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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반 [SS] "저는 쿠로사와 루비, 좀비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4
글쓴이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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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1215507
  • 2017-05-17 10:57:26
  • 39.120.*.*

1편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unshine&no=1214593

2편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unshine&no=1214597

3편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unshine&no=1215505

에필로그 :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unshine&no=1212393


9월 5일 화요일.


저 멀리에 떨어져 있는 시계는 아침 10시 30분이라고 알려 주고 있다.
내 앞에는 8대의 카메라가 나를 향하고 있고 이따금 하얀 빛을 발한다.


찰칵!


아이쿠, 이 눈부심은 몇 번을 맞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말을 너무 많이 했나, 목이 마른다.
잠깐 손을 들고 물을 마신 뒤 다시 컴퓨터와 연결된 리모컨을 잡는다.


이 회장에 모인 사람들이 가끔식 손을 들면 그들을 향해 귀를 기울인다.
그들이 하는 질문에 응하고, 다시 발표를 잇는다.


여기는 EVA 지하 2층 대강당.


오늘은 생존자들에게 각 부의 소개와 현재 진행중인 일, 기타 의견,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보고하는 날이다.
수용 규모는 2000명 정도,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겁을 조금... 아니 솔직히 많이 먹었지만 니시키노 박사님이 곁에서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덕분에 목소리도 많이 가다듬어졌고 떨지도 않게 되었다.
작년이라면 꿈도 못 꿀 이런 나의 모습. 나 자신이 맞는걸까?


내가 발표하고 있는 내용은 정부에 전달한 USB의 내용, 그들은 좀비가 아닌 어떤 병원균의 감염자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약점, 앞으로의 연구 방안 등에 대한 것.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치료될 수 있다는 것.
청중들은 나의 말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절망에 절어있던 얼굴이 조금씩 펴지고 있었다.


그래. 당장에는 사람들을 구할 수 없어.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만들 씨앗이 된다면 나는 뭐든지 할 것이다.

 


 

"와우 발표 좋았어, 쿠로사와 양. 이러다 자네가 원하는 연구원보다 아나운서로 갈 지도 모르겠군."


"에이, 운이에요 운. 그리고 다 박사님 덕이죠."


"저게 다 한 달 동안 혼자서 생각하고 확인한 결과라니,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네. 이걸 중심축으로 연구개발이 진행될거야. 모두 자네 덕일세."


"제 생각에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을 뿐이에요. 그나저나, 오늘 알려주실 것은 뭐죠?"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게. 오늘은 발표 준비를 하면서 지친 것도 있을테니 푹 쉬어. 내일 이어서 하자고."


사흘 전부터 니시키노 박사님께 생명과학과 함께 여러 수업을 받고 있다.
아직 3일 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제법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알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그런지 머릿 속에 잘 들어온단 말이지...


"앗차. 우리 연구처에서 발표한 다른 내용은 뭐죠?"


"옆에 탐사팀과 함께 의료장비와 의약품을 입수해야 한다는 내용일거야. 25000명 분의 건강을 챙기려면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겠지."


"뭐였더라? 다음 세대라는 단어도 들렸는데요?"


"맞아. 우리의 치료제 개발이 얼마나 걸릴 지 몰라서 다음 세대를 계획하는 거야. 인공자궁 기술을 써서 사람들에게 최대한 영향이 안 가게끔 하겠다더라."


"탐사팀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유사시에 무장이 가능하도록 운동을 시키겠다니, 앞으로 힘들겠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슬슬 늙어간다고. 흐흐흐..."


"아직 정정하시잖아요, 히히히. 몸에 좋긴 하니까 저랑 연구처 사람들이랑 같이 해요."


"그래야지."


가벼운 침묵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한다.
내가 발표한 것도, 그들이 제안한 생각들도, 사람들이 더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나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Aqours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 사태의 원인은 아마 마리 선배에게 대부분 있다.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 그녀와 가장 가까운 내가 뭔가를 했다면...
뭘 했을지 모르겠지만 뭔가라도 했다면...

그래서 나에게 칭찬받을 권리따위는 없다.


".....이제 오늘은 뭘 할텐가?"


"글쎄요. 이렇게 빈 시간에 뭘 해야 할 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럼 나와 함께 상담 센터나 다녀오도록 하지."


"에이, 저는 괜찮다니ㄲ..."


"그럼 이건 뭐지?"


박사님이 내어 놓은 파일에는 룸메이트인 하인즈 씨의 나에 대한 상담 요청 목록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여자...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리고 하나 더. 자네 요즘 거울 보는가?"


거울? 아참 거울로 내 얼굴 본 지가 꽤나 되었네?


