧짱은 대단한 건지, 아닌 건지...

“그래도 좋겠다아. 치카도 뭔가 달달한 음식이 먹고 싶은 거얼. 아, 그래. 카난짱 꼬셔서 이번 주말에 놀러 나갈까.”

나와 욧짱이 같이 외출하는 걸 부럽다고 생각한 것일까, 치카짱이 대단한 계획을 떠올려냈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싱긋,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정해졌으니, 이젠 빨리 연습하러 가야지! 모두들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 치카짱! 그렇게 먼저 뛰어가지 마!”

곧바로 내달리기 시작한 치카짱의 등을 쫓아 나도 달리기 시작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한 그 순간.
엄청난 음량의 경적 소리가 옆에서 울려퍼졌다.

“에?”

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니, 거기에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한 대의 차가.


“리코짱!!”


치카짱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와 경적 소리가, 어쩐지 너무나도 멀게만 들려왔다.


“......늦어!”

우라노호시 여고의 음악실.
허리에 손을 얹은 다이아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치카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죠? 이 시간이 되도록 오질 않다니!”
“자자, 진정해. 뭔가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런 다이아를, 자리에 앉은 채 쉬고 있던 카난이 진정시킨다.

“그렇지만 치카랑 리코 둘이 같이 지각이라니 별일이긴 하네.”

카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지금까지 연습실에 가장 빨리 도착했던 쪽은 치카와 리리였다. 리리는 분명 치카에게 끌려왔을 뿐이겠지만.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때, 누군가의 가방에서 휴대전화의 착신음이 울려퍼졌다.

“아, 내 거다. 치카한테서 온 건가?”

그렇게 말하며 카난이 가방을 열어 휴대전화를 꺼낸다.

“아, 역시 치카한테서 온 거네.”
“카난! 확실하게 전해주시죠. 모두들 기다리고 있다고! 그리고, 시간은 금이라는 사실을!”

다이아의 말에 카난은 알겠어, 알겠어, 라고 건성으로 대답한 후, 휴대폰에 귀를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치카?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모두들 기다리고 있...... 응? 무슨 일이야? ...일단 진정해. 자자, 심호흡 한 번 하고.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거야. 그래,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카난만을 쳐다보고 있다.

“이제 진정이 좀 됐어?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야?”

카난의 질문에, 전화 너머로 치카의 조금 진정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카난은 처음에는 응, 응, 하며 평소와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뭐...?”

별안간, 심상치 않은 기색이 깃든다.

그런 카난의 변화에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는지, 음악실은 긴장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리코가 사고를 당했다고?”

카난의 그 말에,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귀가 키잉하고 울리고, 머리는 새하얗게 물들었다. 마치 몸에 천근짜리 추를 매단 것같은 감각이 나를 덮쳐왔다.

지금, 카난이 대체 뭐라고 한 거지? 리코가 사고를 당했다고?
리코라면 리리를 말하는 거지? 리리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은...... 거,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진짜일 리가 없어. 거짓말이야.

“이, 일단 거기로 갈 테니까. 응. 병원이란 말이지. 알겠어.”

카난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는 ‘리리가 사고를 당했다’는 한 문장만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나 때문이야...”

내가 리리와 같이 있었으니까, 악마가 리리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 거야. 나와 친하게 지냈으니까, 리리가 이런 일을 당한 거야. 전부, 전부, 전부 내 잘못이야.

“아, 요시코짱.”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른 듯 했지만, 나는 발을 멈추는 일 없이 그대로 음악실을 나와버렸다. 리리의 곁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해놓지도 않았다. 그저 이 장소로부터, 이 세계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 ★ ☆ ★


내 옆에서 카난 씨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이지... 치카, 이 바보같은 녀석.”
“죄송합니다...”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말을 꺼낸 카난 씨에게, 치카짱은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인다.

“리코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달려와봤더니, 차에 부딪히기 전에 빈 캔을 밟고 넘어져버려서 정작 차와는 부딪히지 않았다니... 대체 이게 뭐야? 콩트라도 하는 거야?”

