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발을 들인지 29일째.
머리도 식힐 겸 쉬다 오라는 지인의 권유에
연고도 없는 이 외딴 섬에 무작정 들어온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내일이면 이 섬을 떠나야 한다. 애초에 30일 짜리 플랜이었으니.
숙식제공과 값싼 경비에 혹해서 들어왔으나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런 제안을 해준 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내륙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환경이다.
이곳의 바람과 공기는 도시의 것과는 달리 상쾌한데다가
흐르는 물을 바로 떠마셔도 될 정도로 수질이 좋다.
다만... 사람이 없다는게 문제랄까.
"철웅씨. 여기있었어?"
또 그 남자다.
"아... 예. 잠시 나와서 쉬고있었어요."
무인도 휴양지라 사람이 적을것이란 것 정도는 미리 예상하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이 섬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섬에서 나와 함께한 유일한 사람.
너굴아저씨.
"텐트 정리하는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지구리?"
혼자 낑낑대며 텐트를 붙들고 있는 내가 어지간히도 불쌍해 보였는지
너굴이 기척도 없이 다가와서는 텐트의 뼈대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어어!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됐어 구리. 철웅씨 혼자 치우다가는 해가 떨어져도 못끝낼거같아."
"하하..."
괜히 머쓱해진 나는 너굴아저씨의 근처를 서성였다.
너굴의 능숙한 손길을 통해 텐트는 금세 조립 전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과연 무인도의 소유주 다운 솜씨였다.
"철웅씨. 이리 와서 여기좀 잡아줄래구리?"
"옙!"
바닥의 텐트못을 제거할 동안 뼈대를 잡고있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주객전도가 되버린 느낌에,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고자 잔뜩 기합을 넣고 대답했다.
일어서서 텐트깃을 붙들고 있자니, 바닥에 앉아 장도리질을 하는 그의 뒤통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동그랗고 부드러워보였다.
'귀여워....'
손에 닿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다 됐어 구리."
너굴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 큰 아저씨의 뒤통수를 보고 귀엽단 생각이 들다니.
무례해도 정도가 있지.
섬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이 너무 풀어졌나보다.
[털썩-]
내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보던 너굴이 텐트가방을 한곳에 치워두고는
근처에 다가와 풀썩 앉아버린다.
너굴을 너무 의식해서일까.
온 몸의 나사들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오가는 말 없이 규칙적으로 몰아치는 파도소리만이 둘 사이의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철웅씨. 내일이면 드디어 섬을 떠나는구나."
석양이 드리운 너굴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쓸쓸해 보였다.
"그러게요. 벌써 한달이나 지났구나. 시간 참 빠르게 흐르네요."
너굴의 한마디에, 섬에서 보냈던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첫 환영식부터 채집, 벌목, 가구제작까지.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참 다양한 것들을 해왔구나 싶었다. 어쩐지 가슴 한켠이 묵직해진 기분이다.
"이 섬에 터를 잡고나서부터 늘 혼자라 적적했는데, 철웅씨 덕분에 너무 즐거웠어. 고마워구리."
"너굴아저씨...."
코끝이 찡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바보같기는. 왜 울고 그래구리."
"하하...좀 부끄럽네요."
도시의 생활은 너무나도 빠르고 복잡하게 흘러간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
돌아가고 나면 더이상 너굴아저씨도 볼 수 없겠지.
그와 함께하던 낚시도, 함께 바라보던 밤하늘도, 소박하지만 따듯했던 식사도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와의 생활에 퍽 익숙해져버린 탓일까.
"어라? 왜이러지...? 눈물이 멈추질 않네..."
"이리와봐 구리."
눈물이 멈추질 않아 한참동안이나 고개를 숙인채 있었더니
너굴이 내 얼굴을 붙들고는 부산스럽게 눈물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투박하지만 충분히 따듯한 손길이었다.
너굴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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