"다크써클도 그렇고 얼굴이 많이 야위었네. 프로필 사진만으로는 자네가 맞는지 깜짝 놀랄 정도야."


.......


"긍정의 침묵으로 받아들이겠네. 일단 점심을 먹고 상담 센터로 가자고."


그의 강한 손을 잡고 끌려가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오호라, 오늘 점심은 꽤나 힘 좀 썼군.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공동식당에서 서 있는 줄 옆의 TV 화면에서는 오늘의 메뉴를 알려 주고 있었다.


"콩고기 스테이크?"


"콩고기가 뭔지 모르나? 콩을 잘 요리하면 고기와 유사한 질감이 난다고 들었어. 하여간 대단한 사람들이야."


"헤에... 처음 들어요."


"평소에는 풀밭 아니면 밀가루였으니 이렇게 기분이라도 내야겠지. 먼저 가서 자리잡고 있겠네."


그는 가볍게 손인사를 하고 앞으로 지나쳐갔다.
저렇게가지 나를 위한다면 나도 점심을 받아야갰지.
내 몫을 들고 박사님의 자리 맞은편으로 향한다.


"잘 먹겠습니다."


"조리한 사람의 노고에 감사를."


나이프로 조금 잘라내어 포크로 입에 넣는다.


스테이크는 오랜만이었다.
만약 집에서 언니였다면 볼을 부풀리면서 '어째서 스테이크인가요...'라고 했겠지.


루비...


응?


루비... 저도 배가 고픕니다...


뭐뭐뭐야? 이게 무슨...


저는 혼자 내버려두고 혼자서만 드시는 겁니까아...


왜 있지도 않은 언니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저는 루비를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동료들과 같아지는 겁니다...


"우, 우우욱!"


잘 먹겠습니다아... 하아아...


"우워억! 콜록콜록! 커흑..."


오오 다이아, 우리도오...


루비. 우리도 같이...


"싫... 싫어!! 저리가! 너희들은 예전의 Aqours가 아니야!! 감염된 너희들은 그들의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아!!!"


아아, 세상이 까매지고 있어.


며칠 전 꿈처럼 눈을 뜨면 다시 침대 위로 향하는건가?

어떤 침대? 우리 집의 침대? 아니면 1달 동안의 은신처? EVA 생활관의 침대?
그 무엇도 알 수가 없어.
아니 애초에 이것은 현실일까?
진짜로는 모든 것이 평온하고 나는 그저 악몽을 꾼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나 마저도 감염되어 꿈으로 세뇌당하고 있는건가?
이것마저도 알 수가 없네.
모르겠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기자.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곳, 그곳에서만 열심히 살면 되겠지...

 



 

"요원 워든, 지금 무슨...?"


"소식은 들으셨겠지요? 탐사팀에서 대 좀비용 제압탄을 개발한다고. 이건 시험생산제품이고 방금 인간에게 유해한가 테스트해 본 겁니다."


"뭐라고?"


"살상력은 없습니다. 안정제와 근육이완제를 집어넣어서 잠깐 자게 만드는 것 뿐이죠."


"그걸 X발 지금 사람한테 쏴?! 제정신이야?!"


"그녀는 PTSD 증상이 발현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정이 필요했고요. 그리고 '마침' 딱 좋은 수단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 쓰레기같은 자식이! 말이면 말이라고 다인줄 알아!"


"왜요? 필요없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사유서는 나중에 제출해드리죠."


"무슨 소란이... 오우 이런."


"요원 하인즈. 당장 이 개ㅅ... 아니 워든을 데리고 어디로든 가 줘. 얼른. 지금 말투에서 무례함이 느껴진다면 나중에 사과하겠네."


"네 알겠습니다."


하인즈는 바로 워든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가볍게 목례를 한 뒤 공동식당을 벗어났다.

분노가 치밀었다.
왜 내 딸은 그 곳에서 감염된거지?
왜 나 혼자 그 병원에서 나왔을까?!
왜 나는 집에서 연락하는 가족을 무시했지?!!
왜 인류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이 아이는 이런 거지같은 일을 맞이해야 하는 거지??!!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왜 이 모양 이 꼴이지!


일단 당장 해야 할 일을 한다.
쿠로사와 양을 업어들고 의료센터로 향해야 한다.


"이런 미친... 왜 이렇게 가벼운거야..."


보통 사람이라면 느껴져야 할 살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 손에 비하면 두 배는 얇아보이는 손가락이 이 아이는 끼니를 때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 했다.


"어서 가자. 너는 살 자격이 있는 녀석이다. 제발 삶에 긍지를 가져다오."


덧없이 혼잣말을 지껄이면서 나는 응급의료과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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