설명하는 카난 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부끄러워져서 나도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때, 횡단보도를 건너려다가 갑자기 나타난 차에 깜짝 놀란 나는 무심코 반걸음 정도 물러서고 말았는데, 때마침 거기에 버려져있던 빈 캔을 밟고 미끄러져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차도 핸들을 크게 꺾은 탓에, 나와 차가 부딪히는 일은 없게 되었다. 다만 넘어지면서 지면에 부딪힌 부위가 좋지 못했던 탓에, 팔을 조금 삐고 팔꿈치에는 찰과상을 입고 말았다. 그래도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에 비하면 휠씬 나은 결과겠지.
그렇지만 이런 나의 얼빠진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기에, 잠깐 이대로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치만, 리코짱이 차에 부딪힐 것 같았으니까, 그걸로 이미 머리가 가득차 버려서...”
“뭐, 리코가 무사했으니 다행이지만. 그렇지, 다이아?”

카난 씨의 뒤에 서 있던 다이아 씨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불린 탓인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 그렇네. 정말이지, 사람을 놀라게 한다니까.”
“미안해요, 다이아 씨. 걱정끼쳐서.”

내가 머리를 숙이자 다이아 씨는, 뭐 아무 일도 없었으니 됐어, 라고, 나에게서 눈을 돌린 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다이아 씨를 보고, 카난 씨가 아하하, 라고 웃음을 터뜨린다.

“다이아말인데, 치카한테서 리코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릴 듣고, 꼭 세상이 끝장난 것 같은 표정을 짓더라니까? 그러고선 지금 당장 가죠, 라고...”
“자, 잠깐, 카난! 그,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시겠어요?!”

당황하며 카난 씨의 입을 막는 다이아 씨의 모습을 보고 무심코 살짝 웃어버리고 만다. 다른 사람들도 엄청 걱정했던 모양인지, 내가 무사한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걸 보고, 내가 도대체 모두에게 얼마나 걱정을 끼쳤던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모두?

“저기, 욧짱은?”

내 말에, 카난 씨가 어라? 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치카한테서 전화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뛰쳐나갔으니까 당연히 여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걸, 이라며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하는 카난 씨를 보며, 나는 엄청난 일을 저질러버렸구나, 라고 생각했다.


☆ ★ ☆ ★


“어쩌지...”

연습이 끝나고, 교복으로 갈아입으며 나는 무심코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그 때 이후로 당장 욧짱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욧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로 내가 무사함을 알림과 동시에 이번 일은 불행도 뭣도 아니라고 적어 보냈지만, 그에 대한 대답도 없었다.
연습을 할 때는 내 쪽을 봐주지도 않았고,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도망쳐버려,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이제부터 어떡하지, 라고 한숨을 쉬고 있었더니...

“리코짱, 땅이 꺼지겠어.”
“으응? 치, 치카짱?”

어느샌가 내 옆에 서 있던 치카짱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요시코짱 때문에 그래?”
“응. 욧짱, 분명 내가 사고를 당한 이유를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계속 놓치기만 하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게 돼서,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본 치카짱은 으으음, 하고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럼 말이야. 도망치는 요시코짱을 쫓아가보는 건 어때?”
“뭐?”

뜬금없는 치카짱의 대답에 무심코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만다.

“리코짱, 상냥한 성격이라서 요시코짱이 도망가버리면 더 이상 쫓아가지 않잖아? 그럼 안 돼. 쫓아가서, 쫓아가서, 끝까지 쫓아가서 붙잡지 않으면, 계속 이대로일 거라구?”
“화, 확실히...”

치카짱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욧짱이 도망쳐버리면 그 뒤를 쫓아가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서버린다. 쫓아가버린다면, 욧짱이 나를 정말로 싫어하게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욧짱을 쫓아가지 않는다면 이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자,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른다.

“치카짱, 고마워. 나, 갔다올게!”
“응. 힘내.”

