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라이브 선샤인 마이너 갤러리 저장소

날아간 것들은 최대한 빨리 복구하고 다음 편은 그 후에 올리겠습니다. 

큰일이다.

어제 사서 가방에 넣어놓은 에로 백합 동인지를 깜빡하고, 그 가방을 맨 채로 등교해버렸다.

나는 교문 앞까지 와서 그 사실을 눈치채고, 패닉 상태가 되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쩌지.

정말 어쩌지.

아직 조례까지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그렇다고 집까지 다녀올 만큼 널널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대로 등교해버릴까.

안 돼. 동인지가 들어있는 가방을 교실에서 몇 시간씩이나 방치하다니...혹시라도 치카쨩이나 요우쨩이 보기라도 하면 내 이미지는 끝장이야...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있기를 몇 분,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번쩍 하고 쓸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좋아, 부실에 숨기자. 책장 구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기면 괜찮을 거야. 방과후엔 보통 내가 제일 일찍 오니까.

응. 분명 괜찮을 거야.

나는 부실로 뛰어가서 백합 동인지를 숨기고, 평범하게 등교했다.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나는 가끔씩 나오는 부실이라거나, 책이라거나 하는 단어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하지만 종례가 끝날 때 까지 치카쨩이나 요우쨩에게 의심받는 일은 없었다.

역시 사쿠라우치씨.

아쿠아의 브레인이자 쿨뷰티로서 손색이 없네.

좋아, 수업도 끝났고, 이제 동인지를 무사히 회수하기만 하면...

나는 선생님과 잠깐 면담을 하고 온다는 치카쨩과 요우쨩을 뒤로 하고 교실을 나왔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면서 빠른 걸음으로 부실로 가서 문을 연다.

분명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을 터. 신속하게 동인지를 확보하고 집으로 귀가한다.

부실 안에서는.

카난 선배가 내 동인지를 읽고 있었다.

에?

거짓말.

[카,카,카,카난 선배 어째서...]

[아, 리코 왔어? 오늘 수업이 좀 일찍 끝나서. 일찍 와버렸어.]

카난 선배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상쾌한 미소로 날 반겨 주었다.

[그, 그,그, 그]

난 고장난 인형처럼 책을 가리키며 떨었다.

머릿 속이 하얗게 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끝났다.

내 인생은 끝났어.

[아, 이거? 부실 구석에 누가 놔두고 갔더라고, 이 책 재밌어. 여자아이들끼리 이런 저런 야한 짓 하고. 무심코 열중해버렸네. 혹시 리코쨩 거야?]

뭐야.

모르는 거야? 그래. 알 리가 없지. 딱히 이름이 써져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떨기는...바보 같아.

[아,아,아, 아뇨! 제 것일 리가 없잖아요! 하하하, 누굴까요. 정말 누굴까요! 그런 부끄러운 책을 부실까지 가져온 사람은!]

좋아, 잘 얼버무렸어. 카난 선배도 딱히 날 의심하는 것 같진 않고...우후후. 정말. 카난 선배도 둔감하다니까

[흐응. 글쎄.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데. 그보다 리코쨩, 이리 와. 같이 보자.]

[엣?]

[여기 내 옆에 앉아.]

카난 선배는 자기 옆의 의자를 뺴서 탁탁 두드렸다.

위험해위험해위험해 저 사람 무슨 생각이야 이런 곳에서 밀착해서 단 둘이 에로 백합 동인지를 읽다니. 절대로 위험해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생각을 짜냈다.

[아니, 그게. 그게. 아! 생각해보니까 음악실 피아노 조율을 깜빡했네요. 나도 참~~. 그럼 이만.]

빠르게 몸을 돌려 부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더니, 어느 샌가 카난 선배에게 잡혀 뒤에서 끌어안겨졌다.

[힉!]

무심코 우스운 소리를 내 버렸다.

뭐야뭐야뭐야 갑자기 백허그라니?대체...등에 카난 선배 가슴이 닿아서...

아랫배가 뜨겁다.

카난 선배, 당신...프로필 조작하셨군요.

이런 폭력적인 가슴이 고작 83이라니, 말이 안되잖아요.

이대로 뒤돌아 카난 선배를 밀어 넘어뜨리고 제발 그만해달라고 빌 때까지 카난 선배의 이곳저곳을 만지고 싶었다.

카난 선배의 온화하고 어른스러운 얼굴이 쾌락으로 일그러지는 거 보고 싶구나아-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괜찮으니까, 응? 리코~심심하단 말야~]

평소에 어른스럽고 믿음직한 카난 선배이기에. 이 칭얼거림은 상상 이상의 파괴력으로 내 심장에 꽃혔다.

분명 마리 선배나 다이아 선배도 이런 갭 모에에 넘어간 거겠지. 이 얼마나 무서운 힘인가, 마츠우라 카난...

수수한 소녀일 뿐인 나는,  당연히 가볍게 넘어가 카난 선배의 옆에 앉았다.

팔락 팔락

[저기 카난 선배.]

한동안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들리던 차에, 내가 정적을 꺴다.

[응?]

