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아...” 치카의 한숨이 휴식 시간의 공기 중에 울려 퍼진다.
Aqours의 본선 진출이 발표된 후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 모여 각자의 각오와 꿈을 이야기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우리의 마음은 수업시간에도 영향을 끼쳐 집중을 잘 못하게 했지만, 가끔, 아주 가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루비와 다이아 선배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우리가 하는 스쿨 아이돌 활동은 절대로 학교에서 헤이해지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했던가.
다이아 선배라면 그래도 이해가 가지만 루비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정말 뜻밖이라니까...
아무튼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혀 수업을 듣고 기다리던 오후 연습시간이 되었다.
이번에는 아직 곡이며 춤이며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으니 카난 선배를 필두로 기초체력훈련을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체력훈련이라고는 했지만, 이제까지 해 왔던 코스의 반복이기 때문에 그다지 특별하다고 할 것은 없다.
물론 힘이 들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어흠어흠, 아무튼 치카가 한숨을 쉬자, 몇몇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어? 뭐야, 치카는 이것만으로 힘든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별로 안 힘들거든~”
“그러면 웬 한숨을 그렇게 쉬어. 땅 뒤집히겠다.”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어?”
하고 그녀의 오랜 친구 카난과 요우가 달라붙는다.
“고민거리라... 있지 고민거리.”
“어떤 고민?”
“싫어. 안 알려줌.”
“에에... 그래. 그렇게 말한다면야.”
“잠깐, 요우짱은 가지 말고 있어봐. 리코짜앙! 잠깐만 이리로 와 봐!” 어? 갑자기 왜 나를 부르는 거지?
군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치카 옆에 앉는다.
“왜, 무슨 일 있어 치카짱?”
“자, 요우짱이랑 리코짱은 손 잡아.”
뭐지?
그 말에 요우는 치카의 왼손을, 나는 오른손을 잡는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5개 정도는 띄워 놓은 채로.
“아아아, 좋다. 역시 둘이랑 같이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
“으음...”
걱정이 되어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있는 치카의 얼굴을 바라본다.
맞은편에는 거울과 같은 표정을 한 요우가 나에게 ‘무슨 일 있었나?’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는 쭉 같이 교실에 있었고 달리 특별한 일도 없었는걸.
어께를 으쓱하는 것으로 요우에게 답한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 곧 해결될 거니까. 아마도...지만.”
그 말 직후 ‘으쌰쌰!’와 함께 털고 일어난 치카는 다시 땀흘렸던 모래사장으로 나아간다.
다시 요우를 바라보니 쓴웃음을 지은 채 ‘그럼, 우리도 가볼까?’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손을 맞잡으며 똑같은 얼굴을 하는 것 이외에는,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연습은 재개되었고 가을의 해는 느직하게 져갔다.
오늘 저녁은 엄마께서 약속이 있어서 간단하게 때웠다.
마침 집에 식빵이 있길래 살짝 구운 뒤에, 햄, 양상추 절임, 달걀 지단, 얇게 썬 오이를 올려 먹었더니 역시, 우치우라에 와서도 내 실력은 변하지 않는다.
디저트로 동인지를 한 권 한 다음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한 때는 추억의 대상이기도, 한 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물건의 덮개를 연다.
그랬더니 익숙하게 많이 들어봤던 클래식 음악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들이 노래했었던 곡들도 떠오른다.
엥? 잠깐만, 떠오른다기보다 희미하게 들리는 듯한?
혹시나 해서 창 건너편을 보니, 역시...
시커먼 방에 노트북을 켜 놓고 라이브 영상을 보는 치카가 있었다.
오늘 꽤나 이상했었지.
그래서 한 번 물어보기로 결심한다.
창을 열고, 긴 막대기로 톡톡 두드린다. 어라?
평소대로라면 활짝 웃으면서 달려들 친구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엎드려 누워서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을 뿐.
조금 더 세게 쳐 볼까?
퉁퉁
어머나.
나도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나고 나서야 치카는 창문을 열고 나를 맞아준다.
“우웅... 무슨일이야, 리코짱?”
“오늘 연습 때부터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어디 건강이 나빠진 건 아니지?”
“난 정말 괜찮아.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을 뿐이야.”
“고민... 이라. 어떤 고민인데?”
“별로, 말로 옮겨낼 만큼 거창한 고민은 아니야.”
“그러면 낮에 나랑 요우짱을 불러낸 이유는 뭐야?”
“그, 그건...”