손을 흔드는 치카짱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나는 서둘러 부실을 나섰다.
욧짱이 부실을 나가고 난 후 시간은 그다지 많이 흐르지 않았다. 서둘러 신발을 갈아신고 학교 건물을 나가보니 역시나, 혼자서 걷고 있는 욧짱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욧짱!”

내 목소리에 욧짱은 흠칫 떨더니, 살짝 이쪽을 돌아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마치 우리를 탈출하는 토끼처럼 어디론가 달려나가 버린다.

“자, 잠깐! 잠깐 기다려, 욧짱!”

치카짱의 말을 실천에 옮겨, 나도 욧짱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욧짱과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욧짱도 나와의 거리를 이 이상 벌리지는 못했다. 서로서로 체력이 부족하니 이런 상태가 되는구나, 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학교를 빠져나가, 통학로를 가로질러, 욧짱은 해변의 모래밭에 도착할 때까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도 욧짱을 따라 모래밭에 도착한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오는 이상한 느낌을 참아내가면서, 나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스피드를 올린다.

“욧짱, 기다... 아!”

급한 마음에 너무 앞으로 나섰던 게 화근이었을까, 손을 뻗어 욧짱의 팔을 잡으려던 그 순간, 다리가 꼬여 그만 욧짱과 부딪히며 둘이 함께 모래밭으로 다이빙을 하고 말았다.

“으으, 아파라... 욧짱, 괜찮아?”

부딪혀 넘어지면서 내가 욧짱의 위에 올라타버린 꼴이 되어버렸기에, 당장 몸을 일으키며 동시에 욧짱의 몸도 일으켜세워준다. 그러나...

“오, 오면 안 돼!”

내가 욧짱을 붙잡기 위해 손을 뻗자, 욧짱은 거의 펄쩍 뛰다시피하며 뒤로 물러나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건지 욧짱은 바로 미, 미안, 이라며 사과를 했지만, 나와의 거리를 좁히려고 하진 않았다.

“욧짱. 들어줘. 그 사고는 욧짱 때문이 아니야.”
“아니야! 요하네랑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사고를 당한 거야.”
“그렇지 않아. 게다가 이번 사고는 사고도 아니었어. 가벼운 상처로 끝났으니까...”
“그래도!”

욧짱을 안심시키려는 나의 말을, 욧짱은 더 큰 목소리로 가로막아버린다.

“이번에는 어떻게 가벼운 상처로 끝났지만, 다음에는 크게 다칠지도 몰라. 그러니까, 역시 리리는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돼!”

기어이 나와 떨어지려 하는 욧짱을 바라본다.
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으니까, 욧짱은 계속해서 도망쳐 버렸던 거야. 지금까지의 나였다면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욧짱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겠지.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달라.
주먹을 굳게 쥐며 결의를 다진 후, 나는 욧짱의 손을 붙잡는다.

“리, 리리?!”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녀에게, 나는 욧짱, 이라고 그녀의 이름을 힘주어 부른다.

“너의 본심을 들려줘. 만약 정말로 욧짱이 나한테서 떨어지고 싶은 거라면, 나는 욧짱의 뜻에 따를게. 하지만, 만일 아니라면...”

욧짱은 필사적으로 나의 시선을 피하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욧짱을 바라보자, 흘끔흘끔 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대답해줘. 욧짱의 본심. 나랑 정말로 떨어지고 싶은 건가, 그렇지 않은 건가.”

그 말을 끝으로, 나와 욧짱의 사이에는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잔잔한 파도소리만이 우리를 감싸던 와중, 욧짱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작게 입을 열었다.

“이건 반칙이야, 리리...”

나를 바라보는 포도색의 눈동자가 순간 반짝, 하고 빛을 발한다. 그 빛은 점점 커지더니, 흘러흘러 욧짱의 눈가에 머무른다.