너무 가깝습니다만.

이런 곳이나 저런 곳이나 마구 닿고있는데요, 가슴은 고사하고 갈비뼈 모양 하나하나까지 알 것 같은데요.
 
샴푸 냄새나 체향이나 엉망진창으로 섞여서 콧속이 질척질척한데요. 흥분되서 무심코 덮쳐 버릴 것 같은데요.

분명 덮치면 역으로 당할 것 같지만 그건 그것대로 좋을 것 같은데요.

[저 조금 더워서...]

[그래서?]

카난 선배는 고개를 살짝 꺾으며 순진하게 되물었다.

가까이서 본 카난 선배의 눈은, 반짝거리며 짓궃은 장난기를 발하고 있었다.

이제 알겠다.

카난 선배는 지금 내게 장난을 걸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카난 선배는, 왠지 내게 이런 야리꾸리한 장난을 많이 걸어왔다.

물론 장난이기에, 선을 넘겠다 싶으면 항상 카난 선배 쪽에서 알아서 떨어지지만.

이쪽은 그런 장난 때문에 매일 밤 잠을 설친다구.

이런 사람을 애태우는 장난 따위, 이젠 먼저 거절해주겠어.

[그게...조금 떨어져주셨으면.]

[응...그건 싫어.]

[엣? 어...어쨰서.]

카난 선배가 더욱 밀착해온다. 그리고 천천히, 내 귀에 입을 가져간다.

귀와 입이 닿을랑말랑한 거리 바로 앞에 멈춘 카난 선배는, 끈적한 웃음을 내 귀에 불어넣었다.

[나, 알고있다구. 이 책이 리코쨩거라는 걸.]

카난 선배가 내 귀에 속삭였다.

[히엑?!]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책 없었고, 리코쨩이 부실에서 나와서 서둘러 뛰어가는 모습, 보고 말았거든.
이런 상황 좋아하는거지? 선배한테 부실에 숨겨놓은 야한 책 들켜서, 억지로 만져지고 싶었던 거지?]

장난이 아니었잖아아아아아아!

다 들켜 버렸잖아.

끝났네. 내 고등학교 생활.

그래도 여기선 생각을 정리하고 어떻게든 변명을-

[아,아,아, 아니. 그건 어떨까요. 급하게 놓고 나온 거라 생각 할 겨를이 없었는데. 어제 쇼핑 갔다가 가방에 들어있었는데. 물론 그런 상황도 좀 기대했다고는 할까. 그래도 소녀적으로 이런 곳에서. 요우쨩이나 치카쨩도 금방 올 테고.]

정신을 차려 보니 횡설수설하는 내가 있었다.

아니, 카난 선배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서 이렇게나 날 쳐다보고 있는데, 멀쩡히 생각하는 게 가능할 리 없잖아.

[쉿, 괜찮아. 문이라면 아까 잠궈놨다구? 리코쨩은 그냥 편안히 나한테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아 잠그셨나요-

이 무슨 철두철미함.

이번엔 장난이 아닌 거야?

믿어도 되나요.

카난 선배의 얼굴이 점점 다가오고, 그에 맞춰 새빨간 입술도 내게 가까이 온다.

이래서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좋아.

해 버리자.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오늘 어른이 됩니다.

우리들의 입술이 막 닿으려는 찰나, 콰앙 하고 부실 문이 힘차게 열린다.

[네! 거기까지!]

난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열린 문으로 들어온 것은 분명 나와 카난 선배를 제외한 아쿠아 멤버 7명.

생글생글 웃고 있는 치카쨩과 하나마루쨩. 난처한 듯 웃고 있는 요우쨩,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다이아 선배와 콧김을 내뿜는 마리씨, 왠지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욧쨩과 얼굴을 붉히고 있는 루비쨩

에?

에?

[이야~ 정말, 보고 있는 내가 다 설렜어!]

[두근두근했구먼유.]

[리코쨩, 미안. 그치만 그렇게 하루종일 신경쓰고 있는 걸 보면, 해버릴 수밖에 없잖아. 몰래카메라.]

[리코씨 충격이 큰 것 같은데...나는 말렸다구요?]

[이걸로 리코쨩도 어른의 길 원 스텝! 인거네!]

[우우...뭐야, 리리...]

[으...응원할게요...]

난 삐걱거리는 목을 돌려 옆을 보았다.

거기엔 녹아내릴듯한 얼굴로 달콤한 말을 부딪혀오던 카난 선배는 어디로 갔는지, 배를 잡고 한창 대폭소중인 그녀.

난 비로소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다.

[...]

[...]

[아! 뭐야 정말! 사람을 잔뜩 가지고 놀고는~~~!]

내가 폭발하자 멤버들은 모두 꺄아 꺄아 귀여운 비명을 질러대며 도망가버렸다.

모두 떠나간 뒤, 정적 속에서 나는 비틀비틀 걸어가 의자에 앉아 책상에 고개를 푹 숙였다.

뭐야 진짜...

카난 선배고 멤버들이고 몰래카메라라니, 사람의 마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아.

그래도 카난 선배 가슴, 기분 좋았지.

우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