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 정보로 다들 불타오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점이 있다.
게임프리크는 포켓몬에 대한 결정권이 거의 없다.
물론 게임 내용은 기획하지만, 전국도감을 뺀다거나, 신작 대신 레츠고를 낸다거나 하는 큰 틀에서의 결정은 담당하지 않는다. 이걸 정하는 것은 닌텐도도 아니다. 닌텐도는 자사 게임기로 나오는 게임의 퍼블리싱을 주로 담당할 뿐이다.
포켓몬이라는 프랜차이즈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은 바로 주식회사 포켓몬, 포켓몬 컴퍼니라고 불리는 회사이다(엄밀히 따지만 닌텐도 게임프리크 크리쳐스 포켓몬컴퍼니 사이에 지분구조가 얽혀있긴 하지만, 각각은 독립된 회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금의 포켓몬 프랜차이즈가 전개되는 것과, 포켓몬 컴퍼니의 공식적인 발표들을 종합해보면, 그 목표는 명확하다.
“포켓몬 프랜차이즈의 중심을 콘솔 게임에서 가져오는 것”
무슨 말인지 알기 쉽게 말해보자.
지금까지의 포켓몬 프랜차이즈는 게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매년 연말 닌텐도 콘솔로 신작 게임이 나오면 그 게임의 타이틀을 딴 애니가 방영되고, 신규 포켓몬과 새 지방을 중심으로 모든 캐릭터 산업들이 전개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 몇년사이 이 구조가 가지는 치명적인 문제 두가지가 드러났다.
1. 개발 코스트가 누적된다.
포켓몬 게임은 매년 발매되고, 신규 포켓몬은 매년 늘어난다. 이번엔 모든 포켓몬을 넣는다 해도, 내년엔 어떨까? 그 다음해엔? 스위치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는?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분명 머지 않아 한계에 도달한다. 어쩌면 썬문 즈음이 1년 단위 개발에서 가능한 한계점에 가까웠을 수도 있다.
2. 닌텐도 하드웨어에 의존적이다.
어쨌던 포켓몬 메인 게임은 닌텐도 콘솔로만 나온다. 그런데 여기엔 두가지 문제가 있다. 닌텐도 콘솔이 망하거나, 혹은부진하면 어떡하지? 이미 3ds가 ds보다 부진했던 것을 경험했고, 위유는 거의 망할 뻔했다. 닌텐도 하드웨어의 흥행이라는 포켓몬 컴퍼니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 포켓몬 프랜차이즈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또 하나는 닌텐도가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주기가 포켓몬과는 상관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블화2에서 불거진 바가 있다. 포켓몬 컴퍼니는 블화의 후속작을 만들었지만 닌텐도는 3ds를 개발했고, 결국 블화2는 3ds가 발매된 후임에도 ds로 나오게 되었다.
두 문제 다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결국 포켓몬 메인 게임이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포켓몬 컨텐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 포켓몬 고가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즉 포켓몬 콘솔 게임을 거치지 않더라도, 포켓몬 컴퍼니의 의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한 예가 멜탕이다. 멜탕은 포켓몬 게임을 거치지 않고 신규 포켓몬이 등장한 첫 사례이다. 이는 일종의 실험이었을 것이다. 이 실험의 성공으로 포켓몬 컴퍼니는 확신했을 것이다. 더 이상 지금처럼 콘솔 게임을 중심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포켓몬 컴퍼니의 공식 발표를 보면 더 이상 콘솔 게임이 메인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올해 5월에 포켓몬 컴퍼니는 “사업전략 발표회”를 개최했다. 즉 “앞으로 포켓몬 프랜차이즈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를 발표한 것이다. 여기서 발표된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포켓몬 홈”이다.
이 “포켓몬 홈”이 바로 앞으로 콘솔 게임 대신 포켓몬 프랜차이즈의 중심이 되는 서비스다.
포켓몬 홈의 공식 컨셉은 “모든 포켓몬이 모이는 장소”이다. 이는 단순한 포켓몬 뱅크의 연장이 아니다. 더 이상 콘솔 게임에서 세대를 거치며 포켓몬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포켓몬 홈을 중심으로 수많은 서비스가 파생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콘솔 게임의 역할은 “새로운 지방과 포켓몬의 추가/포켓몬 대전 기능 제공”의 두가지만 남을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는 레이팅 대전 기능도 별개의 게임으로 분리될지도 모른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포켓몬 홈 자체적으로 포켓몬 교환이 가능하다. 나무위키엔 전국도감 삭제로 스위치 게임끼리 교환이 안 되는 걸 비판하는데, 애초에 교환 기능부터 포켓몬 홈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생각하면 전국도감 삭제는 아주 자연스럽다. 모든 포켓몬은 포켓몬 홈에서 관리되고, 아마 자체적으로 전국도감 기능이 있을 터인데, 굳이 매년 나오는 게임에 전국도감을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가라르 도감의 포켓몬 수가예상보다 적은 것도 명확한 메시지이다. “더 이상 포켓몬 게임은 포켓몬의 중심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선택으로 위에서 말한 2가지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때그때 나오는 게임 컨셉에 맞춘 부분만 구현해도 되고, 포켓몬 홈은 클라우드 기반이기 때문에 닌텐도 하드웨어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스마트폰 앱으로도 나오기 때문에, 스위치를 사지 않은 사람들도 포켓몬 프랜차이즈로 포섭할 수 있다.
훨씬 노골적인 증거는 바로 포켓몬 애니메이션이다. 신규 포켓몬 애니메이션은 모든 세대를 대상으로 하며, 소드 실드와연결되지 않는다. 이제 애니메이션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포켓몬 홈으로 상징되는 프랜차이즈 전체이다. 소드 실드부터의 게임은 가라르 지방과 신규 포켓몬을 ‘추가’할 뿐, 프랜차이즈의 중심이 아니다.
예상컨대 앞으로 포켓몬 외전 게임들도 더 활발하게 나오게 될 것이다. 굳이 연말의 신작 게임에 얽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포켓몬 홈을 중심으로 포켓몬 컴퍼니가 원하는 대로 IP전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신작 게임은 여전히 연말마다 나오겠지만, 아마 전국도감이 다시 부활할 일은 없으며(사실 이는 공식 발언이 있었다), 더이상 신작 게임이 본가인지 아닌지를 따질 필요도 없다. ‘몇 세대’라는 구분도 큰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멜탕처럼 포켓몬컴퍼니가 원한다면 게임을 거치지 않고 포켓몬을 추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