“말 안하면 카난 선배한테 말해서 털어놓도록 할 거니ㄲ”
“으아아아! 말할게! 말하게 해줘어어!!”
호오, 꽤나 제대로 된 약점을 짚은 듯하다.
그렇게 어물쩍거리던 치카를 한 방에 넘겨버리다니.
후우, 하고 한숨을 쉬며 치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리코짱은 요즘 작곡 잘 돼?”
“음... 아주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생각해 둔 소재들이 있어서 힘들지는 않은 편이야. 설마 너...”
“아냐, 나도 가사는 그럭저럭이야. 그런데 오히려 문제는 여기서부터지.”
“여기서부터라니, 왜?”
“가사를 써 놓은 것들이 전부 어디서 본 것 같은 것들이야.”
이후, 몇 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아... 리코짱? 깨어있는 것 맞지?”
“에이... 그런 것으로 걱정하다니, 괜히 걱정했잖아.”
“아냐... 그... 조금 달라. 가사라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나 감정을 함축해서 쓰는 거잖아.”
“응, 그렇지? 그런데 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고 평범하다고 하는 것은 정해져 있는 행동을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어... 응. 그렇지.”
묘하게 치카가 포스를 뿜어내니 나도 모르게 수긍해버렸다.
“그러면 결국에는 소재나 가사의 뜻이 겹쳐버려서 창작의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때가 올 거잖아.”
“오오, 치카짱답지 않게 상당히 깊은 이야기를...”
“가사를 포함해서 이 세상에 있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야. 모두 언젠가 한 번씩은 일어났었던 것에서 조금만 바뀐 정도. 그 본질이 아주 다른 것은 없어.”
“그런데 왜 이 이야기를 나한테는 터놓고 해 주는거야?”
“글쎄, 리코짱은 나랑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니려나.”
“같은 위치라니?”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점이 같잖아. 리코짱은 곡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요우짱은 의상을 새로 만들어내지. 아 맞아, 카난짱은 춤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말이야.”
“‘새롭게 만들어낸다’라는 생각이 사실 틀렸던거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린 그저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향했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서 가고싶다... 라는 말인가.”
“그렇지.”
나만의 길이라.
생각해보면, 전학오기 전 오토노키자카에서는 나는 꽤나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기 시골에 전학 온 후에야 ‘도시 아이’라는 이미지가 새로 생겼으니까.
아... 아닌가, 그거 말고도 이렇고 저런 이미지가...
아 잠깐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참자, 참자.
“나만의 길이 그렇게 특별한 걸까?”
“사람이 사는 시대는 모두 다르고 주위 환경도 다를텐데 모두 ‘평범하다’라니, 조금 이상하지 않아?”
“나는 별로.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됐건 ‘내’가 살아가는 거잖아. 그걸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가사도, 곡도, 의상도, 춤도. 모두 가장 본질은 있을지라도 각각의 색깔은 다르지. 당장에 μ‘s의 곡과 우리 Aqours의 곡을 비교하면 알잖아? 각각의 분위기는 같을지도 모르지만 각각의 멜로디나 구성이 다른걸.”
“그런가...”
“그리고 하나 더. 너무 본질을 따지게 되면 결국 모두 같은 것이 되어버리잖아. 세상 모든 이야기의 뿌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이러면 모든 이야기들이 포함되어버리지.”
의기소침해 있던 치카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온다.
아 이제 된 듯 싶다.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나도 미소로 답한다.
“좋아, 알았어! 고마워 리코짱!”
“그런데 지금까지 노트북으로 뭐하고 있었던 거야, 치카짱?”
“아, 우리 라이브 한 영상들. 이 때에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사를 썼나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내가 사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는다... 좋아, 오늘의 고민거리 해결. 슬슬 자 볼까!”
가만, 뭔가 위화감이 밀려왔다.
“잠깐, 치카짱.”
“응? 왜, 리코짱?”
“지금까지 쭉... 그 라이브 영상을 보고 있었던 거야?”
“응. 그런데?”
“숙제는?”
“...Aㅏ.”
오호, 얼굴이 파랗게 질리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로군.
잘 알았습니다.
“...난 몰라~”
“으아아아...! 어, 어떡해야... 리코짱! 조금만 도와주면...!”
“나는 모르오~”
“으아앙~ 어떡해...”
그 후 나는 밤늦게 같이 치카의 숙제를 도와주었고 간신히 자정 전에 끝낼 수 있었다.
한 편으로 ‘숙제를 미리 하자!’라고 되새기면서도 다시 잊어버리는 치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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