“대답은 하나밖에 없잖아. 나는 리리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

눈가에 고여있던 욧짱의 눈물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넘쳐 흐르기 시작한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나에게 욧짱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상냥한 리리하고는... 그렇지만, 나랑 같이 있는다면 리리에게도 불행한 일이 일어날 거야. 나에게 붙어 있는 악마가 리리에게 불행한 일을 일으키고 말 거야...”

나는 당장이라도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본심을 털어놓는 욧짱의 말을 중간에 끊고 싶지 않았다.

“리리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버려서, 리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서... 울어버릴 것 같았어. 리리와 영원히 함께할 수 없게 될 바에야, 차라리 지금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 그러는 편이 나를 위해서도, 리리를 위해서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나 자신을 납득시키고...”

그런데, 라고 욧짱은 작게 중얼거리더니, 나의 가슴에 머리를 묻어왔다.

“리리에게 그런 질문을 받아버리면, 참을 수 없게 되어버리잖아...”

그것이, 지금까지 욧짱이 계속해서 끌어안고 있던 고민이자 본심이겠지. 본심을 털어놓은 이후로, 욧짱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욧짱의 오열을 들으면서, 나는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저기, 욧짱. 나, 지금까지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전혀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럴 리가...”

눈물범벅이 되어 내 얼굴을 올려다보는 욧짱에게, 작게 고개를 저어 보인다.
그래. 내게 있어서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거나, 자동판매기에서 다른 것을 뽑거나, 교과서를 잘못 들고 오거나, 찻물이 어중간한 온도로 잘못 데워지거나, 샤프심이 바로바로 부러져버리거나, 사고를 당할 뻔하거나 하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불행한 일이 아니다.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

“내게 있어서 불행한 일은, 욧짱과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야.”

나의 그 말에, 욧짱이 에? 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니까 최근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엄청 불행했다구. 욧짱이랑 대화하기는커녕, 얼굴조차 마주보지 못했으니까.”
“아, 그건, 그러니까...”

변명이라도 하려는 셈인지 뭔가를 말하려고 하던 욧짱이었지만, 역시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저엉말 행복해. 욧짱이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욧짱은 어때?”

내 말에, 잠시 멈춰있던 욧짱의 눈물이 다시 맺히기 시작하더니,

“나도... 나도 리리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우와아아아아아앙!”

기어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다시 내 품에 얼굴을 묻은 뒤 큰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그런 욧짱의 머리를 나는 상냥하게, 마치 아기를 달래듯이 톡, 톡, 두드려 준다.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모래밭에서, 잔잔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나는 욧짱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계속해서 곁에 있어주었다.


☆ ★ ☆ ★


“정말 큰일이었네, 욧짱.”

나는 얼굴과 티셔츠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어느 일요일. 약속대로 욧짱과 외출하게 된 나는, 먼저 그녀가 전부터 먹고 싶어했던 슈퍼 에베레스트 마운틴 파르페를 먹으러 갔다. 그래,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그걸 먹던 중, 욧짱이 찔러넣은 숟가락의 각도가 좋지 않았던 모양인지, 파르페의 아이스크림이 대량으로 나의 얼굴과 티셔츠에 떨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그걸 본 욧짱이 당황해서 숟가락을 빼다가, 그 기세가 너무 좋았던 바람에 이번에는 숟가락에 얹혀져있던 대량의 생크림이 욧짱의 안면을 직격. 그래도 어떻게든 파르페는 다 먹어치운 뒤, 화장실에 들러 얼굴을 씻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리리는 이 상황이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잖아?”

내 앞에서 기분좋게 걷고 있던 욧짱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돌아본다.

“당연하지. 욧짱이랑 같이 있으니까.”

싱긋 웃으며 대답하자, 욧짱도 나와 함께 웃는다.
설령 앞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악마의 장난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미, 이 작고도 귀여운 악마에게 붙잡혀 버렸으니까.







ㅇㅇ 광광울부짖었다 116.33.*.* 2017.09.12 04:01:51
LittleDemon♡ 흑흑ㅜㅜㅜㅜ 2017.09.12 04: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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